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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에 썼던 글의 내용 (댓글 포함)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12-10-25 12:01:27
추천수 1
조회수   402

제목

기존에 썼던 글의 내용 (댓글 포함)

글쓴이

김혜규 [가입일자 : 2001-07-04]
내용
본글 링크 따라가서 육성으로 듣는 것이 좀 더 덜 무료하실 것 같아서..



지웠는데.. 이 글도 참고 하세요.



- - - - - -



*** 정수장학재단의 설립자는 누구인가?***







재단법인 정수장학회는 다 알다시피 5.16장학재단을 명의 변경한 것이다.







명의 변경한 사유는 일전 한겨레신문에 실린 최필립 이사장과의 대담기사를 보니, 5공 정부에서 이름이 좋지 않다며 명의 변경을 요구하여, 당시 이사진이 박정희대통령과 육영수여사의 성명 중에서 한자씩 따와 지은 것이라 한다.







그런데 이를 문재인은 “정수장학회는 김지태 선생의 부일장학회가 강탈당한 장물입니다”라고 했다. 김지태는 국가에 내 놓았는데 박정희가 임의로 나꿔 채 5.16장학회로 넘겼다는 것이다. 그래서 박정희의 배임행위를 명백히 하기 위하여 국가 앞 원상회복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김지태의 기증서는 엄연히 5.16장학회로 되어 있다. 이는 법률상 기본요건이다. 노무현 정권시의 ‘과거사위‘ 조사내용에도62.6.5일 최고회의 발표에서 김지태가 5.16장학회에 헌납하겠다는 의사를 전해 왔는데, 받을지 말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신문기사까지 인용했다. 당시 혁명정부 최고회의는 3권을 쥐고 있었기에 5.16장학회 설립도 관장하고 있었다. 5.16장학재단은 불우학생들을 돕겠다는 박대통령의 의지로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장학재단임은 사료가 증명한다. 배임 운운은 가당치도 않다.







1.박정희가 부일장학회와 부산일보 등을 빼앗기 위하여 김지태를 잡아넣었다는 거짓말.







김지태는 혁명직후 탈세 정치자금 제공혐의로 잡혀갔다가 이병철회장의 산업보국 주장 덕에 풀려난 후 62.3월 27일 다시 구속되었다. 농지개량법 위반, 허위공문서 작성, 재산해외도피 등 9개 혐의였으며, 부인은 보석 밀수였다. 이는 김지태 전처 처남의 고발이 결정적이었음을 과거사위원회에서도 확인했다.







군용부지 22,000평 부정 매수도 중대사안인데다, 김지태와 부인이 ’60.7.8일 서독여행 중 7캐럿 다이아(6,200달라)와 카메라(100달라)를 세관에 신고하지 않고 사들여왔다는 혐의(‘62.3.31 동아일보 3면 기사)도 처벌을 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당시 국민소득 100달라도 안되던 시절에, 외국에서 사치품 구매에 6,300달러를 썼으면 그것만 해도 지탄 받을 일인데 세관신고도 안했던 것. 이는 오늘 2만 달러 국민소득으로 환산하면 약15억 상당의 가치인 셈이다.







2.부일 장학회를 강탈하여 정수장학회(5.16장학재단)를 세웠다는 거짓말







‘62.5.9’자 조선일보 3면에 5.16장학기금을 만든다는 기사가 났다. 스코필드박사가 장학기금으로 25만환을 내놓기에 전에 이미 박정희의장이 5.16장학기금 설치를 당부했었다는 사실과 또, 이미 문교부에서 책정한 4억5천만환의 장학금과는 별도로 운영할 것이란 내용이다. 장학사업은 박정희의장이 혁명직후부터 구상 추진해 온 사회사업이었음을 증명하는 기사다.







‘62.6.5’자 조선일보 1면에 5.16장학회 곧 발족, 연차적으로 규모 확대, 내외인사의 희사금 답지라는 기사가 났다. 이 기사 중에 “부산일보, 문화방송, 부산문화방송 및 부일장학회 등을 5.16장학회를 위하여 희사하겠다는 뜻을 전해왔는데, 최고회의 측에서 받아들일지의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는 내용도 있다. 적자에 부채과다기업이므로 장학재단에 기여되지 않음은 물론, 헌납대상이 아니라는 재무부의 비토가 있었던 때문으로 보인다.







5.16장학재단 설립당시 부산일보 문화방송 재산출연 가액을 김지태 기부주식 액면가대로 3,487만원을 등재했지만, 자본 완전잠식에다 부채가 자산을 2~3배 초과하였다. 박대통령 생전에 장학사업은 현금으로 모금된 기금 11억4,200만원으로 했다. 액면가대로 인정해 준다고 해도 전체 모금액의 30분의 1도 안 되는 액수였다.즉 김지태의 재산을 강탈하여 5.16장학재단을 설립하였다고 해도 그 지분은 30분의 1도 안 된다는 뜻이다.







