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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평가에 대한 흥미로운 글이 있어....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13-04-17 11:46:13
추천수 6
조회수   1,410

제목

대통령 평가에 대한 흥미로운 글이 있어....

글쓴이

김태형 [가입일자 : ]
내용
Related Link: http://cafe.daum.net/saetul/SeDu/92

퍼왔습니다..출처는 급진적^^ 인 성향이니 참고하시길,,,,



제목부터 자극적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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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정권 = 필요 악(惡)정권, 박근혜정권 = 불필요 악(惡)정권 = 백해무익정권





역대정권은 그 정권 나름의 특색이 있다.



특히 분단된 나라로 북한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집권자의 역사인식, 인간생명에 대한 존엄성, 전쟁과 평화를 관리하는 위기대응 능력, 그리고 통일로 다가가기 위한 나름대로의 국정철학(?)이라는 것이 있었다.



1. 이승만(김일성)



이승만이 노회한 불여우라면, 김일성은 젊고 팔팔한 늑대였다.



그들에게는 역사적 안목이라든가 민족애나 인간생명에 대한 존엄성 같은 것은 아예 없었다.



외세의 등에 업히던, 무력을 동반하던 오로지 둘로 갈라진 한 쪽의 권력을 잡는 게 당면목표였다.



반쪽짜리 권력을 손에 틀켜 쥔 그 두 사람에게는 나머지 반쪽을 먹어 한반도의 완전한 실권자가 되는 게 최대목표였다.



그러니 이승만은 <멸공 북진통일>, 김일성에게는 <남진 적화통일>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제동장치 없는 두 기관차가 한 선로의 철길에서 38선이라는 역을 마주보고 달려드니 결과는 전쟁이었다.









전쟁의 결과는 어떠했나?



이 겨레 최대의 비극이었다.



그것도 외침이 아닌 형제간의 골육상쟁으로 단군할아버지 이래 1만년 민족사 최대의 참화를 우리 스스로 불러들인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쓸모가 없어진 녹슬어가는 고철 무기의 처리와, 2차 대전 후 새로 개발된 무기의 살상능력을 시물레이션이 아닌 전쟁현장에서의 실제검증을 하려는 무기제조업체와 거래상들에게는 그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었다.



거기에 지리적 이점이 있었던 왜놈들은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숟가락 하나만 달랑 들고 피의 만찬에 참여하여 2차 대전 전범국으로서 당연히 겪어야 했던 서러움과 배고픔과 을 단 3년 만에 가뿐히 벗어났고, 이웃나라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틈을 타 전범국으로서의 족쇄도 어느 정도 풀어 버렸던 것이다.



일본이 오늘날 누리는 경제적 풍요, 한일강제병탄 36년간의 수탈은 물론 6.25전란에서 우리민족이 흘린 피와 잃은 목숨이 밑받침이 되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다.









김일성에게는 남침할 준비가 되어 있어 방아쇠를 먼저 당긴 책임이 있고, 이승만에게는 김일성과 으르렁거리며 전쟁을 불러들인 책임이 있다. 6.25참화의 책임은 이승만과 김일성에게 똑 같이 50%씩의 책임이 있다. 그 두 사람에게는 전쟁으로 이 겨레가 흘려야 하는 피와, 이 겨레가 감당해야하는 고통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동서(東西) 양진영으로 갈리는 세계질서의 재편 소용돌이 속에서 외세에 의해 우리 의사와 관계없이 남북분단은 피 할 수 없는 민족에게 드리워진 멍에였다 해도, 왜 백범과 같이 38선을 베고 죽을지언정 분단만은 결단코 안 된다고 외세의 한반도 개입에 3천만이 하나로 똘똘 뭉쳐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았던가?



외세에 의해 불가피하게 분단이 되었다 해도 왜 이승만과 김일성은 서로 상대에게 절대로 형제를 향해 침략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세계만방에 공개천명하고 평화통일의 방법을 모색하자고 서로 단 한 마디의 협상조차도 제의를 하지 않았던가? 두 사람의 책임이 50:50으로 똑 같은 전쟁 유발범인이다.



그런 지도자들이 있을 때 전쟁은 필연이다.















2. 박정희(김일성)



김일성은 권력에 굶주린 늑대, 박정희는 똑 같은 하이에나였다.



