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아시겠지만, 현문명의 멸망을 향해서, 인류가 가장 가까이 다가갔던 경험은 바로 1962년의 쿠바 미사일 사태였습니다.
소련이 쿠바에 미국을 바로 겨냥한 미사일 기지를 건설하려고 하자, 케네디는 이것을 소련의 무력시위로 간주, 조건없는 철수를 주장하며 불응시에는 세계 3차대전도 불사하겠다고 경고합니다. 그러면 바로 핵전쟁이 일어나는 상황이었죠.
당연히 후르시초프가 서기장으로 있던 소련은 미국의 경고를 무시하고 쿠바로의 미사일 반입을 강행합니다. 미국과 소련에 있는 양국의 대사관은 기밀 문서를 소각하는 등, 외교관계의 단절과 전쟁에 대비하고 있었고, 결국 소련이 미사일을 실은 선박을 쿠바로보내자 미국은 해군력으로 해상을 봉쇄, 접근하면 바로 공격할 태세를 갖춥니다.
미군내 강경파는 선제공격을 주장하지만, 군대에대한 확고한 문민우위를 확립하고 있던 케네디의 행정부는, 군 매파의 주장을 일축하고 제어하는 한편, 시시각각 접근해오는 미사일선박이 경계를 넘으면 공격할 준비를 합니다.
소련이 항해를 계속하면 바로 3차대전이 시작되는 상황이었죠. 그 일촉측발의 상황에서 기적적으로 소련의 배들이 회항하고 세계 3차대전의 위기는 그렇게 넘어갑니다. 표면적으로는 안마당에 적의 미사일기지를 내줄 수 없다는 확고한 입장을 표명한 케네디 정부의 승리였죠.
그러나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사정이 조금 복잡합니다. 당시 이 상황을 제어하는데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당시 국방부장관 맥나라마의 회고에 의하면, 이 사건의 해결을 위해 케네디와 후르시초프는 서로 상대와의 대화채널을 확보하기위해 노력했습니다. 미국에 파견되어있는 이중스파이를 통해서 케네디는 후르시초프와 대화채널을 가동했고, 서로 이 사태를 원만히 해결하기 위해 상호노력을 경주합니다. 이는 상대에게 양보를 이끌어내면서 동시에 그 양보의 명분을 상대에게 제공해주는 일이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강경론을 부르짖는 군부를 설득해야 했고, 이 또한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표면적으로는 미국과 소련의 대결이었지만, 사실 알고보면 케네디-후르시초프의 공동전선이 각 진영의 강경파와 대결하는 양상이었습니다. 이들은 양보에 반대하는 강경파들을 설득하면서, 동시에 국익을 지키고 파멸을 피하기 위한 해법을 찾아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결국 극적인 양보를 이끌어낸 케네디는 이후 그 양보의 댓가로 터키에 소련을 겨냥해 설치한 대륙간 탄도탄 기지를 철수시켰고, 오히려 이 위기를 통해서 공멸을 피하기 위한 적극적인 상호협력의 시대를 열어갑니다. 핵경쟁이 절정에 달했던 50~60년대의 상황에 비하면 확실히 이후의 상황은 그래도 조금 부드러워졌다고 할 수 있겠죠.
이 경우처럼, 사실 경쟁하는 두 집단이 공멸을 피하기 위해 노력할 때, 더 위협이되는 존재는 상대가 아니라 내부의 강경파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런 강경파가 작정하고 나쁜 마음을 먹고 강경파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들도 사실은 국익이나 내부의 이익을 위한 입장을 취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물론 개중에는 확전을 통해 이익을 보는 집단의 고의적인 주장도 있기 마련이지만요.
결국 우리가 어떤 정치적 입장을 취할 때는, 우리 자신도 모르게 좁은 시야와 감정에 휩쓸리면서 상대를 자극하는 강경파가 될 위험이 늘 존재합니다.
제가 가끔 느끼는 건데, 우리가 정치에 지나친 감정적 에너지를 투사하면, 개인적인 정치행위 자체가 우리의 현실을 개선하기위한 지극히 현실적이고 경제적인 선택이 아니라 무슨 스포츠 응원 비슷한 상황이 되어갈 수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현실에서 그런 상황은 불가능하지만, 보수후보의 당선이 전반적으로 더 나은 현실적 대안이라면 자신의 도덕적 혐오감과 후보에대한 호오를 접고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그러한 균형감각이 민주주의를 실행하는데 걸맞는 최소한의 시민의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안후보도 문후보도, 찾으려고 하면 수많은 단점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단점들 때문에 그들을 거부하는 것이, 지금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정권교체보다 중요할까, 이런 문제를 한 번 차분히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또 그런 단점들을 우리보다 더 선명하게 볼 수 있는 위치에 있는 두 후보가 왜 상대에 대한 비난을 자제하고 서로 협력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봐야 하겠구요.
우리는 혹 지금 공멸을 위한 길을 줄기차게 주장하거나 상대를 자극하는 매파가 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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