3.박정희는 황용주의 감언이설에 넘어가 김지태에게 속았다.







당시 부산일보 주필 황용주는 월간조선 88년 6월호의 인터뷰에서 이런 증언을 남겼다. “김지태 가족이 재산헌납의 뜻을 내비치며 박정희 최고회의의장 측과의 중재를 요청함에, 평소 소신대로 부산일보 문화방송을 제대로 키울 수 있는 재단을 만들고자 박정희의장에게 정부홍보수단으로 언론의 필요성을 강조하여 재산헌납이 진행된 것.”이다. 즉 황용주는 김지태 부탁을 받고 구명운동으로 빈껍데기 적자회사만을 골라, 그럴듯한 명분으로 박정희를 설득한 것이었다. 김지태 자서전에도 비슷한 내용으로 기술하고 있다.







6월20일 헌납기증서에는 부산일보 부산문화방송 한국문화방송과 함께 땅10만평이 포함되어 있지만, 땅은 그 전에 이미 김지태가 국방부에 헌납했던 것임을 나중에야 알았다. 명의이전 과정에서 이중헌납이란 사실이 발견되어 박정희의장이 국방부 앞 헌납으로 정리해 준 사실도 있다.







만약 이를 부당거래라 한다면 강탈이 아니라 오히려 김지태가 박정희의장을 멋지게 속여먹은 것이다. 이미 국방부에 헌납한 땅 10만평을 이중 헌납하는 쇼를 하고, 계속되는 적자에다 부채가 자산의 2~3배에 달하는 부실기업을 떠넘기는 대신, 실속 있는 기업들은 하나도 다치지 않고 7년형까지 면제받았으니 말이다.







게다가 시대가 변한 마당에 재벌이 소유하기에는 부담스러운 언론기업들이었다. 혁명정부에서 이병철의 한일은행까지 국가 환수하는 걸 지켜봤지 않은가?







4.정수장학회가 박근혜 것이라면, MBC도 박근혜에게 돌려줘야.







당시의 부일장학회는 등기 등록된 재단이 아니었으며, 기본재산이나 소유재산이 있지도 않았다. 따라서 부일장학회 강탈이란 애초에 성립불가의 용어다. 부산일보 부산문화방송 한국문화방송 대연동 땅은 부일장학회 소유 혹은 소속이란 건 말짱 거짓말이다. 김지태의 개인 재산이었을 뿐이다.







일개 지역라디오방송이자 적자에 부채초과이던 문화방송을, 5.16장학회가 인수 후 만든 오늘의 부산일보 문화방송으로 지칭하는 건 상식이하의 사기다. 62년 당시 적자투성이의 부산문화방송과 우여곡절 끝에 막 설립한 한국문화방송 모두 일개 지역라디오방송이었다. 당시 라디오도 국내생산이 되지 않던 시절이니 적자를 면할 수 없었음은 상식일 것이다. 이를 오늘의 전국규모 TV,라디오,FM 방송으로 환골탈태한 문화방송과는 비유 대상도 아니다.







부산일보 역시 마찬가지다. 자본금980배의 자본잠식과 윤전기 한대 규모의 일개 지방신문이었으며, 김지태 재산 중 수익사업이 아닌 권력사업으로 영위되고 있을 뿐이었다. 설립이후 계속 적자가 쌓여 부실기업 중의 부실기업이던 그 부산일보와, 오늘 1,000억대의 가치에 이른다는 부산일보 역시 이름만 같을 뿐 완전 환골탈태한 것이다.







부산일보 사옥도 문화방송이 들어 있던 정동건물도 5.16장학재단이 만든 것이다. 그리고 부산일보 문화방송이 장학사업에 조금씩 기여할 수 있게 된 건 70년대 이후부터였다. 이름만 같을 뿐 내용은 서로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왜 보도하지 않고 국민들을 오도하나?







그렇기에 5공에서 전두환이 언론장악을 목적으로 정수장학회(당시 5.16장학회)소유의 문화방송의 지분 70%를 분리하여 정수장학회에서 MBC를 별도로 독립시킨 것이다. 만약 정수장학회가 박근혜 것이라면 전두환이 강탈한 MBC를 박근혜에게 돌려줘야 하는 것이다.







5. ‘과거사위‘에서 정수장학회를 강탈 장물로 만든 것은 한홍구의 능력이 발휘된 것.







첫째, 이 모든 사건 발생의 원인행위인 김지태 구속 범죄죄목을 주제에서 슬그머니 감춰버린 것이다. 이로서 과거사위 발표문은 자체 문장의 연결조차 엉망진창이 될 수밖에 없었다. 김지태 범죄와 재산헌납은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알 일 아닌가? 더구나 김지태 죄목은 오늘날에도 지탄받을 일임이 분명하다.







