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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여직원 두둔한 박 대통령, 왜 침묵하나?
지난 대선에서 국정원장의 지시로 국정원이 선거에 개입하고,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은 상부 지시로 사건을 은폐 조작했음이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 박근혜 당시 후보는 마지막 TV토론회에서 해당 사건에 대해 "국정원 여직원 선거에 개입한 증거가 없으며, 민주당이 국정원 여직원의 인권을 침해한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검찰 수사 결과가 발표된 지금, 이 사건에 대해 아무런 말이 없다.
새누리당은 대변인 등 지도부가 나서 이 사건 관련자에게 공직선거법을 적용한 것을 두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으며, 국정조사 실시 약속을 지킬 수 없다는 입장까지 내비치고 있다. 부정선거가 아니며, 선거 당락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심지어, 새누리당 원내대표인 최경환 의원은 이 사건으로 인해 오히려 자신들이 손해를 보았다고 궤변까지 늘어놓았다.
민주당 등 야당은 법적 대응 뿐 아니라 장외 투쟁까지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서울대, 이화여대 등 대학가에서 시국선언과 기자회견 등이 잇따르고 있으며, 촛불 집회도 진행되고 있어 사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법원이 부정행위를 인정하지 않은 이유
대선을 큰 시험이라고 봤을 때 만약 대학입시나, 또는 교사 임용 과정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어떻게 될까?
#사례1. 아버지가 합격 청탁한 수험생 A씨
2004년 대학입시에서 고3인 A씨는 서울 명문대 체육과에 합격을 하였다. 그런데, 그 학생의 아버지가 실기 시험 평가자이자 그 학교 교수에게 수천만원의 돈을 주고 합격 청탁을 한 것이 밝혀졌다. 그 학생은 이런 사실을 몰랐으며, (채점표 확인 결과) 그 교수의 점수를 빼고 계산하더라도 합격할 수 있는 점수를 받았다. 이 학생의 합격은 어떻게 되었을까?
#사례2. 아버지(남편)이 청탁 제공한 교사 임용
2008년 부산, 어느 학교 기간제교사들이 그 학교에 정교사로 임용이 되었다. 그런데, 그들의 아버지(또는 남편)이 그 학교 이사장에게 정교사로 임용될 수 있도록 편의를 봐달라는 청탁과 함께 수천만원을 주었고, 이사장은 미리 문제지를 빼내 주었다. 그들은 이를 알지도 못했으며, 다른 응시자들보다 월등한 성적으로 합격을 하였다. 이 교사들의 임용은 어떻게 되었을까?
결과부터 말하자면, 학생은 대학 합격이 취소되었으며 교사들 역시 임용이 취소됐다. 학교에서 벌어진 이 두 사례는 국정원의 대선 개입 사태에 시사해 주는 바가 크다.
첫 번째 사건의 해당 대학은 학생의 합격을 취소했고, 학생은 억울하다며 소송을 했다. 자신은 그 부정과 아무 관련이 없으며, 아버지가 돈을 주었는지, 청탁을 했는지 알지도 못한 상태에서 최선을 다해서 시험에 응했다는 것이다. 나아가, 돈을 받은 교수의 점수를 빼더라도 합격이 가능한 점수를 받았으므로 아버지 부정행위와 자신의 합격 여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학생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자신이 아닌 아버지가 한 것이고, 합격 여부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더라도 부정행위이므로 합격이 취소되어야 한다고 판결했다.
두 번째 사건 교사들 역시 임용이 취소되었고, 억울하다며 소송을 했지만 역시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신은 시키지도 않았고, 알지도 못했더라도, (자신이 아닌) 아버지 또는 남편이 돈을 주고 시험지를 빼냈더라도, 다른 응시자보다 월등한 점수를 받았더라도 부정행위이기 때문에 임용 취소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이 두 사건에 모두 일관되게 적용한 법원의 판례는 다음과 같다.
