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음악 감상에 조예가 깊은 건 아닙니다만, 오래 듣긴 했습니다.
하지만 오페라 등 대형 성악곡에는 접근하기 힘들더군요.
언어 문제 탓인 듯하고, 대편성 관현악을 주로 즐기는 취향이라 그렇기도 합니다.
교향곡 중에도 성악이 딸려서 가사를 쫓아가야 제대로 감상이 되는 말러 등의 곡은 조금 어렵고,
성악이 딸린 대편성 관현악 곡이라 해도 미사곡은 가사가 늘 고정된 미사통상문이라 알아들으므로 잘 듣는 편입니다.
서양 고전음악 사상 최고봉 가운데 하나라는 바흐의 마태오 수난곡을 성주간(수난주간)을 맞아 친해보려고 계속 들었습니다.
무려 세 시간짜리 곡이지요. 연기가 딸리지 않은, 오페라가 아닌 오라토리오(오라토리오 형식의 수난곡)이긴 하지만 웬만한 오페라보다 더 긴 곡이라 감상하기 수월치 않습니다. 게다가 언어 장벽까지 있다면 뭐…
다행히, 신약성서 마태오복음서의 예수 수난기(26-27장)의 루터 번역본 독일어 성서를 그대로 사용하고 사이 사이에 자유롭게 작사한 아리아, 합창이 들어가는지라 성서에 익숙한 저로서는 그나마 오페라보다는 쉽더군요.
게다가 요새는 이런 성악곡들은 영상물로 감상하는 게 일반화되어 참 편합니다. 영어 번역, 라이센스 DVD의 경우 한국어 자막도 제공되니(한국어 자막의 번역의 질이 안 좋은 경우도 많지만) 굳이 음반에 딸린 대본(리브레토)에 주의를 기울일 것도 없고, 어떻게 음악이 만들어지는지 공부도 함께 되니까 말입니다.
바흐에 친하기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듣다 보니 참으로 인간적이고 내용이 풍부한 작품 세계를 창조한 작곡가라는 걸 계속 느끼게 됩니다. 말러 또한 그런 점에서 뛰어났으므로 사람들에게 마음 깊이 사랑받고 있지만, 바흐는 말러보다도 더 깊고 넓은 것 같습니다.
특히, 늘 어렵게 생각되고 중압감을 느껴왔던 마태오 수난곡이 어느 정도 귀에 들어오기 시작하자, 이런 대곡이 이 정도로 중독성이 있는가 싶을 정도입니다.
예수 수난기는 특정 종교의 이야기이지만, 이것을 인간 보편의 마음 밑바닥에 사무치는 울림으로 만들어냈다는 데에서 숙연한 경이로움을 느낍니다. 종교라는 차원 정도를 훌쩍 넘어선… (물론 자유롭게 작사한 가사들의 내용은 전통적 기독교 교리에 바탕하고 있긴 하지만, 그 기초에 터하고 있다는 걸 감안하더라도)
그리고 덧붙여, 시대 악기 연주들, 전통적인 현대 악기 연주들을 여러 가지 들어봤지만, 역시 제 취향은 현대 악기 쪽이 더 맞는 듯합니다. 시대 악기 연주들은 그 깔끔하고 소박, 고풍스러운 울림으로 도리어 현대적인 세련됨을 창출하려는 듯 하지만 저는 마태오 수난곡을 지금으로서는 좀 더 절절한 노래로 듣고 싶습니다. 칼 리히터의 1971년 영상물과 헬무트 릴링의 음반이 좋더군요. 리히터 음반들 중에서도 우리가 흔히 꼽는 60년대 음반은 리히터의 바흐다운 엄격, 준열한 맛이 더 두드러지고 71년 영상물은 유연하게 흘러가는 맛이 더 있는데, 리히터 특유의 엄격, 준열한 바흐를 평소에 매우 좋아하지만, 솔직히 베이스 아리아에서는 피셔-디스카우의 그 완벽, 절제된 노래보다는 발터 베리의 마치 오페라같은 격정적인 가창이 더 감동적이고, 릴링 음반의 크바스토프도 격정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감동받았습니다.
말러 2번 부활 교향곡도 귀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즐겨 듣게 되었고, 마태오 수난곡 역시 이제 즐겨 들을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감동적인 명곡이라 입을 모으는 데에는 다들 이유가 있다는…
단, 이런 대형 성악곡은 처음에는 크게 부담될 것이므로 유명 아리아 모음 등으로 일종의 '준비 운동'을 해서 친숙해진 다음 전곡을 감상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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