둘째, 김지태 쪽에서 사람을 넣어 헌납과 구명 요청한 사실을, 마치 박정희의장이 재산 뺏기 위하여 별거 아닌 죄를 씌워 구속하고는 재산헌납을 강요한 것으로 만들었다. 상식으로 생각해도 혁명과업에 정신없을 박정희의장이 뭐가 답답해 감옥에 들어앉은 김지태에게 재산헌납하면 풀어주겠다고 흥정하겠나? 감옥에 들어앉은 사람이 구명 요청한다는 건 상식이다.







셋째, 김지태 전처 처남의 고발을 시작으로 부산현지 실무자가 수사를 착수하고 수사계획을 상신 결재를 득해 진행된 사실을, 마치 박정희의장 지시로 김지태가 구속된 것으로 만들었다. 더구나 그 조사과정에서도 그런 사실은 없었다는 걸 밝혀놓고도 발표문에는 또 엉뚱하게 박정희 지시로 만들었다.







넷째, 문제의 땅 10만평은 이미 국방부로 헌납되었다는 사실 조차도 박정희의장은 모르고 있었다. 이는 박정희 강탈 운운이 원천적으로 성립할 수 없는 물증이다. 그 땅이 문제되자 김지태 스스로 이미 국방부에 헌납했던 것. 이 같은 사실도 박정희의장은 나중에야 알게 되었음을 그 조사보고서에도 나와 있다. 오히려 박정희의장이 김지태 쇼에 속아 5.16장학재단은 빈껍데기 언론3사만 헌납 받은 것이다.







다섯째, 부산일보, 부산문화방송, 한국문화방송은 강탈은커녕 국가든 장학재단이든 헌납자격도 없는 적자에 자본잠식기업이란 사실은 아예 감춰버렸다. 빚을 국가에 떠안기는 헌납이란 성립 불가능한 용어란 걸 한홍구 교수쯤 되는 자가 모를리 있나?











여섯째, 5.16장학회는 막대한 규모의 기금으로 운영되었다는 사실도 아예 빼버렸다.



그러면서 국민들로 하여금 5.16장학회가 마치 부일장학회를 강탈해 운영된 것으로 조작하고. 헌납 언론3사는 상당기간 장학재단에 전혀 기여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조사 당사자인 한홍구가 누구보다 잘 일 아닌가?







일곱째, 헌납당시의 언론3사와 오늘의 부산일보 문화방송은, 이름만 같을 뿐 반환대상 운운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사실도 아예 감춰버렸다. 민중은 주물럭떡이란 예전 운동권시절의 그 자부심이 여전한 모양이다. 허긴 지금까지 모든 언론들까지 이 엉터리 곡조에 장단 맞춰주고, 또 누구 하나 이런 상식이하의 발표문에 문제제기하는 지식인이 없었으니 할 말은 없다만은...







6.정수장학회는 시비대상이 아니며 그런 대상이 될 수도 없다.







노무현정부의 과거사위 조사발표문과 진보 보수 가릴 것 없는 언론들의 시비 기사 대부분을 살펴보며 분명하게 확인한 사실이다. 그들은 정수장학회 자체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오직 박정희 음해와 박근혜 대통령 저지목적인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나라의 역사를 조작하고 국가와 국민에 피해를 안기는 짓도 서슴치 않았고, 지식인의 바탕인 합리성과 논리적인 품위 같은 건 찾아볼 수 없는 수준들이었다.







아무리 복잡하게 떠들어도 정수장학회의 진상은 단순명료하다.







박정희대통령이 불우청소년들의 학업을 돕기 위하여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장학재단이었다. 당초 5.16혁명 1주년기념일에 맞춰 발족 계획이었으나 2달 후인 62.7.14 “재단법인 5.16장학회”로 등기 등록되었다. 정수장학회로 이름을 바꾸게 된 건 82년 5공 정부의 혁명이미지 삭제요청에 따른 것이었을 뿐이다.







설립이후 지금까지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 약4만 명에게 501억의 장학금이 지급되었으며, 매년 약700명의 학생들이 귀한 혜택을 입고 있다. 재산의 사회헌납을 통한 국민통합에 묵묵히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지금 장학금의 원천은 30%지분을 가진 MBC로부터 20억, 100%지분의 부산일보로부터의 8억 기부금과 적립금200억이다.







박근혜가 ‘95~’05년까지 이사장을 맡았으며 지금은 박대통령비서였던 최필립 전 대사가 이사장을 맡아 재단운영을 책임지고 있다. 나머지 4명의 이사는 모두 저명한 고위 공직자 출신들이다. 오늘의 재단적립금 200억은 박근혜 이사장시절 장학자금 재원이 고갈되어가는 현실을 우려하여, 관리비 등을 절약해가며 적금 들어 마련한 것이라 한다.







발표를 보면 정수장학회는 법률상 정한 70%를 넘어 수입금액의 약90%까지 장학사업 등 목적사업에 쓴다. 62년 설립이후 가장 모범적으로 운영되어 온 장학재단인 것이다. 이게 정수장학회의 있는 그대로 진상이다. 도대체 뭐가 문제될 거 있나?







