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6 시 경 비가 내린다.
일기예보상 비나 눈이 올거라고했기에, 그냥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겨울비치곤 많이 내린다.
더구나 영하의 기온이다보니, 내리는 족족 얼음으로 변한다.
육안으로 봐도 지면이 반들반들하다.
봄비같으면야 낭만적인 기분이 들었겠지만,
지금 당장 퇴근을 해야되니 그렇지만도 않다.
아니나 다를까...
동료직원이 30 도 쯤 경사진 진입로를 올라오지 못하고,
중간에 차를 세워놓고 걸어 올라온다.
그래도 나는 내려가는거니, 올라오는거 보다는 낫겠지하며 시동을 걸었다.
차창유리에 빗물이 얼어붙어 얼음을 제거하는데,
깨지는 얼음이 마치 유리조각처럼 떨어져 내린다.
브레이크를 밟으면 무조건 돈다는 동료직원의 말을 듣고,
기어를 1 단으로 넣은뒤 살살 내려갔다.
그러나 내리막길이라 탄력을 받은 차의 속도는, 1 단도 빠른듯 싶었다.
브레이크를 슬쩍 밟았다.
아뿔사!
차가 왼쪽으로 방향을 틀더니, 사정없이 미끄럼을 탄다.
핸들을 돌려봤지만,
제어력을 잃은 차는 이리저리 방향을 바꿔가며 제멋대로 내려간다.
세상에!!
옆으로 달리는 차에 몸을 맡겨보기는 처음이다.
머리끝이 곤두서며 정신이 혼미해졌지만,
다행히 도로변에 쌓여있는 녹지않은 눈에 걸려, 가드레일에 부딛치지는 않았다.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차를 출발시켜 내려가고 있는데,
아래 저만치 어느 아지매가 걸어 내려가고 있다.
그런데 순간 휘청거리는가 싶더니,
꽈당!
엉덩방아를 찧고야 만다.
출구까지의 길이가 대략 600m 쯤 되는데,
그 길을 걸어 내려 가면, 몆 번을 더 넘어질지 알 수가 없다.
미리부터 브레이크를 약하게 밟으며 서행을 했기에 바로 정지 할 수가 있었다.
"아주머니~ 어디까지 가세요? "
"예 요아래 마을이요~ "
"길이 많이 미끄러우니 또 넘어질수 있어요... 출구까지 태워드릴테니 타세요~ "
물론 나도 평소같으면 사람을 태우지 않는다.
세상인심이 흉흉하다보니, 때로는 좋은일을 하고서도 오해를 사는 경우를 종종 보기 때문이다.
이런 마음은 그 아지매도 마찬가지였을거다.
그러나 상황이 상황이니만치 이대로 걸어가다가는 또 넘어질 것 같은 두려움이 앞섰는지,
그렇잖으면 중후하고 수려한(?) 내모습을 보고 안심을 했는지...
"그럼 출구까지만 좀 태워주세요~ "
이러면서 차뒷문을 열고 탄다.
거북이같이 느린 속도로 내려 가면서 보니, 동료직원의 차가 한 쪽에 비스듬이 서 있다.
부딛치기라도 할까 조심스러웠는데,
다행히 잘 내려갔다.
출구에 아지매를 내려드리고, 평지를 달리게 되어 좋았다.
그러나 이것도 잠깐...
화물터미널 옆을 지나가는데,
이런!
무슨 폭탄을 맞았는가 온통 차들이 뒤엉켜 아수라장이다.
접촉사고를 낸 차들이, 바닥이 미끄러워 차를 이동하지도 못하고,
양 측 운전자들이 바깥에 서서 어쩔줄을 모른다.
살을 에이는듯한 비는 계속 내리고...ㅠㅠ
어찌어찌하여 사고차량 사이를 간신히 빠져나갔다 싶었는데, 이번엔 경사가 가파르다.
차바퀴가 연기가 날 정도로 밟아댔지만,
이리저리 지멋대로 춤을 추며 미끌리기만 할 뿐 전진은 커녕 오히려 몆 보 후퇴를 한다.
여지껏 운전을 하며 이런 경우는 첨이다.
차에서 내려 주위를 보니,
거대한 주차장을 방불케한다.
차도는 마치 거울을 보는듯 얼굴이라도 비출것 같다.
넋을 놓고 서있는데, 화물터미널측 관계자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아저씨 한 분이 나타나셔서 모래를 뿌려 주신다.
그 덕분으로 나는 이 황당한 사태를 벗어 날 수 있었지만, 다른 수많은 차량들은 또 어찌 나왔을지...ㅜ.ㅜ
아무튼 평소 20 분이면 다니던 길인데, 1 시간 20 분이나 걸려 집에 도착했다.
몆 년 전에 눈길에서 360 도 회전한 기억이 있어, 눈길이 가장 무섭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이 일을 겪고 보니, 눈보다 비가 몆 갑절 더 무서운 것 같다.
문득,
이 악천후 속에서 내가 별 탈 없이 살아 남은건,
그래도 이 세상이 아직까지는 나를 필요로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불행중 다행이다... 이런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