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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많은 20~30대 유권자들은 선거 결과에 분노하고 한탄하며 허탈해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새 정부에 대해서는 기대보다 양극화와 노동자 탄압, 역사왜곡, 언론장악 가속화 등의 걱정을 더 많이 한다.
2030세대는 대선 결과에 크게 낙담했다. 출판사에서 일하는 김모씨(28·여)는 "대선 이후 벌써 3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버렸다"며 "대통령 당선만으로도 이런 절망과 좌절을 안겨준 사람이 지금까지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의 많은 실정으로 세대를 막론한 변화의 공감대가 형성됐을 것이라 생각했다"며 "이번 선거는 '진보 대 보수'가 아닌 '상식 대 비상식'의 대결이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그러나 대선 결과는 5년짜리 마라톤을 어렵게 달렸는데, 결승선 앞에서 '한 번 더 뛰어'라는 비보를 들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지난 3일 열린 '코스닥 상장기업 취업박람회'에 온 한 청년 취업준비생이 참가 업체들의 명단을 꼼꼼히 살펴보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임신 중이라는 직장인 이모씨(30)는 "단순히 한 후보에 대한 지지나 어떤 후보에 대한 미움이라기보다는 그동안 갖고 있던 가치관이나 신념이 흔들릴 정도로 참담하다"며 "곧 태어날 아이에게 과연 뭘 가르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이씨는 "외신에서 '독재자의 딸이 인권변호사를 이겼다'는 등의 보도를 보고 한국 국민이라는 것이 수치스러웠다"고 말했다.
서울 응봉동에 사는 한모씨(36·회사원)는 "이번 선거는 지난 5년간의 실정에 대한 심판이었는데, 5060세대들이 이미 심판을 받은 전(노무현) 정권을 다시 심판하자는 논리를 선택했다는 것이 이해가 안 간다"고 말했다.
젊은 세대들은 박 당선인의 새 정부 아래서 한국 사회가 그동안 어렵게 쌓아온 자유와 민주주의의 원칙이 깨지지 않을까 우려했다.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을 다니는 문모씨(24·여)는 "한국의 경제발전은 국민 모두가 피땀 흘려서 얻어낸 성과인데, 새누리당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구국적 군사혁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식으로 왜곡할까 벌써부터 두렵다"고 말했다. 경기 남양주시에 사는 직장인 이모씨(31)는 "선거 이후 박정희 시대의 구호인 '잘살아보세'가 나오는 것을 보고 소름이 끼쳤다"면서 "민주주의와 현대사에 대한 인식 자체가 완전히 뒤바뀔까봐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회사원 정모씨(30)는 "박 당선인이 쌍용자동차 해고,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등 노동 관련 이슈에서 얼마나 노동자의 입장에 설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고 말했다.
직장인 이모씨(30·여)는 "박근혜 후보가 당선된 후 '국민들도 피와 땀을 흘려야 한다'고 말했는데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 노동시간 1위인 한국에서 더 이상 노력하고 쥐어짜낼 힘조차 없다"고 말했다.
경기 고양시에 사는 위모씨(32)는 "이번 선거에서 새누리당이 제기한 색깔론이 또 먹혔다"며 "앞으로도 새누리당 입장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또 '종북좌파'로 몰아세우며 밀어붙일까 두렵다"고 말했다.
2030세대는 언론 상황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회사원 김모씨(25·여)는 "정권이 바뀌면 MBC, KBS 등의 방송사가 좀 바뀔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면서 "앞으로 친정부 언론이 근현대사 드라마, 다큐멘터리 등으로 과거를 미화하고, 정부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담지 않을 것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직장인 김모씨(28·여)도 "대선 이후 MBC가 민영화된다는 소문을 들었다"면서 "루머라 하더라도 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하려는 언론에 대한 불안감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2030세대는 이번 선거에서 박 당선인을 지지한 50대 이상 세대와의 갈등이 지속될 것으로도 내다봤다.
회사원 이모씨(31)는 "사회에서 자리를 잡으려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2030세대들은 이명박 정권 5년을 거치면서 고달픔을 피부로 느꼈다"며 "사회의 최전선에서 물러나기 시작한 5060세대가 박 당선인에게 몰표를 준 것이 서운하다"고 말했다. 김모씨(28·여)는 "미래세대가 누려야 할 부를 미리 당겨다 쓴 5060세대가 부족한 재원을 가지고 근근이 먹고사는 젊은 세대를 더욱 절망의 구렁텅이에 몰아넣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어 "박 당선인이 세대 간 통합을 바란다면, 갈등의 원인부터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회사원 박모씨(34)는 "50대 이상의 세대가 치열하게 살아온 것은 인정한다"면서도 "50대 이상은 자신의 아파트값 하락을 막기 위해,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가는지에 대한 고려 없이 박 당선인을 선택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취업준비생 강모씨(26·여)는 "박 당선인이 자신의 지지기반인 5060세대를 위한 정책에 몰두하면서 청년실업, 비정규직 해결 등 2030세대를 위한 정책은 상대적으로 약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울 구로구에서 자영업을 하는 윤모씨(33)도 "유신시대를 겪으며 잘못된 교육을 받은 5060세대는 반공과 경제적 기득권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듯하다"면서 "민주주의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보는 우리 세대와는 너무 다르다"고 밝혔다.
박 당선인의 대통령으로서 자질과 능력에 대한 우려도 많았다.
서울 영등포에 사는 회사원 박모씨(34)는 "아버지 박 전 대통령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것을 보며 자란 박 당선인이 아버지처럼 권력욕이 강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직장인 이모씨(30·여)는 "TV토론에서 박 당선인이 보여준 불안한 모습에 많이 실망했다"며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란 것 말고 박 당선인의 제대로 된 경력을 모르겠다"고 말했다. 다만 이씨는 "박 당선인이 아버지의 잘못을 인정하고, 과거 청산을 잘 이뤄낸다면 '독재자의 딸'이 아니라 '아버지의 잘못을 해결한 딸'로 남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대선에서 패배한 민주통합당에 대한 2030세대의 평가도 냉혹했다. 대학생 문모씨(24·여)는 "이명박 정부가 실패했음에도 민주당은 제대로 된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문재인 후보의 지지도가 48% 나온 것도 감지덕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직장인 이모씨(30·여)도 "밥상을 차려놓으면 밥상 다리 하나 접어버리는 게 민주당"이라며 "2030세대는 민주당에 희망을 걸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