7.노무현정부와 ‘과거사위’의 위선







1) 땅 10만평은 노무현 자신이 돌려줄 수 있었음에도 말이 없었다.







정수장학회 자체를 장물이라며 원주인에게 돌려주라 압박하던 대통령이, 국고로 귀속된 땅 10만평은 제 손으로 바로 처리할 수 있었음에도 정작 이 일에는 아무 언급도 없었다. 더구나 군용지라 대통령 한마디면 바로 돌려 줄 수 있었을 것이다. 혹시 이거 돌려주겠다고 했다간 국민에게 돌멩이 맞을까 봐서 아니었나?







당시 김지태가 5.16장학재단에 헌납한 건 부산일보, 부산문화방송, 문화방송, 그리고 땅 10만평이었다. 이중 땅 10만평은 나중에 이 사실을 안 박정희의장이 부당하다며 군용지로 활용토록 국고로 귀속시켰던 것이다. 그렇게 국가가 강도짓 한 나쁜 장물이라면 노무현대통령 자신의 권한으로 쉽게 돌려 줄 수 있었다. 그런데 왜 법 절차상으로도 거의 불가능한 정수장학재단 돌려주라는 주장만 계속 하는 걸까? 이런 위선이 이해되는가?







2) 김지태와 동일 피해 당사자들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당시 김지태가 언론3사와 땅 10만평을 헌납하게 된 건 다 알다시피 5.16혁명과업의 일환으로 시작한 부정축재 처리법에 따른 것이다. 이로서 피해 입은(?) 재벌이 수십 명이며, 이들로부터 헌납 받은 걸 장물이라 한다면 대표적인 게 이병철회장의 한일은행이며 남해화학들 10여개 달하는 공기업이다. 그렇다면 왜 이들 장물은 돌려주라 하지 않는 것인지 궁금하다.







3) 돌려줄 방법이 없는 걸 돌려주라 한다.







지금 정수장학회가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부산일보, 부산문화방송, 문화방송은 그 당시의 모습과 지금은 천양지차다. 당시 라디오 방송국이 TV 방송국이 되었고, 소규모 적자기업 부산일보가 사세를 대폭 확장한 흑자기업으로 변모한 것(노조의 편집권 독립 후 다시 적자로 반전)은 박대통령 재임 시 국가지원을 음양으로 받은 결과이다. 국가와 국민의 공헌이 담긴 그 회사를 그냥 그대로 일개인에 넘겨줘? 눈 딱 감고 그냥 주는 게 정의라고?







4) 당시 부일장학재단은 비영리법인이었다?







그렇다면, 비영리법인 소속재산을 후손에게 돌려주는 건 법적으로는 물론 현실적으로 상식적으로 다 불가능하다. 이를 모를 리 없는 변호사들이 그런 주장을 한다







5) 장물이라 한다면 김지태의 땅 자체가 오히려 장물이었던 셈이다.







대연동 땅(농지) 22,000평은 취득 및 소유자격이 없는 김지태가 자유당시절 국방위소속 국회의원일 때 편법 탈법으로 취득 소유한 것이고, 울산 땅 20,000평은 일제시대 동양척식회사에서 특혜로 불하받은 것이다. 기업들은 일제시대 군수물자 생산 납품으로 돈 벌었고. 이로서 김지태는 5.16 당시 10대 기업에 속했고, 아마 한강이남에서는 가장 큰 기업군을 거느린 재벌이었을 것이다.



















last modified date is 2012-10-24 14:54:37





메모





이태봉



2012-10-24

14:56:16



순진하시다는... ^____^









신필기



2012-10-24

14:57:21



저런~ 태봉님 win!!!







오승영



2012-10-24

16:50:06



옆동네에서 글 하나 퍼옵니다.



님이 균형감각을 위해 읽어보라고 한 링크글을 읽어보니 참 어처구니가 없네요.

그걸 글이라고 쓴 블로거나 그걸 추천하는 님이나 사리판단 능력이 없는 것 같아 링크글을 반박해 드립니다.



링크글을 쓴 블로거는 박정희의 김지태 재산 강탈에 대해 “쿠테타이후 정상적인 국가가 아닌 상황이 아니었고, 지금의 잣대로 평가하기엔 무리가 있다”(‘정상적인 국가가 아닌 상황이 아니었고’는 ‘정상적인 국가가 아닌 상황이었고’의 오기로 보임)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블로거는 5.16을 쿠데타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쿠데타는 국헌을 문란케 한 불법행위입니다. 불법으로 정상적인 국가가 아닌 상황을 만들어놓고 강탈을 자행한 것에 대해서 정상적 국가 상황이 아니어서 강탈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남의 집에 침입하여 주인을 죽이고 보석을 훔친 도둑이 보석의 임자가 없어서 가져갔으니 아무 문제없다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정상적인 국가 상황이 아니라고 해도 강탈이 정당화될 수는 없으며, 정수장학회가 강제헌납된 것이라는 2012. 2. 24자 법원 판결은 지금의 잣대로도 불법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 재판부는 강탈의 근거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제시했습니다.



