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자존감에 대한 공부를 좀 했습니다.
지금도 계속하고 있고요.
자존감이 낮은 사람에게, 자존감을 가져라, 높여라...라고 주장해봐야
별 소용이 없습니다.
자신이 왜 자존감이 낮은지, 어떻게 해야 높일수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죠.
그런 사람에게 자존감을 높이라고 소리쳐봐야...
대체 뭔소리야? ...라는 정도로 밖에 인식을 못합니다.
자존감을 높이려면, 우선 자아에 대한 인식부터 선행해야 합니다.
자아를 인식하고 자아정체성을 분명히 하면,
서서히 자존감이 높아지죠.
참고로, 보수성향을 가진 사람보다 진보성향을 가진사람의 자존감이 높습니다.
'자신의 독자적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보수성향은 '주입된 생각'을 가지기 쉽습니다. 체제 순응이죠.
물론 주입된 생각을 '자기 생각'이라고 생각하고 삽니다.
일에 대한 만족도를 측정해도,
자신이 주도적으로 일을 하는 경우는 만족도가 높고,
남이 시키는 일만 하는 사람은 만족도가 극히 낮습니다.
페이와 상관이 얼마나 주도적인가에 대한 기준이 더 크게 작용합니다.
행복지수를 측정해도 마찬가지죠.
그래서 보수적 사회보다 진보사회의 행복지수가 훨씬 높게 나타납니다.
상식도 이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상식적이지 않은 사람에게, 상식적으로 생각하라고 외쳐봐야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 사람이 가진 상식은, 우리가 가진 상식과는 다르기 때문이죠.
그들을 보고 감성적, 감정적이라고 판단하는데,
그들은 우리를 도로 감성적이고 감정적이라고 판단하죠.
그래서(우리가 감정적이어서)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하고요.
간단한 예로, 장례식때 일본은 남들앞에서 울지 않는게 상식이고,
우리는 남들앞에서 곡을 하는게 상식이죠.
같은 사회에 살면서도, 상식이 다른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제사상의 세팅방식이나 제사 순서...
혹은 종교로 인한 가지고 있는 상식의 차이,
학습량이나, 계급으로 인해 가진 상식의 차이 등등..
그러니 '상식적으로 생각하라.'는 말 자체가 통하지 않습니다.
선거때 우리는 이부분을 잘 간과합니다.
그런데 상식 자체가 다르면 그나마 이해할 구석이라도 있는데....
같은 상식을 가졌지만, 거부하는 경우는
참 이해하기 힘듭니다.
이걸 최근에 건진 '인정투쟁'에서 좀 이해하고 있습니다.
우선 책소개를 잠깐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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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투쟁 : 사회적 갈등의 도덕적 형식론
일단 간단한 목차를 소개하면
1부 인정투쟁 이념의 역사적 출현: 헤겔의 근원적 이념
1장 자기보존을 위한 투쟁: 근대 사회철학의 토대
2장 범죄와 인륜성: 헤겔의 상호주관성이론적 새로운 사고 단초
3장 인정투쟁: 예나 시기 헤겔의 '실재철학'에서 나타난 사회이론의 토대
2부 인정투쟁 이념의 체계적 현대화: 사회적 인정관계의 구조
4장 인정과 사회화: 미드에 의한 헤겔 이념의 자연주의적 변형
5장 상호주관적 인정의 유형들: 사랑, 권리, 연대
6장 개인의 자기 정체성과 무시: 폭행, 권리의 부정, 가치의 부정
3부 사회철학적 조망: 도덕과 사회발전
7장 사회철학적 전통의 자취들: 마르크스, 소렐, 사르트르
8장 무시와 저항: 사회적 갈등의 도덕적 논리
9장 인격적 불가침성의 상호주관적 조건: 형식적 인륜성 개념
"인정투쟁 개념은 인정받고자 하는 근본 기대가 훼손될 때 야기되는 도덕적 경험의 틀 속에서 사회적 저항과 봉기의 동기가 형성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 이와 같은 규범적 기대 태도가 사회적으로 깨질 때 일어나는 것은 무시당한 느낌 속에서 표현되는 도덕적 경험이다. 이런 식의 훼손감이 집단적 저항에 동기를 부여하는 토대가 될 수 있기 위해서는 이 훼손감이 바로 전체 집단에게 전형적인 것임을 증명할 수 있는 상호주관적 해석 틀 속에서 주체가 이 훼손감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 p.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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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중고 장터에서 건진 대어라 생각하는데, 아직 못 읽었습니다.
