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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등병의 노래...Led Zepplin 4집
음반리뷰추천 > 상세보기 | 2004-03-03 18:31:07
추천수 3
조회수   5,034

제목

일등병의 노래...Led Zepplin 4집

글쓴이

표문송 [가입일자 : 2003-03-25]
내용
노래가 사람의 목숨을 좌지우지할 수 있을까?

목숨은 아니어도 인생을? 왜 없겠는가?

노래에 인생을 건 많은 아티스트, 뮤지션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운명적인 노래, 인생을 바꾼 음악은 꼭 전문가들에 국한 된 건 아니다.

직업적인 사람이 아니어도, 나 같이 평범한 일반인에게도

그의 인생을 바꾸거나 인생을 휘청휘청이게 한 노래가

누구나 한두개씩은 있다. 있게 마련이다.



레드제플린의 노래가 일등병이던 내게 엄청난 경험, 행운을 가져다 주었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어쩌면 나는 남한산성의 호된 맛을 봤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건 너무 약하다. 영창이 아닌 감옥…어쩌면 그 대가를 지불하느라

지금쯤 하사관으로 붙박이 군생활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방화범 표일병과 레드 제플린이 마련해 준 천국의 계단…



***

누구나 그랬듯이, 내 군생활은 고됐다.

아니다. 누구도 그럴 수 없을 만큼 혹독했다.

(대한민국 남자 누구나 그렇게 주장할 것이다.

그럼 그럼…귀신도 잡고 월남 가서 스키도 타고 왔는데…)



군대라는 사막을 건너는데 유일한 오아시스는 동기가 아닐까?

내 동기 인석이도 오아시스였다.

까무잡잡 부산촌놈 김인석…나 보다 나이도 적은 놈이 동기라고 게기던 녀석.

386 누구나 그랬듯이 그 역시 락 음악을 좋아했는데,

녀석과 얘기하던 중 레드 제플린 얘기가 나왔다.

4집이 어쩌구 저쩌구…오라~ 네가 음악을 좀 듣느냐?

(상상해 보라, 이등병 둘이 어느 구석탱이에서

락음악 얘기를 한다. 손에는 걸레 아님 싸리비가 들렸을테다)



인석아, 야! 그거 4집 아냐! 어디에 4집이라고 써있더냐?

걔네들 1집은 Led Zepplin, 2집은 Led Zepplin II,

3집은 Led Zepplin III, 이러다가 갑자기 넘버링 빼고 이상한 기호로 건너 뛰잖아!

순서상으로야 4번째지만 어디에서도 4집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힌 적 없어~

Led Zepplin IV라고 어디에도 명기되어 있지 않거든.

4집이라는 확정적인 표현을 쓰면 그게 앨범 타이틀이 되잖냐,

허니 그냥 순서로 4번째 나온 앨범~이렇게 풀어서 말하렴

4집이란 표기 대신 이런게 앨범에 표기 되어 있지(아래 그림을 그려 보이며)…

이게 어디 4집이라고 씌어져 있는 거냐?

그들의 고매한 뜻을 우리가 왈가왈부 하면 안되지~

왜 번호를 안 붙였겠냐? 깜빡해서? 순서를 잊었나?

인쇄공 실순가? 봐봐, 아니잖냐!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런거야!

무슨 이유? 내가 감히 그분들을 넘겨 짚을 순 없다만, 그게 그니까

으례 그렇게 번호 붙이듯 순서 대로 나온 음악이 아니라는 것이지.

락 역사상 불멸의 음반이니, 걔네들도 이미 판 만들 때 부터 알아차린거야

번호, 일부러 안 붙인거지. 대신 이상한 암호만 적어 놓은 거야

그게 바로 불멸의 기호인 셈이지. 그러니 함부로 4집이라 하지마,

그냥 4번째 앨범이라고 불러라, 알았냐 문디 자슥아!



