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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설교 한 판 더~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13-04-04 22:43:05
추천수 3
조회수   766

제목

정치 설교 한 판 더~

글쓴이

장준영 [가입일자 : 2004-02-07]
내용
Related Link: http://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

(제주 4.3 사건 65주기 추모미사에서

천주교 제주교구장 강우일 주교님의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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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사건 65주년을 맞아 전국 각지에서 모인 형제, 자매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도 4.3 희생자 유가족 대표로 오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요즘 한반도에 세계의 관심이 집중돼 있습니다. 키리졸브 한미연합군사훈련을 두고 “핵전쟁을 불사하겠다”는 북한 정권의 위협적 발언이 연일 이어집니다. 말뿐만 아니라 북한은 남한에서 하는 만큼 전쟁에 준하는 군사훈련을 펼치고 있습니다. 거기에 맞서서 우리 정부는 ‘국제적 도발을 묵과할 수 없다. 조금이라도 도발이 있으면 강력히 대응하겠다’며 맞불을 놓고 있습니다. 미국 정부는 매일 가공할만한 첨단 무기를 한반도로 이동시키면서 실력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계속 쌍방이 극한 대립으로 나가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겠다는,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앞서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면서 저는 ‘북한이 왜 저렇게까지 연일 극단적인 언어를 구사하고 흥분할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아무 이유 없이 저렇게 자극적이고 아슬아슬한 표현을 쏟아내지는 않을 듯합니다. 그들이 겉으로 드러낼 수는 없지만 나름대로 대단히 절박해서 저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거의 마지막 한 발자국밖에 남지 않은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기 때문에, 아무도 편들어주는 나라가 없으니 혼자 세계를 향해 으르렁거리는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 전에도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발언이 있긴 했지만 일시적인 것으로 끝나곤 했는데, 이번에는 계속 위협적인 언어 구사가 상승하면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말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고 3차 핵실험까지 실시하는 벼랑 끝 작전을 펴고 있습니다. 왜 저렇게 사태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가는지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힘듭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그들 내부 사정이 그만큼 극한 상황에 와 있다는 또 다른 증거가 아닐까 싶습니다.



북한이 얼마나 국제적으로 고립되고 경제적으로 파탄 지경인지는 적지 않은 탈북자들의 전언으로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 사회가 극도로 패쇄적인 사회인지라 그 속이 실제로 얼마나 곪고 있는지, 얼마나 아픈지 알 수는 없습니다.



통계 수치로는 북한의 경제 규모가 남한의 1/40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말이 1/40이지 북한이 얼마나 힘든 상황인지 피부로 느낄 수는 없습니다만, 그토록 패쇄적 사회에서 해마다 죽음을 무릅쓰고 탈출을 감행하는 이들의 행렬이 늘어나는 것을 보면 인간이 참을 수 있는 한도를 넘어서고 있다 짐작할 뿐입니다. 북한 정권의 실정과 악수가 빚어낸 결과이기는 하지만 2천4백만명 북한 주민들의 고통이 얼마나 숨막히는 것인지 우리는 감지하지 못하고 있고, 전세계는 그들의 고통을 외면한 채 더 막다른 골목으로 그들을 몰아넣고 숨통을 조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제주도민 10분의 1 죽인 참극… ‘인간’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



이런 오늘의 현실을 보면서 저는 65년 전 4.3을 겪은 제주도민을 떠올립니다.



1945년 해방 이후 한반도는 어떤 의미로 가난과 혼란의 극치였습니다. 36년간 일제 지배와 물자 수탈 때문에 한국은 먹을 것도 마실 것도 바닥난 상황이었습니다. 그 한국 땅에서도 가장 척박한 땅인 제주에서 자원 부족, 일자리 부족으로 겪은 가난은 극한 상황이었습니다.



