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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인터뷰...."내가 졌다...."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13-03-16 00:36:41
추천수 1
조회수   3,278

제목

유시민 인터뷰...."내가 졌다...."

글쓴이

장정훈 [가입일자 : 2005-02-04]
내용
내일 새벽 비박산행을 가려고 짐을 다 꾸리고 정리하다가

우연히 이 글을 보고는 뛰는 가슴,안타까운 탄식...

여러 감정이 말 할 수 없이 교차하는 느낌입니다...



인터뷰 전문을 그대로 옮깁니다.







[한겨레][토요판] 김두식의 고백/유시민





분재가 되어가는 소나무의 슬픔





"내가 졌다"



"힘들어도 전망이 보이면 계속하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졌어요. 정당 혁신, 참여민주주의, 정책 경쟁이 일어나는 정치를 목표로 10년을 했어요. 그런데 안 됐고, 될 가능성도 안 보이니까, '저는 졌습니다!' 인정하는 거예요."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직접 밝힌 '정계 은퇴의 이유'다. 2월19일 트위터를 통해 정계 은퇴를 선언한 유 전 장관은 지난 8일 저녁 <한겨레> 토요판 '김두식의 고백' 인터뷰에서 "현실정치 10년을 한 다음 내가 졌다고 인정하는 것"이라며 자신의 '패배'를 거듭 강조했다. 김두식 경북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가 진행한 이날 인터뷰는 경기도 파주출판단지 내 출판사 '아름다운 사람들'에 있는 유 전 장관의 서재에서 약 4시간 동안 이뤄졌다.



유 전 장관은 2002년 개혁국민정당 창당과 함께 정치를 시작했다. 2003년 4월 국회의원 보궐선거(경기도 고양시 덕양갑)에서 당선한 뒤 국회 본회의장을 찾아 선서할 때 흰색에 가까운 베이지색 면바지를 입어 논란을 빚은 그는 이 사건으로 인해 '빽바지'(민주당 진보·개혁파를 빗댄 말)의 원조가 됐다. 참여정부 시절이던 2006년 2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냈다. 이후 대통합민주신당(2007년), 국민참여당(2009년), 통합진보당, 진보정의당(이상 2012년) 창당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유 전 장관은 10여년의 정치 인생을 돌이키며 '정치의 비루함'을 말했다. 각종 선거를 앞두고 정당 내부에서 빚어지는 줄 세우기, 금품 제공, 값비싼 식사와 향응 제공 행태 등을 예로 든 그는 "시궁창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순간이 무지하게 많았다. 분열주의자, 이적행위자…, (정당) 내부 문제를 지적하고 혁신하자고 하면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를 '나쁜 놈'(the bad)과 '이상한 놈'(the ugly) 사이에서 '착한 놈'(the good)이 나타나기 어려운 프레임(구조)이라는 말로 설명했다. 또 그는 최근 4·24 국회의원 보궐선거(서울 노원병) 출마를 선언한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에 대해 "그가 어떤 힘으로 이 프레임을 부술 수 있을지 흥미진진하게 바라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유 전 장관이 다시 정치에 뛰어드는 일은 없을까. 그는 "유권자, 시민으로서 국가권력의 운용에 대한 의견이 있기 마련이니, 투표·정당 참여·1인시위·촛불시위·글쓰기 등 다양한 방법으로 정치를 하겠지. 다만 그걸 직업으로 하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최우리 기자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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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80쪽짜리 논문이라면

65쪽 이후는 결론이고

본론은 열쪽 남았잖아요

정치를 오래 했지만, 안 됐고

될 가능성도 안 보이니까

이제 졌다고 인정한 거예요

분열주의자, 싸가지 없다는

말을 하도 들어서 무서워요

계속 똑같은 질문만 하는

언론인들이 무서워요

'노빠' '유빠'한테만

왜 그렇게 가혹하죠?

정치할 땐 애써 웃었지만

이젠 성질 좀 내기로 했어요



고백건대, 제 마음에 남아 있는 가장 '유시민다운 유시민'은 2003년 4월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뒤 면바지에 재킷을 입고 선서를 위해 등원하던 산뜻한 모습의 그입니다. 보수적인 의원들뿐만 아니라 진보언론한테도 '지나치다'고 비판받은 행동이었지만 그날의 유시민이 제게는 참 멋져 보였습니다. 2013년 2월19일 유시민 전 장관은 정계은퇴를 선언하는 짧은 글을 트위터에 남겼습니다. "너무 늦어버리기 전에, 내가 원하는 삶을 찾고 싶어서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떠납니다. 지난 10년 동안 정치인 유시민을 성원해주셨던 시민여러분, 고맙습니다. 열에 하나도 보답하지 못한 채 떠나는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군더더기 하나 없는 담백한 문장을 읽고 오랜만에 면바지 자유주의자 유시민을 되찾은 것 같아 유쾌했습니다. "정치적 자기 검열 없이" 글 쓰는 사람으로 돌아온 그의 심경을 듣고자 파주출판단지의 집필실을 찾는 저의 발걸음도 가벼웠습니다. 손님을 맞이한 그는 "며칠 전 급성위염으로 응급실에 실려 갔다"면서도 핸드드립 커피를 대접하겠다며 원두부터 갈기 시작했습니다.



"입의 요구와 몸의 형편 사이의 부조화죠.(웃음) 커피 자체보다는 카페인이 위산 분비를 촉진한대요. 오늘 아침까지 카페인의 대항마인 약을 투입했으니 지금은 좀 마셔도 돼요.(웃음)"



대선 끝난 뒤 책 제목을 바꾸다



-새 책은 벌써 베스트셀러가 됐더군요, 책 때문에 바쁘시지요?



"하루 종일 사인을 했어요. 제가 정치하면서 신세 진 분들이 많은데, 이제 정치로는 보답을 못하니 책이라도 보내드려야죠."



-책 제목은 <어떻게 살 것인가>이지만, 실제 내용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가깝더군요.



"그렇게 보셨어요? 원래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로 제목을 정하고 대선 전에 초고를 완성했어요. 그런데 대선 결과가 나오고 분위기가 너무 침침해졌어요. 실망한 분들에게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내놓으면 감당이 안 될 것 같더군요. 대선 다음날부터 사무실에 나와 완전히 새로 썼어요. 어떻게 살 것인가와 어떻게 죽을 것인가가 분리되는 문제는 아니니까요."



-갑작스런 정계은퇴 선언은 책을 팔기 위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는데요.



