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골농가 초가집에서 태어난 사람이다.
어릴적 기억을 떠올려보면,
할아버지께서 나를 귀여워하셔서, 할아버지가 기거하시는 사랑방에 엎드려 동화책을 읽기도하고,
할아버지 무릎위에 앉아 재롱을 떨기도 했다.
한겨울에는 동장군의 기승으로 문틈으로 새어들어오는 위풍에,
창호지로 발라놓은 문풍지가, 푸드덕거리며 떠는 바람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기도 했다.
방 한가운데는 나무를 때어 쇠죽을 끓이고난후,
아궁이의 숯불을 긁어내어 옮겨 담은 화로가 있어서, 방안이 온기로 가득했는데,
이시절만해도 담배의 해악성에 관한 의식은 전혀 없었기에,
할아버지께선 잎담배를 잘게 썰어만든 풍년초담배가루를 곰방대에 이겨넣고,
부짓갱이로 화롯불을 뒤적여 담배에 불을 붙이곤 하셨다.
추운 겨울이라 방문을 닫은채 담배를 피시니,
담배연기가 방안에 가득했고 놋쇠재떨이에 재를 터니, 곰방대 부딫치는 소리가 요란했다.
나는 그렇게 담배연기를 마시며 자랐고,
할아버지께서는 63 세가 되던 어느 해 깊은 잠에 드신후, 다시는 깨어나지 않으셨다.
그 시절에는 평균수명이 환갑을 넘기시면 장수하신거로 여겼기에, 모두들 호상이라고 말을 했다.
철없던 나는 평소 먹어볼수 없었던 음식들이 푸짐히 차려지는 것이 좋았고,
사람들이 와글와글거리며 북적이는 것이 좋았다.
화려한 꽃상여가 등장하고 울긋불긋한 깃발을 든 사람들이 앞 뒤로 나열을 했다.
당시 국민학교 4 학년이던 나는 할아버지의 죽음을 실감할수 없었고,
내일이라도 학교에서 돌아오면,
빙긋이 웃으시며 나를 맞아주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볼수 있을 것 같았다.
세월이 흘러 십 수년이 지나면서 내가 장가를 가게되고 아이 둘을 낳았다.
이때가 80년 대 초였는데, 군대에서 자연스레 접하게된 담배는, 인체에 해롭다는 인식이 없었기에,
신접살림 단칸방에서 아이가 자는데도 불구하고, 그냥 담배를 뻑뻑 피웠었다.
아이 두 놈이 자라나더니 군대를 가, 둘 다 담배피는걸 배워왔다.
큰아이가 장가를 가서 아이 둘을 낳았는데, 아직 담배를 핀다.
최근 십 여 년 전부터 담배의 해악성이 부각되다보니 실내에서 피지는 않지만,
어찌됐거나 나나 아들 두놈은 여지껏 담배를 끊지 못하고 있다.
말로는 아들들에게 담배를 끊으라고 권유해보지만, 애비부터 모범을 보여주지 못하니,
말에 힘이 실리지못하고, 공염불에 그치고 만다.
나 또한 금연을 시도해보지 않았던건 아니다.
8 개 월을 끊어보기도 했지만, 참기 어려운 스트레스를 받는 사건이 터지자,
다시 피게된 이후 금연은 물건너 가버렸다.
건강에 특별한 이상증세가 있었다면, 금연에 더 박차를 가했겠지만,
아직까지 이렇다할 조짐이 없는것도 금연하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건강은 건강할때 지켜야한다는 말이 수긍은 가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걸 보면,
스스로 의지박약임을 인정할수밖에 없다.
3 년 전의 일이다.
명절때면 처가를 방문하게되는데,
장인장모님이 다 돌아가시고 안계셔서, 손위처남댁을 찾아가곤 한다.
처남께서는 산소에 가시고, 처남댁과 조카댁 그리고 3 살 짜리 조카딸이 맞아준다.
식사를 한후 담배를 피기위해 아파트 복도로 나왔다.
담배를 핀후 다시 실내로 들어서자,
처남댁이 인상을 찡그리며 한말씀을 하신다.
"아유! 담배냄새~ 고모부! 담배끊으세요~ 애한테 안좋아요~ 요즘도 담배피는 사람있어요? "
헐~~
나는 그나마 애기가 있어서 일부러 밖에 나가서 피웠건만,
마치 내 옷에 밴 담배연기가 커다란 세균덩어리가되어 애기에게 달라붙는듯이,
노골적으로 경멸어린 표정으로 얘기하는 모습을 보니, 성인군자가 아닌 나로선 기분이 슬쩍 나빠졌다.