▲당시 중앙정보부(중정) 부산지부장이 연행된 김씨 회사 직원들에게 권총을 차고 접근해 ‘군이 목숨 걸고 혁명을 했으니 국민 재산은 우리 것’이라고 겁을 준 점



▲중정 부산지부 수사과장이 김씨 측근에게 ‘살고 싶으면 재산을 헌납하라’고 강요한 점



▲군 검찰이 일본에서 귀국한 김씨를 관세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가 기부승낙서에 날인하자 공소를 취소한 점



링크글을 쓴 블로거는 “김지태는 그냥 권모술수에 능하고 재주가 뛰어난 사람으로. . . 일제시대에는 일본에, 자유당 시절에는 민의원까지 하면서 자유당에, 유신정권에는 유신에....그냥 그런 인간이다”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sescia님이 인용한 위키백과에는 김지태가 일제나 유신정권에 협력했다는 말은 일언반구도 없고 자유당 시절에는 1956년 사사오입 개헌에 반대하여 자유당으로부터 제명당했으며 이후 복당했으나 57년 낙선후 정계은퇴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60년 3.15부정선거 당시 모든 언론이 침묵할 때 규탄 시위를 현장중계했고 4.19때는 그의 소유인 부산일보가 김주열군의 참혹한 주검 사진을 최초로 보도하여 4.19의 도화선이 되었다는 점으로 볼 때 그는 자유당의 부정부패에 항거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블로거는 김지태가 박정희 정권으로부터 각종 혜택을 입었다는 근거로



1) 김지태의 삼화그룹이 혁명정부에 1,800만불 해외차관도 제공받아 70년대 국내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했고, 매년 수출탑으로 훈장까지 받았으며



2) 4.19.당시 시위대가 부정축재자라며 김지태 집으로 몰려가자 부산 군수사령관이던 박정희가 참모였던 박태준을 시켜 시위대를 막아주었고



3) 65년 박정희가 리틀 미스 유니버스로 뽑힌 김지태의 딸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는 점을 들고 있습니다.



이 근거의 출처가 어딘지 검색을 해보니 월간조선 이번 11월호더군요.

http://blog.daum.net/mchjun/4314



그런데 월간조선은 명예훼손으로 피소 당하지 않기 위해 간간히 김지태 유족의 반론도 언급하고 있는데 블로거는 반론 부분은 쏙 빼놓고 일방적인 주장만 적었습니다.



위 근거를 반박하면,



1)

김지태가 1800만불의 해외차관과 관치경제의 특혜를 받아 성장했다는 주장에 대해 김지태의 5남인 김영철은 “박정희도 사람인데 남의 재산을 빼앗아놓고, 자기도 미안할 것 아닙니까? 그래서 아버지에게 여러 가지로 (특혜를) 주겠다고 했고, 정유회사도 주겠다고 했어요. 박정희 정권 때 재벌들 유착하던 시절이 있었잖아요. 그런데 아버지는 ‘노름판에 돈 대 줄 일 없다’며 일절 거절하셨어요.”라고 반박했습니다.



월간조선은 공식자료나 문서도 아닌 전 중앙정보부 고위관료의 말을 빌어 김지태가 해외차관 1800만불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 고위관료가 누군지는 전혀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월간조선이 그간 익명의 관리를 빌어 소설을 자주 써온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월간조선의 보도는 신뢰하기 어렵습니다.



또 70년 11월 수출의 날 기념식에서 찍힌 박정희와 김지태의 사진에 대해서도 김지태 아들은 아버지가 매년 수출의 날 기념식에 부사장을 보냈더니 중앙정보부가 방방 뛰는 바람에 아버지가 할 수 없이 처음 나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2)

박정희가 박태준을 시켜 김지태의 집을 시위대로부터 막아주었다는 주장 역시 월간조선은 취재도중 들은 일화라고만 말할 뿐 누구로부터 들었는지 전혀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1960년 군복무자라면 지금 70대 중반쯤 되었을텐데 이들을 어떻게 만났는지, 4.19 당시에 경찰이 아닌 군이, 그것도 군수기지 사령관이 마음대로 병력을 이동할 수 있었는지, 또 52년 전에 김지태의 집이 있었던 범냇골 교통부의 삼화고무 공장 부근은 오래 전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완전 환골탈태했는데 당시 주민을 만났다면 어떻게 만났는지 의문스럽습니다. 월간조선 기자는 기사작성의 ABC도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기사가 소설이 되지요.