"정치를 그만두려니 당에 얘기하기가 너무 미안해서 입이 떨어지지 않았어요. 차일피일 미루다가 더이상은 미룰 수 없는 상황이 됐죠. 삼일절 연휴 때문에 배본에 문제가 생겨서 출간 일정이 갑자기 앞당겨졌거든요. 책 내용을 보고 (정계은퇴 사실을) 알도록 할 수는 없잖아요. 틀림없이 그런 지적이 나올 걸 알았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은퇴를 더 늦추면 안 되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제 인생이 80쪽짜리 논문이라면 65쪽 이후는 결론, 후주, 요약이 들어갈 거고, 막상 본론은 열쪽밖에 안 남았잖아요. 5년 더 정치하고 나면 은퇴해봐야 의미도 없을 것 같더라고요."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그만둔다는 의미는?



"유권자, 시민으로서 국가권력의 운용에 대한 의견이 있기 마련이니 투표, 정당참여, 일인시위, 촛불시위, 글쓰기 등 다양한 방법으로 정치를 하겠죠. 다만 그걸 직업으로 하지는 않겠다는 의미예요."



-상황이 바뀌어도 절대로 안 한다는 뜻인가요?



"그 질문에 대해 정치적 자기 검열을 하면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가 현명한 대답이에요. 하지만 저는 이렇게 표현하죠. 다시 직업으로서의 정치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의지가 담긴 표현이군요. 정치에 대한 환멸을 느껴 떠나는 건가요?



"왜 환멸을 느끼겠어요? 정치는 흥미진진하고 역동적이고 매력적인 활동이에요. 드라마, 신파, 영화적, 소설적 요소가 다 있죠. 매우 중요한 영역이고 훌륭한 분들이 정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저는 이미 많이 했어요. 현실정치 10년을 한 다음 제가 졌다고 인정하는 거예요. 힘들어도 전망이 보이면 계속하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졌어요. 지역 구도를 혁파하는 정당 혁신, 참여 민주주의, 정책경쟁이 일어나는 정치를 목표로 10년을 했어요. 그런데 안 됐고, 될 가능성도 안 보이니까, 목표는 올바르더라도 대중이 받아들이지 않거나, 그 목표를 이룰 사람으로 저를 받아주지 않으니까, 이제 졌다! 내가 가진 모든 걸 갖고 할 만큼 해봤는데 저는 졌습니다! 인정하는 거예요."



-'유빠'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지지를 철회하지 않았던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은 없나요?



"제가 트위터에 올린 글 마지막 문장에 용서해 달라고 말씀드렸잖아요. 무슨 말을 더 하겠어요."



-유 선생님을 좋아하는 저도 가끔 극렬 '유빠'들에게 불편함을 느낄 때가 있는데요.



"민주당 지지층 중에는 상대방을 영남패권주의자라고 대드는 사람이 없나요? 박근혜 지지자 중에는 상대방을 종북좌파라고 부르는 사람이 없나요? 박사모나 일베에 이상한 사람들이 있다고 누가 박근혜를 욕하나요? 어떤 정치인 지지자나 그중에는 합리적이고 온건한 사람도 있고, 아주 공격적인 사람도 있는 거예요. 그런데 유독 노무현, 유시민 지지자들에게만 왜 그렇게 가혹하죠? 왜 우리만 손가락질하느냐고요."



-애고, 오늘 기자들이 적어준 질문에는 '합리적인 진보개혁 진영에서도 당신을 밉상으로 보는 이유'를 묻는 것도 있네요.(웃음)



"정치하면서 노상 그런 이야기를 들었는데 정말 비겁한 질문이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저는 저녁이 되면 체질상 눈이 무조건 충혈되거든요. 밤 12시에 만나고 제가 권력에 눈이 벌게서 어떻다는 식의 기사를 쓰는 데야 어쩌겠어요? 제가 정치할 때는 그런 질문 받아도 애써 웃으며 답했는데, 솔직히 그런 질문은 대답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요. 너무나 많은 비열한 질문을 받아서 이제는 성질을 좀 내기로 했어요.(웃음)"



나쁜 놈과 이상한 놈 있는데, 왜 착한 놈은 없는가



-"안철수 박사가 과연 권력투쟁으로서의 정치가 내포한 비루함과 야수성을 인내하고 소화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적으셨더군요. 정치의 비루함은 어떤 건가요?



"구체적으로 말씀드려 볼까요? 제가 술을 못 마셔요. 소주 석잔이면 얼굴이 빨개져요. 그런데 5월이면 지역구에서 마을마다 효도잔치가 열리고 어른들이 소주를 따라주세요. 안 받으면 싸가지 없는 놈이 되고, 받아 마시면 두 군데 돌고 제가 뻗어버려요. 그런 때 '이걸 왜 해야 하나' 비참해져요. 10월이면 지역구 학교들부터 제 모교까지 온갖 체육대회가 열려요. 10시 개회식에 가면 벌써 삼겹살 굽고 소주잔이 돌고 있어요. 모교 체육대회를 가니 기수별로 천막이 40개예요. 정말 꾹꾹 참으면서 술을 받아먹는데 우리 기수까지 겨우 돌고 뻗었어요. 누구의 잘못도 아니에요. 그냥 정치가 그런 거예요. 당내 선거 때도 비참해요. 전당대회를 오후 2시에 하니까 아침에 차 타고 올라오면 되잖아요. 그런데 꼭 그 전날 온다고요. 저를 아끼는 선배가 '어느 지역 대의원들이 여의도 중국음식점에 모여 있다, 어디 호텔에 있다'면서 방마다 돌래요. 인사라도 해야지 아니면 싸가지 없다는 소리를 들으니까. 가보면 요리접시, 빈 양주병이 굴러다니고 50~60대 대의원들이 벌겋게 취해서 '어이, 이제 왔어?' 바로 반말을 해요. 제가 40대 중반의 당의장 후보일 때요. 도대체 그 요리값, 호텔비는 누가 냈는지 몰라요. 거기서 고개 숙이고… 물론 좋은 정치를 만들려면 그것도 참아야죠. 그러나 시궁창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어요. 비루한 거죠. 그런 순간이 무지하게 많습니다. 제가 민주당을 특정했다고 적지는 마세요. 분열주의자, 이적행위자란 말을 하도 많이 들어서 저는 무서워요. 제1야당의 내부 문제를 지적하고 혁신하자고 하면 그런 소리를 하는 거예요. 6월항쟁 이후 25년 동안 계속된 프레임이에요."



