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서 한 100여 미터쯤 떨어진 곳에
폐지며 고물을 주워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노부부가 계십니다.
원래는 할머니가 가정식백반과 소머리국밥을 팔았었는데
자리는 옹색해도 음식 맛이 좋아 마눌하고도 몇 번 갔었고,
정기적으로 모여 술마신 뒤 당구치는 고등학교 동기놈들인
7인의 악당(일곱 놈 모두 무지 착한데 마눌들이 그렇게 부름)
모임을 그 곳에서 가진 적도 아마 두어 번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2008년 이후로 서민경제가 날이 갈수록 더 쪼그러들자
동네장사를 하던 그 식당 손님도 점점 줄어 결국 폐업을 했고
한 2-3년 전부터는 두 노부부가 고물을 주워 살아온 것 같습니다.
그 분들은 수집한 고물들 중에서 크기가 작고 상태가 깨끗하고
가정에서 흔히 쓰이는 물건들, 이를테면 멀티탭, 헤어드라이어,
선풍기, 보온병, 공구, 운동용구 같은 것들을 예전의 식당 앞에다
죽 늘어놓아 두고서 개 당 천원에서 2-3천원 정도만 받고 팝니다.
가격이 상점 구입가의 1/5 - 1/10 수준이고 물건 상태도 깨끗해서
저도 작년 여름부터 멀티탭, 헤어드라이어, 보온병, 접착테이프 등등
발멸품 프로토타입 제작에 활용할 수 있겠다 싶은 이런저런 물건들을
10여 차례에 걸쳐 아마 한 2-30 종 정도 사들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런데 작년에 무더기로 산 접착테이프들은 접착성이 좋지는 않았어도
사두면 쓸 데가 있을 것 같아서 폭 2센티에 직경 15센티가 넘는 큰 것들
10여 개를 2천원인가에 모두 가져왔는데, 어제서야 그 접착테이프들이
접착성이 떨어진 테이프가 아니라 양면테이프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그것을 판 영감님도, 또 저도 그것이 양면테이프인 줄을 몰랐던 겁니다.
그 탓으로 그 영감님은 너무 헐값에 팔았고 저는 부당이득을 취한 거였지요.
더구나 어제 그 테이프 덕으로 망가지기 일보 직전이었던 발명품 부품,
그러니까 보빈을 자작해서 0.4밀리 코일을 손으로 1킬로미터 정도 감은
솔레노이드를 수리하고 보니 그 덕에 건진 비용이 수십만원은 되더군요.
(제작업체에 문의해봤더니 개 당 80만원 달랍니다. 그래서 두 개를 직접 감았지요)
저녁 무렵에 그 영감님 댁으로 찾아가서 전에 양면테이프인 줄 모르고
너무 싸게 가져갔다며 5천원을 드렸는데 어찌나 고마워하시던지....
그 영감님의 감격하는 모습이 수리를 한 기쁨에 더해져 참으로 흐뭇했습니다.
제가 그영감님께 드린 돈은 얻은 이익에 비한다면 너무도 쩨쩨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쩨쩨한 돈으로 그 영감님과 저는 커다란 기쁨과 감동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양면테이프 덕분에 건진 솔레노이드가 부품으로 들어간 부채선풍기
프로토타입은 지금 이 시간에도 아주 조용하게 쌩쌩 잘 돌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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