게다가 해방 이후, 일본에 건너가 있던 제주 교민 6만명이 제주로 귀환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됐습니다. 귀환한 이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은 일제 치하에서 항일 정신으로 강하게 무장된 사람들입니다. 더불어 사회주의 이념에도 심취했습니다. 그들은 일제 치하에서 일하던 경찰이 해방 이후에도 여전히 일하는 모습을 보며, 경찰을 불신했고 새로운 나라, 새로운 사회를 스스로 건설하겠다는 이상적인 의지로 나름의 자치행정 체계를 조직했습니다. 이제부터 외세가 아니라 스스로의 힘으로 운명을 개척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일본에서 돌아온 수준 높은 교육을 받은 이들이 제주 여론을 주도하게 되었고, 사회주의 확산에 극도로 예민해져 있던 미국과 일제 치하에서 일했던 경찰의 시각에서 볼 때 그들은 ‘사회 불안을 조장하는 반 국가세력’이었습니다. 그래서 지역 시민사회와 공권력의 갈등이 나날이 가속화됐습니다. 갈수록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의 눈에는 제주도 전체가 빨갱이 섬으로 비춰졌고, 결국 그런 시각은 어린이, 여성, 노약자를 포함해 제주도민의 1/10이 넘는 민간인을 무자비하게 학살하는 인종청소의 비극을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비극을 초래한 가장 큰 원인은 당시 한반도 남쪽을 다스리던 미군정 책임자들과 이승만정권 지도자들이 극한 상황에 봉착한 제주도민의 사회경제적 혼돈과 그들의 민족적 정서에 너무나 무지했고, 제주도민의 현실과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토벌대로 내려온 군인들에게 제주도민은 말도 통하지 않고 풍습도 다른 이방인이었습니다. 어떤 장교들은 말이 안 통해 통역을 앞세우기도 했고, 일본어로 의사소통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저는 처음에 4.3 당시 중앙정부가 파견한 군대와 우익단체들이 어떻게 동족인 양민을 그렇게 참혹하게 학살할 수 있었는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마 그때 파견된 군인들 중 유난히 사악하고 잔인한 사람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들도 똑같은 우리 백성이고 우리 군인이었습니다.



국민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군대가 그렇게 수많은 양민을 무차별 학살한 것은 제주도민을, 자신들이 보호해야 할 존엄한 인격을 갖춘 동족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본 것은 오로지 이 땅에서 청소해 버려도 무방한 이질적인 빨갱이 폭동 세력, 다른 나라 사람이었습니다.





● 4.3 때 정치인들의 무지와 실패를 거울삼아 북쪽 동족의 마음을 헤아려야



당시 정부 지도자들이 제주도민이 살아온 과거와 현실을 이해하려고 조금만 노력했다면, 그들이 겪어온 수탈의 역사에 조금이라도 연민의 시각을 가졌다면 그런 참극으로 치닫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쟁이 시작되면, 폭력이 시작되면 아군과 적군 사이의 모든 인간적 시각과 관계가 원천적으로 단절되고, 상대는 오로지 제거해야 할 적으로만 단순화되고 맙니다.



베트남전에 참전한 우리 군인들은 상당한 기간 동안 5천명에 달하는 베트남 양민을 학살했습니다. 그런 전투에 참가하고 돌아와 양심에 가책을 받은 우리 군인들이 털어놓은 고백을 들어보면, 처음에 베트남에 가서 상관이 민간인을 죽이라 했을 때, 어떻게 민간인을 죽이냐고 거절하고 얻어맞았지만, 다른 마을에서 베트공이 민간인들 사이에 끼어 있다가 공격해오고 자기 동료가 죽어가는 모습을 본 후에는 보이는 대로 방아쇠를 당겼다고 합니다. 일단 전쟁과 폭력이 시작되면 우리는 스스로를 비인간화하고 상대도 비인간화해서, 나와 똑같은 존엄한 생명을 지닌 고귀한 인간으로 볼 수 없게 됩니다.



