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에 한번 유일하게 국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이렇게 초개같이 저버릴 수 있는가? 우리가 우리의 의지로 우리의 머슴을 가려뽑는 귀한 권리를
이렇게 허투루 버릴 수 있는가?
우리의 수중에 오롯이 예비 지워진 이 귀한 권리를 이렇게 업수이 여겨도 되나?
이의 가치를 일러 흔히들 이병철이도 한표, 나도 한표라고 한다.
의로운 우리의 선현 제위들 께서는 이것의 쟁취를 위해 얼마나 노심초사 피말리는 투쟁과 수많은 질곡들을 견뎌왔는지 한번쯤 생각이라도 해 봤는가?
이렇게 중차대한 권리를, 어쩌다 우연히 울 지어진 지금 이곳에 서식한단 이유로,
혹은 밥술깨나 뜨게 해 준 자의 혈손에 대한 보은의 논리로,
때로는 저급한 위선의 거짓 미소에 혹(惑)해,
익히 정의롭고 바르게 살자는 것에 대한 재갈과 차꼬임이 명명백백한 빨갱이 타령과 반공이라는 전가의 보도에 속아, 이렇게 유일하게 주어진 권리를 가벼이 팽겨친단 말인가?
일찌기 함석헌 선생은 "생각하는 사람이라야 산다"고 사자후 하셨다.
홧김에 서방질 하듯 이렇게 귀한 권리를 내돌려도 되는가?
많은 사람들은 흔하게 말한다.
"그놈이 그놈인데..."라고 ,
그러나 우리는 보다 덜 나쁜 자들을 선택할 줄 아는 지혜는 없는가?
10만큼 나쁜자 들 보다 9 만큼 나쁜자들을 말이다.
선택의 폭이 극히 좁고, 그 선택이 필수적 일 때 ,이걸 차선의 도리라고도 하고,차선의 딜레마라고도 한다.
차선의 선택은 항용,몇몇 경우를 빼곤 아무것도 선택않는 무(無)선택보다,훨 현명하고 윤리적 일 때가 많다.
좋은 세상은 담박에 오지 않는다.
단숨에 오르는 정상은 자칫 죽음에 이를 수도 있고 ,때때로 아주 늦을 수도 있다.
한번에 하나씩 산 정상의 도중 도중에 꽂힌 깃대를 향해 시나브로 오를 수는 없는가?
먹고 살기 어렵다고들 한다.
먹고 살기 어려운 세상으로 내몬 정권을 선택하는 자들은
듣기 거북하겠지만 바로 이런 푸념을 하는 사람들이다.
왜 이런 이해하기 어려운, 일견 모순된 짓을 할까?
권력의 속성은 저항하고 비판하는 사람들을 두려워한다.
이것은 만고의 진리다
그들은 이들 저항하는 자들을 늘 의식하고,내편으로 돌려 놓기에 애를 쓴다.
다시말해 대자적(對自的) 인간(한완상 교수의 말)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의 상대어인 즉자적(卽自的) 인간은, 고마워하고 귀여워 할지언정 애써 깊은 배려는 하지 않는다.
제발 생각 좀 하고 살자.
안보가 흔들릴까 겁나나?
안보는 무엇으로 그 초석이 다져지며 혹은 무너질 수 있겠는가?
정의롭고 양심적인 정치조직들이 국민을 하늘같이 받들 때 ,그리고 언론이 제 역할을 하여 나라의 상층부를 점하고 있는 기득권자들이 감히 일탈을 꿈꾸지 못할 때,
기득권자들이 다수 민중에게 그저 배푸는 수혜자가 아닌,
서로가 동반자적 의존 관계임과 수평적 상호 보완 관계임을 의식할 때,국민 개개인은 안보를 위해 기꺼이 피흘림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선거란
다름아닌 이와같은 가치들을 세워나가는 과정이다.
그걸 허투루 한단 말인가?
여러분들은 또 수년간을 쓰레기 같은 왜곡 과 조작으로 도배된 기사를 보게 될것이고 ,
잘못 선택한 지도자를 에워 싸고 아부하는 똥파리떼들보다 못한 군상들의 발호를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의로운 인사들을 빨갱이란 족쇄를 채워 발을 묶고 입을 봉 하는걸 보게 될 것이고,끊임없이 안보를 구실로 붙혀 전쟁의 위험에 노출 시킬 것이다.
이나라는 여러분들 만의 나라가 아니다.
자라나는 어린 싹들과 미구에 탄생될 어린이들의 나라 이기도 하다.
이들을 고려하면 오기와 아집,한치의 고민없는 이러한 그릇된 선택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제발 머리는 폼으로만 달려 있는게 아니다.
생각 좀 하고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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