다만 확실치는 않으나 김일성에게는 항일독립투쟁을 한 자랑스러운 경력이 있었던 반면, 박정희는 이완용과 을사오적을 뺨치는 숨기고 싶은 매국노질의 뼈아픈 경력이 서로 다를 뿐 피에 굶주린 짐승이기는 마찬가지였다.



6.25의 실패경험으로 전쟁으로서는 통일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두 사람 다 무력에 의한 통일은 불가능 하다는 간파하고 있었으므로, 무모한 전쟁을 다시 일으키기 보다는 반쪽일망정 자신의 확고부동한 종신집권이 목표였다.



다만 국민들에게는 끈임 없이 전쟁분위기를 띄우고 위기의식을 조장하여 그것으로 국민들을 꼼짝 못 하게 집어 누르는 도구로 활용했다.









7.4공동성명도 두 사람의 종신집권을 위한 겨레에 대한 속임수였다. 김일성은 그 결과로 북한의 권력을 완전하게 장악할 수 있었고, 박정희는 3선으로 흔들리는 남한민심을 억누르고 3년 뒤에 유신쿠데타를 일으키는 준비를 할 충분한 시간을 벌었던 것이다.



그 두 사람 시절에도 <적화통일>과 <멸공북진통일>은 시퍼렇게 살아 날뛰는 말이었지만, 그것은 김일성과 박정희가 상대를 향한 공갈이나 협박이 아니라 남북한 겨레를 억누르고 종신집권의 가반을 다지기 위한 방패막이의 선전도구였을 뿐이다.









이승만 김일성시절에 있었던 무력통일마저 실종된 시기였다.















3. 전두환-노태우(김일성)



제 코가 석자인 전두환과 노태우는 통일에 신경을 쓸 만큼 한가하지도 않았고, 또 그런 것을 염두에 둘 물건들이 아니었다.



때 맞춰 김일성도 목 뒤에 튀어나온 혹이 점점 자라 맑은 정신과 건강을 유지하는 데 방해가 되었고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했을 것이다. 김일성은 동서냉전의 벽이 서서히 허물어지는 기미를 보이기 시작하며 북한이 기댈 유일한 언덕이던 소련이 점진적인 민주화와 연방해체의 길을 걸으면서 외부세계의 변화에 눈을 돌리려는 북한인민을 집어누르기에도 바쁜 판에 통일에까지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다.









총칼로 권력을 찬탈한 남한의 전두환과 노태우는 애시 당초 통일 같은 것은 생각할 만한 물건이 못 되었고 또 통일을 생각할 만큼 여유롭지도 못했고, 김일성 역시 노쇠의 길로 접어들어 <적화통일>을 또 한 번 시도해 볼만큼 무모한 나이가 아니었다.



그저 서로 마주보고 으르렁 거리고 극도의 위기의식을 조장하는 것으로 자신들이 억누르고 있는 국민들을 억압하는 도구로 활용하는 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 와중에 뜻있는 우국지사와 혈기왕성한 장차 나라의 기둥이 될 대학생들이 무수히 <간첩>이나 <빨갱이>가 되어 조국의 민주화 제단에 생목숨을 바쳤던 것이다.









그때 김일성 최후의 불장난 아웅산 테러사건이 발생했고, 뒤이어 전두환이 노태우에게 권력을 대물림해 주기 위한(?) KAL기 폭파사건이 북과 남에 의해 저질러 진 것이다.



전두환의 자작극이었을 가능성이 농후한 김현희에 의한 KAL기 폭파사건은 아직도 진상규명이 필요한 우리역사의 의문의 한 페이지로 지금까지 남아있다.



미얀마가 아닌 서울 한 복판에서 그런 사건이 발생했다면 불같은 전두환의 성격으로 보아 아마 제2의 6.25로 자연스럽게 에스커레이드 되었을 것이다.



왜 하필이면 전두환만 빼놓고 아까운 인재 17명만 앗아갔단 말인가?









여기서 국민들이 눈 여겨 보아야 할 대목이 있다.



이명박과 박근혜는 집권과 동시에 나라야 어찌되었던, 퇴임 후에는 어찌되었던 무사히 임기 5년을 채우는 게 정권을 잡는 최대목표였다.



정권을 잡은 뒤에 나라를 어찌 경영하겠다는 비전이나 계획 같은 것을 애시 당초 없었고, 또 그런 것을 생각할 머리가 아니다.



