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값이란게 시장흐름에 따라 가격이 형성된다.
간혹 그 품질에 비해 가격의 오르내림차가 있긴 하지만,
제 값을 주고 구입한 물건은 그 값에 준하는 일정한 품질을 유지할때 가장 합리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네 일상을 보면,
가끔 바겐세일! 오늘만 이 가격! 눈물을 머금고 정리! 가격파괴! 등 등...
개인이던 사업자던 , 뭔가 일이 매끈하게 안풀려나갈때 위와 같은 문구를 사용한다.
그 정도의 차이야 있겠지만,
세일을 하는 입장에선, 유지하는거보다 정리하는게 더 큰 손실을 줄일수 있을거란 판단에서 내린 결정이다.
이곳 장터에도 오됴기기 판매글을 보게 되면,
급매로 저렴한 가격의 제품이 출몰하기도 하고,
비인기 제품은 시일이 지날수록, 판매자 스스로 가격을 내리곤 한다.
급전이 필요하든 업그레이드 또는 오됴정리를 하든지간에, 이미 마음에서 떠난 기기를 내보낼땐,
빨리 판매되길 바라면서, 마음한구석엔 제 값을 받지 못하는 손실로 마음이 썩 유쾌하지많은 않다.
그러나 그 제품이 꼭 필요한 사람에겐, 좋은 제품을 저렴하게 구입하는 행운(?)을 얻었으니,
기분이 좋아지는게 어쩔수 없는 시장논리 이기도 하다.
예전 태풍으로 인해, 과수농사가 업인 분들이 낙과피해로 시름에 겨워있을때,
낙과팔아주기 운동으로,
그나마 손실을 입은 분들의 마음을 달래준것으로 비견한다면 너무 동떨어진 비약이려나...
어쨋거나 판세, 불확실한 정보, 예기치못한 상황, 그로인한 판단미스가 있었다면...
재빨리 정리한후, 다음을 준비하는게 삶의 지혜가 될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을 해본다.
서론이 너무 길었다.
개인적으론 좋은 품질을 제 값주고 구입 하는걸 원칙으로 삼고 있지만,
그 과정이 상식에서 어긋나지 않는다면,
좋은 물건을 저렴하게 판다 했을때, 굳이 마다하지 않는다.
가까이 지내는 목공소 김사장님께서,
유구에 가면 한우정육식당이 있는데 상 한차림에 삼 만 원 이고,
4 명이 한우소고기를 실컷 먹을수 있다고 하셨다.
전에부터 "한번 가유~" 하시는걸, 서로 시간이 맞지않아 차일피일 미뤄졌었는데,
얼마전 드뎌 짬이 났다.
나와 김사장님의 지인 두 분 포함, 4 명이 차를 타고 유구를 향해 달려갔다.
석가탄신일이 겹친 3 일 연휴여서인지 도로엔 차들이 가득하고,
차창밖으로 보이는 시냇가엔,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며 즐겁게 재잘거리는데 그 모습이 참으로 정겹다.
목적지에 도착해보니, 지방 소도시라 그런지 거리에 다니는 사람이 많지않아 한가로운 풍경인데,
웬걸... 식당 안으로 들어서니 손님들이 가득한게 복작복작하다.
한 상에 삼 만 원 이라고 하니 큰 기대를 한것도 아니지만,
막상 차려나온 상차림을 보니... 우와 대박이다!
소고기 각 부위별 모음과 생간에다 천엽 육사시미까지...
이게 다 삼 만 원이 맞는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물론 고급 한우전문점처럼 몆 시간을 잠재워 잘 숙성된 꽃등심처럼,
한번 씹으면 육즙의 향이 입안에 가득 퍼지며, 혀끝에서 살살 녹는 그런 맛은 아니다.
막 들어온 생고기를 뚝뚝 잘라 살금살금 포를 떠내,
씹을때마다 육질의 생생함이 진하게 느껴지는 그런 맛이다.
분위기 또한 고급 레스토랑처럼,
아름다운 음악이 흐르고, 한손엔 와인잔을 들어 가벼이 술잔을 돌리면,
색감에 취하고, 향기에 취하고, 맛에 취하고...
그런 우아함과는 거리가 있다.