비슷한 예가 있단다, 아그야. 말러라는 작곡가 있잖냐?

음~ 참, 넌 모르지. 그냥 있어. 그런 줄 알아.

이 사람도 앞전 선배들이 전부 교향곡 9개 쓰고 전부 죽으니까

교항곡 8개 쓰고 겁이 덜컥 난거야 그래서 넘버링 안붙이고

"대지의 노래”이런 교향곡을 쓰고는 슬쩍 9번을 넘어간거야.

물론, 그 다음에 또 교향곡 쓰고는 9번이라고 제목을 붙이지.

하지만, 번호만 그렇다 뿐이지 실질적으로 교향곡 숫자는 10개가 되는 거지.

그니까 말러가 꼼수를 부린거야. 9번이라는 숫자를 피해가면서

9번째 교향곡을 쓴거지. 아~ 물론, 이 꼼수도 그렇게 효과적이진 않았어.

그 사람 10번 교향곡 쓰다가 선배들 따라 하늘나라로 갔거든.

실질적으로는 11번째지만 숫자상으로는 No. 10이지.

결국 10번 교향곡은 미완성으로 남고 그도 9번으로 인생을 마감하게 되는 거지.

암튼, 중요한 건 9번째로 쓰여진 교향곡이지만 아무도

“대지의 노래”를 9번 교향곡이라고 부르지 않아.

그건 그냥 대지의 노래거든. 그니까 중요한 건

원작자의 의도를 존중해 줘야 한다, 이 말씀!

하여 레드 제플린도 4집이라고 함부로 부르지 말란 말씀!

알간? 저 기호를 따로 부를 방법이 난감하다만 그냥 4번째 앨범이라고 해.

뭐 그게 그거 아니냐고? 엄연히 틀리지. 4집 앨범은 아냐,

그냥 4번째로 나온 앨범일 뿐이야! 뭐 저 기호를 부를 방법이 없다면

레드 제플린 거시기라고 허든가, 아님 레드 제플린 불멸의 음반이라 하든가...








녀석을 골탕 먹이려고 우정 어깃장을 놓았다. 뭔가 결정적인 반박의 단서를

마련하지 못한 녀석은 두눈만 깜빡 깜빡- 모르는 클래식 얘기도 나오니 꿈뻑꿈뻑-



요즘도 매일반이지만 당시만 해도 외국 오리지널 원판 LP 구경은 하늘의 별따기이다.

(외려 요즘은 관심만 있으면 생각 보다 쉽게 원판LP를 구할 수 있지만)

그런 녀석에게 대화의 주도권을 완전히 쥐어 잡을 한마디를, 비수처럼 던졌다.



"그 4번째 앨범 말야~ 거시기! 내가 그게 오리지널! 원판으로 있거든, 집에!!"



당시야 모두 LP 시절이었고, 오리지널 원판에 대한 환상은

요즘의 라이센스 CD 대비 오리지널 수입 CD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음질이며, 만듬새며, 특히나 LP 자켓은 도저히 라이센스가 따라올 수 없는 경지였다.

우리 집에는 금송아지 있다! 고 군대에서야 워낙 뻥들이 세니

그 말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는 녀석에게 상세하게 설명을 해줬다.

그런데 설명이라기 보다는 약올림에 가깝다.



야, 너 그거 라이센스로 갖고 있냐? 내가 그거 4번째 말야,

오리지널 원판으로만 갖고 있어서 라이센스는 어떨지 모르겠다만,

뭐 라이센스가 뻔하지 뭐….

일단 음질이 이게 달라요. 라이센스는 그냥 라디오 방송이다~ 이렇게 생각하시고

원판은 그냥 라이브다, 코 앞에서 연주한다, 이렇게 생각해도 무방하다!

근데, 이 4번쨰 앨범이 죽여주는 게 말이야 LP 커버에 모든 메시지가 다 담겨 있어요.

