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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감사"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13-06-29 12:43:45
추천수 1
조회수   2,031

제목

"평생감사"

글쓴이

장준영 [가입일자 : 2004-02-07]
내용
제가 서예를 한다는 건 몇 번 말씀드렸고, 서예의 세부 분야들 가운데 전각을 해서 돈을 번다는 것도 말씀드렸습니다.

서예나 동양화를 하면 낙관도장을 찍으니까 저처럼 전각하는 사람이 필요하지요.

사실 작품답게 정성들이고 그에 걸맞는 돈을 받을만한 전각은 별로 새기지 못합니다.

대개 필방을 통해 들어오는 싸구려 업자 주문들을 많이 받지요…

요새 서예 배우는 취미생들은 서예라면 붓글씨 정도로나 생각하는, 인식 수준이 낮은데다, 소비 단가도 낮고,

가르치는 선생들, 용품을 취급하는 필방들도 잇속이나 생각하고 수준들이 낮아서 싸구려가 되어버렸습니다.

안목의 수준도, 소비 수준도 바닥을 기는 동네라 벌어먹고 살기 척박합니다.





제가 업자 전각을 새겨 주는 인사동의 필방 한 군데가 있습니다.

사장은 워낙 평판이 안 좋고, 사모가 대신 나와서 장사를 하는데,

카카오톡에 "평생감사"라고 박아놓은 독실한 개신교인입니다.





이 아줌마가 평소에 하시는 걸 보면, 낙관도장 주문이 들어오면 저한테 전화로

"아 여기 ○○인데요, 낙관할 거 있어요"

- 늘 이걸로 땡입니다.

주문한 손님이 급히 찾아갈 것인지, 며칠 여유가 있는 건지,

주문량이 달랑 하나인지, 수십 개인지, 아무 말도 없습니다.

이 아줌마는 성격도 급하고, 상세 사항 물을라 치면 뭘 그리 따지냐고 귀찮아하는 사람이라

긴 말도 붙이기 어렵습니다.





저는 인사동에 나가서 새겨주고 오는 경우도 많아서, 그런 경우 하루만에 되는 거지요.

출퇴근할 필요는 없는 직업이지만, 주문하고 다음 날, 심하면 당일에도 찾아가겠다는 몰상식한 사람들이 많아서

(작품에 찍을 낙관도장을 하루만에 새겨가겠다는 사람들 의외로 많습니다)

늘 대기하고 있어야 되는, 어디 며칠동안 서울을 비우지도 못하는 웃기는 직업입니다.

(명절에 고향 못 내려간 적도 많습니다. 명절 직전에 몇 조, 열몇 조를 턱 맡겨놓고,

명절 직후에 찾아갈테니, 해놓으세요라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렇다고 돈을 많이 버느냐? 절대 그것도 아니고,

어깨는 빠질 듯 아파서 몸도 빨리 갈 것 같아 늘 걱정입니다.





이 필방 아줌마는 달랑 "낙관할 거 있어요"라고 한 마디만 하면서,

오후나 다음 날, 대뜸 다시 전화해서,

왜 그 날 안 나왔느냐, 오늘 왜 안 나오느냐라는 것입니다.

전화를 받았으면 그 날 나와야 되는 것 아니냐, 그런 식인 거지요.

자기네가 주는 일 때문에 늘 대기하고 있어야 된다는 식인 거지요.

웬만한 경우라면 손님들은 주문한지 사흘 정도 뒤에 찾아가므로,

저는 이것저것 묶어 인사동에 나가 당일에 새겨주기도 하고, 집에서 새겨다 갖다주기도 하고,

낙관도장 일 말고 개인적인 일들과 묶어 나가거든요.

워낙 참담할 정도의 염가로 해주는 일이라, 교통비마저 아껴야 원가를 절감할 수 있습니다.

이 필방은 인사동에서도 대량으로 가격 파괴를 하면서 다른 필방들마저 정당한 가격 인상을 못하게 만드는데,

제가 새기는 낙관도장 역시, 그렇잖아도 필방 낙관도장 값은 10년, 20년 전과 가격이 동일한데,

이 가격 파괴의 선두주자 ○○필방이 그나마도 다른 곳보다 5천원을 싸게 받아서,

(제게 주는 가격은 다른 곳과 동일하지만, 소매가가 다른 곳보다 5천원 싸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 필방 때문에, 가격 인상을 할 수도 없고…

이 곳의 가격이 최저가이므로 인사동의 기준가가 되어버린 거지요.

