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음악의 상처
지난 1년 반 동안 정체 모를 질병에 시달려 왔다.
사진에서 보듯이 내 왼손 검지 손톱에 이상이 생긴 것이다.
얼핏 보기엔 손발톱 무좀처럼 보이지만, ‘정체 모를’이란
단서를 붙인 건 바로 이게 손발톱 무좀이 아니기 때문이며
또한 현대 의학도 이 증세를 명확하게 규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처음 증세가 나타나자 나 역시 손발톱 무좀을 의심하고
아주 부끄러운 마음으로 피부과를 노크했다.
군대 3년 있으면서 그 흔한 무좀 한번 안 걸린 내가
아니 손발톱 무좀이라니!!
(나는 열 발가락 사이가 시원시원하게 벌어져 있어
평생 무좀이란 걸 모르고 살아 왔다)
의사는 일차적으로 조갑진균증(이게 바로 손발톱무좀이란다)이
의심되기는 하나, 아닌 것 같기도 하다며 고개를 갸우뚱-
치료약을 먹으면 조갑진균증은 쉽게 치료가 되기 때문에
약을 먹어 보고 호전되면 맞는 거고 호전되지 않으면
조갑진균증이 아니라는 판단을 내릴 수 있다나…
세상에 별 희한한 처방을 다 봤다.
위염이 의심되니 일단 배 갈라 보고
아니면 덮어 버리면 그만이지- 뭐, 이런 건가?
게다가 조갑진균증 치료약은 간에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자칫 무좀균 때려 잡다가 간이 상할 수도 있기에
투약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아주 모순된 언급도 잊지 않았다.
따라서 먼저 간 검사…이상무!
내 간이 아주 싱싱하다는 의외의 검사 소견이
손톱과 관련된 1년 반 중에서 받은 유일한 위안이었다.
하여, 먹는 약 투약! 일주일간 투약, 3주 쉬었다 다시 1주일 투약-
이런 식으로 1달을 먹고 3달 뒤에 또 투약...이렇게 치료하면 웬만한 경우 완치-
(바르는 치료약은 상대적으로 치료효과가 미진하여
먹는 약이 확실하나 문제는 간에 부담이 된다는 점)
그러나, 내 손톱은 말 그대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간에 부담이 가는 약을 그렇게 먹었고, 따라서 간이 염려되어
술한잔 안하고 3달을 견뎌왔건만 손톱은 호전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다음 수순은 난치병을 겪는 일반 환자와 비슷한 길을 걷게 된다.
병원을 바꾸는 것이다.
바꿨다.
그대로...
또 바꿨다.
그대로...
거 참---
한결 같은 대답…
(손톱의 두께도 아주 뭉툭해졌다. 가끔 아리다)
마침내 대학병원으로 갔다.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검사하고 치료하자!
먼저 문제의 손톱을 긁어 내어 세균 배양 실험을 했다.
3개월 동안 긁어 낸 손톱을 일정한 조건하에 배양실험을 해서
조갑진균(무좀 곰팡이균)이 검출되면 그 증세가 맞는 것이란다.
그런데 문제는 최소한 3개월이 넘게 배양을 해야 하며,
실제 무좀 곰팡이균이 있더라도 배양에 성공하는 경우는 50%를
넘기가 어렵다고 한다.
이래 저래 심증은 가나 물증이 없으니… 검사하는 수 밖에!
물론 그 3달 동안에도 만약을 위해 투약을 멈추지 말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1주 투약, 3주 잠복 후, 1주 투약 …3개월 투약이라는
동일한 처방을 받았다.
손끝이 이렇게 된 게 뭐 대수냐 싶겠지만, 정말, 대수다!
별 거 아니다 싶겠지만, 별거다!
손끝 하나에 가시 하나만 박혀도 꼼짝을 못한다.
게다가 손끝은 촉각을 위해 많은 신경세포가 밀집한 곳이다.
그 손가락이 손톱 이상 하나로 촉각 기능이 저하된다면, 대수가 아니겠는가?