라이센스 어떻게 생겼냐? 안봐서 모르겠다만, 안봐도 뻔하다.

일단 이 오리지널은 말이야 더블 자켓이거든.



(우리 김인석 이등병 숨 넘어 간다. 침만 꼴딱 꼴딱- )













그래, 이게 양쪽으로 펼쳐지는 더블 쟈켓이라는 게 중요하다 이 말씀.

앞 뒤면이야 라이센스와 쎄임쎄임이겠지만…

알아? 독수리가 날개 펴듯- 양쪽으로 짝 펼치면 그 안에 천국의 계단이 있지!

이걸 양쪽으로 펼치면 쫙-










저 아래 인간들의 세상이 있지.

마을이 있는거야. 좁다란 길을 따라 어두운 밤길을 달려 오면

막다른 길에서 뾰족한 돌산이 있어요.

그 깍아지른 돌산을 올라 가면 그곳에 한 할아버지가

등불을 밝히고 있어요. 글쎄 그게 바로 천국의 계단이겠지.

상상이 가냐? 당연히 안가겠지?

그 음습하고 암울한 분위기 속에서 빛을 발하는 현자의 등불, 그리고 돌산

이 그림이 아주 압도적이거든. Stairway to Heaven을 듣기 전에

이 그림을 먼저 접해야 비로소 음악을 이해하고 제대로 맛 볼 수 있지.

그게 아니면 허당이야



(우리 김이병 눈물을 글썽인다)








봐라, 이렇게 생겼다. (아참 여긴 군대니까 보여줄 순 없지.)

아~ 그리고 여기서 끝이 아니란다.

이 쟈켓에서 디스크를 꺼내 보면 왜 속지 있잖냐?

대개 비닐 아니면 그냥 흰 종이로 된 슬리브, 속지-

라이센스는 뭐였냐? 비닐이냐? 에헤~ 이거 천국의 계단 그림에서

절반 까먹고, 속지에서 또 절반 까먹는 구나

네가 들은 천국의 계단은 절반에 절반, 그니까 25% 밖에 안되는 것이여

불쌍한 중생아,








디스크를 담고 있는 속지가 또 예사가 아니에요.

동판화로 새긴 그림이 있지. 이게 마치 고문서를 바라 보는 듯한 사람인데

그 그림을 배경으로 천국의 계단 가사가 역시 동판화로 새겨져 있어요.

너 히어링 안되잖냐? 이거 뜻이라도 알려면 노래 들으면서 가사를 봐야 하는데

이 속지 가사를 보면 그냥 연주가 비디오로 보는 거 같아. 파노라마야.

63빌딩 아이멕스처럼 보여져요. 환장하는거지



(김이병, 이쯤이면 천국의 계단에 나온 한정서처럼 울먹인다)



야, 암튼 안타깝다. 내가 뭐 외국 거 무조건적으로 좋다고,

국산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이왕이면 제대로 들어야지.

긍까, 앞으로 내 앞에서 레드 제플린 형님들 얘기 함부로 꺼내지 말고,

뭐 긍금하거나 애로사항 있으면 이 형님한테, 기탄없이, 주저 말고, 물어봐라~

알았냐? 근데 너 나보다 어리잖아, 동기라고 너무 게기지 말고

앞으로 형님으로 모셔라, 어험~





두 이등병이 고참들의 눈을 피해 깊은 밤 처부 사무실에서

이런 저런 얘기로 농담도 따먹고 고향생각도 하고,

또 레드 제플린의 노래도 환청처럼 듣곤 했다.

물론, 레드 제플린의 4번째/4집(그게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오리지널 원판 LP에 대한 얘기 이후로 녀석은 부러움과 존경의 눈길을

감추지 못했다.

어허~ 니가 음악을 좀 듣느냐? 알고 싶은 게 뭔데~

클래식에서 팝, 롹까지 물어봐~ 아그야!!



