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욱의『정치는 역사를 이길 수 없다』(개마고원,2013)는 ‘박근혜․문재인의 사과가 말해주는 것들’이라는 재미난 부제를 달고 있다. 정치인도 사과할 수 있는가? 정치인도 사과할 수 있다면, 그들은 어떤 경우에 사과하게 되는가? 그들로부터 사과를 받아내는 수단은 무엇이며, 그들로부터 받아도 그만 안 받아도 그만일 것 같은 사과를 받아내는 것에는 무슨 뜻이 있는가? ‘사과의 정치학’이라고 해야 할 이 책이 제기하는 문제는 위와 같다.
정치판에서의 사과는 연예인들의 음주 운전보다 더 잣다. 그런데 청와대에서 ‘촛불바다’를 보고 “뼈저린 반성”을 했다던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과가 꼼수였듯이, 정치인의 사과는 ‘언어적 수사를 통한 정치’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정치인의 사과는 자발적이기 보다 강요의 산물이며, 양심적 결단이기 보다 이해관계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특히 유권자로부터 표를 끌어야 모아야 하는 선거 국면은 정치인이 사과 경쟁을 벌이는 예외적 시간이다.
지난해 본격적인 대통령 선거 유세를 앞두고 박근혜․문재인 후보는 각기 인상적인 사과를 행했다. 박 후보는 9월 24일 여의도 당사에서 이루어진 기자회견에서 오늘의 자신이 될 수 있도록 막대한 정치적 위광을 물려준 아버지 박정희 행적에 대해 전향적인 사과를 했다. 한편 문 후보는 9월 27일 광주로 내려가 노무현 대통령 당시 민주당을 호남 지역주의 정당으로 몰아세우며 분당을 했던 열린우리당 시절의 실책을 사과했다. 지은이는 똑같은 비중으로 두 후보의 사과를 분석했으나, 내 독후감은 박 후보의 사과만 언급할 작정이다. 문 후보가 청와대 입성에 실패함으로써 그의 사과가 얼마만큼 진정성이 있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점검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진 반면, 박 후보는 대통령이 됨으로써 구체적 실천을 통해 사과의 진정성을 입증해야 하는 짐을 졌기 때문이다.
박근혜 후보의 사과가 지닌 의의를 살피기 전에 지은이가 우리나라 현대 정치사에서 사과를 받아내지 못한 실패 사례로 꼽은 ‘전두환․노태우 재판’부터 들여다 보자. 12․12군사 반란과 5․18 광주학살의 장본인이었던 전두환은 노태우에게 대통령 자리를 인계하고 자진해서 2년여의 백담사 유배를 택했으나, 그것으로 민심을 달래고 사법적 처벌을 무마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 결과 1996년, 그는 반란혐의로 법정에 서게 되지만, 그의 1심 공판 최후진술은 사과와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정권이 바뀌었다하여 그 정권의 정치적 시각과 역사관에 의해 과거정권의 정통성을 시비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닐 것”이라며 법정을 꾸짖듯 했다. 군사반란과 민란을 조작하여 정권을 탈취한 도적이 무슨 정통성 타령인가?
그의 오만은 1심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서야 수그러들었다. 전두환은 항소심 최후진술에서 “재판과정 중 많은 분들이 희생과 고통을 겪은 것을 알고 당시 국정의 한 부분을 담당했던 사람으로서 정치적 도의적으로 큰 책임을 느낀다”라고 태도를 조금 바꾸었다. 그러나 그는 광주학살의 책임을 끝내 모면하고자, ‘당시에는 몰랐으며 재판과정에서 알았다’라고 스스로를 변명했다. 전혀 만족스럽지 못하지만, 전두환으로 하여금 약간의 변화라도 이끌어 낸 것은 ‘법의 뜨거운 심판’이었다. 지은이는 “사형선고․집행 가능성”에 대한 실제적 긴장이 더 높았더라면 그로부터 관용을 호소하는 “역겨울 정도”의 애소를 들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가정한다. 이는 4․19 직후 도주하듯 미국으로 떠났던 이승만에게도 적용된다.
전두환에 대한 향후 처리는 무기징역으로의 감형과 사면을 통한 조기 석방이었다. 이후 그는 전 국가원수라는 특전을 만끽하면서 버젓이 국가 원로 행세를 하게 된다. 그 뿐인가? 그를 사랑한다는 ‘전사모’가 발호하고, 그의 고향에는 자신의 아호를 붙인 공원이 조성되었으며, 그가 졸업한 고등학교에는 기념관이 생겨났다. 그가 희희낙락하는 사이에 5․18은 국가 기념일(애도일)이 되지 못하고, ‘전국 어느 도시에서 똑같이 일어날 수 있었던 학살이, 광주에서 우연히 일어났다’는 기만적인 지배 이데올로기에 잠식되었다. 지은이는 이 모두가 사과를 받아내지 못한 일방적인 용서의 후과라면서, 그 책임을 ‘용서라는 이름의 판단중지’를 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묻는다. 정치적 사과는 개인․감정․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집단․이데올로기․미래의 문제이기 때문에 “아예 사과를 못 받는 한이 있더라도, 결코 사과 없는 용서로 대체될 일이 아니다.”
9월 24일 여의도 당사에서 이루어진 기자회견에서 박근혜 후보는 유신과 인혁당 사건만이 아니라, 5․16 자체에 대해 “헌법 가치를 훼손하고 대한민국 정치발전을 저해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라는 ‘코페르니쿠스적 사과’를 했다. 이 과정에서 아버지의 과오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는 일이 연좌제라는 일부의 저항도 있었지만, 연좌제란 죄인의 친족에게 연대적으로 형사 처벌을 가하는 제도로 용서를 대신 비는 것은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공당(통합진보당)에게 북한인권․북핵․3대 세습에 대한 공식 입장을 묻는 것이 유권자의 알 필요에 해당한다면, 헌정을 무너뜨린 군사반란으로 규정되어 국민 대다수의 지탄을 받고 있는 5․16을 비호해 온 유력한 대통령 후보에게 그 동안의 신념에 대한 전향적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정치인의 사과가 강요의 산물이며 이해관계 득실에 따른 선거전의 단골 전략이기에 그렇게 받아낸 사과가 무의미한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지은이는 “이데올로기적 사과는 한 번 하고 나면 나중에 입장을 바꾸려고 해도 주워 담기가 힘들다”라면서 “어쨌든 그녀는 사과했고, 이제 그녀는 이 역사적 사과의 굴레에 일정부분 갇혔다”라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공적으로 기록된 정치적 사과는 ‘역사의 전리품’이며, 그 자체로 모든 것을 바꾸지는 못하지만 그것이 “유권자에게서 나온 것”이기에 더욱 소중하다. “사과를 받는 것보다 사과를 지키는 것이 더 힘들다”라는 사연 속에 정치인의 사과가 말잔치일 수밖에 없는 비밀이 고스란히 축약되어 있는 바, 정치인으로 하여금 사과의 구체적 이행을 강요하는 것 또한 국민의 몫이다.
역사의 평가나 심판에 대한 과도한 기대는 민중들 최후의 탄원처이면서 세상의 모든 독재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논리이기도 하다. 학살자들은 역사주의라는 상대적․사후적․초월적 거리를 통해 확보된 은신처에 숨어 있다. 그 참호에서 나온 박근혜 대통령은 이제 자신의 사과를 눈에 보이게 실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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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소설가 장정일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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