게다가 검지의 또 다른 이름인 집게 손가락으로써의 기능을 완벽하게 수행할 수 없게 된다.
집게 손가락을 못 쓰니 엄지도 덩달아 무용지물…
게다가 미관상으로도 결코 떳떳하지 못하니, 자신감도 점점 결핍되어 가고
‘꼬방동네 사람들’의 ‘검은 장갑’처럼 손이라도 가리고 싶을 지경이었다.
신체발부 수지부모 운운하는 옛 얘기가 허투로 이어져 온 게 아니란 걸 실감하게 되었다.
그 지긋지긋한 세균 배양 3개월이 지났으나,
예상대로, 무좀 곰팡이 균은 검출되지 않았다.
의사도 역시 도리질만을 거듭할 뿐…
“처음부터 조갑진균증은 아닌 거 같았는데 역시…”
아닌 걸 왜 간에 부담까지 주며 약을 먹이고 기다리게 만든 건지, 억장이 무너졌다.
“선생님, 이거 무슨 수가 없나요?”
“불편하신가요?”
“예, 조금, 때론 많이 불편합니다”
“에~ 이게 무슨 병인지 알아야 고쳐도 고쳐주는데…
당최 왜 이런지 모르겠으니… 그냥 불편하신대로 사셔야지 달리 방도가 없겠습니다.”
하긴, 손이 하나 없어도 사는 데는 지장이 없다. 의사 얘기는 그거다.
하여, 확대방지 및 미관을 위해 네일락커(로O록스 류)를 바르는 것으로,
눈가리고 아옹을 했다.
3개월에 한번씩(여긴 주로 3자 단위다) 와서 증상 관찰은
게을리 하지 말라는 엄한 처방(!) 역시 잊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병원에 갔을 때,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현대의학도 규명하지 못한 이 난치, 혹은 불치병에 대해
내 나름의 진단을 내렸다.
“이게 아무리 약 먹고 치료해도 호전이 안되면 손발톱 무좀이 아니란 얘긴데…
송구하옵니다만, 제 나름대로 소견을 말씀 드릴까 합니다(장금이 처럼 진지하게^^).
제가 하나 의심 가는 게 있어서 그럽니다.
에- 그러니까 설라무네…제가 LP로 음악 듣는 걸 즐겨합니다.
그런데 LP를 구할려면, 요즘 LP 안 만들어 내잖아요~
그래서 전부 중고로만,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데가 있는데
거기 가면 전세계에서 흘러 들어온 LP들이 있습니다.
근데 이게 어느 놈이 만지던 건지, 어떤 나라에서 어떤 연유로
어떤 역정을 거쳐 오게 된 건지 알게 뭡니까? 게중에는 정말
아다라시도 있는 가 하면 정말 찢어지고 쟈켓에 곰팡이가
덕지덕지 붙어 있는 놈도 있습니다. 게중에는 진짜 물에 불어
덕지덕지 늘어 붙은 쟈켓도 있고, 시골길을 3박4일로 먼지나는 버스 타고
달려 온 것처럼 먼지가 꼬깃꼬깃 끼어 있는 놈도 있고,
아! 물론 겉비닐 않뜯긴 것도 가물에 콩나듯 있죠, 암튼 별 놈이 다 있습니다.
쟈켓만 그러냐? 이게 판을 꺼내 보면 아예 드러내 놓고 곰팡이 낀 놈 하며,
세계각국의 먼지, 그리고 때론 물 건너왔다는 걸 증명해 보이는
금발, 은발…즉 머리카락이 나오는 것도 아주 예삽니다.
그러니까 아주 청결하지는 못하다는 얘기지요.
그래도 취민 걸 어쩝니까?
(엘피를 넘기는 건 생각보다 고된 노동이다. 그 노동을 온전히 왼손 검지가 떠맡았다. 그리곤 탈이 났나 보다)
근데, 제가 아시다시피 왼손잡이 입니다.
그 먼지구덩이 LP샵에 가면 이렇게, 이렇게(위의 그림처럼 손동작을 해 보이며)
검지손가락으로 한장 한장씩 넘기지요.