(김이병, 환청의 수준을 넘어 환시까지 경험한 듯…오리지널 원판 LP 쟈켓을 펼치면… )



***



두 이등병, 마침내 일병을 달았다.

그리고 그토록 기다리던 첫휴가다!



휴가 전날, 내겐 숙제가 하나 있었다

처부의 문서를 모두 소각할 것!

일종의 춘계 대청소 비슷한 것이다.

그걸 나보고 혼자 다하란다

내가 있던 곳이 맹호부대 사단 사령부

민심처(정훈)였으니 온갖 정신교육자료,

사단신문 등등 문서자료가 산더미다.

이걸 휴가 떠나기 전날 모두 소각하고 떠나라는 것이다.

선배들? 물론 일요일을 맞아 내무반에서 탱자 탱자~



때는 딱 지금 같은 2월말 3월초였던 것 같다.

늦겨울에서 초봄으로 넘어가는 환절기-

겨울 가뭄으로 세상은 온통 바짝 메말랐고,

코 찔찔 흘리며 힘겨워도 내일이면 간다네~

콧노래를 흥얼흥얼~

보람찬 하루 일을 끝마치~기 의해 동분서주!



우리 사무실 소각장이란게 그렇다.

산비탈을 등지고 있는 사무실 뒤편으로

비탈을 ‘ㄷ’자 모양으로 깎아 움푹하게 들어간 곳에

몸통 군데군데 구멍을 뜷은 커다란 드럼통이 놓여져 있다.

드럼통에 서류를 일일이 넣어 소각하는 아주 원시적이고 노동집약적인

소각장치였다. 물론 옆구리 구멍은 원활한 소각을 위해 공기를 주입하기 위한 것!



열심히 소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돌개바람~(아! 겨울이니까 된바람이겠구나)

바람이 불어 불어~~ 워낙 강해 옷소매로 두눈 꼭 감고 가리는데

어라 어라~~~이게 뭐야???

돌개바람인지 된바람인지가 불타는 서류를 허공으로 붕붕~

허공으로 붕붕~~ 날리는 것 아닌가!



오바로크친 일등병 마크가 운다!! 허공으로 붕붕~~

내일이면 고향 가는데!! 허공으로 붕붕~~



먼산 보듯, 불꽃놀이 구경하듯, 넋을 잃고

허공의 불타는 서류를 바라 보았다.

내가 달리 할 일이 없었다.

날 비웃듯이 허공을 비행하던 불타는 서류 쪼라리들이

찬란한 파편으로 드디어, 마침내, 기어코,

산비탈에 비상 착륙!

그 다음은, 그야말로 비상이다!!!

불이다! 훨훨 불이다!!



살아 생전 그렇게 공포를 느낀 적이 없다.

내 눈 앞에서, 내가 지른 불이(고의는 아니지만)

훨훨 불타고 있다. 불이라곤 대보름에 깡통에 넣어 돌리던 게

고작이었고, 그걸로도 밤에 오줌 싼다고 지청구를 듣곤 했는데

이건 경우가 다르다. 스케일이 다르다. 이른바, 산!불!이다!!

산불!!



몇조각의 불타는 서류가 바싹 마른 겨울산에 맹렬한 기세로 불길을 일었다.

0.000000001초 동안 짧게 든 생각, 그 영원처럼 길고도 짧은 시간 동안

내 머리를 스쳐간 단 한마디는 "휴가”였다!

내 휴가, 내일이면 집으로, 고향 앞으로 가는데

지금 내 눈 앞에 불길이 일고 있다. 산불이다!

난 망했다, 아니 죽었다!!



당신이라면 어떻겠는가? 미치지 않겠는가?

그래서 난 미쳤다. 미쳐 날뛰었다.

순간, 네덜란드 소년은 왜 또 생각이 난건지?

