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쟁이라면 흔히 이런 말을 많이 들어봤을거다.
- 매칭에 실패했다 -
왜그랬을까?
한마디로 말해 뭔가 자기가 기대했던 소리가 나와주지 않기 때문에 나오는 말일거다.
명색이 오디오쟁이라면, 남들이 써놓은 사용기에 혹하고 이쁜 디자인에 뻑 가서 거금을 들여 질렀는데,
소리가 마음에 안들때, 한숨이 저절로 나오는 경험들을 더러 해봤을거다.
그래서 바꿈질이 시작된다.
앰프도 바꾸고, 스피커도 바꾸고, 케이블도 바꾸고, 소스기도 바꾸고...
시간과 비용과 노력을 기울인 끝에, 어느정도 타협점을 찾아 흡족한 소리를 들었을때, 잠시 이 바꿈질이 멈춘다.
그러나 마음에 들었던 이 소리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너무 무미건조하다는 생각이 들며,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뻔질나게 장터를 기웃거리고 있는 내모습을 보게 된다.
내돈 갖고 내가 쓰겠다는데 이의를 걸 사람은 없다.
능력있는 사람이, 그 능력에 맞게 사는건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모습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고 싶은건,
가진 것이 많아, 하고 싶은 것 모두를 마음대로 할수 있는 일부 상류층 얘기를 하려함이 아니다.
그저 평범한 일반인의 얘기다.
내가 좋아하는게 오디오라면,
내 형편이 어렵더라도 다소 무리하여 오됴기기를 질러 본 경험들이 몆 번 쯤은 있을거다.
오됴란 소리도 좋아야 되지만, 매일 바라보는거니 모양도 이뻐야 한다.
그러니 바꿈질이 반복될수록 그 그레이드가 점점 높아질수 밖에 없다.
이렇게 조금씩 수위가 높아지면, 여간해서 그 눈높이가 내려 가지 않는다.
어느날 아이팟 MP3기기를 수납할 지갑을 만들기위해, 구두수선을 하는 노점을 찾아 갔다.
예순쯤 되보이는 허수룩한 차림의 쥔장이,
가죽을 오려 미싱으로 박음질을 하는데, 솜씨가 제법 괜찮다.
한 평 남짓한 공간인데,
나같으면 답답하여 숨이 넘어갈것 같은데,
이 분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구석탱이에 놓여있는 시커멓게 때가 묻은 CD카셋트에서 나오는, 나훈아 노래를 따라 부른다.
옆에서 들어보니, 그 소리가 열악한 공간치고는 꽤 괜찮게 들린다.
중고가격으로 2 ~ 3 만 원 밖에 되지 않을 것 같은 CD카셋트인데...
오디오란 뭔가?
음악은 왜 듣는가?
음악을 듣는다는게 심신이 편안해지고 즐거워지기 위함이 목적이라면,
이 구두수선집 쥔장은 그 목적을 이룬것임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이 싸구려기기에서 나오는, 어떤 소리가 그의 마음을 즐겁게 했을까?
아니 아니다.
이 소리가 그의 마음이 즐거워지는데, 일정부분 기여를 한건 맞지만,
이미 그의 마음속에서는 음악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마음이 즐거운 사람이 음악을 들으면 더 즐거워지지만,
늘 무언가 부족하여 채우려고만 하는 사람은,
아무리 좋은 기기의 소리를 들어도,
그 욕심을 만족시킬 수가 없다.
결론은 사람의 마음이다.
아내란 무엇인가?
결혼은 왜 하는가?
사람을 기계덩어리인 오디오와 비교한다는게 다소 무리가 있지만,
어떤면에선 감성이 스며있기에, 공감이 가는 부분도 있다.
잠시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를 옮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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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 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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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와 여자는 누가 먼저 불렀건, 서로가 불렀기에 가정을 이루고 사는거다.
결혼은 행복해지기 위해 한다.
지금 당신은 행복한가?
오디오가 좋은 소리를 들려주지 않았을때, 매칭에 실패를 했다고 말한다면,
사람을 만났을때 불협화음이 나는건, 흔히들 궁합이 맞지 않아서라고 한다.
오디오의 매칭이 좋지않으면 바꿈질이라도 하면 되지만,
그 대상이 사람이라면 그리 간단치가 않다.
물론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가정을 깨고, 바꾸는(?) 분들이 더러 있는걸 보면,
오죽하면 그랬을까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요즘 이혼율을 보면, 주로 가정경제가 어려워서라기보다는 성격이 안맞아서라는 이유가 더 많다.
예전에 길거리에서 한 쪽 팔이 없는 남자가, 고물을 잔뜩 실은 리어커를 끌고 가는데,
그의 부인으로 보이는 낡은 차림새의 여인이, 리어커 뒤를 밀고 가는걸 본 적이 있다.
남의 눈을 의식한다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라도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그 부부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박수를 보낸적이 있다.
힘겨운 삶을 포기하지 않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이런 사람들도 있는데,
성격차이로 헤어진다는건 너무나 이기적이지 않은가...
물론 당사자입장에서 들어보면, 구구절절한 사연이 또 있겠지만,
잠시 돌이켜서 생각해 보면, 내가 해준건 별로 없고 나만 위해주기를 바라지는 않았던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한다.
꽃이 되었다는 얘기는,
한남자의 아내로서, 아이들의 엄마로서, 자신의 모든것을 바치기로 했다는 거다.
그렇다면,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어 주어야 하는게 아니겠는가...
그게 공평한거다.
항상 나만 채워주기를 바라고, 내가 채워 줄 생각은 해본적이 없으니, 아내가 무엇이 부족한지 아예 모를 수도 있다.
이 글을 쓰는 나 자신도 아내와 30 년을 살아왔지만,
평생 꽃길을 걷게 해준건 아니다.
싸움도 많이 하고 속도 많이 썩였다.
지지고 볶고 궁상을 떨면서도... 아직까지 같이 살고 있는건,
그래도 나쁜 것 보다 좋은게 더 많았기 때문이다.
항상 자신보다 나를 먼저 챙겨주었고...
그런 아내의 모습이 애잔하여, 나 또한 무엇을 해줘야 할지 한번 더 살피게 된다.
누구처럼 이쁜 얼굴도 아니고 날씬하지도 않지만,
잘나지도 않은 나와, 이리 긴 세월을 같이 살아 주었으니,
내게 있어 아내의 존재는 그 무엇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다.
오디오에서 좋은 소리를 듣고 싶다면, 소리가 아닌 음악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고,
아내의 얼굴에서 미소가 가득한 모습을 보고 싶다면,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어 주면 된다.
결론은 사람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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