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일에 한 번 쯤 야근을 하는데, 이 야근 들어가는 날만 빼고는 거의 술을 마셨으니,
한 달이면 23 일을 마신셈이다.
내자신은 남에게 피해를 안주고 생활에 지장을 주지 않았으니,
애주가라고 말을 해보지만,
객관적인 시각으로 봤을때,
나는 알콜중독이 맞다.
주간근무도 4 일에 한 번 쯤 일하는데,
저녁시간 일이 끝날때쯤 되면, 퇴근길에 무슨 안주를 사가나?
머릿속에서 이런 궁리를 하곤 했었다.
즐겨먹는 메뉴는,
퇴근길 시장에 들러, 산낙지를 사다가 데쳐서 초장을 찍어먹거나,
삭힌홍어를 사다 삼겹살을 구워 상추쌈을 싸먹거나,
머릿고기와 순대를 사먹거나,
이도 저도 마땅찮으면, 그냥 집으로 달려가 매운양념치킨을 배달시켜서 먹곤 했다.
한 번 마시면 3~4 일은 쉬어줘야, 몸속에 축적된 알콜이 분해가 될텐데,
3~4 일을 마시고 하루만 안마시니, 내 몸은 한 달 내내 알콜로 쩔어있는 셈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내몸은 예전같지않게 쉬 피로해졌고, 잇몸까지 아프기 시작했다.
사정이 이쯤되니, 내가 금주를 하겠다고 결심한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다만 그 좋아하던 술의 유혹을 뿌리치고, 어떻게 금주에 성공하느냐가 관건이다.
조금 무식한 방법을 쓰기로 했다.
지난번 금연을 시도한 방법대로 무조건 안핀다!
따라서 무조건 안마신다!
밀어부치기로 했다.
술을 안마신지, 오늘로서 28 일 이 됐다.
아직도 진행중이라 끊었다고 말을 할 순 없지만,
잘 참아내고 있는 중이다.
술을 안마시니, 내 생활에서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일단 가장 큰 변화는,
주간근무를 마치고 퇴근길에 시장으로 향했던 행로가,
집으로 바로 가게 되었고,
술마실때 먹었던 그 맛있던 안주들은,
먹고싶은 욕구가 싸그리 사라졌다.
밥이 제일 맛있어졌다.
원래부터 밥을 잘먹는 사람이긴하지만,
밥맛이 더 좋아지니, 먹는 양이 더 늘어났다.
배가 나오기 시작한다.
그전에는 하지 않았던 윗몸 일으키기를 시작했다.
처음엔 10 개도 힘들더니, 꾸준히 하다보니 요즘은 매일 수시로 15 개 씩을 한다.
술을 마실때는 내가 사다날랐던 안주값 및,
이런저런 모임을 통해 쓰게 되는 술값을 합해보면,
대략 한 달에 20 여 만 원 중반쯤 쓴 것 같은데,
흡연까지 했었으니, 담배값까지 더하면 대략 30 여 만 원 으로 합산된다.
물론 술이라는게 사회생활을 함에 있어서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대체적으로 어쩌다 마시는 경우일테고,
나처럼 시도때도 없이 주구장창 마시는 사람은, 역시 끊어야 하는게 맞다.
내 생활에 큰 도움이 되지도 않으면서,
인생이 너무 사는 낙이 없어서 라는 핑계를 대며, 매달 거금 30 여 만 원을 낭비했다.
이 돈이 낭비였다는 것은,
흡연과 음주를 하고 있는 동안엔 한번도 생각을 해본적이 없었다.
최근 아내가 다니던 회사가 문을 닫았다.
그바람에 집에서 쉬게 된 아내가, 실업급여를 받겠다고 고용보험회사를 다녀왔다.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겠다고 하는데,
내마음같아서는 고생을 많이한 사람이니, 푹 쉬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만,
원체 부지런한 사람이라 오래 쉴것 같지도 않다.
아내가 쉬게되니 좋은 점도 있다.
그전에는 아내가 출근을 하고 나면, 서로 시간이 맞지 않아,
나혼자 점심밥을 챙겨 먹곤 했는데,
요즘은 아내와 같이 마주 앉아 밥을 먹을 수 있으니, 쓸쓸하지 않아 좋다.
얼마전엔 지인집에 갔더니, 황궁짜장이란 것을 배달시켜 주었다.
버섯과 고기 및 각종 해물이 들어갔는데,
매콤한 향이 식감을 돋우는 것이 제법 맛이 좋았다.
아내와 같이 먹으러 가야겠다싶어, 식당이름을 알아두었다.
며칠전 아내와 함께, 시내 외곽에 있는 그 식당을 찾아갔다.
아내는 매운게 싫다고 하며, 황궁삼선짬뽕을 주문한다.
음식이 나오자, 나에게 맛을 보라며 그릇을 밀어 주길래,
젓가락으로 면을 집어 맛을 봤다.
뜨헉!
왜 이렇게 맛이 좋은겨...
짜장을 먹을지 짬뽕을 먹을지, 예전부터 수도 없는 고민을 했었지만,
정말 두가지를 다 포기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맛이 좋았다.
황궁짜장이 6,000 원, 황궁삼선짬뽕이 7,000 원
일반짜장과 짬뽕보다 조금 값이 비싼건 맞지만,
기름값을 들여 차를 타고 외식을 한다해도, 그 값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맛이 좋았다.
아내가 식사도중, 맛있다고 두 번 씩이나 말을 하는걸 보면,
내 말이 전혀 거짓말은 아닐 것이다.
그전에는 아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도, 시간이 맞지 않아 할 수 없었던 많은 것들이,
아내가 쉬게 되니,
같이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져서 참 좋다.
엊그제는 안동잔치국수집에 가서 잔치국수를 사먹었다.
쫄깃거리는 면발과, 깊게 우려낸 멸치육수맛이 가히 환상적이다.
아내나 나나 면음식을 좋아하니, 기호가 같아 의견일치가 잘되는 점 또한 좋다.
이제 술담배를 안하니, 앞으로는 아내가 먹고싶어하는 음식이 있다면, 자주 사줄 생각이다.
아무 생각없이 한 달에 30 여 만 원 이나 낭비하기도 했는데,
그 반만 써도 아내가 이리 좋아 하니...
왜 진작에 잘해주지 못했는지...
미안한 마음이 들며 후회감이 밀물처럼 몰려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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