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답하지 못한 질문 / 유시민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나라 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그런 시대가 와도 거기 노무현은 없을 것 같은데
사람 사는 세상이 오기만 한다면야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요?
2002년 뜨거웠던 여름 마포경찰서 뒷골목
퇴락한 6층 건물 옥탑방에서 그가 물었을 때 난 대답했지
노무현의 시대가 오기만 한다면야 거기 노무현이 없다한들 어떻겠습니까.
솔직한 말이 아니었어.
저렴한 훈계와 눈먼 오해를 견뎌야 했던 그 사람의 고달픔을 위로하고 싶었을 뿐
대통령으로서 성공하는 것도 의미 있지만 개인적으로 욕을 먹을지라도
정치 자체가 성공할 수 있도록
권력의 반을 버려서 선거제도를 바꿀 수만 있다면 더 큰 의미가 있는 것 아닌가요.
대연정 제안으로 사방 욕을 듣던 날 청와대 천정 높은 방에서 그가 물었을 때 난 대답했지
국민이 원하고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시지요.
정직한 말이 아니었어.
진흙투성이 되어 역사의 수레를 끄는 위인이 아니라 작아도 확실한 성취의 기쁨에 웃는 그 사람을 보고 싶다는 소망이었을 뿐.
세상을 바꾸었다고 생각했는데 물을 가르고 온 것만 같소.
정치의 목적이 뭐요.
보통사람들의 소박한 삶을 지켜주는 것 아니오.
그런데 정치를 하는 사람은 자기 가족의 삶조차 지켜주지 못하니 도대체 정치를 위해서 바치지 않은 것이 무엇이요.
수백 대 카메라가 마치 총구처럼 겨누고 있는 봉하마을 사저에서 정치의 야수성과 정치인생의 비루함에 대해 그가 물었을 때 난 대답했지.
물을 가른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셨습니다. 확신 가득한 말이 아니었어.
그 분노와 회환을 함께 느꼈던 나의 서글픈 독백이었을 뿐.
그는 떠났고 사람 사는 세상은 멀고
아직 답하지 못한 질문들은 거기 있는데
마음의 거처를 빼앗긴 나는 새들마저 떠나버린 들녘에 앉아
저물어 가는 서산 너머 무겁게 드리운 먹구름을 본다.
내일은 밝은 해가 뜨려나.
서지도 앉지도 못하는 나는 아직 대답하지 못한 질문들을 안고
욕망과 욕망이 분노와 맹신이 부딪치는 소리를 들으며
흙먼지 날리는 세상의 문턱에 서성인다.
유시민-작가, 노무현재단 상임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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