집권 후 나라를 어찌 발전시키겠다는 게 집권의 목표가 아니라,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집권을 하는 <집권> 그 자체가 목표였다.









전두환, 이명박, 박근혜 3인 다 머릿속에 들은 것이 없다.



하지만 전두환은 자신의 머릿속이 텅 빈 것을 알고 있었고, 이명박과 박근혜는 자신의 머리가 비어있다는 것조차 모르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전두환과 노태우는 비록 우발적으로 광주를 피바다를 만들고 호남에 처절한 쓰라림을 안기며 집권을 했지만 끈질기리만치 호남총리에 집착하며 호남을 달래기 위해 나름대로는 애를 썼고, 자신들의 머리가 텅 빈 것을 알고 총리나 각료들은 출중한 인재를 골라 앉히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그 국가의 인재들이 전두환이 갔어야 할 자리에 먼저가 있다 아웅산 참화를 당한 것이다. 국민들이 전두환이 당해야 할 것을 국가의 인재들이 대신 한꺼번에 17명이나 잃은 것에 대하여 통분을 하였던 것이다. 자신들은 머리가 비었어도 훌륭한 인재들을 골라 등용을 하니, 정권에 저항하지 않는 이상 국민들의 삶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헌데 이명박과 박근혜를 보라!



저보다 잘난 사람은, 저보다 머릿속이 여물은 사람은 용납하는 성격이 아니다. 그러니 자신과 똑 같은 물건들만 골라 내각을 구성하려 드는 것이다. 오리발을 내미는 기술이 자신들만 못해 국민과 국회 청문회에서 퇴짜를 맞으면 그와 50보 100보인 사람을 또 골라 각료후보로 들이 미는 것이다. 이러고서도 나라가 안 망하고 발전한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그런 혼란 속에서 국민들의 삶이 팍팍하지 않다면 그건 도둑질 잘 하는 탐관오리와 더러운 권력과 결탁한 악덕재벌 빼놓고는 없다.









박정희 18년과 마찬가지로 전두환 노태우 시절에는 무력이고 평화이고 간에 <통일>이 설 자리가 없었다.



<통일>을 주장하는 것 자체가 혹독한 <척결대상>이었다.









4. 김영삼(김일성-김정일)



우리겨레 역사의 과도기였다.



북한에서는 자연스럽게 세대교체가 이루어 졌고, 남한에서는 군사독재가 퇴장을 하고 민간정부로 넘어가는 과도기였다.



전두환 노태우와 같이 머리는 비어 있었어도, 그는 해방이후 최초로 민선에 의해 정권을 잡은 최초의 정통성 있는 정권이었고, 나름대로는 오랜 민주화 투쟁 경험으로 <민주주의>와 <평화통일>을 생각하는 지도자였다.



그랬기 때문에 그 암울하고 혹독하던 전두환 정권시절인 1986년에는 김영삼을 추종하는 정치세력 중 유성환의원에 의해 대한민국의 국시(國是)를 반공(反共)에서 통일(統一)로 바꾸어야 된다고 하는 당시로서는 핵폭탄과도 같은 화두(話頭)를 7천만 겨레의 가슴을 향해 던졌던 것이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에 의해 꽁꽁 얼어붙었던 <통일>을 냉동 창고에서 꺼내 밝은 햇살 아래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통일>이 국시가 되기 위해서는 좀 더 숙성기간이 필요했다.









그런 연장선상에서 김영삼이 집권하자 남북한에서 자연스럽게 남북정상회담의 분위기가 무르익어갔고, 그 결말로 분단이후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이 성사 일보직전까지 전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은 김일성의 급작스런 사망으로 물거품이 되었다. 결과론이지만 그 때 남북정상회담이 물거품이 된 것은 남한 국민의 입장에서 보아 오히려 잘 된 것이었다.



백전노장 노회한 능구렁이 김일성과 저돌적인 성격의 김영삼이 남북정상을 했었다면 김영삼은 노회한 김일성의 혓바닥이라는 부처님 손바닥 위에서 천둥벌거숭이 같이 칼춤을 추어대는 손오공의 꼴이었을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에서 놀림만 당한 후 빈 손으로 돌아오는 김영삼은 목이 축 늘어졌을 것이고, 그 꼴을 보는 남한국민은 북한에 대한 이유 없는 증오심만 불붙고, 남북한은 다시 박정희나 이승만 시절 같은 극한의 신 냉전 상태로 회귀했을 것이다.