월간조선의 이 기사를 보고 박근혜는 어제 기자회견에서 당시 김지태가 부정축재자기 때문에 김지태 집 앞에 시민들이 몰려와 아우성을 쳤다고 말했는데, 이에 대해 김지태 유족은 “1961년 4월 19일 학교에서 사회가 혼란하니까 하루를 쉬게 했다, 많은 사람들이 트럭으로 노래를 부르면서 마산 쪽으로 저희 집 앞 도로를 지나간 것을 생생히 본 것이 어제 같다”고 밝히며 “박 후보가 집 앞 시민들이 데모했다는 있을 수 없는 허무맹랑한 말을 했다”고 조목조목 반박했습니다.

http://www.bucheon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21059



또 박근혜는 김지태가 4.19 후 장면정부로터 부정부패자로 처벌 받았다고 했는데, 김지태 유족은 “(아버지 김지태는)자유당 때부터 독재정권의 탄압을 받았다”면서 “4. 19 뒤에도 부정축재는커녕 장면 정부로부터 표창까지 받았다”고 반박하면서 ‘사자명예훼손죄’로 박근혜를 고소하겠다고 했습니다.



3)

블로거는 65년 박정희가 리틀 미스 유니버스로 뽑힌 김지태의 딸과 함께 청와대에서 찍은 사진을 제시하면서 박정희와 김지태가 원수지간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김지태가 딸을 데리고 청와대를 방문한 것도 아니고 딸이 리틀 미스유니버스로 뽑혀서 간 건데 , 그걸 재산 강탈이 아닌 근거라고 주장하는 것은 정말 궁색하기 그지없습니다. 멀쩡한 사람도 죽이는 서슬퍼런 독재정권인데 딸을 초청했는데 안보낼 수 있었겠습니까?



4)

링크글의 블로거는 82년 김지태가 사망하고 난 뒤 자식들이 경영을 잘못해서 삼화가 망했다고 하는데 삼화는 79년 부도가 나서 망했습니다. 그것도 수출 드라이브 정책을 밀어붙이던 박정희가 종합상사를 만들라고 끊임없이 요구를 하는 바람에 부도난 업체들을 인수해서 억지로 만들었다가 결국 완전히 부도나고 말았습니다.



5)

블로거는 김지태 땅 “10만평은 이미 국방부에서 가져가서 이미 국가꺼”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김지태는 그 땅을 헌납한 적이 없습니다. 62년 6월 박정희측은 김지태를 가둬 놓고 협박하여 작성한 기부승낙서에는 부산일보와 문화방송마을 기부하는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63년 10월 21일 김지태는 김성은 국방장관 명의로 된 ‘감사의 공문’을 받습니다.



“1962년 4월11일자 구 부일장학회 이사진 결의에 의거 정부에 기부하신 부산시 동래구 우동 1127번지의 10 외 246필지 지적 9만9451평을 5·16장학회 이사장 이관구씨로부터 우선 양도 받아 등기 이전 중에 있습니다. 위 재산은 군사상 지극히 긴요한 영구시설 부지로 사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와 같이 막대한 사재를 기부하여 주신 귀하께 심심한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김지태가 5.16장학회(정수장학회의 전신)에 기부하지도 않은 땅 10만평을 5.16장학회가 국방부에 기부한 것입니다. 그런데 국방부가 거론한 4월11일에 부일장학회 이사진은 기부를 결의한 바 없고, 특히 그날 김씨는 국내가 아닌 일본에 있었다는 것. 김씨의 유가족은 그 증거로 같은해 4월2일 일본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진단서를 제시했습니다.



5.16 후 초대법무장관을 지냈으며 박정희로부터 5.16장학회 설립 명령을 받고 김지태로부터 기부승낙서를 받았다는 고원증 장군은 2009년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5.16장학회 30년사에 장학회가 국방부에 김지태의 땅 10만평을 무상양여했다는 기록에 대해 “나는 잘 모르겠다. 전혀 기억이 없다. 내가 장학재단을 설립했을 때 땅은 없었다. 분명히 말하건대 기본재산은 부산일보와 부산문화방송, 한국문화방송 등 3사뿐이었다.”라고 증언했습니다. 결국 박정희는 김지태에게서 땅 10만평도 강탈했습니다.

http://shindonga.donga.com/docs/magazine/print.php?mgz_part=shin&n=200408250500004



끝으로 **** ***님의 균형감각을 위해 신동아가 2009년에 게재한 김지태 미망인과의 인터뷰 내용을 읽어 볼 것을 권합니다. 혁명자금 안준다는 이유로 박정희 군사정권이 어떻게 김지태를 부정축재자로 몰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01&articleId=2160134



정체불명의 익명을 이용하여 소설을 쓴 월간조선과는 달리 신동아는 관계자들의 실명 증언과 기록을 근거로 김지태 재산이 강탈당했음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일례로 신동아는 김지태의 부산일보와 문화방송 주식 기부 승낙서 사본을 입수하여 군사정부가 인감을 위조하고 작성날짜까지 ‘二十日’을 ‘三十日’로 조작하여 강탈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꼭 읽어보세요.

http://shindonga.donga.com/docs/magazine/print.php?mgz_part=shin&n=200408250500004









오승영



2012-10-24

16:55:58



추가로 하나 더...



