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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의 노래/이야기
음반리뷰추천 > 상세보기 | 2004-02-23 13:03:20
추천수 2
조회수   2,419

제목

심청의 노래/이야기

글쓴이

표문송 [가입일자 : 2003-03-25]
내용





주말 내내 비가 오락가락했다.

비가 그쳐도 어둑신한 하늘,

공기는 축축했다

일요일 오후, 교회에 다녀온

온 가족이 물처럼 깊은 잠에 빠졌다

아내와 쭈누와 다인이는 안방에서

한 덩이가 되어 뒹굴뒹굴,

나는 거실에서 음악을 들으며 깜빡깜빡…



얼마 만에 맞는 한가한 오후시간인지…

몇주전 읽은 황석영의 ‘심청’이

판소리 ‘심청가’를 꺼내 듣게 했다

브리태니커에서 20여년전 만들어낸

심청가 완창 LP-

오래간만에 꺼내니 묵은 때가 뽀얗게 쌓였다.






(한국 브리태니커의 지원을 받아 만들어진 판소리 다섯마당. 돈없는 국악계로선 어제 내린 비처럼 가뭄에 단비마냥 고마운 지원이었겠지만 “브리태니커Britannica 판소리”라니…말 그대로 “영국 판소리” 아닌가? 문제는 돈이다. 돈이 문화를 지배한다. 문화는 돈줄이 젖줄이다.)



돌아가신 친할머니를 연상케 하는

걸진 탁음의 한애순 명창이

울고 웃고 안타깝고 가슴 기꺼운 소리로

심청의 일생을 뒤쫓고 있다.

일고수 이명창이라더니 김명환 고수의

추임새와 덩덩더덕-뚝딱- 북소리가

더도 덜도 아닌 딱 그만큼 알맞은 자리에

알맞게 끼어들며 곡 전체를 조율해 낸다.






(한애순 명창의 절창하시는 장면 되겠다)



"아이고, 아버지, 심청은 죽거니와 아버지는 눈을 떠

천지만물을 보옵시고, 날 같은 불효여식을 생각지 마옵소서.

나 죽기 섧잖으나, 혈혈단신 우리 부친, 누게 의지헌단 말이냐?"

가슴을 뚜다리며 복통단장터니,

"여보시오, 선인님네. 억십만금 퇴를 내여, 고국으 돌아가서, 도화동 찾아가서,

우리 부친 눈 떳으면 떴다던지, 애통하야 세상을 바렸으면 바렸다던지, 존망을 알어다가,

이 물에 지내거던 나의 혼을 부러 그 말을 부대 일러 주오"

"글랑은 염려말고 어서 급히 물에 들어라"

물결을 살펴보니, 원래 만리는 하날에 닿었난듸, 태산 같은 뉫덩이 뱃전 퉁퉁,

풍랑은 우르르르르르르르, 물결은 워리렁 워리렁, 그저 뱃전을 탕탕,

와르르르르르르르르.

심청이 거동봐라. 바람 맞은 사람같이 이리 비틀, 저리 비틀, 뱃전으로 나가더니,

다시 한번 생각헌다.

"내가 이리 진퇴함은 부친의 정 부족함이라"

치마폭 무릅쓰고, 두 눈을 딱 감고, 뱃전으로 우루루루루루루, 손한번 헤치더니,

강상으 몸을 던져, 배 이마에 꺼꾸러져, 물에가 풍,

빠져 놓으니

행화는 풍랑을 쫓고, 명월은 해문에 잠겼도다. 묘창해지일속이라.



***



그네 타듯 공중으로 치솟은 청이가 그네 따라 되돌아 올 줄 모르고

그대로 거센 황해 바다로 풍덩 빠진다.

아이고 청아, 청아 애닯아 어쩌랴~

그러나, 소설에선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니다

청이는 시늉뿐으로 다시 뱃전에 올라 헛제사만을 지내고

중국으로 팔려가게 된다.

심청이 소설 속 렌화(蓮花)로 거듭 난다.



대본을 따라 보며 판소리를 듣던 나는 어느새 까무룩-

선잠에 들고 노래 속 청이는 용궁으로 다시 세상으로

그리고 마침내 아버지 품으로 종횡무진 오간다.

안방과 거실 사이로, 바다 보다 깊은 잠이 흐르고,

한애순 명창과 김명환 고수의 한 자락이 흐르고,

나는 청이의 뱃길, 인생길을 함께 따라 나서고…






(소설 속 청이의 이동 경로, 인생 역정 되겠다)



묘창해지일속渺滄海之一粟이라

창해 같이 넓은 곳에 좁쌀 한 알처럼 작다는

소식의 ‘적벽부’에서 빌어온 한 귀절처럼

제물포에서 난징으로 진장으로 싱가폴로 류큐로 나가사키로 돌고 돌아

팔순이 되어 다시 제물포로 돌아 오는 소설 속 청이의 일생은

어려운 시기를 건너가는 우리네 모든 여성의 모습 그대로다.