비록 IMF를 불러와 전 국민이 피눈물을 흘리고 도탄에 빠지게 했지만 IMF는 박정희가 악덕재벌 일변도의 왜곡된 경제성장 구조를 정착시켜 뿌린 더러운 씨가 머리가 비어 위기관리를 제대로 못한 김영삼 시절에 튀어나온 것뿐이고, 김영삼의 업적은 업적대로 평가를 해야 된다.



그 김영삼의 업적은 ①하나회를 척결하여 이 땅에서 영원할 것만 같던 군사쿠데타의 뿌리를 발본색원 한 점 ②경제적인 측면에서 보아 화폐개혁과 맞먹는 다는 금융 실명제를 악덕재벌들의 집요한 방해를 무릅쓰고 전격적으로 단행해 투명사회로 나아 갈 수 있는 초석을 놓은 점 ③그 무엇보다도 후임대선관리를 공명정대하게 해 이 땅에서 최초의 정권교체를 가능케 한 점 ④그리고 <평화통일>논의를 지하에서 지상으로 끌어낸 점은 역사에 기록하고 평가를 해 주어야 된다.



머리가 비었건 말건 우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나름대로 의미있는 정권이었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시절 수면아래 잠복해 있던 <통일>이 드디어 수면위로 부상을 했다.









5. 김대중 - 노무현 (김정일)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한가?



<통일>은 무조건 <평화통일> 방법뿐이 없고, 그 문을 과감하게 열어 제켰다.



김대중이 1971년도 제 7대 대통령선거에서 박정희의 3선에 맞서 투표에서는 이기고 개표에서는 지면서부터 줄기차게 주장하고, 그 뒤 30년간 가다듬은 통일론이다. 또 노무현이 다른 정책은 몰라도 통일론에서는 김대중의 정책을 충실히 계승했다.









이게 김대중-노무현의 화려하고 활달한 화술(話術)의 결과인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김정일로서도 자기 아버지 김일성이 남한의 지도자를 상대하는 것을 다 보고 배웠고 지나간 남한의 지도자들의 면면을 다 꿰뚫어 보고 있었지만, 김대중의 목숨을 건 일관된 <평화통일>에 대한 신념과 철학과 진정성을 읽었고 믿어 의심치 안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김대중과 노무현이 남한 내의 수구냉전세력과, 더러운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악덕재벌과, 독재 권력과 검은 거래로 권력을 공유해 온 사이비 언론과, 통일이 되었을 때 자신들이 잃을 것이 많은 부류들로부터 “빨갱이”와 “퍼주기”라는 말할 수도 없는 저항과 짓씹음과 비웃음을 기꺼이 감수하며 일궈낸 성과다.



꿈에도 그리던 천하절경 금강산 관광과, 남한을 향해 포문을 열고 있던 개성 땅에서 인민군을 뒤로 물리고 천만평의 대지위에 남북이 손잡고 서로 잘 사는 개성공단이 이게 김대중 노무현이 아니었다면 가능한 일이었겠나?









깊은 잠에 골아 떨어져 있던 <평화통일>을 잠 깨워 펄펄 뛰게 하고, <평화통일>이 꿈이 아닌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줬다.









6. 그러면 왜 이명박 정권은 필요(必要) 악(惡) 정권인가?



한 번은 그런 역사를 되돌리려는 반동의 정권이 필요했다.



수십 년간 헝클어졌던 길이 김대중 - 노무현 10년 집권으로 단번에 일사천리의 탄탄대로로 들어설 수는 없는 것이다.



국민들이 깨닫고 북한정권이 깨달을 생생한 산교육이 필요했다.









제 버릇 단번에 개 주지 못하는 법이다.



김대중이 “빨갱이”와 “퍼주기”라는 차마 입에 담지 못할 험담을 수도 없이 들으면서도 북한과의 관계를 꾸준히 개선해 나가는 와중에도 김정일은 서해에서 두 번의 도발을 감행하고 나왔다.



제 1, 2서해교전(뒷날 이명박에 의해 제1, 2연평해전으로 개명)을 도발한 게 바로 김정일이다.