판례1 : "합격 및 임용 취소의 사유 중 하나인 '부정행위자'란, 우선 시험의 공정성을 해하거나 해할 우려가 있는 시험에 관한 일체의 부정행위를 한 자를 모두 지칭하는 것이어서, 그 부정행위가 합격 여부에 영향을 미치지 아니하였어도 부정행위에 해당하면 합격취소 사유가 된다."(대법원 1991.12.24. 선고 91누3284)
판례2 : "응시자가 자기 자신의 합격을 위하여서 한 스스로의 부정행위 뿐 아니라 응시자가 타인을 위하여 부정행위를 한 경우도 부정행위가 된다."(대법원 1972.1.31. 선고 71누180)
판례3 : "응시자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타인이 응시자를 위하여 부정행위를 한 경우일지라도 응시자가 타인의 부정행위로 인하여 경쟁 시험에 의하여 공정하게 선발된 자로 평가될 수 없을 경우에는 그 응시자 역시 '부정행위자'에 포함된다고 보는 것이 상당하다."(대법원 2006.7.13. 선고 2006다23817)
판례1은 합격 여부에 영향을 미쳤느냐 여부와 상관없이 시험의 공정성을 해치는 모든 행위를 '부정행위'로 규정한다는 것이고, 판례2는 자기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하여 한 행위도 '부정행위'에 포함된다는 것이고, 판례3은 응시자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타인이 부정행위를 했을 경우 시험의 공정성을 해친다면 합격 취소가 정당하다는 것이다.
선거 부정 인정하지 않는 새누리당, 과연 맞나
똑같지는 않지만 학교에서 일어난 위 두 사건과 지난 대통령 선거를 비교해 보자.
물론, 새누리당은 국정원의 선거 개입 자체를 인정하고 않고 있으며, 선거 부정이라는 것 역시 인정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위의 두 사건과 비교해 볼 때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말씀(지시)에 의하여 이루어진 국정원 직원의 댓글 달기와 추천·비추천 작업은 국가기관이 동원된 선거개입이 분명하다.
박근혜 후보나 새누리당이 직접 한 것이 아니니까 부정이 아니라는 주장은 합격이 취소된 학생이 "아버지가 한 일", 임용이 취소된 교사가 "아버지 또는 남편이 한 일"이므로 자신들은 몰랐다고 변명하는 것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법원은 설령이 타인이 한 것이라도 합격과 임용을 취소할 수 있는 사유인 부정행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두 번째, 국정원의 선거 개입이 박근혜 대통령 당선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으니까 부정이 아니라고 하는 주장 역시 위 두 사례에 적용된 "합격 여부에 영향을 미치지 아니하였어도 부정행위에 해당하면 합격취소 사유가 된다"는 법원 판례에 비추어 보면 받아들이기 힘든 이야기다.
물론 대학입시와 교사 임용시험을 대통령 선거와 동일 선상에 놓고 비교할 수는 없다. 대통령 선거는 두 사건과 달리 당선을 취소할 수 있는 기관이 없다는 점 역시 큰 차이점이다.
그러나 시험과 선거 모두 부정 없는 공정성이 생명이라는 점에는 차이가 없다. 굳이 일의 경중을 따지자면 대통령 선거가 영향력이 가장 크게 때문에 공정성이 더 엄격하게 지켜져야 하는 건 상식이다.
미국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1972년 대선에서 선거인단 기준 520:17이라는 역사상 가장 큰 차이로 당선됐지만 정보부 직원들이 상당편 후보 사무실에 도청을 하려다 발각된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했다. 자신은 몰랐다거나 너무 표 차이가 큰 선거여서 영향이 없었다는 변경은 통하지 않았다.
19대 총선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관악구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한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는 민주당 후보와의 단일화 여론조사 과정에서 여론조작시비에 휘말렸다. 이정희 대표가 지시한 일도 아니고, 메시지가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확인할 수도 없었지만 이정희 후보는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결국 후보직을 사퇴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침묵, 비겁하다
문재인 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이 사건이 명백한 선거 부정임에도 선거 결과 승복 입장을 밝히면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 물론 이 사건이 법원에서 유죄 판결이 확정된다 하더라도 선거 당락이 뒤바뀔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당락이 뒤바뀔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 박근혜 대통령의 침묵과 새누리당의 국정조사 거부를 정당화 해 줄 수는 없다. 국민들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듣고 싶은 말은 "책임을 통감한다.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관련자들을 일벌백계하고 국정원을 확실히 개혁하겠다"가 아닐까?
말 장난 같은 북침-남침 시비로 교사와 학생들 훈계하는데 힘을 쏟기보다 대통령은 초유의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에 대해 국민 앞에 당당하게 입장을 밝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