청이에서 렌화(蓮花연꽃), 로터스, 렌카로 바뀌어 불려지며,

창해 같은 너른 세상에 제 한 몸 의지할 곳 없어

좁쌀처럼 자디잔 인생을 애면글면 살아낸 이 땅 모든 여성들의

초상이며 노래이고 이야기인 소설 ‘심청’.






(저 전집은 구하기도 어렵거니와 부피가 장난 아니니 함부로 덤벼들기도 난감하다. 관심이 있다면 가벼운 마음으로 “판소리의 눈”으로 시작해 봄이… ‘눈’이라 함은 판소리의 가장 중요한 대목으로 김명환 명인이 지칭하셨단다. 쉬운 예로 오페라 아리아 선집 정도 되겠다. 신나라에서 나왔다. 근데 이것 역시 IBM의 지원을 받았다. 브리태니커에서 IBM으로, 우리 판소리의 역정도 만만치 않구나…)





범피중류 둥덩실 떠나간다. 망망헌 창해이며 탕탕헌 물결이라. 백빈주 갈매기는 홍요안으 날아들고, 감강으 기려기는 한수로 날아든다. 요량헌 남은 소리 어적이 여기련만, 곡종인불견으 수봉만 푸르렀다.

애내성중만고수는 날로 두고 이름인가? 장사를 지내가니 가 태부 간 곳 없고, 멱라수를 당도허니 굴 삼여 어복충혼 무량도 허시든가? 황학루를 당도허니 일모행관하처시요, 연파강상 사인수는 최호으 유적이요, 봉황대를 돌아드니, 삼산은 반락청천외요, 이수중분백로주는 태벽으 놀든데요, 심양강 당도허니 백락천 일거후으 비파성이 끊어졌다. 적벽강 당도허니 소동파 놀든 풍월 으구허여 있다마는, 조맹덕 일세지웅이금으안재재, 월락오제 깊은 밤으 고소성외 배를 매니, 한산사 쇠북 소리넌 객선으 뎅 들리난듯, 진해수를 당도허니, 격강으 상녀들은 망국한을 모르고서 연롱한 수월롱사에 후정화만 부르는구나. 악양루 높은 집은 호상으 솟아난듯, 무산에 돋난 달은 동정호로 비쳐 오니 상하천광이 거울 속으 푸르렀다. 삼협으 잔나비는 자식을 찾는 슬픈 소리, 천객 소인으 눈물을 몇몇이나 비쩝든가? …








(다인, 공주는 잠 못 이루고)



청의 노래는 깊은 밤까지 이어졌고

공주는 잠 못들어…

다인을 품에 안고 김명환 명인의 북소리에 맞춰

엉덩이를 투덕투덕 치며 거실을 서성이니

이 또한 범피중류 泛彼中流(바다 한 가운데 배가 떠 감)요…

창 소리 사이 사이로 김명환 명인의 추임새가 노 젓는 소리처럼 들린다.





온나 마을 소나무 밑에

금지 팻말이 서 있어도

사랑하는 것까지야

금하는 건 아니겠지

(소설 '심청' 中 온나의 류카)



***



다인이와 함께 청이의 노래/이야기를 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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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문송 2004-02-23 18:31:26
답글

쓰고 보니 소설의 내용이 없어 판소리의 현대적 해석 쯤으로 치부될 수 있겠군요. 황석영의 심청은 판소리 심청가의 소재 '심청'만을 빌렸다 뿐이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 됩니다. 판소리의 효녀 심청이 "창녀 심청"으로 설정되어

표문송 2004-02-23 18:32:14
답글

근대의 틈바구니 속에서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작가의 말을 빌자면 이른바 "매춘 오디세이아"로 새롭게 편곡된 것이지요. 게다가 소설 속의 노래는 우리의 판소리 뿐만 아니 조선, 중국, 일본 등 동남아를 망라한 "여인의 노래"입니다. <br />

박정현 2004-02-25 10:58:19
답글

잘 읽었습니다.^^ 전 지난 비오는 토요일에 이사(일산으로)하고 몸살로 골골거리고 있습니다. 좋은 글 또 기대하겠습니다. ㅎㅎ

표문송 2004-02-26 18:02:35
답글

박정현님 마침내 직장으로 인해 삶의 터전이 옮겨 갔군요. 한번 고생으로 매일의 고생이 줄었겠네요. 몸살은 브루루루루루~크너로 푸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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