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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은 이제 언제 비데로 바꾸나...
( 좌변기의 꿈 )
저 멀리 아프리카엔 가상의 나라 ‘누리공화국’이 있다.
인구 450만명의 조그만 나라인데,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과 달리 누리공화국은 돈을 많이 버는 몇몇 기업 덕분에 비교적 높은 1인당 국민소득을 자랑한다. 안타까운 점은 국민소득의 절대다수를 몇몇 기업주와 부자들이 가져가며 대부분의 국민들은 극빈층이라는 것. 부자들은 비데가 설치된 좌변기에서 안락하게 일을 보는 반면, 98%는 푸세식 화장실에서 일을 본다. 하체가 튼튼해진다는 장점도 있지만 푸세식 변소의 결정적 단점은 기생충을 확산시키는 거였다. 열대국가답게 누리공화국은 강우량이 많은 편인데, 비가 오는 날이면 푸세식 변소에 쌓인 변이 밖으로 나와 거리에 뿌려진다. 그 변 안에는 온갖 종류의 기생충알이 들어 있어, 위생이 안 좋은 그 나라 사람들은 쉽게 기생충에 감염된다. 누리공화국에서 37년째 국밥집을 운영하는 한 할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국밥을 아무리 맛있게 만들면 뭐하겠노? 기생충들이 다 먹어치우는데.”
누리공화국 사람들이 가장 바라는 일은 당연히 푸세식 변소를 좌변기로 바꾸는 것이다. 신기한 건 공화국 추장 선거 때마다 ‘전 가구 좌변기 교체’라는 공약을 내건 후보가 나서지만, 사람들이 그 후보를 뽑지 않는다는 거다. 오히려 그들은 ‘부자가 더 잘사는 나라’를 외치는 후보에게 투표한다. 누리공화국에서 37년째 국밥집을 운영하는 아까 그 할머니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이렇게 말씀하신다. “선거 때만 되면 이상하게 변기 생각을 못하게 되더라고. 그것보단 이웃나라가 우리를 쳐들어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만 들어.” 몇몇 과학자들은 누리공화국에서 벌어지는 이 기현상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그중 눈이 작은 과학자 한 명이 이유를 알아냈다. 자기 정체성과 반대로 투표하는 유권자들이 유시노이데스라는 기생충에 감염되어 있었던 것.
유시노이데스는 보통의 기생충과 다른, 독특한 생활사를 영위한다. 대다수 기생충이 채소에 묻은 알을 통해 사람에게 감염되는 반면 유시노이데스는 각 가정에 배달되는 신문을 통해 사람에게 감염된다. 유충 상태로 신문지에 묻어 있다가 신문을 보는 사람의 손가락 피부를 뚫고 들어간다는 게 학자들의 말. 사람 몸에 들어간 유시노이데스는 혈액을 타고 뇌로 가는데, 거기서 숙주가 죽을 때까지 평생을 잠복한다. 별다른 증상을 나타내지 않아 당사자는 기생충에 걸린 줄조차 모르지만, 최근 연구결과 이 기생충이 사람의 판단력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드러났다. 즉 유시노이데스에 걸리면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며, 이웃 나라에 대한 적개심이 증폭되는 묘한 현상이 발견됐다. 일상생활에는 별로 지장이 없지만, 추장을 뽑는 선거 때마다 증상이 심해져 좌변기의 꿈을 번번이 좌절시켜온 것. 지난 선거 때도 누리공화국 국민들은 ‘강바닥을 깊게 파놓을 테니 강물에다 용변을 보세요’라고 주장한 후보에게 아낌없이 표를 던졌고, 그 후보는 추장에 당선된 뒤 전 가구에 좌변기를 설치할 수 있는 돈으로 강바닥을 원없이 파댔다. 제 정신으로 돌아온 누리공화국 국민들은 “아이고, 저 돈이면 좌변기에 비데까지 달 수 있겠네”라고 안타까워했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다.
시간이 흘러 또다시 선거철이 다가왔다. 유시노이데스가 어김없이 활동을 개시한 덕분인지 이번에도 좌변기로 바꿔주겠다는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밀리고, 좌변기 타령은 그만하고 이제부턴 푸세식 화장실을 즐기라는, 소위 ‘즐푸세’를 공약으로 내건 후보의 당선이 유력하다. 비데까지 달아 주겠다며 표심을 사로잡았던 후보가 사퇴해 양자대결이 되었건만, 민심은 돌아설 줄 모른다. 37년째 국밥집을 운영하는 아까 그 할머니에게 왜 그 후보를 지지하냐고 물었다. “변이야 어디서 본들 뭔 상관이겠소? 이웃나라로부터 우리를 지켜줄 그런 추장을 뽑는 게 중요하지.” 그 나라 국민들이 좌변기에서 일을 보려면 유시노이데스라는 기생충을 치료해야 하건만, 아쉽게도 뇌 속에 있는 기생충을 없애는 약은 아직 개발되지 않았고, 더러운 신문을 끊고 깨끗한 신문을 보는 게 추가적인 감염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란다. 그 국밥집 할머니는 살아생전 좌변기에서 일을 볼 수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출처: 단국의대교수 서민(경향신문)
또 5년간 다시 푸세식을...
어여 똥 좀 편하게 싸는 세상이 빨리 왔으면... ㅡ,.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