-어떤 프레임이죠?



"비유하자면 되게 힘센 나쁜 놈(the bad)이 있어요. 객관적인 나쁜 놈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생각할 때 나쁜 놈이죠. 그리고 가끔은 착하기도 못나기도 한 이상한 애(the ugly)가 있어요. 이상한 애는 힘이 좀 있어서 나쁜 놈이 나쁜 짓 하는 걸 막아주기도 하는데 자기도 가끔 나쁜 일을 해요. 서부영화로 치면 우리는 더 굿이 없는 정치예요. 여기서 착한 애(the good)가 좋은 일을 할 힘을 얻으려면 시간이 걸려요. 영화 보는 사람들이 진짜 우리 편으로 믿고 박수 쳐 줄 수 있는 배역, 즉 더 굿을 만드는 게 우리 정치의 과제예요. 그런데 착한 애가 나타나면 나쁜 놈과 이상한 애가 각각 총을 쏴요. 이상한 애는 총을 쏘면서도 착한 애한테 '내 말대로 해야 착한 사람이 된다'고 조언해요. 그 말을 따르면 절대로 착한 사람이 될 수 없어요. 하지만 시킨 대로 안 하면 '분열주의자'라고 낙인이 찍혀요. 이런 프레임이 87년 체제의 본질이에요. 지난 10년간 이 프레임을 깨려고 도전했지만 제가 진 거예요."



-통합진보당에 참여한 것도 그런 도전의 일환이었나요?



"통합진보당에서 마지막 가능성을 봤던 거예요. 문제도 많고 경직되어 있지만, 이 프레임을 깨는 데 힘을 모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좌에서 우로 왔다 갔다 한 게 아니에요. 더 굿의 포지션을 차지할 수 있는 제법 강력한 세력을 하나 만들고 싶었던 거예요."



-경선 부정 문제를 제기했지만, 결과적으로 구 민주노동당계의 의회 진출을 도왔고, 진보정당 분열의 책임이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통합진보당 사태 이후 제가 한 말들을 찾아보라고 하세요. 더이상은 할 말이 없어요. 끝없이 얘기해도 계속 같은 질문만 하는 언론인들이 무서워요.(웃음)"



-안철수 박사가 비루함을 이겨내고 더 굿의 역할을 해낼 수 있을까요?



"알아서 자기 길을 열어가겠죠. 그가 어떤 힘으로 이 프레임을 부술 수 있을지 저는 흥미진진하게 바라보고 있어요."



-안 박사를 만난 적이 있나요?



"전혀. 나 같은 사람과 어울리지 말라고 많이들 조언했을 거예요. 저는 정치를 그만둔 뒤에도 공격받을 거예요. 무책임한, 싸가지 없는. 이미 붙여놓은 딱지들이 계속 따라다닐 거라고 봐요. 이 얘기는 여기까지!"



-왜 이렇게 안티가 많다고 생각하세요?



"제가 행실이 나빠서 그렇겠죠. 달리 뭐라고 설명하겠습니까."



-저는 정치 자체를 즐기는 사람이 정치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억지로 부름받아 나온 사람들이 정치하는 건 지켜보기도 피곤하거든요. 유 선생님도 사람 만나는 걸 즐기는 편은 아니시죠?



"국가적 이슈는 건드리지 않으면서, 지적 활동도 열심히 하지 않고, 작은 정책 개선에 보람을 느끼며 지역구를 지켜내는 정치인도 물론 필요해요. 그러나 사람 만나는 걸 게을리하고 싫어하지만 큰 어젠다 중심으로 가는 사람도 있어야 정당도 정치도 돌아가요. 어느 한 유형의 사람들만 정치를 하면 안 돼요. 제 스타일이 우리 정치 풍토에서 살아나기 힘든 건 사실이지만요."



"니는 내 살았을 때 정치하지 마래이"



1959년 경주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초·중·고교를 졸업하고 1978년 서울대 경제학과에 입학한 유시민은 1980년 5월17일 "다 도망가서 텅 빈 학교를 계엄군에게 넘겨주기는 좀 그렇다"고 홀로 자리를 지키다가 경찰청 특수수사대에 붙잡혀 두 달 동안 말 못할 고초를 겪었습니다. 엄청나게 얻어맞으며 하루 세끼 똑같은 아욱된장국만 먹다가 어느 날 냉면 대접에 고기를 많이 넣은 소고기무국이 나오자 모두들 겁에 질려 '갑자기 왜 이럴까? 우리를 모두 죽이려는 걸까?' 떨어야 했던 살벌한 시절이었습니다. 군사재판을 받고 바로 강제 징집된 그는 꼬박 32개월을 전방 소총수로 복무합니다. 이등병 때는 반파쇼학우투쟁선언문이 발단이 된 무림사건이 터져 보안사 서빙고 분실에 끌려가 조사를 받았고, 말년에는 '녹화사업'(관제 프락치 공작) 공작 대상으로 보안사에 엉터리 보고서까지 제출해야 했습니다. "어디로도 도망갈 수 없는" 군 생활이 너무 힘들었기에 1983년 5월의 제대일은 평생 잊을 수 없는 행복한 날이었습니다.



"제대하는 날 화천에서 춘천까지 버스로 데려다 주는데, 정말 몸이 공중에 뜨는 것 같았어요. 정말 진짜 제대하는구나. 제 인생에서 가장 황홀한 날이었어요. 구름을 타면 이런 기분일 거야! 제대하고는 보안사 퇴계로 진양분실에서 진행되던 녹화사업을 야당 의원들에게 폭로했어요. 그런데 국회 가서 제대로 질문도 안 하더라고요."



-(이른바 '서울대 프락치 사건'과 관련해)폭행범으로 몰린 상태에서 10시간 만에 홀로 작성한 1985년 5월26일자 항소이유서는 시대의 명문으로 꼽힙니다. 글 쓰는 재주는 그때 처음 자각했나요?



"네. 당시 애인이던 아내는 '글을 써서 먹고살 수도 있겠다'는 제 편지를 받고 '이 사람이 감옥에 들어앉아서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대요.(웃음)"



-그 시절을 죽지 않고 살아남게 한 힘은 '거리감'이었다고 적었더군요. 세상과 타인, 심지어 자신과도 일정한 거리감을 유지한다는 얘기를 읽고, 깊은 허무를 느꼈습니다.