가장 접촉이 많은 부위가 바로 요 문제의 검지손가락입니다.
하여, 이제 의사선생님이 도통 모르시겠다니 제가 드는 생각은
이 손톱이 바로 그 LP에 묻어 있는 정체불명의 곰팡이균으로부터
감염된 것은 아닌지 추측이 되서, 이렇게 두서 없이 말씀을 드렸습니다”
긴긴 얘기를 말없이 듣기만 하던 존경하는 의사선생님은
순간, 탁-
무릎 치는 소리와 함께
“아니, 그걸 왜 이제 말합니까? 네, 상당히 타당한 추측입니다”
“앗! (반가와라) 그럼 방법이 있나요?”
“아니, 방법이 있다는 건 아니고…
그 LP에 붙어 있던 곰팡이균이 무슨 균인지
알 수가 없으니… LP를 다 수거해서 조사해 볼 수도 없고…
게다가 다른 손가락으로 번지지 않은 걸로 봐서 전염성은 없으니
그냥 재수 없다 생각하고 그대로 사세요~”
그걸로 끝이다. 1년 반 넘는 나의 투병기는,
현대의학도 규명해 내지 못한 나의 난치병 투병기는,
그렇게 나의 자가진단으로 결론을 맺었다.
결국은 음악이 내게 준 상처였다.
그렇게 음악은, 때론, 현대 의학도
꼼짝 못하게 만드는 상처를 준다.
음악의 상처인 것이다.
II- 상처의 음악
사랑을 잃는 것은
호명할 대상을 잃는 것이다.
수지, 연정, 상아, 희숙...
눈 뜨면 부르고, 눈감아도 부르던 대상이
눈 앞에서, 입 밖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하여, 명사로 불려지던 사랑의 대상이
멀어진 시공간속의 “그녀”라는 단어로 대체된다.
사랑을 잃는 것은, 그러므로 또한,
명사로 존재하던 대상이 대명사화해 버리는 것이다.
살아 숨쉬던 명사적 존재들이
단어 속으로 숨어든 대명사로 바뀌는 것은, 아픔이다.
그 뜨거울 때
수지, 연정, 상아, 희숙이였던 명사적 존재들이
야멸차게 3인칭의 객관화된 ‘그녀’로 바뀌는 아픔은
사랑을 앓아본 모든 인류의 아픔이기도 하다.
가슴 속 누구나 ‘그녀’를 품고 평생을 살아갈지도 모른다.
하여 사랑은, 평생의 아픔이 되기도 한다.
***
최근 일본 로컬반으로 므라빈스키 지휘의
차이콥스키 4,5,6번 교향곡이 새로 발매되었다.
내가 아는 한 이 음반의 자켓은 모두 3종이다.
이번에 나온 것이 초반 LP의 커버 디자인을 그대로 옮긴 것(바로 위).
그리고 CD 시대를 맞아 새롭게 디자인 된 이게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
(너무도 익숙한 CD일 것이다. 므라빈스키의 차이콥스키 4,5,6이 담긴 CD)
그리고 그 중간 단계에 표지가 바뀌어 나온 LP의
커버가 바로 이것이다.
내게 있어서 므라빈스키의 차이콥스키 교향곡은
반드시 이 음반으로 들어야만 하고,
이 음반만이 온전하게 므라빈스키의 차이콥스키로 인정이 된다.
20여년전 구입했던 이 LP의 므라빈스키반은
지금 내가 갖고 있지 않다. 이 음반의 행방을 찾기 위해선
15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만 한다.
므라빈스키의 차이콥스키 5번을 무척 좋아하던
A에게 예의 그 LP 5, 6번을 남겨(넘겨) 주고
나는, 군대에 갔다.
그리고 다시 3년이 지나 군대에서 돌아왔을 때,
A는 더 이상 내게 존재하지 않는 3인칭이 되고 말았다.
당연히 3인칭의 손에 들려 있을 므라빈스키의
5, 6번도 내게는 남아있지 않게 된다.
그렇게, 모든 게 상실되었다.