주먹으로, 팔뚝으로, 온 몸으로 거대한 방죽의 구멍을 메워

나라를 구한 네덜란드 소년은 왜 내 머리를 스쳐 간건지?

그래, 내 한 몸으로 막을 수만 있다면 기어이 막으리라!

그러나 막아지지 않았다. 일등병 오바로크에 실밥이

아직 노골노골해지지 않은 일등병이 혼자서 산불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맹수의 울부짖음으로, 로버트 플랜트 보다 더한 괴성으로

소리치며 꺼이 꺼이 울며 거대한 불길을 홀로 막아 보려

미쳐 날뛰었다. 그래, 난 미쳤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갑자기, 메시아가 들렸다!

"문송아~~~~~"

꿈이던가 생시던가?

점심을 먹으러, 역시 내일 휴가 떠나기 위해 사무실의 잡무를 처리하다 식당으로 내려가던

레드 제플린 4집 운운하던 김인석 일병이 불길을 보고 달려 온 것이다.

할렐루야!

녀석은 일단 우리 사무실로 들어가 삽 두자루를 들고 나왔다.

(그때까지 난 야전상의로 불길을 잡고 있었다.

하지만 잡는 건지 바람을 부는 건지. 큰 불길에 휘두르는

야상은 외려 불난 산에 부채질 격은 아니었을까?)

둘이서 미친 듯이 불길을 잡으려고 방방 뛰었다.

그건 전쟁이었다.

하지만 둘이서 그 전쟁을 치루기엔 터무니없는 일이었다.

언제나 모든 전쟁이 그렇듯이, 후방의 지원은 없었다.

단 둘이서 산불이라는 전쟁을 치뤘다.



억겁보다 길고 무서운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언제나 그렇듯이 전쟁은 의외의 장소에서 돌파구가 마련되었다.

무서운 기세로 산으로 타올라가던 불길은 아름드리 거대한 나무 둥치에

맞닥뜨려 불길이 멈칫거리고 있었다.

기회다! 김일병, 11시 방향 거대한 나무 밑을 집중 공략하라!

와와와와~~~돌격 앞으로!! 죽어라! 죽어!!! 와다다다다다다다



그 무섭던 불길이, 거짓말처럼 나무 밑에서 사그라 들고 있었다.

불길을 일으킨 것도 나무였고, 불길을 잠재운 것도 나무였다.

이미 숨져가는 불길을 개패듯이 삽등으로 두드리고 패고 두드리고 패고…








(산불. 두 용사 되겠다)



마침내 두 용사가 산불이라는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그제서야 후방지원이 있었다.

연기를 보고 달려온 부대 전병력은 산불 잔해와 그 틈바구니에

짐승처럼 누워 있는 두 일병을 발견했을 것이다.



가관이었을 것이다. 둘의 얼굴은 대한민국 어느 귀신 잡는 해병대도 하지 못할

리얼한 위장마냥 얼굴을 숯검댕이로 그을렸다.

승리에 겨워, 그리고 탈진해 산 바닥에 누운 두 전우!!

거친 숨을 헐떡이며 이제야 살았다는 안도의 미소를 짓던 두 전우!

마침내, 김인석 일병이 고개를 들어 내게 말을 건냈다.



‘문송아, 나 줘”



무슨 소린가? 처음엔 놔 달라는 줄 알았다. 누가 붙잡기라도 했나?

무슨 소리지? 다시 거친 숨을 몰아 쉬며 머뭇거리던 그가 거침없이

다음 대사를 읊었다



“문송아, 레드제플린 4집…아니 4번째 앨범, 오리지널 원판 LP- 그거 나 줘!”



그것였다. “나 줘”의 목적어는 이등병의 밤을 밝히며

환시와 환청을 보이고 들려준

레드 제플린의 오리지널 원판 LP였던 것이었었었었었다!!!