"살면서 너무 많은 사람을 알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인간관계망에도 최대치가 있는 거죠. 그리고 제가 약간 데카당(decadent)해요. 어릴 때부터 저한테 그런 게 있어요."



-어떤 아이였나요?



"겁 많고 고집은 엄청 센 울보. 아침식사 때 4녀2남에게 꽁치를 나눠주는데 저에게 작은 걸 주면 큰 걸 달라고 하지는 않고 그냥 '안 먹어' 하고 잉잉 울었대요. 그래서 아버지가 벽장에 넣고 문을 닫았더니, 큰누이가 학교 다녀와 꺼내줄 때까지 나오지 않고 계속 이불에 기대 울고 있더라는.(웃음) 어머니한테 맞을 때도 절대 '잘못했다'는 말을 한 적이 없어요, 한 번도! 잘못했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걸 말하기는 싫었어요. 그 기억이 나요."



-어머니는 어떤 분이셨나요?



"저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신 분이죠. '기집년들 글 가르쳐놓으면 친정에 편지질이나 한다'고 아버지(유시민의 외할아버지)께서 학교를 안 보내주니까, 어머니는 할아버지가 머무는 사랑채 옆방에 드러누워 3일 동안 벽을 차며 울었대요. 일곱 살짜리 여자애가 그러니까 할아버지가 '아따, 그년 지독하다. 학교 보내라'고 해서 어머니부터는 여자도 학교를 다녔다고 하죠. 자존심과 강단이 있는 분인데 저하고는 사이클이 잘 맞아요. 대화를 안 해도 금방 알아요. 지난 설에 오셔서는 갑자기 '야야. 니는 내 살았을 때 정치하지 마래이' 하시더라고요. 제가 금방 알아들었어요. '니는 순하고 착한데 그렇게 나쁜 놈처럼 욕먹고 비난받는 걸 내가 더는 못 보겠다. 죽고 나서는 해도 되는데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하지 마라'는 뜻이죠. 그 말씀이 제 부담을 덜어준 면이 있어요."



-수줍음이 많은데 학생운동과 정치에 뛰어들어 참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습니다. 시대를 잘못 타고난 건가요?



"데카당하고 조용하고 수줍은 건 사실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굉장히 냉소적이고 공격적인 면이 있어요. 2002년에 그게 한번 불붙어 10년간 싸운 거예요. 그러다가 힘이 다 빠진 거죠. 사람은 누구나 양면이 있는 것 같아요. 양면, 삼면, 심지어 사면이 있죠."



남을 의식 안한 건 교만이었어요



-시사평론가, <100분 토론> 진행자로 이름을 날렸는데 기회가 오면 다시 해 볼 마음이 있나요?



"그럴 생각은 별로 없어요. 방송 진행을 맡기지도 않겠지만. 아버지 박통 시절에 도망 다녔는데, 딸 박 대통령 밑에서 잡혀가지 않는 것만 해도 어디예요? 지난 30여년간 대한민국이 그만큼은 좋아진 거죠."



-면바지 등원을 좋아했던 제게는, 리버럴 유시민의 색깔이 계속 옅어진 아쉬움이 남는데.



"그런 면이 있죠. 분재가 되어가는 소나무의 슬픔. 저는 분재를 싫어해요. 분재는 뻗어가는 생명을 묶어놓고 모양을 만드는 거잖아요. 반자연적인 거예요. 그런데 그게 정치환경과 관련이 있어요. 우리 정치는 51%를 얻어야 생존이 가능하잖아요. 독일은 5%만 받아도 생존해요. 태양과 반대쪽으로 잎을 뻗고 싶어 하는 놈도 5%만 받으면 살아남아요. 우리 선거제도에서는 다양성이 꽃필 수가 없어요. 노 대통령의 대연정은 권력의 절반을 한나라당에 내주더라도 선거제도만 바꾸면 이런 다양한 정당들이 자기 색깔을 유지한 채로 꽃밭처럼 흐드러질 수 있다는 얘기였어요. 저도 거기 백프로 공감했고요."



-서울대 출신에 정치인, 작가로도 성공했고 행복한 가정까지, 너무 많은 걸 가진 인생 아닌가요?



"사실이에요. 2003년 보궐선거 나온 때부터 국회의원, 최고위원, 장관에다가 대통령의 오른팔이니 왼팔이니 하는 얘기까지 들으면서 제가 무지하게 조심하고 몸을 낮췄어야 하는데 주관적으로 그런 의식이 없었어요. 예전과 똑같이 살았어요. 노 대통령과는 공적인 관계인데 인간적으로 서로 좋아했어요. 대통령 측근도 아니고, 측근 모임에서 나를 부른 적도 없고. 나는 그냥 일 있으면 대통령에게 가서 이야기했어요. 나는 나대로 사는 거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면 그대로 했어요.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자기 시각으로 나를 보지, 있는 그대로 나를 봐주는 게 아니에요. 타인의 눈으로 나를 봤어야 하는데 그 생각을 못한 거예요. 지금은 남의 시선을 의식 안 하고 산 것 자체가 교만이라고 생각해요. 그건 참 잘못했어요."



-정치 그만둔다니 집에서는 좋아하죠?



"주변에서 위로를 받지만 가족들은 오히려 좋아죽겠다는 표정을 관리하느라 힘들대요. 어머니는 봄날 종달새처럼 목소리가 한 톤 높아지셨어요. 제가 정치를 계속했어야 한다고 믿는 분들에게 죄송해서 이런 표현도 막 할 수는 없죠."



-정치인을 그만두는 마당에 국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정치인을 무작정 싫어하거나 기피하시면 안 된다. 모든 정치인이 나쁜 사람도 아니고 인격적으로 저질도 아니에요. 정치인을 그렇게 보이게 하는 구조가 있는데 그 구조가 바뀌기 전에는 정치가 불만족스러울 수밖에 없어요."