눈을 돌려 주위를 보면,
아침에 눈을 떠 집밖으로 나설때,
수퍼어르신.. 세탁소아저씨.. 미장원아줌니.. 늘상 마주치는 내 이웃들의 얼굴이 여기에 있었다.
모처럼 때빼고 광내고 폼나게 차려입고 첫데이트를 나선다면...
이런 분에게 권하고 싶은 자리는 아니다.
그저 만만한 사람과 대수롭잖은 농짓거리에 박장대소를 하고...
게다가 삼 만 원 이란 저렴한 가격으로 소고기를 실컷 먹을수 있는 그런 곳을 가고 싶다 한다면...
강추한다.
배터지게 먹었다.
마지막 남은 고기 몆 점은 서로 양보하는걸로 보아, 다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듯 했다.
드물게 국밥까지 먹고 나오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던데,
우리 모두는 고개를 흔들고 나왔다.
이렇게 팔아도 남는게 있는지 살짝 궁금해졌지만,
문전성시를 이루는걸로 봐서 쓸데없는 오지랖인듯 했다.
배를 쓰다듬으며 식당밖으로 나왔는데, 마침 저만큼서 걸어오는 식당 여사장님 아지매를 만났다.
"왜 밥은 안먹고가?" 하신다.
그러자 목공소 김사장님이,
"돈이 없어서유~" 하자,
"에구 그냥 주께 먹고가!" 하신다ㅋㅋ
이왕 온김에 시장구경이나 하자고 하여, 시장을 한바퀴 돌았다.
김사장님이 참외가 먹고싶다며 봉지에 담겨있는 참외 두 봉지를 샀다.
차를 달려 마을외곽을 빠져 나갈 무렵,
저만큼 개천이 보이고 그 개천옆에 느티나무가 서있고, 그늘이 좋아보이는 정자가 있었다.
김사장님이,
"우리 저기서 참외 깍아 먹고 갈까요?" 하자,
모두들 좋다고 하여 차를 세우고 정자로 갔다.
시골이라 그런지 개천물도 맑아보이고, 확인은 안해봤지만 송사리떼 정도는 헤엄쳐 다닐듯 했다.
살랑대는 바람결에 흔들리는, 짙은 연두빛 느티나무 잎새의 청량감...
써금써금해보이는 사륜오토바이...
핸들에 고무줄로 묶어놓은 카셋트에서 낭랑하게 울려퍼지는 고즈녁한 뽕짝 음악소리...
오토바이에 앉은채 잠시나마 세상시름을 잊기라도 하듯...
지긋이 눈을 감고 그 리듬에 취해 있는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
카셋트에서 들리는 소리외엔,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듯 고요한 적막이 흐른다.
이 얼마만에 느껴보는 평화로움인가...
다람쥐 쳇바퀴돌듯 무미건조한 일상에서의 탈출이,
사람의 마음을 정화하는데 일조를 한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살았다.
그런데...
김사장님 친구 최사장님께서 참외를 깍아 내게 건네 주셨다.
한입 베어물었다.
이상하다.
아삭거리는 소리가 나야할 참외가, 삶은 호박을 베어물듯 푸석거리는 소리가 난다.
옆에 있는 김사장님이 별말 없으신걸로 봐서는, 김사장님이 드시는 참외는 아삭거리는가 보다.
김사장님의 친구 최사장님도 별말 없으신데, 김사장님의 선배분은 참외가 물렀다고 한다.
봉지에 담겨있는 참외를 모두 꺼내 놓았다.
껍질을 눌러보니 반 정도가 물렁거린다.
한마디로 골은 참외다.
김사장님이 그러신다.
"어쩐지 봉지에 다 담아놨더라니..."
이게 이 마을에서 먹었으니 미리 발견한거지..
집으로 싣고 가서 발견했다면, 다시 바꾸러 오지도 못할뻔 했다.
다시 바꾸러 오지 못할걸 알고, 폐기처분해야할 참외를 이렇게 눈가리고 아웅하다니...
그 참외장사아저씨 양심이 참 노굿이다.
"어떻게 할까요?"
"뭘 어떻게 해요... 다시 가서 바꿔 달라고 해야죠~"
김사장님이 차를 돌려 그 참외파는 곳을 다시 찾아갔다.
손님 서너명이 과일을 고르고 있었다.
영업에 방해될까봐 일부러 기다렸다 말하려고 했는데, 손님들이 계속 온다.