김대중을 만나서 웃으며 악수하고 오순도순 잘 살아보자고 공동성명까지 발표하고 나서, 남한정권이 세계인을 불러들여 지구촌 축제인 월드컵을 벌이고 있는 동안에 NLL을 넘어 남한 해군에 도발을 강행하여 제 2차 서해교전을 감행한 것이다.



남한국민이 벌이는 세계인의 잔칫상을 걷어차고 똥물을 뿌려대고 나온 것이다.









그러니 김대중의 입장과 처지가 얼마나 난처하였겠나?



하지만 김대중은 그런 북한의 도발을 빌미로 어렵게 일군 남북관계를 파탄내지 않았다. 박정희, 전두환, 김영삼 같았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초인적인 인내심과 아량이다.



북한의 그런 도발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남북관계를 개선해 나갔다.



또 노무현이 충실이 그 길을 넓혀 개성공단에서 마침내 남북합작 공산품이 생산되어 북이 좋고 남이 좋은 결과를 가져왔던 것이다.









이게 과연 남이 일방적으로 북에 퍼 준 것인가?



어림도 없는 얘기다.



오늘날 지구촌 어디에서 월 100달러 이하의 낮은 임금으로 그렇게 우수한 노동력을 무제한으로 사용을 할 수가 있단 말인가? 그것도 드넓은 토지를 무상이나 다름없이 사용하면서 말이다.



거기에 더해 말이 같으니 통역이 필요 없어 의사소통이 자유자재이고, 사고방식과 생활습관이 같고, 같은 유전인자를 타고났으니 선천적으로 두뇌가 우수하고 이미 교육을 잘 받은 숙련된 우수한 노동력이고, 비행기나 선박이 필요 없이 트럭으로 바로 생산된 제품을 한 시간이면 외항선에 실어 수출이 가능한 최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게 남한의 일방적인 퍼주기 인가?



속된 말로 남이 북에 <되>로 주고 <말>도 아닌 <트럭>으로 퍼 오는 노다지와 같은 장사다.









이명박 집권과 동시에 남한의 일방적인 퍼주기나 다름없는 금강산 관광길은 그 다음 날로 막혔지만, 개성공단만은 이명박도 막지를 못하고 오히려 북이 먼저 개성공단을 폐쇄할 까봐 전전긍긍하는 것이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의 실상이다.



그렇게 “퍼주기”라고 짓씹어 대던 수구언론들도 이제는 개성공단만은 어떻게든 살려야 된다고 이구동성으로 주장을 하고 있다.



7천만 겨레가 다 함께 잘 사는 길과 평화통일의 길이 거기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북이 남한의 기업이 사용하라고 내어놓은 1,000만평 중 겨우 1/10인 100만평에 공장이 들어섰음에도 그렇다.



이명박이 다른 것은 몰라도 대북관계에서만은 김대중과 노무현이 닥아 놓을 길을 꾸준히 확장해 개성공단 1,000만 평에 남북합작 공장이 들어섰다면 지금쯤은 북한의 경제사정도 훨씬 나아졌고 남한은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고도 남았을 것이고, 통일은 50%는 되어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배부르고 등 따스운데 전쟁을 바라는 사람은 없다.



지금 북이 살 방법이 없으니 미국이나 왜놈들이 보면 화약 딱총이나 다름없는 핵폭탄을 만들고 로켓을 발사하며 이판사판으로 “한 번 해 보자!”고 불장난을 하고 나오는 것이다.



미국과 일본이 당장 전쟁이라도 나고 워싱턴과 동경이 불바다가 될 것 같이 호들갑들을 떨고 있지만, 정작 전쟁이 나면 죽을 사람들은 7천만 한겨레뿐이고 초토화 되는 것은 삼천리금수강산뿐이다.









그런 걸 집권 다음날 깽판을 쳐서 6.25직전으로 되돌려 놓은 게 바로 이명박이다.



남한에 수구냉전세력이 정권을 잡았을 때 남북관계가 어찌 되며, 남한에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정권이 들어섰을 때 북도 다시는 서해교전과 같은 도발을 감행하지 않고 남북이 오순도순 손잡고 서로 잘 사는 길로 매진하여 7천만 겨레에게 <평화통일>이라는 <희망>을 안겨주어야 한다는 교훈을 얻기 위해 이명박 정권은 우리역사의 긴 안목으로 보아 불가피한 필요(必要) 악(惡)이었다



그 교훈을 얻기 위해 남한 국민이 감당해야 할 대가는 너무 비쌌다. 22조원이라는 막대한 세금을 4대강을 통하여 태평양으로 떠나보내야 했고, 천하의 절경 4대강은 흉측한 콘크리트 웅덩이가 되어 야 했고, 이미 떠나보낸 22조원의 몇 배의 돈을 들여도 4대강은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생채기를 남기게 되었다.