그동안 수없이 그를 촬영했다는 강재훈 기자는 오늘 뷰파인더 속의 유시민이 어느 때보다 편안해 보인다고 했습니다. 패배를 선언한 '겁 많고 고집 센 울보'에게는 여유가 넘쳤습니다. 기분 좋은 인터뷰를 마치고 떠나려는데 뒤에서 불쑥 혼잣말이 들렸습니다. "우리나라 정치에 괴상한 놈이 하나 왔다 갔다 했다고 보면 되지 뭐." 자조적인 한마디를 들으니 슬며시 웃음이 나오면서도, 마음이 아팠습니다. 겉은 편안해 보였지만, 급성위염에 걸린 그의 속까지 편치는 않은 것 같았습니다. <석양의 무법자>(the Good, the Bad, and the Ugly)의 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그는 누가 굳이 괴롭히지 않아도 혼자 충분히 괴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말과 글을 무기로 홀로 싸워나갈 그의 앞길은 좀더 평안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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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의 패배인가, 시민들의 패배인가



유시민의 정치 10년사



"망가지긴 해도 죽기야 하겠나"

2002년 개혁국민정당으로 입문

노 대통령 당선에 기여하며

데뷔와 함께 전성시대 누려

자유주의자로 자처하면서

거침없는 발언들을 쏟아냈고

정치 개혁을 명분 삼아

탈당과 분당, 창당도 반복했다

하지만 결과는 뼈아픈 수식어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2002년 8월29일 '정치 혁명과 국민 통합을 위한 개혁적 국민 정당'(이후 개혁국민정당이란 이름으로 창당) 공보 담당 기획위원을 맡으며 10여년 정치 인생의 첫발을 내디뎠다. 당시 그는 문화방송(MBC) <100분 토론>의 '잘나가는' 사회자로, <거꾸로 읽는 세계사>와 <경제학 카페> 등 베스트셀러의 저자로, 칼럼니스트로 활약하고 있었다. 이런 그가 '절필 선언'과 함께 "지금 나는 화염병을 들고 바리케이드로 뛰어드는 심정"이라며 정치에 뛰어든 '사건'은 대선 국면에서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다. 그 뒤 이어진 말은 이랬다.



"옛날 (학생운동 시절) 을지로에서 유인물을 만들고, 화염병 던지고 그럴 때…. 정말 하기 싫었다. 그런데 박정희 정권의 유신 치하, 5공화국 때 그런 일조차 하지 않고 그 시대를 통과하면 너무너무 후회할 것 같았다. 지금이 딱 그런 심정이다. 칼럼니스트는 사실 괜찮은 일이다. 그런데 다 집어던지고 (이런 일을) 굳이 해야 되느냐는 생각이 안 든 것도 아니지만, (이런 일을 한다고 해서) 좀 망가지기는 하겠지만, 죽기야 하겠느냐."(2002년 7월31일 <오마이뉴스> 인터뷰)



유 전 장관이 정치에 뛰어들 무렵, 여당인 민주당 일부 의원은 국민참여경선을 통해 뽑은 노무현 대통령 후보의 지지율이 크게 떨어지자 '노무현 흔들기'를 일삼았다. 유 전 장관이 영화배우 문성근씨 등과 함께 개혁국민정당을 만들 때 '정치 개혁'을 목표로 내걸고 그 구체적 방법론으로 참여민주주의 도입 등 '정당 개혁'을 제시한 데에는 이런 정치적 배경이 있었다. 대선 승리라는 '목표'를 앞세워 국민경선, 공직후보자 상향식 공천이라는 민주적 절차, 곧 '과정'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게 그의 일관된 주장이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그를 '노무현 지킴이'라고 불렀다.



유 전 장관에게 정치적 전성기가 있었다면, 그건 바로 정치를 처음 시작할 무렵이었다. '개미들의 유쾌한 정치반란' '고래를 삼킨 새우'를 구호로 내건 개혁국민정당은 2002년 10월 창당과 함께 노무현 후보 지지를 선언했고, 일반 시민의 폭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내며 그의 당선에 적잖은 기여를 했다. 유 전 장관의 오랜 지인은 당시를 떠올리며 "개혁국민정당 창당부터 대통령 당선까지가 (유 전 장관이) 오히려 가장 자유롭고 빛나던 순간이었다. 그때는 우리 모두 정치를 바꿀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듬해인 2003년 4월 유 전 장관은 개혁국민정당 후보로 국회의원 보궐선거(경기도 고양시 덕양갑)에 나와 당선하며 국회의원 생활을 시작했다.



'자유주의자'를 자처하는 그는 정치에 입문하기 전 자신의 책 <와이 낫>(WHY NOT, 2000년 2월 출간)에서 "자유주의자는 부당한 권위에 복종하지 않으며, 집단의 위세 앞에 주눅 들지 않는다. 술자리 안줏감으로 씹히고 괘씸죄에 걸려도 어쩔 수가 없다. 어느 시대든 신조를 지키는 데는 비용이 따르는 법"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정치를 하면서도 이런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2003년 4월29일 국회의원 선서를 위해 처음 출근한 국회 본회의장에서 '일하기 편한 옷'이라며 '빽바지'를 입고 간 것이 논란을 빚기도 했고, 같은 해 5월 대학신문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애국은 내면적 가치인데 주권자로 하여금 공개 장소에서 국가 상징물에 충성을 맹세하게 하는 것은 민주공화국에서 상상할 수 없다. 국기에 대한 맹세는 파시즘과 일제의 잔재라고 생각한다"고 발언해 거센 논란을 빚기도 했다.



'불관용'과 '관용'도 유 전 장관을 설명하는 주요 열쇳말이었다. 그는 빽바지 등원 다음날인 2003년 4월30일 국회에서 "제 머릿속에 자주 떠오르는 것은 나와 다른 것에 대한 관용과 존중이다. 나와 다른 것을 배제하고 말살하려는 불관용 말고는 모두 관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관용의 필요성을 강조하고자 했던 의도와 달리, 그의 존재가 도드라진 지점은 불관용, 혹은 불관용의 대상과 만났을 때였다.



그는 정치를 시작하며 자신이 관용할 수 없는 상대라면 여야를 가리지 않고 서슴없이 베고 찔렀다. 논리정연한 말과 글이 그의 최대 무기였다. 지난 10여년간 그의 말과 글 앞에 숱한 정치인이 얼굴을 붉혔지만 정작 상처 입은 쪽은 유 전 장관 본인이었다. 2002년 정치를 시작할 때 그가 했던 말을 빌리자면, '죽지 않을 만큼 망가졌다'.



유 전 장관은 과거 칼럼니스트 시절부터 한국 정치를 영화 <석양의 무법자>의 원제인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The Good, the Bad and the Ugly)의 구도로 설명해왔다. 한나라당 시절부터 새누리당은 줄곧 그에게 '나쁜 놈'(the bad), 곧 불관용의 대상이었다. 2004년 2월 불법대선자금 등에 관한 청문회 때 "나는 한나라당 박멸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난 사람"이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보수언론에 대해서는 한걸음 더 나아가 "우리 사회의 불관용 분위기를 선동하는 독극물과 같은 존재"(2005년 11월 서울대 특강 내용)라는 표현을 썼다.



