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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나린다.
비오는거야 자연적인 현상이니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거지만,
그래도 햇볕이 쨍쨍하다면 더 좋을뻔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침에 퇴근하면서 보니, 샛노란 은행닢들이 비바람에 나부끼며 젖은 땅위에 수북히 쌓인다.
그걸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오래된 앨범속사진첩의 빛바랜 사진처럼, 만물이 퇴색해가는 쓸쓸한 이 가을에 태어났을까?
기왕이면 붉은색 진달래꽃이 온 산을 뒤덮고, 산기슭에 복사꽃이 눈처럼 하얗게 휘날리는 날 태어났다면,
그 화사한 기를 받아, 내 인생이 꽃길을 걷듯 몽실몽실해질 수도 있었을텐데...
생각해보니, 내가 태어날 무렵은 내부모님께서 두메산골에서 농사를 지으실때다.
대부분의 시골이 그렇듯이 가을겆이가 끝나고 눈나리는 한겨울이 오면, 크게 할 일이 없다.
아마 이때 부모님의 정분이 유달리 두터워져서 나를 잉태하신 모양이다.
그렇게보니 부모님의 금슬이 좋아서 내가 생겨났다는건데,
이는 축복받은 일이거늘, 자식된 입장에서 계절을 따지며 꽃타령을 할 때가 아니다.
오히려 나를 이 세상의 빛을 볼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큰절이라도 올리고 와야 할 판이다.
오늘은 비가 추적추적 나리니 일진이 별로 좋지않다.
조만간 날을 잡아 부모님을 모시고와, 음식 잘하는 한우전문점으로 가서 맛있는 등심을 구워 드려야겠다.
그건그렇다치고 지금 창밖을 보니, 텃밭의 배춧닢새위로 비가 계속 내린다.
폼새를 보아하니 금방 그칠 비가 아니다.
아무래도 광범을쉰이 주신 CD 하나 걸어놓고 한 숨 자야겠다.
그리고 저 비가 그치면 단골대폿집을 찾아가 막걸리 한 병 시켜놓고,
잔을 들어 자축을 하련다.
내가 세상에 태어난 이유를 생각하면서....
세상의 모든 생명은 다 존재가치가 있어 그 어느 생명도 가벼히 볼 수 없다 하는데,
세상속의 나는 무엇인가?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세상에 나왔으니 어딘가는 쓰임새가 있겠지.
이왕 쓰인다면 보람된 일에 쓰이고 싶다.
나때문에 행복해서 웃고 그 웃음때문에 내가 행복해지는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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