다른 필방들도, 가격 올려야 된다는 제 말에 동의하면서도, ○○필방 때문에 올릴 수 없다고 난색을 표합니다.

제가 필방 싸구려 전각을 할 정도의 실력은 아닙니다… 질 좋은 작품급 전각을 신속하게, 김여사, 영감들 같은 사람들 요구에 다 맞춰 새겨주니,

제가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차지는 하고 있지만, 많은 손님들은 그 질의 차이를 잘 구분하지 못하고,

단돈 5천원이 싼 곳으로 몰린단 말이지요.

○○필방은 제게 한글 낙관만 맡깁니다. 한자 낙관은 일반 인장포 도장을 새기는 중국인에게 맡기는데,

그 중국인이 한글이 안 되므로 한글만 제게 맡기는 것입니다.

이 아줌마는 장사 밖에 모르는 사람이라, 그 중국인의 도장과 제 전각을 구분할 줄도 모르고,

제가 자기 원하는 날에 맞춰주기 어렵다고 그러면(그래봤자 다음 날, 이틀 뒤) 길 건너 도장방에서 새겨오고 마는 그런 까막눈이라,

무슨 말이 되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그 아줌마가 "낙관할 거 있어요"라고 달랑 한 마디만 해도

저 역시 긴 말 않고 "예"하고 말고, 그 날 내지 다음 날 가서 해주고 오는 것입니다.

웬만하면 여기 일을 끊고 싶지만, 가격 파괴 덕에 여기 일이 많이 들어오고,

(한자 낙관보다 한글 낙관이 주문량이 더 적은데도 많이 들어옵니다)

제가 여기 일을 끊는다 쳐도, 그 아줌마는 다른 도장포나 어디 가서든 새겨올 것이며,

서예하는 사람들 중 많은 수가 전각의 질, 수준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제가 그 필방 일을 끊는다 해도 그 필방은 건재할 것이고, 그 필방의 가격이 계속 인사동의 기준가가 될 것이므로,

거기 일을 끊어봤자 별 소용이 없을 거라고 저는 보는 거지요.





그런 이 아줌마가 카톡에 "평생감사"라고 박아놓고 있으니,

기가 찬 것입니다…

일반화의 오류가 될런지 모르겠습니다만, 많은 개신교인들은 평생감사, 범사감사 늘 입에 달고 살면서

주님께는 감사와 찬송을 바치면서

사람들에게 감사할 줄은 모르더군요. 도리어 민폐를 끼치지…

제가 그 아줌마한테 감사하다는 공치사 듣고 싶은 건 전혀 없습니다.

다만, 울화가 치밀어서 말이지요…

저도 개신교 신학을 전공했습니다만(보수가 아닌 진보 신학이라 전혀 다른 동네이긴 하지만),

주님께는 늘 감사하면서 사람은 돌아볼 줄 모르는 개신교인들의 사고 작동 원리는 도대체 이해하기 어렵더군요.

신학도로서 연구 과제로 삼아보고 싶을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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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기 2013-06-29 12:50:16
답글

하나님께 감사 예물로 백마리의 양을 바치기 위해 <br />
가난한 이가 가진 마지막 한마리 양을 빼앗는 사람들.

박희정 2013-06-29 12:52:10
답글

그분 성경을 다시 공부해야 하는 분으로 보입니다만.

이병일 2013-06-29 12:56:13
답글

인사동에 있는 필방조차, 그리고 서예를 한다는 사람조차도 전각에 대한 인식이 그리 낮군요.<br />
서예와 전각을 업으로(더불어 예술로 생각하시는) 장준영님께는 참으로 서글픈 일이겠습니다.<br />
<br />
실례가 안된다면 자자실에 장준영님의 전각 작품을 한 번 공개해주셔서 전각에 관심있는 분들의 안목을 넓혀주시면 어떨지 조심스레 말씀드려봅니다. <br />
<br />

장준영 2013-06-29 13:00:51
답글

└ 이병일님 조언대로 가끔 올려보겠습니다… 제가 제 작품 정리(깔끔하게 스캔하고 보기 좋게 사진찍는 등)에 게으르고 서툴러서 자주 올릴 자신은 없습니다만요…<br />
다른 동호회 게시판에는 종종 올립니다만, 와싸다에 제 졸작을 올려볼 생각은 못했네요… 말씀대로 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병일 2013-06-29 13:03:29
답글

ㄴ 앗!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0^*<br />
<br />

김현희 2013-06-29 13:27:10
답글

평생감사...장준영님이 올린 글을 보면 저도 울화가 치미는군요.