서로 관용할 수 없는 '나쁜 놈'과의 싸움에서 상처 입는 것은 당연했고 아프지도 않았다. 유 전 장관이 시도한 것은 '이상한 놈', 곧 민주당(열린우리당 포함)의 '교화'(정당 개혁)였다. 여기서 그는 스스로 "내가 졌다"를 선언한 것이다. 지난 8일 <한겨레> 인터뷰에서 그는 "착한 애가 나타나면 나쁜 놈과 이상한 애가 각각 총을 쏜다. 이상한 애는 총을 쏘면서도 착한 애한테 '내 말대로 해야 착한 사람이 된다'고 한다. 그 말에 따르면 절대로 착한 사람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시킨 대로 안 하면 '분열주의자'라고 낙인찍힌다"고 말했다.



유 전 장관이 '분열주의자' 혹은 '분파주의자'라는 비판을 듣게 된 계기는 2005년 4월 열린우리당 전당대회였다. 그는 2003년 11월 민주당이 열린우리당으로 간판을 바꿔 달 때 개혁국민정당을 이끌고 여기에 합류했다.



당시 전당대회를 앞두고 그는 "정동영계는 용서할 수 없고, 김근태계와는 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 정동영, 친 김근태' 발언 이후 정동영계는 물론 김영춘, 송영길, 임종석 등 열린우리당 내 386 의원들까지 그를 '분파주의자'로 몰았다. 전당대회에서 그는 4위로 상임중앙위원에 당선했다. 훗날 그는 전당대회를 치르며 열린우리당의 붕괴를 예감했다고 말했다. "전당대회를 코앞에 두고 당원과 대의원 자격에 관한 당헌과 당규를 고쳤다. 그 결과…, 일부 후보들은 안타깝게도 대의원 줄세우기, 금품 제공, 값비싼 식사와 향응 제공 등의 구태를 저질렀다."(유시민, <후불제 민주주의>, 248쪽)



유 전 장관에게 가장 아픈 수식어는 '정당 브레이커'(당 깨기 전문가) 혹은 '창당 기술자'일 것이다. 그보다 심한 비판으로는 '말바꾸기의 달인'이 있다. 언론인 고종석씨는 그를 가리켜 지난 2월26일 자신의 트위터에서 "증오마케팅과 분열주의의 프로페셔널이자 말바꾸기의 달인이자 착한 약자 코스프레의 종결자"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개혁국민정당과 열린우리당을 빼더라도 대통합민주신당(2007년), 국민참여당(2009년), 통합진보당, 진보정의당(이상 2012년) 등의 창당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를 '정치 공학'의 결과물로 보는 시각이 우세했다. 2008년 4월 제18대 총선 때 대구 수성을에 무소속으로 출마하며 대구에서 계속 정치를 하겠다는 뜻을 비쳤는데, 2010년 6월 지방선거에서 야당 단일 경기지사 후보로 출마해 낙선한 것을 두고 신뢰를 많이 잃었다는 평가도 있다.



유 전 장관은 지난 2월19일 정계 은퇴를 선언하며 정치를 시작하기 전 그의 직업이었던 '지식소매상' 자리로 돌아갔다. 유 전 장관이 지난 10여년의 정치 인생을 돌아보며 스스로 "내가 졌다"고 밝혔듯, 외부의 평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그의 정치를 "실패"로 규정했다.



"그가 시민의 참여가 바탕이 되는 정당 개혁과 정치 개혁을 많이 강조했는데, 그가 만든 개혁국민정당이든 열린우리당이든 이들 정당 모델이 한국 정치에 제대로 착근됐다고 보기 어렵다. 당장 어떤 실체로 남아 있는 것도 없고, 기존 정당이 그 영향을 받아 바뀐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혹독한 평가를 받는 지점은 통합진보당 창당과 분당이다. 이 소장은 "국민참여당과 민주노동당을 합친 통합진보당은 정치 공학의 극치였다. 전혀 이질적인 두 세력의 결합이었기에 분당이라는 결과는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유 전 장관이 자신의 정치를 그렇게 끝낸 것은 아쉬운 대목"이라고 말했다.



유 전 장관은 이번 인터뷰에서 "내가 졌다"는 말을 여러번 되풀이했다. '시민의 자발적 참여'로 운영되는 정당을 만들어 한국 정치를 바꾸겠다고 했던 '유시민 정치'의 몰락은 과연 '유시민'의 패배일까, 아니면 시민의 패배일까. "내가 졌다"는 짧은 문장이 남기는 긴 여운이다.



최성진 기자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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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현 2013-03-16 00:52:32
답글

이 나라가 시궁창입니다.

박헌규 2013-03-16 00:59:06
답글

여전히 말은 싸가지 없게 하는군요.<br />
그런면이 한편 안쓰럽고 한편은 동질감을 느끼게 합니다.

임재우 2013-03-16 01:30:45
답글

아직도 유시민전장관의 책을 보면 가슴이 먹먹합니다.<br />
노통과 함께 뜨거운 시대를 함께 한 정치적 사회적 맨토로서 존경했는데 아쉽기도 하지만<br />
말대로 이렇게 백기를 들고 훌훌 털듯이 판을 떠나는 모습에서 그만의 자존심을 느껴봅니다.<br />
유시민형님 멋지십니다~ㅜㅜ

이재진 2013-03-16 01:41:17
답글

경향은 오늘도 친노 어쩌고 까고 있습니다 개네들이 할게 있겠어요 친노나 까야지 입진보들도 까는데 많이들 까야지

이기철 2013-03-16 01:49:18
답글

정말 재수없는 말씀이지만,,,, 안철수따위를 좋아하는 분들은 유시민에게 싸가지 없다고 들 합니다.

유종호 2013-03-16 01:50:25
답글

사실을 말하면 싸가지 없다는 평이 나오다니..<br />
댓글이 더 싸가지 없는 것 같군요.<br />

motors70@yahoo.co.kr 2013-03-16 01:57:32
답글

사람은 뛰어난거 같은데 주변에 사람이 없다는거 앞으로 정치할 사람들은 모든 사람에게 잘보일 필요는 없지만 그룹을 지어서 행동 했으면 좋겠습니다.그렇다고 지금같은 계파정치 하라는 소리는 아니니 오해 안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영갑 2013-03-16 01:58:24
답글

어느 대목에서 '싸가지 없음'을 느끼셨는지 궁금합니다.<br />
같은 글을 놓고 저는 '안타까움'을 느끼는데요.