이건 뭐 다음부터 담배피면, 우리집 근처는 얼씬도 하지말라고 선전포고를 하는 것 같았다.
하긴 골초였던 처남께서 담배를 끊으신걸 보면, 얼마나 압박을 받았을지 상상하지 않아도 짐작이 된다.
모처럼 방문한사람의 옷에배인 담배연기가 그리 독하다면,
나와 우리애들은 죽었어도 벌써 열 번은 더 죽었을 거다.
내가 이 글을 쓰는건, 흡연자의 권리를 주장하려 하는게 아니다.
다만, 내가 담배를 안피면 나와 주위사람들의 건강이 좋아지긴 하겠지만,
저리 쌀쌀하게 말씀을 하시니, 그게 좀 서운하게 느껴졌다는거다.
어찌됐든 그 이후로는 나를 반기지않는 것 같아, 명절이 되도 처남댁을 방문하지 않았다.
그러나 친척들은 각종 애경사가 있어, 내가 처남댁을 방문하지않아도 다시 만나게 된다.
얼마전 일요일, 미국에 사는 마눌님의 73 세 되신 큰오빠 즉 손위처남 내외가 한국에 들어오셨다고 해서,
처형이 계신 공주로 인사를 갔다.
처가식구들이 모두 모였다.
점심식사후, 공기가 좋은 시골이라 산책을 하려고, 마눌님과 둘이 밤산쪽으로 가고 있었다.
근데 갈림길에서 먼저 출발했던 73 세 처남내외와 처남댁, 조카내외, 그리고 6 살 3 살 조카딸과 만나게 되었다.
다같이 1 시간쯤 걸어 밤산에 도착하자, 담배생각이 나 담배 한 대를 피웠다.
다시 1 시간 정도를 걸어 처형댁에 도착했는데, 처형댁 집앞엔 탁 트인 밭이 있다.
밭에 심어진 은행나무를 바라보며 담배 한 대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이고 있자니,
옆에 있던 조카가 한마디 한다.
"또 피세요?"
"응~ "
"고모부도 이제 손자손녀가 있는데 끊으셔야죠~ 손녀딸이 담배냄새 싫다고 안오면 어쩌시려구요?
애아빠가 고모부께 담배 끊으라고 안하세요?"
"그런소리마라... 애아빠도 핀다~"
"컥~"
조카가 할말없다는듯 입을 닫아버린다.
나원참 엄마와 아들이 쌍으로 어퍼컷을 날리니, 담배를 핀다는 이유하나로 내가 설 입지가 점점 줄어든다.
실내에서 피는것도 아니고 오픈된 야외에서 피웠는데, 이젠 이마저도 자유롭지가 않은가보다.
내가 좋아해서 쓰는 글이긴하지만 이 글을 쓰면서 벌써 담배 세 대를 피웠다.
지금 네 대 째 담배를 꺼내들며, 지금까지 써내린 글을 물끄러미 읽어보던중,
내가 잘못 생각하는 것이 있다는걸 알게 됐다.
- 내 할아버지때부터 내 아들까지 건강상 특별한 이상증세가 보이지않으니, 금연하기가 어렵다? -
- 저리 쌀쌀하게 말씀하시니, 그게 좀 서운하게 느껴졌다? -
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옹졸한 발상인가?
내할아버지는 담배의 해악성을 몰랐으니 그리 하셨다치고, 그 해악성을 알게된 나는 왜 금연을 못하는가?
시대가 변해, 수많은 사람들이 담배연기가 싫다고 외치는데, 할아버지의 망상에서 벗어나질못해 싫다는 것인가?
건강상 이상증세가 보이지 않으니, 타인의 의중은 물어보지도 않고, 나 좋은데로 막 피워도 된다고?
정말 이상증상이 나타난다면 어쩔건데?
그 때는 이미 돌이킬수없는 지경이 되어, 금연을 한다해도 시한부로 살아갈수밖에 없다면 어쩔건데?
내 손녀 내 딸을 맑은 공기아래서 건강하게 숨쉴수 있게 지키겠다는데, 쌍으로 어퍼컷을 날리니 서운하다고?
뭐가 서운한대?
죄송합니다 하고 빌어도 시원찮을텐데...ㅠㅠ
스토리 진행이 이쯤 왔으면 이제 결론이 나올때가 됐다.
뻔한 것이 아니겠는가?
금연을 해야한다.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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