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간 살면서 한번도 손을 대지 못한 아파트를 지난 가을에 리모델링했습니다.
작년 초에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나니, 내부가 낡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곳곳에 아버님 흔적이 있어 어머니가 많이 힘들어 하시더군요.
이를테면, 화장실에서 담배 태우시다가 화장지 걸이에 걸쳐놓는 바람에 노랗게 태워먹은 소소한 흔적 같은 거 말이죠.
그냥 어머니 뜻대로 가까운 곳에 있는 업체로 했습니다.
때마침 서울에 출장 갈 일이 좀 있었는데, 업자는 오고가는 말을 듣고 제가 쭉 서울에 사는 걸로 알았나 봅니다. (집이 부산)
여자 혼자 있는 집은 곤란한 점이 많죠.
이사할 때나 집수리를 할 때면 돈을 주고 사람을 고용해서 가만 세워놓기도 한다고 하네요.
여자 혼자 있으면 만만하게 본다는 것이죠.
그런 것 같습니다.
일 맡기기 전에, 저하고 어머니하고 가서 이렇게 저렇게 해달라는 요구가 있었죠. 공사 시작할 때 어머니가 처음 하루 정도 현장에 붙어서 이런저런 지적과 재요구를 하셨는데 몹시도 단호하게 이런 건 못해준다, 시간 걸린다, 돈든다 하면서 계속 툴툴거렸다는 겁니다.
저와 어머니는 2주 정도 집을 비워주면서 거의 가보지 못하고 전화로만 공정에 대한 보고만 받았습니다.
들어가서 집정리를 하면서 꼼꼼히 들여다보니 잘된 건 잘 됐는데 자기 입장에서는 조금만 신경쓰거나 돈 안아끼면 될 걸 가지고 저를 열받게 하더군요.
도배부터 하고 마루와 붙박이장 공사를 하다보니 벽지가 찢어진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거 다시 발라달라고 하니 너무 까다롭다고, 살다가도 생길 수 있는 건데 살짝 그 부분 붙여주면 되지 뭘 다 발라달라는 거냐면서 툴툴거리네요.
또, 실크벽지로 했는데 표면이 울퉁불퉁한 부분이 많은 겁니다. 그거 지적하니까 이 아파트가 원래 벽이 그렇다고, 아무리 잘해도 이렇게 나온다고 하네요?
(이 일하는 다른 지인에게 물어보니 그게 말이 되냐고 하구요.)
그리고, 샤시 실리콘 작업은 그냥 기술자 시키면 잘 할 걸 (잘 된 부분은 잘 되었습니다) 인건비 아낄 생각으로 자기가 손댔다가 아주 꾸불꾸불, 굵었다 얇았다 하게 만들어놨더군요.
가장 저를 열 오르게 한 건 이겁니다.
도배하고 마루를 까는데 안방의 장농 건드리면 귀찮으니까 그냥 보이는 부분만 하겠다고 (처음에는 장농 들어내고 하기로 했다가 중간에 말바꿈) 일 다 끝날 때즘 저한테 전화했다가 몹시 까였고, 결국 마루는 다 깔았는데 나중에 보니 장농 뒷부분은 도배가 안되었더군요. 도배가 공정이 먼저였고 마루는 나중이었으니까 업자는 애당초 안할 생각이었던 거죠.
살살 말을 바꿉니다.
어느 날 집에 불러들여서 하나하나 지적하면서 깼습니다.
원래 잔금 1300 남은 상태에서 문제점을 지적하고 재공사를 요구하니까 월말이라 돈 필요하다고 애원하길래 1000을 입금해줬습니다.
처음에는 조지긴 조지되 돈 다 주고 공사도 제대로 마무리 짓게 하자는 신사적인 태도였지요.
300 남았습니다.
하나하나 지적하면서 이건 뭐냐 어떻게 재작업해줄거냐 깼습니다.
주로, 아파트가 원래 벽이 잘못되어 있다, 당신이 너무 까다롭다, 저가 공사라 그렇다. (총액 2,800)
무엇보다 압권은 '당신 어머니가 머리가 맑지 못해서 이랬다저랬다 한다'는 겁니다.
아버지 가신지 반년 정도 되는 시점이니, 어머니가 겁을 많이 내셨습니다. 자신감이 없죠.
그래서 그 사람이 현장에서 뭐라고 하면 난 모른다, 무조건 아들하고 통화해라, 그렇게 말씀하시라고 했습니다.
업자는 어머니 쪽이 편하죠. 나중에 분쟁 생기면 어머니한테 떠밀면 되니까요.
저는 그걸 애초에 차단을 한겁니다.
저하고 어머니하고 같이 가서 요구한 부분에 대해서도 자기가 분명히 이렇게 들었다, 어머니가 머리가 맑지 못하다, 그렇게 우기는군요.
고객이 뭘로 보이는지.
일단 서로 고함도 지르고 말싸움을 하다가 업자가 "잔액 300이면 다른 업체 시켜서 해도 충분할 거다", 그렇게 말하더군요.
사실 그런 가능성에 대해서는 생각을 안해봐서, 어 그럼 되겠다 싶었습니다.
자기가 말실수했다 싶은지 또 바로 자기가 자존심도 있고 하니 잘 마무리하겠다 어쩐다 말을 돌리더군요.
좀 고민을 해볼테니 일단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일단 감정싸움을 접고 냉정하게 판단해야죠.
같은 돈을 줘야한다면 이미 민망한 솜씨와 마인드를 보여준 업체와, 해놓은 꼴을 보면서 어떻게 이렇게 할 수도 있냐며 탄식하며 잘할 수 있다고 하는 업체, 누굴 고르겠습니까.
몇 개월 지난 오늘, 전화가 와서 어떻게 할거냐고, 한다 만다 말이 없냐고 무례하게 말하더군요.
그래서 당신이 말한대로 다른 업체에다 맡기겠다고 했더니 참 별의별 소리를 다 하네요.
그래서 살짝 녹음을 해뒀습니다.
"당신이 다른 업체에다 하라고 하지 않았냐, 그래서 하는 건데 왠 말이냐?"
"그래도 젊은 사람이 왜 그리 경우가 없냐, 난 그런 말 한적 없다고 하면 어쩔거냐?" 그러더군요.
그래서, 지금 녹음하고 있어요, 했더니 잠시 놀라는 것 같더군요.
그따위 성격이라 결혼도 못한다, 평생 못할거다, 어머니 머리가 정상 아니지 않냐, 뭐 그런 폭언들이 고스란히 녹음되어 있습니다.
찔러 죽이겠다, 그런 말까지 해줬으면 금상첨화였을 건데 아깝군요.
제가 쉽게 흥분하는 성격이 아닌데, 지금은 어떻게 조질까 머리가 매우 빨리 회전하고 있습니다.
흥분이 지나치니 머리가 아주 차가와지네요.
아파트 카페에 이 음성파일을 올려버릴까, 이 업체 공사실력을 보고 싶으면 우리집으로 오세요, 하고 "셀프 보여주는 집"으로 할까 많은 아이디어들이 떠오르는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