진현호 2013-03-16 02:04:35
답글

유시민의 심정이 바로 제 심정입니다.<br />
한 때 희망을 갖고 지켜봤었지만 결론은 답이 안 나오더군요 ... 이 나라가

이일근 2013-03-16 02:12:27
답글

싸가지 있게 표현한다는건 어떤것인지 궁금합니다. 저는 인터뷰글을 읽으면서 싸가지없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강지성 2013-03-16 02:23:52
답글

더하지도 빼지 않는 그런 담백함이 있다고 느껴 집니다.<br />
그저 미얀한 마음만 드네요..<br />
각자가 아는 만큼만 눈에 보인다는 사실이 더욱더 미얀하게 느껴집니다.

윤석준 2013-03-16 02:24:00
답글

정말 싸가지없는 댓글이 하나있네요

이기철 2013-03-16 02:24:44
답글

유시민의 발언을 통해서 더 많이 유명해진 말들이 떠오릅니다. <br />
<br />
케네디가 단테의 신곡중에서 인용하고 재해석해서 했었다는 그말을 유시민씨가 <br />
<br />
다시 해서 유명해졌던,,,, <br />
지옥의 가장 뜨거운 자리는 도덕적 위기의 시대에 중립을 지키는 자들을 위해 예약되어있다 <br />
<br />
그리고 이시대 최고의 명문이라 불리우는 항소이유서의 마지막 구절 네크라소프의 말 <br />
-

이기철 2013-03-16 02:25:48
답글

유시민 장관의 언변은 정말 당대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지만,,,,<br />
<br />
그의 언변은 그의 필력에 비하면 정말 한참 모자랍니다.

이홍엽 2013-03-16 02:29:06
답글

정치인으로서 유시민은 독불장군이기는 하지만 인간적으로는 참 멋진 사람이라는 생각이드네요.<br />
한때 권력 가까이 있었지만 당시 유력한 친노인물들중에 돈으로 인한 잡음이 없었던 사람이죠.<br />
<br />

이기철 2013-03-16 02:41:07
답글

홍엽님께 여쭙니다 친노 인물중에 돈으로 인한 잡음이 있던 사람은 누군가요<br />
<br />
제가 잘 몰라서요....<br />
<br />
하긴 친노가 누군지도 잘 모르겠네요 전 노빠인데도,,,

전병열 2013-03-16 02:53:57
답글

유시민형은 민주주의를 분노와 연민으로 보는 사상가이죠.... 많이 가슴 아픔니다. 황지우 시 뼈아픈 후회가 떠오름니다

goyeob@yahoo.co.kr 2013-03-16 05:20:21
답글

우리나라에서 많은 유권자들이 유시민씨 같은 정치인이 나오기를 학수고대하지만 막상 그런 인물이 정치계에 등장하면 처음에는 환호하다가 결국 그에게 등을 돌려버립니다. 그것참 아이러니하죠. <br />
노무현 대통령이 그처럼 많은 욕을 먹고 또한 유시민 전 장관이 결국 정치계를 떠나게 한 그것은 무엇일까요?<br />
대한민국의 정치가 변하기를 많은 사람들이 바라지만 그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정치관을 고수할만한 의지도 배짱도 지적인 기본도 없

이상훈 2013-03-16 07:06:55
답글

지금의 정치권에는 안맞는 사람<br />
후일 좀더 깨끗해 졌을때 반드시 호출해야 할 사람<br />
<br />
지금은 술도좀 적당히 마시고 마음에 없는 말도 적당히 할줄 알고<br />
하지만 흔들리지 않는 초심을 비수처럼 유지할 사람이 필요한것 아닐까

임대혁 2013-03-16 07:21:40
답글

참 많이 피곤했을텐데 이만큼 봉사했으니 나머지 생은 평화롭게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노회찬의 고발이 헛짓되는걸 보고 사실 한국사회는 접었습니다

이지강 2013-03-16 07:31:35
답글

안타까워요,

신민교 2013-03-16 07:49:58
답글

슬픕니다ㅜㅡ

sdl3579@naver.com 2013-03-16 07:51:41
답글

유시민 언젠가 다시 정개복귀 할것입니다.<br />
깨끗한 정치, 대한민국의 발전을위해.......

김정호 2013-03-16 08:21:24
답글

그의 서재 한켠에 있는 노대통령 사진을 보면서 먹먹한 가슴을 어찌할 수 없더군요. <br />
시들해진 정치에대한 관심 탓인지, 바꿀수 없다는 한계를 맛본 탓인지 매주 날아오는 시사인이 비닐포장도 뜯지않은 채 쌓여만 갑니다.

김창훈 2013-03-16 08:54:05
답글

전병열님이 황지우 시 '뼈아픈 후회'를 상기하셨네요...ㅜㅜ <br />
저도 유시민의 은퇴... 안타깝고 그에게 위로해 주고 싶습니다. <br />
황지우 시인의 동생이 황광우 작가입니다. <br />
황광우 작가의 절친이 노회찬 의원이고요. <br />
유시민 의원은 민주주의를 위해서, <br />
황광우 작가, 노회찬 의원은 노동자의 삶을 위해 평생을 노력한 분들이죠. <br />
황광우 작가는 몇 해 전 풍 때문에 몸이 불편합

이종민 2013-03-16 09:04:13
답글

국민의 수준에 진거겠죠...<br />
물론 국민의 수준이 개떡이라 말하기는 어려울테고<br />
희망이라는게 보인다면 아무리 아파도 일어날테지만<br />
희망이 없어보이니 그만두고 싶은거겠죠<br />
저랑 비슷한 마음이네요..<br />
<br />
너무 안타깝습니다....

신광성 2013-03-16 09:22:43
답글

이해는 되지만 너무 허탈하네요...