마냥 기다릴수만은 없어서 김사장님이 입을 열었다.
"저기요 참외 바꾸러왔어요~"
"참외가 왜요?"
"반이나 물렀어요.."
"언제 사갔는데요?"
"이 아저씨 참.. 조금전 사갔잖아요!"
참외장사 아저씨 아무소리 안하고 허둥지둥 참외를 담아준다ㅋ
돌아오는 길에 최사장님이,
지인이 오됴매냐이신데 이 근방에 사신다며, 잠깐 들렀다가자고 하신다.
주유소를 운영하고 계셨다.
날이 날이니만치 밀려드는 차량에, 직접 주유 하시느라 정신이 없으시다.
바쁜 와중에도 원두커피까지 대접해 주시고, 일하는 짬짬이 해박한 오됴지식을 들려주셨는데,
일사천리로 거침없이 얘기하시는 모습을 보니,
고수가 틀림없으시다.
마치 블로거로 유명한 x쟁이 x이사님의 글을 보는듯한 묘한 착각이 일었다.
원체 바쁘시다보니, 아쉽게도 이 분의 시스템을 청음해볼 기회가 없었지만,
다음에 다시 찾아뵙겠노라 인사만 드리고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어차피 쉬는날이라 달리 할일이 있는것도 아니지만, 같이 시간을 보내다보니 해가 서산에 걸렸다.
저녁식사로 냉면 한그릇씩을 먹고 헤어지기로 했다.
고복수 냉면집으로 갔다.
실내인테리어가 심플한 것이, 몆 시간 전 소고기를 먹은 식당과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손님도 대부분 가족들인 듯 하고,
식사위주의 식당이어서인지 술마시는 고기집과는 많이 대조적이다.
면의 양도 서너젓가락이면 다 먹을것 같은데, 이 적은 양이 8,000 원 이란다.
냉면 4 인분 값도 안되는 돈으로 소고기를 배부르게 먹고 왔는데,
그렇게 보면 이 식당 냉면값이 비싼걸까?
아니 아니다 꼭 그렇지만도 않은게, 그 소고기집이 유난히 저렴했던 거다.
더구나 냉면은 매일 먹는것도 아닌데, 냉면맛 하나로 80 여 년 의 전통을 이어 왔다는데,
그 장인의 손으로 빚어낸 명품맛을 본다는게 어디 쉬운 일인가?
더구나 나는 이 식당을 무려 10 여 년 만에 다시 찾아 왔고,
달랑 냉면 한그릇 사먹자고,
일부러 혼자 운전하여, 이 곳을 찾아 온다는 것 또한 흔치 않은 일이다.
오히려 겸사겸사 이런 만남으로 인해, 명품 냉면을 다시 맛볼수 있었으니,
8,000 원의 값이 전혀 비싼 것만은 아닐 것이다.
나이들어가며 점점 재미있는 일이 줄어 든다.
예전 한참 혈기왕성할땐 돈이 부족해 정부미 됫박쌀을 사서 밥을 지어 먹은 적이 있는데,
불면 날아 갈 것 같은 그 밥에,
낙원 지하상가 시장에서 사온 김치 300 원 워치를 얹어 먹었다.
영양부실로 볼이 움푹 들어갈정도로 말랐었지만,
그래도 의욕이 넘치고 하고 싶은 일이 많았다.
이젠 즐거움이 있다면, 가끔씩 내려오는 손녀 손자 보는 낙.. 옛일을 회상하며 오됴질 하는 것..
이렇게 가끔씩 맛있는 음식을 맛볼때인데...
한가지 맛보기도 어려운데, 이날은 세가지나 맛을 봤으니, 입이 보통 호강한게 아니다.
퇴근후 집에 오면,
혼자 쭈그리고 앉아 오됴질만 하는 나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사람은 역시 발이 넓은 사람을 알고 지내야, 입이 호사를 누리는게다...
언젠가부터 바깥나들이를 거의 하지 않고 지냈었는데,
내 생활에 조금씩 변화가 오기 시작한건, 김사장님을 알게 되면서 부터다.
사람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삶의 향방이 바뀌기도 하는데,
이 나이먹어 무에 그리 달라질게 있겠냐만,
그래도 헛헛한 이 사람을 불러주는 분이라도 있으니, 고맙고 또 고마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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