그래도 남북한 국민이 깨달음만 얻었다면 불행 중 다행이었다.









평화통일은 죽고 살얼음판의 전쟁이 되살아났다.









7. 박근혜 정권은 왜 불필요 악 정권이고, 백해무익한 정권인가?



쓴 교훈은 단 한 번으로 족하다.



재탕 3탕하는 쓴 교육은 교육비의 낭비이고, 시간과 기회의 상실이다.



저들은 김대중-노무현 10년간을 “잃어버린 10년”으로 불렀지만, 우리는 이명박 5년과 박근혜 두 달 간 민족의 역사와 혼을 잃고, 손에 잡힐 듯하던 <평화통일>은 신기루가 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평화통일>이 사라진 자리에 겨레의 생존마저 장담할 수가 없는 백척간두의 천 길 낭떠러지가 준비되어 있었다.



7천만 겨레가 코흘리개 김정은이 벌이는 불장난과, 선무당 박근혜가 칼춤 추는 새파랗게 날이 선 작둣날 위에 태워지고 말았다.









5년의 교훈으로도 깨우침을 얻지 못하는 국민에게 미래는 있는 것인가?



미래는 고사하고 당장 오늘 오후의 생존을 장담 할 수가 없는 거센 비바람 앞에 힘없이 흔들리는 한 자두의 촛불과 같은 운명이 되었다.









산 교훈은 필요악인 이명박 5년으로 충분했다.



모르면 몰라도 김정은도 이명박과 사사건건 부대끼며 생생한 교훈을 얻었을 것이다.



박근혜 5년은 전혀 필요가 없는 불필요한 악의 정권이다.



박근혜와 이명박 두 사람을 빼 놓고는 백해무익한 정권이다.



분노와 슬픔도 사치인 세상이 되었다.



지금 <평화통일>을 입에 담는 사람은 한 참 모자라고 덜 떨어진 사람이다.









아-!



이 겨레의 운명이 어찌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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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ws213@empal.com 2013-04-17 12:01:44
답글

지금은 누구 한사람 제대로 된 기운이 없는 시대이지만, 훗날 꼭 돌이켜 보며 그 <br />
의미를 되새겨 보게 될 사람들이 많은 명문입니다. 감사합니다.

정현철 2013-04-17 12:20:30
답글

--정확한 평가.--<br />
이 한 마디로 이 글에 대한 평가를 내리겠습니다

박전의 2013-04-17 12:26:22
답글

추천!!

최만수 2013-04-17 12:40:45
답글

통일에의 의지는 없고 자신만 위하기에 여념이 없는 이명박,박근혜니,

김학순 2013-04-17 13:08:48
답글

동감입니다.....

서일원 2013-04-17 14:24:40
답글

동감입니다.....

장정훈 2013-04-17 14:50:11
답글

구구절절이 옳은 얘기네요......<br />

김학주 2013-04-17 15:57:50
답글

동감합니다 제가 이 사실을 달달 외웠으면 주위사람들과의<br />
<br />
대화에서 뒤로 밀리지 않었을텐데 ㅠㅜ<br />
<br />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이현택 2013-04-18 00:40:07
답글

나원... 대충 훑어보다 말같지도 않은글을 좋다고 퍼온거나 본문글들을 읽고 동감이니 어쩌니 하는건지<br />
<br />
기가 막혀서 짚고 갑니다<br />
<br />
김일성이 항일 독립투쟁을 한 자랑스러운 경력? <br />
<br />
6.25를 일으켜 수많은 동족을 죽인 이 한가지 사실많으로 쳐 죽일놈인데 <br />
<br />
저런넘을 미화하고 박통을 비하하는글에 구구절절이 옳고 돔감이라니 <br />
<br />

asahe@nate.com 2013-04-18 11:46:18
답글

일성이 항일투쟁은...그래서 ? 표 단거잖아요..<br />
신상 털린 넘 보니 명바기도 있다던데....<br />
좋은 공기에 사는개 얼마나 좋은줄도 모르고<br />
쯧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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