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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청준과 물의 고장 장흥
HIFI게시판 > 상세보기 | 2008-08-01 09:54:06
추천수 0
조회수   374

제목

소설가 이청준과 물의 고장 장흥

글쓴이

박상화 [가입일자 : 2002-07-05]
내용
어제인 7월 31일 오전,

한국 순수문학의 큰 별이신 소설가 이청준 선생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그 소식을 듣는 순간 마음 한구석에서 진한 아림이 전해져왔습니다.



학창시절에 한번쯤 문학을 꿈꾸어보지 않은 사람이 있겠습니까?

본인도 그랬습니다.

그때 읽었던 선생의 글은, 봄날 피어오르는 풀빛 아지랭이처럼 아득하고 포근하였습니다.



생전에 선생께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 민족의 근간을 이루는 '한'에 대한 말씀인데요,

그 말씀이 이렇습니다.



" 삶 가운데 아픔, 고뇌가 쌓이고 맺힌 것이 '한'입니다.

그러나 맺힌것만 있으면 그것은 원한입니다.

그것을 끌어안으면서 푸는것이 진정한 한의 미학이고, 소리이며, 예술 아니겠어요."



참으로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이청준 선생께서는 일찍이 '창작의 고통은 천형' 이라고 하셨답니다.

이제 선생께서는 이 천형의 굴레에서 벗어나 한없이 자유로운 곳으로 가셨습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가야 할 길이기에 그리 낯설지는 않지만,

한참 좋은 글을 남겨주셔야 할 시기에 이리도 무심히 가심이 애석합니다.





이청준 선생께서는 전남 장흥에서 나서 자라셨습니다.

장흥은 전라도에서도 가난하기로 유명한 곳입니다.



뒤로는 산이요, 앞으로는 물입니다.

요즘처럼 발달한 세상에는 이러한 조건이 큰 이득이 되나,

예전처럼 부가 논에서 일구어지는 세상에서는 그러지 못하였습니다.

선생께서는 가난하였으며, 그 가난을 벗삼아 문학을 일구어오셨습니다.



저는 얼마전에 남도로 여행을 했었습니다.

작년에 돌아가신 부친 산소도 돌볼겸, 도시에서 메말라가는 식솔들을 풀어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저는 그 여행을 통하여 제 자신을 성찰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의 나는 결국에는 어제의 나의 연장선에 있다는 평범한 깨달음도 같이 얻었습니다.



그때 나를 북돋아 주었던 곳이 바로 그 장흥이었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나주에서 장흥은 고개 하나만 넘어가면 바로 그곳입니다.



그 고개를 넘으면 큰 댐이 하나 있는데, 바로 장흥댐입니다.

인간은 바로 앞에 그리 큰 바다가 있는데도, 그 물을 가만히 흐르게 하지 아니하고,

산을 자르고 고향을 가라앉혀서, 가두어두는 수고를 아끼지 않음에 애석하기도 하였지만,

푸른산 구비구비로 맑은물이 가득하니 펼쳐짐도 큰 장관이었습니다.



그 댐 상류에 해바라기 꽃밭이 있었습니다.

학교 운동장만한 그 해바라기 꽃밭은,

서울에서 콘크리트만 바라보고 자란 저희 아이들에게는 꽤나 이국적인 풍경이었나 봅니다.

아이들의 요청에 차를 세우고, 해바라기 꽃밭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는데,

어디선가 뿡짝거리는 요란한 음악과 함께

자전거 케리어를 설치한 차가 하나 나타나더니,

자전거 쫄바지 복장의 사내가 후배들과 들이닥쳤습니다.



자기가 그 해바라기 꽃밭을 만든 장본인이라고 자랑아닌 자랑을 하더니,

그 꽃밭을 배경으로 사진 찍은 삯을 받겠다고 하면서,

제 자식들에게 과자며, 음료수를 내줬습니다.

저희 집사람한테는 자기가 손수 키운 버섯이라고 하면서

어른 베게만하게 담긴 표고버섯 말린것을 선물하였습니다.



저는 그저 그 모습을 보며 웃고만 있었습니다.

그러나 평생을 서울에서 나서 자란 저희 집사람은 당황도 그런 당황이 없었나봅니다.

삯을 받겠다더니 마구 퍼주는 울긋불긋한 그 사내가 여간 당황스럽지 않았나봅니다.



제가 웃는것을 보더니 그 사내가 그랬습니다.

"왜 웃으시오?"

제가 말하였습니다.

"당신은 진정으로 받을 줄 아는 사람이요."

"무엇이 그렇소?"

"줘 버리는 것 이상 더 크게 받는것이 어디있단 말이요.

너무 많이 받아가지나 마시지요."



우리는 남도의 맑은 하늘아래에서 크게 웃었습니다.

우리 마눌님도, 우리 애들도 그런 웃음은 처음 봤을 것입니다.



남도는 그런곳이며, 그 넉넉함의 중심에는 장흥이 있습니다.

이청준 선생은 그런곳에 나서 자란 분이시니,

아마 그 누구보다도 줘버리는데 익숙하신 분이실 것입니다.





날이 무척 덥습니다.

휴가 기간인 분들도 많으실 것입니다.

시간 되시면 남도로 한번 여행해 보십시오.

마음이 넉넉해질 것입니다.



더 시간이 되시면 장흥 유치면의 새마을청년회장도 만나보십시오.

58년 개띠시고, 해바라기밭 일구느라, 철인3종 연습하시느라 바쁘시지만,

아마 여러분을 반갑게 맞아주실 것이며, 넉넉하게 채워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저 가만히 그분의 오버에 미소지으시면 되십니다.



그렇게 시간 나지 않으시는 분께서는 이청준 선생이 남기신 글 몇줄이라도 읽어보십시오.

그나마 보람있으실 것입니다.



조금후 사무실 나가서 사진 몇장 올려드리겠습니다.

저녁때는 마눌님 대동하고 장례식장에도 들러볼 예정입니다.

가시는 길은 뻑적해야지요.

그래야 가시는 길이 덜 외로우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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