***



내가 산불을 처음 본 순간, 든 생각이 한 단어로 “휴가”였듯이

그가 산불을 보고, 내가 지른 산불을 보고 처음 든 생각이,

한 단어로 “레드 제플린”은 아니었을런지.

혹시 그는 산불을 보고, 거기 방화범 표일병을 보고

속으로 쾌재를 부르진 않았을까^^

내가 그를 구하리라, 그리고 레드제플린을 요구하리라!!!



설마 그 급박한 순간에 그런 생각을 했을리 만무지만,

모든 상황이 종료된 순간, 뭔가 한마디 하긴 해야 겠는데

마침 그 때 나온 얘기가 어쩌면 "나 줘"였을까?

순박한 까무잡잡 부산촌놈 김인석 일병아!!



***



첫 휴가를 마치고 다시 가평 부대를 향하는 표일병의 한쪽 손엔

레드 제플린의 4번째 앨범/4집이 들려 있었다.

날개를 열면 천국의 계단이 좍- 펼쳐지는.








돌이켜 보면 그는 내 은인이다

휴가만 보내 준 게 아니라 민간인으로 무사히 복귀시켜 준 은인이다

혹시 김일병, 와싸다를 보면 내게 연락해라.

(주변에 까무잡잡 부산 촌놈 김인석 일병을 아는 사람이 있다면 연락해 주세요.)

그래서 실명으로 얘기했다



레드 제플린의 오리지널 원판을 받아 들고 만면에 웃음을 머금었던

까무잡잡 부산 촌놈 김인석 일병-

그걸 손에 넣기까지 밤마다 환청과 환시와 환상을 꿈꾸고

그리고 마침내 단 한번 찾아 온 절체절명의 순간을 거머쥔

장하다 우리 김일병, 용감하다 김일병, 월남에서 돌아온...아니

산불끄고 돌아온 김일병!

그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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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현 2004-03-03 22:35:20
답글

"나 줘" ㅋㅋ...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글 정말 잘 쓰시네요. 제가 첨으로 카드를 긁어서 샀던 넘이 바로 레드제플린 스튜디오 박스세트인데...^^

박정현 2004-03-03 22:36:25
답글

박스세트에 엘피내지, 속지 다 재현했지만 사이즈가 작아서 감흥이 없죠. <br />
달노래님은 뽐뿌쟁이. 저도 오늘 밤에 '천국'으로 함 가볼까요.^^;

김지태 2004-03-03 23:58:40
답글

딴지일보에 기사로 올려도 되겠어요^^ 저는 레드 제플린 3집 초반이 있습니다 히히히...

윤양진 2004-03-05 10:04:53
답글

재밌어서 미치겠읍니다^^

강성배 2004-03-05 17:20:28
답글

ㅋㅋ 그후 또 하나 구입하셨나 보네요. 문송님 덕에 오늘 하루도 즐겁습니다.감사.^^

현진현 2004-03-09 10:48:58
답글

Hipnosis(?)의 추억이...

표문송 2004-03-09 12:52:56
답글

산불을 끈 것도 바로 hipnosis의 힘이겠지요

leebus@leebus.com 2004-03-16 12:23:25
답글

감동입니다. 꼭 김일병님 만나시길 바랄께요.

chinen@dreamwiz.com 2004-03-22 10:23:29
답글

글을 정말 잘 쓰시네요. 재밌게 읽었습니다. ^-^~

speed-jin@daum.net 2004-03-24 02:30:23
답글

^^

김종태 2004-03-24 13:16:15
답글

부산이 그렇게 촌은 아닌데-----ㅎㅎㅎ 잘&#48419;습니다. 한번 찾아 볼께요

bny@lawleeko.co.kr 2004-04-13 19:42:33
답글

아, 정말 좋은 글입니다. 생동감과 위트로 가득찬... '와싸다'에서 보기 드문 훌륭한 글입니다. 자주 부탁드립니다.

김임탁 2004-05-09 20:47:06
답글

제 블로그에 담아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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