김지태는 동척에 입사해서 근무한지 5년만에 폐결핵에 걸립니다. 폐결핵은 전염병이기 때문에 퇴사를 하게 됩니다. 퇴사하면서 땅을 받는데 친일파들처럼 공짜로불하 받은게 아니고 10년 상환 조건으로 받습니다. 말하자면 구입한 건데,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폐결핵 걸린 직원에게 도움을 주려는 차원, 이릁테면 복지 차원에서 혜택을 주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의 삶에 대해 친일을 의심할 수는 있지만 아직은 어떤 근거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과거사위원회는 친일파 인명사전을 편찬할 때 철저하게 관련자료와 증거에 입각해서 친일파를 결정했습니다.



일왕에 대한 박정희의 혈서 충성 맹세처럼 확실한 친일 증거가 발견되면 김지태를 친일파로 규정하면 됩니다. 그러나 아직은 친일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김지태를 친일파라고 비난하고 싶으시면 무턱대고 비난만 할 게 아니라 그에 대한 친일 증거를 열심히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한마디 더 하자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인터뷰인가에서 그런말 한 적 있죠.

정수장학회 일을 해결해 보고자 했는데 민주적으로 하려고 하니 어려움이 너무 많다고요...

뺏는거야 총칼로 뺏으면 끝이었으니까요.

돌려주라고 대통령 한마디 하면 되는 세상은 그 분이 가장 싫어했던 세상이지요.

뭐 요즘은 그것도 가능할 거 같긴 한데...







구현회



2012-10-24

17:10:46



그네는 정말 좋겠다는. 할짝할짝...... ㅉㅉㅉ.







고동윤



2012-10-24

17:13:40



오승영님 글을 보니, 김혜규님은 이 글을 당장 내리고 사과하셔야 마땅한 것 같지만,

오승영님 글의 훌륭한 내용을 감안해서 원글은 그대로 두시되(기록 비교용),

잘못된 글을 올린 데 대해 사과하셔야 하겠네요.



김혜규님도 지금 일단 박근혜와 마찬가지로 사자 명예훼손죄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셨다는 건 아실테지요?







김혜규



2012-10-24

21:22:26



재판부에 가봐야 알겠지요...



그런데.. 오승영씨가 쓴 글이 사실인가요? 일단 제일 마지막에 있는 10만평 부분은 완전히 사실과 배치되는데..



1) 일단 부일장학회라는 법인이 없었으므로 원래 이사의 결의가 있을 수 없고



2) 김지태가 차명으로 보유하고 있던 땅들을 군과 5.16 장학회에 모두 헌납 의사를 밝혔던 것으로 본문의 인터뷰 하시는 분은 이야기 하고 있군요.



제가 본문을 올렸다가 지우고 정수장학회 관련 인터뷰로 대체한 것은..



출처가 분명한 언론 기사를 옮겼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사자명예훼손죄가 될까요? 어쨌든 오승영님의 글과 본글 모두 놔두는 것에 찬성합니다.



- - - -



블로거는 김지태 땅 “10만평은 이미 국방부에서 가져가서 이미 국가꺼”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김지태는 그 땅을 헌납한 적이 없습니다. 62년 6월 박정희측은 김지태를 가둬 놓고 협박하여 작성한 기부승낙서에는 부산일보와 문화방송마을 기부하는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63년 10월 21일 김지태는 김성은 국방장관 명의로 된 ‘감사의 공문’을 받습니다.



“1962년 4월11일자 구 부일장학회 이사진 결의에 의거 정부에 기부하신 부산시 동래구 우동 1127번지의 10 외 246필지 지적 9만9451평을 5·16장학회 이사장 이관구씨로부터 우선 양도 받아 등기 이전 중에 있습니다. 위 재산은 군사상 지극히 긴요한 영구시설 부지로 사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와 같이 막대한 사재를 기부하여 주신 귀하께 심심한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김지태가 5.16장학회(정수장학회의 전신)에 기부하지도 않은 땅 10만평을 5.16장학회가 국방부에 기부한 것입니다. 그런데 국방부가 거론한 4월11일에 부일장학회 이사진은 기부를 결의한 바 없고, 특히 그날 김씨는 국내가 아닌 일본에 있었다는 것. 김씨의 유가족은 그 증거로 같은해 4월2일 일본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진단서를 제시했습니다.



5.16 후 초대법무장관을 지냈으며 박정희로부터 5.16장학회 설립 명령을 받고 김지태로부터 기부승낙서를 받았다는 고원증 장군은 2009년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5.16장학회 30년사에 장학회가 국방부에 김지태의 땅 10만평을 무상양여했다는 기록에 대해 “나는 잘 모르겠다. 전혀 기억이 없다. 내가 장학재단을 설립했을 때 땅은 없었다. 분명히 말하건대 기본재산은 부산일보와 부산문화방송, 한국문화방송 등 3사뿐이었다.”라고 증언했습니다. 결국 박정희는 김지태에게서 땅 10만평도 강탈했습니다. [del]







김혜규



2012-10-24

21:33:47



그리고 오승영님의 반론 번호와 제가 올린 본글의 주장은 매치가 안되는군요. [del]







박태희



2012-10-24

22:41:56



응? 딴 나라에서 오신 분인가요?