(자켓의 그림은 러시아의 민화이다. 출처는 알 수 없으나 무슨 왕자 같기도 하고 군인 같기도 하다. 출정식을 알리는 나팔이라도 울리는 걸로 봐서 먼길을 떠나나 보다. 그러고 보니 나의 모습이다. 왕자이거나 군인- A에게 나는 왕자였었고, 그리고 먼길, 3년을 떠나는 군인이었으니까)
*******
이미 딱딱한 손톱처럼 굳어진 옛기억을 되살리며
그 당시 내 상태가 어땠는지, 내 상처가 어땠는지 말하는
부질없는 짓은 하지 않겠다.
그러나,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A와 므라빈스키의
차이콥스키 5, 6번(이하 므차5,6이라 표기)을 떠올리기 위해
새로이 CD를 사서 들었을 때
“이건 아니다!”라는 말을 내뱉었던 것이
단지 LP와 CD의 음질의 차이 때문에 한 말이 아니었음만은, 분명하다.
그렇다, 그건 아니다.
그런데, 과연 그렇다면, LP와 CD의 음질의 차이가 아니면 무엇이
아니란 말인가?
나는 그것을 바로 LP와 CD의 자켓 디자인의 차이에서 찾는다.
동일한 므차5,6의 선율이지만 그것을 담고 있는 물적 실체인
LP와 CD의 형태의 다름에서 찾는다.
바로 그 디자인의 자켓을 함께 바라보며 함께 듣던 기억에서 찾는다.
(역시 러시아 민화가 그려진 므차4의 표지. 왠 여인네가 혼자 있다. 환상적인 분위기. 우리네의 봉황 같은 날짐승이 떠나간 왕자/군인의 소식을 전하는 전령처럼 다가온다. 하지만 그 환상적인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짙은 우수가 깔려 있다. 그때의 A처럼...
우연인지 필연인지 이것만은 A에게 주지 않았다. 지금도 내 음악실에 남아 있다(그래서 상대적으로 5,6번보다 더 낡았다). 그건 또 무슨 얘기일까? 그림 속 공주/A만은 내가 영원히 갖고 있으려고, 이리 될 줄 알고, 그 때 주지 않았던 것일까?)
A와의 연관 때문이든 아니든
므차5,6은 반드시 저 거무튀튀 커버의 LP로만 들어야만할 일이다.
그래서 찾았다.
개똥마냥, 찾으니까 없었다.
눈에 불을 켜진 않았지만,
물 건너 산 건너 곰팡이를 머금고, 어느 이국 소녀의
머리칼인지를 음골을 따라 들러 붙이고 있는
므차56을 먼지구덩이 중고음반점에서 모두 찾아낸 건 2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 2년의 시간 동안 나의 왼손 검지는, 무척, 바빴다!
(므차6- 이번엔 돌아온 왕자/군인인가?
떠날 때의 그 떠들썩함은 이번엔 보이지 않는다.
어느 고적한 숲속 바위를 뒤편으로 이제 막 당도한
그의 표정은 당황한 기색이 보인다. 공주는 어디로 갔는가?
상봉터미널에 내린 예비역 병장도 그랬었다...
그런데 A는 지금도 이 므차56을 갖고 있을까?)
므차456이 모두 되돌아 온 날 순서대로 그것들을 들으며,
LP에 숙명적으로 따라 다니는 정전기처럼
따끔따끔 아픈 기억들이 되살아나는 것 또한
음악이 주는 숙명이 아닐지.
언어가 끝나는 곳에서 음악이 시작된다고 했다.
그러나, 음악이 끝나는 곳에선
다시 언어가 시작된다.
그 음악에 대한 언어.
그 언어는 음악으로부터 비롯된
이야기이다. 그것이 아픈 기억일 때
음악은 상처가 된다.
그 상처가 때론 평생을 간다,
지금 듣는 므차456과 함께,
앞으로 들을 므차456과 함께.
그리고 그 상처는 상흔을 남기기도 한다.
그 상흔이 지금 내 손가락 위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