번역이 개판이라는 소문이 있던데...)
목차만 봐도 대충 무슨 내용인지 대충 아시겠죠?
우리가 독재에 저항해서 민주화 운동을 하는 것도,
인권 즉 다른말로 독립된 자아를 인정해 달라는 것이죠.
'나를 인정해 달라'는 인정투쟁입니다.
그런데 이게 지금 역풍을 맞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유신세대들은 자신의 상식(세뇌로 인해 가지고 있는 호의적 생각,
박정희에 대한 향수)을 인정해 달라는 것이죠.
내 생각, 내 의견을 무시하지 말고 인정해 달라...는 겁니다.
'그는 독재자다.' 라고 주장하는 민주화 세력들이...
자신이 가진 생각(의견, 혹은 상식)을 무시한다고 받아들이고..
민주화 세력에게 오히려 저항하는 인정투쟁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보수의 대결집이 그래서 나온게 아닌가 싶네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상식과,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
결국은 '나를 무시한다'는 개념에서 나온다는 거죠.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자신이 가진 생각을 고수합니다.
자아 정체성이 분명하지 않아 자존감이 낮을수록,
자기가 가진 생각(주입되거나 세뇌된)을 자신의 정체성이라 인식하고,
그 생각을 고수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 생각을 부정하면, 나의 존재가 부정당했다고 인식합니다.
무시 당한다는 인식이죠.
즉, 보수성향일수록 자존감이 낮다 = 자아정체성이 뚜렷하지 못하다 =
자기 생각에 대한 고수가 심하다 .. 가 되고,
자기 생각에 대한 고수가 심할수록 '인정투쟁'은 강해진다는 거죠.
민주화 운동이나, 독립운동도,
자기 생각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니 저쪽에서 볼때는,
민주화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자기 고집과 아집에
쌓여 있다고 보이는거죠.
풀어나가기 참 어려운 문제인 거 같습니다.
ps: 아래는 홍세화의 [생각의 좌표] 중 일부입니다.
참고삼아....
'사람은 이성을 가진 동물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명제에 따르면, 사람은 이성적 동물,
합리적 동물이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합리화 하는 동물이다.
---(중략)
기존 생각을 수정하려면 자신을 끊임없이 부정하는 용기가 필요한데,
대부분은 기존의 생각을 고집하는 용기만 갖고 있다. 머리가 나쁜탓이 아니다.
오히려 머리가 좋은 사람일수록 그 좋은 머리를 기존의 생각을 수정하기보다
기존의 생각을 계속 고집하기 위한 합리화의 도구로 쓴다.
사람이 좀처럼 변하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중략)
마르크스가 강조한 '한 사회를 지배하는 이념은 지배계급의 이념이다"
라는 명제를 되돌아 본다면, 내가 고집하는 내 생각은 내가 주체적으로 형성한 것이
아닐때 필경 지배계급이 나에게 갖도록 요구한 것에 지나지 않음을 간파해야 한다.
쉽게 말해,
내가 갖고 있는 의식이어서 그것을 고집하며 살아가지만
나에게 그 의식을 갖도록 한 주체는 내가 아니라 지배세력이라는 것이다.
---(중략)
독서, 열린 자세의 토론, 직접 견문, 성찰....의 경로를 통해 갖게 된 생각은 주체적인 반면
제도교육과 미디어를 통해 갖게 된 생각은 주체적이지 않다.
위 4가지는 내가 주체적으로 행하는 것이지만, 제도교육과 미디어에서
나는 주체로 존재하지 않으며, 오로지 객체이며 대상일 뿐이다.
세상 사람들 중 책을 읽는 사람은 절대적으로 소수다.
문제는 과거에는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은 스스로 무지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오늘날엔 책을 읽지 않아도 스스로 무지하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는 점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