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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십일조에 대한 글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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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23 11:27: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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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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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십일조에 대한 글하나.... |
글쓴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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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재 [가입일자 : 2002-07-08] |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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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누가 목사님이 쓰신 "십일조를 넘어서" 라는 책이 있습니다. 십일조의 유래와 성경적 의미, 그리고 현대인과 십일조의 관계 등을 포함하여 rooney 님의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변이 이 책에 잘 나와 있습니다. 한번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책 내용을 몇가지만 간략하게 말씀드리자면,
(1) 구약의 십일조의 근본 목적은 기업이 없는 레위인들의 생활을 위해서 다른 열한부족이 소산물을 나누는 것입니다. 이로써 레위인들은 땅을 분배받지 못했지만 농사나 목축에 시간을 뺏기지 않아도 성전 봉사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후대에 가면 소득이 없는 레위인뿐만 아니라 고아와 과부, 유랑객들을 위한 용도로도 사용하게 됩니다.
(2) 재미있는 사실은, 장사로 번 돈이나 빵을 굽거나 신발을 만들거나 목수일을 하거나 목동일을 하여서 번 돈 등의 토지소산물과 관련없는 수입은 십일조의 대상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돈은 성전세나 일반 헌금 혹은 그외의 다른 세금을 내는데에 사용되었지요. 전리품 역시 십일조의 대상이 아니었음도 성경에 분명히 나옵니다. 민수기 31:25~30 을 참고하시면, 거기서는 전리품의 500분의 1 혹은 50분의 1을 레위인에게 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전리품은 십일조로 바치는 대상이 아니었음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원칙적으로 십일조는 토지의 소산물과 가축의 십분의 1을 드리는 것이었고 돈으로는 절대 드리지 못하도록 규정되어 있었습니다. 멀리서 와야 하는 경우는 곡식이나 가축값에 해당하는 돈을 가지고 와서 성전 인근에서 다시 물품을 구입하여 바치도록 하였지요.
왜 이렇게 토지와 관련된 산물들만 십일조의 대상이었을까요? 그것은, 십일조의 근본정신은 "토지는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인정하는데에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즉, 하나님께 속한 토지에서 거둔 소산물들은 이스라엘 공동체가 모두 골고루 소유하라는 이야기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땅이 안식하는 제 7년에는 모든 백성들이 십일조를 내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분명히 안식년이라도 장사를 하든 목수일을 하든 어떤 형태로든 수입이 있었을텐데 말이지요 ~ 왜 이런 안식년 규정에 대해서 오늘날의 교회에서는 아무 말도 없는 것입니까!!)
그러므로, 십일조는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소득이 없는 고아와 과부 및 나그네들을 위해 공동체의 음식을 나누어 먹음으로써 토지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명령한 나눔의 삶을 실천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4) 그런데, 문제는 이런 십일조를 골고루 나누어 주지 않고 중간에 착복하는 제사장들이 있어서 많은 레위인들이 가난의 고통을 겪는 일이 자주 있었고, 이 때문에 성전봉사를 기피하는 레위인들이 늘어났으며 성전의 권위는 갈수록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일들에 분노한 하나님께서 제사장들을 책망하시는 내용이 바로 말라기서의 내용입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바쳐라" 는 말라기서의 구절도 문제가 많은 번역인데, 이를 원어의 뜻에 맞게 바로 잡으면 "모든 십일조들을 창고에 들이라" 는 내용으로서, 백성들이 바친 십일조들을 제사장들이 빼돌리지 말고 (하나님의 것을 제사장들이 도둑질하지 말고!!!) 모두 창고에 채워넣어 레위인과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라는 말씀입니다. 결코 성도들이 십일조 헌금 안 하는게 하나님의 재산을 도둑질한다는 뜻으로 쓰여진 말씀이 아닙니다.
(5) 십일조는 근본적으로 성전에 봉사하는 레위인들 및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용도였으므로, 주후 70년경에 성전이 파괴되고 이스라엘 공동체가 흩어진 신약시대에는 더이상 율법으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십일조도)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니라" 고 말씀하신 것은 그 당시는 아직까지 성전이 버젓이 제 기능을 다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신 것이지, 오늘날의 교회에서까지 십일조 헌금을 바쳐야 한다는 말씀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율법규례로서의 십일조는 신약시대에는 폐기되었다고 결론지어야 할 것입니다.
(6) 다만, 구약의 십일조가 추구했던 나눔의 정신은 오늘날에도 충분히 교회가 발휘할 수 있는 것이며, 당연히 발휘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십일조나 헌금이라는 말은 한번도 쓰지 않고 "연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각 지역의 교우들이 재산을 모아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도록 이끌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십일조의 본래 정신을 되살려 가난하고 구제받아야 할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일들을 강화해야 할 것입니다. 십일조 안 내면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것이고, 십일조를 잘 내면 복을 넘치도록 받을것이라는 샤머니즘적인 기복신앙은 이제 그만 한국교회에서 사라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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