유감스럽게도 이 땅에는 아직도 4.3의 참극을 빚어낸 냉전의 뿌리, 비인간화의 바이러스가 살아 꿈틀대고 있습니다. 남북 대치가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전쟁의 기류가 짙어지고 위기가 증폭되면 우리는 상대국 구성원 전체를 제거해야할 적으로 단순화해서 언제든 정리할 차비를 합니다. 이런 때일수록 나라를 다스리는 지도자들의 올바른 판단과 지혜로운 안목이 요구됩니다.



4.3 사건 65주년을 맞아 3만명에 달하는 무고한 희생자들의 죽음이 헛되이 잊혀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역으로 과거 지도자들의 무지와 실패에서 배워야 합니다. 오늘의 지도자들은 과거 지도자들이 갖지 못했던 인간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경외심, 극도의 가난으로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고, 비록 허세라고 하지만 자존심밖에 내세울 것이 없는 북쪽 동족의 마음을 헤야려야 합니다. 북쪽 정권 지도자들이 아무리 극단적인 방법으로 무리수를 둔다 해도 우리는 다른 차원에서 지혜와 인내로 설득하고 대화해야 합니다.



2천4백만이 넘는 사람들, 이 자리에 있는 우리와 똑같이 할아버지, 할머니, 아이들이 있는 동포들에 대해 이해와 연민을 가져야 합니다. 그들은 오로지 38선 북쪽에 태어났기 때문에 북한 국민으로 사는 숙명을 타고난 사람들입니다.



이들에 대해 우리 모두가 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자비를 간청해야 합니다. 그들은 결코 우리가 제거하고 청소해야 할 이 땅의 괴물이 아닙니다. 우리의 식구, 동포,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이것이 4.3을 지내는 오늘, 우리가 배워야할 다짐과 각오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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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랍시고, 성서 본문을 아전인수로 이용하면서

자기 하고 싶은 말로만 때우는 목사, 신부들을 숱하게 봤습니다.

차라리 정치 강연이라고 혹자들이 욕해도, 위와 같은 설교가 백배 낫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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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균 2013-04-04 23:07:12
답글

1/10이라니.... ㅠㅠ

장준영 2013-04-04 23:12:00
답글

종교들이 최고의 가치로 숭상하는 평화, 박애 등의 개념들은 <br />
생각해 보면 지극히 '정치적'인 것입니다. <br />
보수주의자들은 '정치적'인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신자들에게 가르치기를, 자선이나 베풀고 순종적으로 살라 합니다. <br />
신자 대중들이 깨어나서 '의식화'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지요. <br />
평화, 박애 같은 것들은 관계성, 즉, 사회적 맥락 안에서가 아니면 실현될 수 없습니다.<br />
결국 '

임재우 2013-04-04 23:12:43
답글

신부님의 설교문을 읽으면서 우리 민족의 아픔과 고통이 행간 구석구석 느껴집니다.ㅜㅜ

황준승 2013-04-05 00:06:14
답글

로마 교황청에서부터 그런 순종적인 신앙생활을 주입 시켜 놓았겠죠 <br />
현대사회에서도 그런 목사들한테서 그렇게 교육 받은 신도들은 그렇게 세뇌 되어 있을테고요 <br />
<br />
다행이 천주교에서는 사회운동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장준영 2013-04-05 00:20:12
답글

└ 사실 기독교는 초대 교회가 좀 지나고 나서 꼴이 갖춰지면서부터(가톨릭교회가 성립하면서부터) <br />
황준승님께서 말씀하신 그런 순종적 신앙 이데올로기를 확립했습니다. <br />
근대 이후 개신교 근본주의도 사실은 종교개혁 이전의 가톨릭교회 시절의 유산들과, <br />
이에 더하여 근대 과학주의(실증주의, 물질주의)가 혼합되어 배태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br />
<br />
그러나 가톨릭교회는 그나마 1962년 제2

황준승 2013-04-05 08:57:00
답글

그렇군요. 잘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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