오상헌 2013-06-29 13:28:16
답글

준영님의 작품 올리시길 기대하겠습니다.

한상진 2013-06-29 13:37:12
답글

신앙과 삶이 물과 기름 마냥 갈라져 있으니, 일상에서 구원을 얻기는 어렵겠네요.

김지태 2013-06-29 13:40:00
답글

평생감시 오타 아닐까요?

김인구 2013-06-29 13:41:53
답글

저도 준영님의 작품 기대해보겠습니다.<br />
집이 지방이라 간혹 인사동 가면, 쌈지길 2층에 있는 전각가게에 들르곤 합니다.<br />
그렇지만 안목은 매우 일천합니다.

shin00244@gmail.com 2013-06-29 13:48:01
답글

그 좋다는 천국에 왜 언능 안가는지.

신석현 2013-06-29 13:50:33
답글

생활, 삶을 배반하는 신앙은 독이며 또한<br />
처참합니다<br />
하나님을 기쁘게한다는 의미를 모른는<br />
기독인들을 보면 안타까움을 넘어<br />
경멸스럽기까지 합니다

이종수 2013-06-29 13:51:42
답글

장준영 선생님. 기독교인의 한 사람으로 사죄 말씀 드립니다.<br />
말씀하신 것 처럼 신앙이란 삶으로 살아내는 것인데, 정말 그렇지 못하는 것이 저를 포함해서 많은 신앙들이 겪는 또는 잊고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br />
"평생감사"사모님도 그런 분 중에 한 사람이시고, 때가 되면 그 분도 그 걸 아실 수도 있고, 슬프지만 그냥 그대로 신앙(종교로서의)과 삶이 동 떨어진 채로 평생 사실 수도 있겠지요....<br />
하지만 장준

강인권 2013-06-29 13:52:59
답글

글을 읽으면서 많이 찔림을 받습니다<br />
<br />
저 역시 취미로 서예를 했는데 싼 곳만 찾아 다녔으니...<br />
언젠가는 솜씨를 인정받아 제대로 대접받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인성 2013-06-29 14:03:59
답글

같은 인간에게 나쁜짓 하는걸, <br />
신에게 평생감사함으로써 용서 받는다 생각하나 보네요.<br />
<br />
내가 이렇게 나쁘짓 하거나 막무가내로 살더라도, <br />
신이 다 용서해주실거야. 신에게 평생감사해야지....라는 식으로요.

황준승 2013-06-29 14:41:58
답글

목사에게서 그리 배운 사람들은 그리 행동 하고 생각 하겠지요<br />
<br />
사람들 등쳐서 돈벌면 교회 가서 감사기도 하고요

lalenteur@hotmail.com 2013-06-29 14:50:00
답글

인사동 골목을 다녀보면 필방과 전각을 새기는 곳이 몇 군데 보이더군요. 전각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집에 몇 권의 책자로 그 어려움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따름입니다. 준영님 말씀을 듣고 보니 열악하다 못해 푸대접이 일상이군요. 예술을 하는 분들이 충분한 보상과 댓가를 받는 세상이 하루 빨리 와야 할텐데요. 그런데 우리나라 역사에서는 예술가들이 대접받은 세상이 있었던가요. <br />
<br />
참고로 제가 가지고 있는 책목록입니다. <br /

왕희성 2013-06-29 15:16:09
답글

잘되면 신에게 감사, 잘못되면 인간에게 원망<br />
정통이나 이단이나 워낙 그런 모습들을 많이보니 뭐 그 종교의 교리가 정말 그런걸로 보이기도 합니다<br />
다른건 다 떠나서 신에 대한 예의만 차리지말고 인간에 대한 예의를 조금만 가르쳤으면 할때가 있습니다

장준영 2013-06-29 16:17:13
답글

많은 분들께서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br />
<br />
유일신 신앙이 빠질 수밖에 없는 맹점이,<br />
그 신에게만 집중하게끔 강요함으로써 다른 것을 못 보게 만든다는 게 아닌가 합니다.<br />
예수가 질타한 게 바로 그러한 당시 유대교의 경직된, 비인간적 신앙 행태였는데,<br />
그 예수를 받들어 모시는 기독교도 똑같이 되어버렸지요.<br />
저도 매 주일 성당을 나가는(소속을 가톨릭으로 바꿨지만) 기독