박헌규 2013-03-16 10:09:54
답글

그 스스로 고백 했듯이 초식성향의 사람입니다. <br />
그리고 정치판이란게 육식동물들의 싸움터 입니다. <br />
<br />
유권자들의 정치적 결정을 하는 행위도가 육식동물로서의 결정인 경우가 대부분 일 겁니다. <br />
이상과 공공의 정의 실현이 아니라 자신과 집단의 이기적 이익에 따른 결정을 하게 되죠. <br />
정치판에서 성공하려면 자신이 성향상 육식동물이 되진 못하더라도 적어도 육식동물들의 <br />
행위를 존

이기철 2013-03-16 10:16:58
답글

ㅎㅎ 미리 대신 욕을 해주신거라구요?<br />
누구 대신 욕을 해주신거에요? <br />
때려치고 나와서 뒤돌아서서 남은 사람들을 시궁창에 있는 사람들이라 욕하고 있습니다.<br />
이게 님의 한계에요.... 이글이 정치인들에 대한 욕으로 보이십니까?<br />
<br />
아는 만큼만 보인다는 말이 있지요......

조영재 2013-03-16 10:30:58
답글

댓글중 하나가 넘사벽 "싸가지없음" 이네요......

이상규 2013-03-16 10:32:06
답글

말을 어떻게 해야 된다는 건지 ㅠㅠㅋㅋ

박헌규 2013-03-16 10:42:10
답글

<br />
<br />
게시판에 글을 올리는게 부질 없는 일이다 싶으면서도 <br />
하나의 사건으로 일희일비하며 비난과 찬사를 번복해가는 <br />
가벼움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엇습니다. <br />
<br />
사실을 이야기 했든 비난이든 시궁창에 남아 있는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br />
욕으로 들릴 겁니다. <br />
<br />
기철님에 대한 답변입니다. <br />
그리고 질문이 너무 단편적이시군요, <b

이기철 2013-03-16 11:00:11
답글

남아있는 사람에게 욕을 한거라고 생각하시는게 참으로 묘합니다.<br />
<br />
그곳에서 더이상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해도 바꿀수 있는 희망이 안보여서 자의반 타의반 밀려나온사람이<br />
<br />
왜 그곳에서 자신이 나와야만 했는가에 대해 설명하는것을 욕을 한다고 판단하시는게 묘합니다.<br />
<br />
그의 입장에 안타까움이나 그의 실패에 아픔을 느끼는 사람들은 그의 실패를 가져오게한 정치권과<br />
<br

김창훈 2013-03-16 11:12:28
답글

저는 박헌규님 말씀도 이해합니다.<br />
분명 그런 면이 있지요.<br />
정치인 유시민이 비판 받을 것도 있지만<br />
지금은 그가 지쳐 떠납니다.<br />
노무현 서거이후 이 시대 영웅이 너무 많이 떠났습니다.<br />
그런데 살아있는 사람도 은퇴한다고 하니<br />
아쉬운 거지요.<br />
그들에게 더 싸워달라고 부탁하기도 미안한 처지입니다.<br />
홍세화, 심상정, 노회찬 등에게 계속 싸워달라고 강요할

김지태 2013-03-16 11:13:04
답글

그냥 옆에서 보고있는 것만으로도 힘들고 지치는데 그 안에 있던 사람은 오죽 했겠습니까.<br />
<br />
저는 유시민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습니다.<br />
<br />
저는 그의 직설적이고 논리정연한 화법이 좋았는데 쩝...

이기철 2013-03-16 11:19:21
답글

그런 응원은.... 같이 응원하는 사람 조차 짜증나게 만드는 그런 응원은 맘속으로 혼자 하시길,,,,<br />
<br />
그게 응원인가요?

김병현 2013-03-16 11:31:54
답글

지난 대선을 보면서 허탈하다 못해 이나라 참 웃낀다하고 생각했는데, 이탈리아를 보니 우리만 그런게 아니구나.. 그렇게 문제가 많은 베를루스코니가 꾸역꾸역 정치권에서 실력을 행사하는 것도 그렇고, 코메디언 출신 정치인에 열렬히 지지하는 국민도 그렇고... <br />
전세계적으로 무능하다고 비판 받던 부시도 재선하지 않았습니까?<br />
<br />
울지 말고 그냥 웃어 재끼자. 시궁창에서 허적이다가, 아 여기가 수영장인가보다 합니다. L

박훈재 2013-03-16 12:36:31
답글

이상주의자의 실패인가요..<br />
역사엔 그런 실패가 부지기수였습니다..<br />
너무 이상적으로 접근한 거 아닌가..

이기철 2013-03-16 12:44:19
답글

이상주의자라는 평가는. 좀. 이상하네요..<br />
그가추구한건 이상이 아니라지극히 당연해야할. 일들을. 현실적으로 접근하려고 했던. 사람립니다. 그래서. 진보진영으로부터. 수정주의자란. 욕도 많이 먹었는데...<br />
그가 원했던것. 조차. 이상주의라 폄하되면<br />
우리 현실이 지독히 비참하네요...

motors70@yahoo.co.kr 2013-03-16 12:59:35
답글

유시민이 정치판가 영원히 작별한다면 별문제가 없지만 돌아갈여지를 생각했다면 이런식으로 이야기하면 손해 겠지요.아마 헌규님은 이것까지 생각해서 말하신거 같습니다.다시돌아올때는 육식동물을 인정하는 척 해주고 그룹으로 돌아 왔으면 좋겠습니다.

박훈재 2013-03-16 13:16:00
답글

저가 노무현의 실패? 중 가장 꼽는 부분이..<br />
대통령의 권한을 내려놓은 겁니다..<br />
권한을 행사하라고 합법적으로 권위를 부여하였는데..<br />
스스로 내려놓는다는 거지요.. 일개 검사들과 대화해서 무슨 효과가 있는지..<br />
그런 것들이 아쉬운 부분입니다..상대방이 어떤 자들인지 너무 쉽게 생각했다는 겁니다

정현철 2013-03-16 15:25:17
답글

가장 좋아하는 정치인인 유시민이였습니다. 잘 되길 바랬는데., 결국,.,,,,, <br />
<br />
뭐, 이해합니다. 제가 봐도 한국에서 올바른 정신으로 국민을 위해 정치한다는 건 미친 짓에 가깝단 생각이 드니까........... <br />
진짜 개혁 대상은 새누리당,민주당이 아니라 덜 떨어진 국민들이더만요... 대체 어떻게 싸워야 하나.. 답이 안 나오는 겨.

이태봉 2013-03-16 16:26:30
답글

MB나 새누리당이 아니라 궁민에게 졌다는 거죠...<br />
말 그대로 '착한 놈'이 환영받기는 불가능한 나라, 이제 그냥 한 몸 편안히 즐기기를...<br />

안유림 2013-03-17 23:13:50
답글

대한민국의 패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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