법원판결 함 찾아보셔야....







김혜규



2012-10-24

23:22:17



2005년 조사와 1심 판결 중이고 항소심이 계속 중이지요.. [del]







오승영



2012-10-25

00:51:28



제가 가져온 글은 김혜규님 글에 정확히 매치되는 글은 아닙니다.

다른 분의 글에 대한 반론이니까요.

하지만 어느 정도 전체적인 내용에서 접근가능한 글인거 같아서 전부를 가져왔구요,

원래글을 쓰신 분 글에서 일부만을 취사선택하지는 않았습니다.



1) 장학재단 등도 보통 사단법인 등의 형태를 갖추기 때문에 이사진을 갖출 수 있습니다.

단순히 기업 등의 법인만이 이사진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게다가 장학회가 일개 개인의 소유물이 아닌데 의사결정은 어떻게 할까요 ?

대부분 장학재단이 이사진을 가지고 있구요.

장학회가 법인이 아니라 이사진이 없었다는 건 어디서 확인할 수 있을까요 ?

현재의 정수장확회도 이사진을 가지고 있는데...



2) 박정희 밑에서 자리 차지하던 사람이 한 단순한 인터뷰, 정확한 근거나 자료를 제시하지 않고 본인 기억만을 가지고 한 인터뷰, 특히 개인적으로는 전혀 중립적이지 않은 종편에서 한 인터뷰를 출처가 분명한 언론기사를 옮긴거라고 표현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출처가 분명한 언론기사는 그 근거와 자료를 같이 제시해야 할 것입니다.

게다가 인터뷰한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정확한 자료보다는 본인의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당시 왕과 같은 지위에 있던 박정희를 속여서 빛더미 기업을 그냥 넘긴거다 ? 그리고 박정희가 그걸 그냥 넘어갔다 ?

스스로 헌납했다고 인터뷰한 사람이 주장하는 부분 역시 그렇지 않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게다가 서류 상 위조된 부분까지 있습니다.

본인 스스로도 말하고 있습니다.

한일은행 등은 왜 달라고 하지 않느냐 ?

그걸 박정희가 개인적으로 가져갔습니까 ?

국가에 헌납하기로 한 부분이 맞다면 국가에 헌납해야지 왜 개인이 가져가느냐는 겁니다.

게다가 바로 이어서 아주 작았던 문화방송 등을 박정희 정권에서 음으로 양으로 키웠으니까 그건 박근혜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게 배운 사람이 할 말인지도 의심스럽습니다.

큰 기업 대놓고 뺏으면 좀 그러니까 작은 기업 뺏어서 자기 권력을 이용해 엄청나게 키웠다...

게다가 대놓고 문화방송은 박근혜 꺼다...

전혀 상식적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오승영



2012-10-25

00:58:17



“1962년 4월11일자 구 부일장학회 이사진 결의에 의거 정부에 기부하신 부산시 동래구 우동 1127번지의 10 외 246필지 지적 9만9451평을 5·16장학회 이사장 이관구씨로부터 우선 양도 받아 등기 이전 중에 있습니다. 위 재산은 군사상 지극히 긴요한 영구시설 부지로 사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와 같이 막대한 사재를 기부하여 주신 귀하께 심심한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국방부는 이사진 결의도 없이 어떻게 땅을 가져가게 되었을까요 ?

이사진 결의에 따라 가져갔다고 하는 것은 국방부입니다.

김혜규님 말대로 이사진이 없었다면 개인땅이었을텐데 무엇을 근거로 가져갔을까요 ?

땅에 대해서는 헌납하겠다는 근거도 없고 김지태씨도 안 줬다고 하는데요.

그리고 당시 총괄했던 사람도 헌납받은 적 없다고 하구요.

앞뒤가 안 맞지 않나요 ?

그럼에도 불구하고 땅은 국방부 소유로 되었다가 해당 장학회 소유로 넘어갔습니다.

최소한 땅은 빚더미는 아니었겠죠.







김혜규



2012-10-25

09:46:13



1) 부일장학회는 법인이 아니라 부산일보가 행한 장학 사업의 다른 이름이었을 뿐이었습니다. 당연히 이사가 없습니다.



2) 땅은 장학회로 잠시 등기 되어 있다가 국방부로 넘어 갔습니다. 최종적으로 국방부에 있었습니다.



3) 유족 측 주장과 상대방 측 인터뷰 모두 보시고 판단하시기를 바랍니다.



4) 그리고 정수장학회가 박근혜의 사유재산으로 보는 것은 오마이뉴스와 경향신문도 잘못된 사실 적시라고 한 바 있습니다. 삼성과 현대가 사회에 환원한 재산을 노무현 정권이 가져 간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또 박원순의 아름다운 재단에 기부된 돈이 박원순의 사유재산은 아니지 않습니까? 같은 이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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