조상현 2013-06-29 16:35:55
답글

장문의 글이라 천천히 읽었습니다. 한편의 수필을 읽는것 같습니다. 전각에 대해서 궁금해졌습니다^^

최봉환 2013-06-29 17:34:56
답글

언제부터 일지는 모르겠으나.<br />
우리나라는 질에 대한 개념이 없어진지 오래 인듯 합니다.<br />
오로지 가격만 따지고, 질은 어디 사기치는 소리 정도로 밖에 생각 안하는 문화가 기본인 듯 합니다.<br />
그나마 요즘은 조금은 따지는 사람이 늘어가는 것 같기도 한데...<br />
인문학이 죽어서 그런 것이지, 워낙 가난했던 시절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질이 좋고 값이 높은 물건은 그저 비싼 물건이 되어 버리고 사치가 되어 버리

장준영 2013-06-29 17:49:23
답글

└ 최봉환님, 마지막 말씀의 그게 안 됩니다.<br />
필방에 납품하는 제대로 된 전각가가 저밖에 없습니다.<br />
인사동 한복판에서 대형 필방들을 상대로 하는데도 저밖에 없어요.<br />
<br />
전각이 보급되기 전부터 필방에서는 싸구려 낙관 도장을<br />
근처 인장포에서 새기거나, 당시에도 지금과 가격은 거의 같았으므로 그 때는 큰 돈이었기 때문에,<br />
당시 몇 안 되는 전각하는 고만고만한 작가들에게 맡기거나

심병주 2013-06-29 18:14:38
답글

참 안타깝네요 일본이라면 어떨까 싶네요<br />

yhs253@naver.com 2013-06-29 18:26:29
답글

장사를 하더라도 장사아치 소리는 듣지 말아야 하는데 , 참...안하무인이군요..<br />
그런데 다른분야도 마찬가지로 저사람보다 더한 사람 많아요,,<br />
대부분 참고 일합니다.<br />
<br />
저는 저런경우 참지 못하고 한마디 합니다...아주 강력하게..<br />
그게 먹히면 편하게 가는거고 ,찍히면..끝나는건데..<br />
<br />
몸은 힘들어도 스트레스는 받지말자 ..이런생각으로 살고 있습니다...물

최봉환 2013-06-29 18:28:02
답글

제 3자 입장에서 보기엔.. <br />
주변 설득할 것도 없이 오히려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서 단 몇 일만 버티시면 될 듯 도 하지만.. <br />
돈만 문제가 아니신 것으로 보이네요.<br />
뭔가 좋은 방향으로 변화가 있으면 좋겠네요. 답답하시겠습니다.

장준영 2013-06-29 18:36:58
답글

└ 임 선생님 글 평소에 늘 챙겨 읽고 있습니다… 저보다 한참 인생 선배이시니 배울 게 참 많습니다.<br />
임 선생님은 방금 말씀하셨다시피 영업을 하시면서도 생각을 갖고 소신껏 하신다,<br />
돈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가치 위에서 하신다고 평소에 느꼈는데,<br />
말씀마따나 안 그런 사람들 많은 것 같아요. 저도 남들에게 민폐 끼치고 사는 부분 많습니다만…<br />
<br />
신학은 학교에서 제대로 배우지도 않았고요

심병주 2013-06-29 18:50:56
답글

일본 살면서 늘 느끼지만 전문가 예술가가 손을 대면 제가 예상하는 가격의 항상 두배 세배 정도의 가격이 붙어 있습니다<br />
아 다시 한번 안타깝네요

김병태 2013-06-29 20:37:32
답글

전각 부탁해도 되겠는지요 붓글씨 조금 쓰고있는데<br />
...어디서 만들어야 할까 고민중이었음다....<br />
운치있게 한세트 부탁드려고 될까요?<br />
경남 사천의회원임다 글고 힘내세요 ㅠ ㅠ

정윤환 2013-06-29 22:11:05
답글

그 아줌마는 평생민폐가 딱 어울리네요

장준영 2013-06-29 22:49:51
답글

└└ 김병태님, 부탁하셔도 됩니다. 제 와싸다 email(jang-young@hanmail.net)이나<br />
○19-84○-2833으로 연락 주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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