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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집의 모전여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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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12 08:01: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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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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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집의 모전여전 |
글쓴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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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욱 [가입일자 : 2010-05-05] |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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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동행> 11월호입니다. 지면 탓인지 출판사에서 제목도 그냥 '모전여전'으로 바꾸고 글도 조금 고쳤네요. 이건 원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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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집의 모전여전
7년 전쯤 송내역 근처 오피스텔에서 안식년을 보냈다. 부근에 라면집이 있었다. 출출할 때 가끔 들렀지만, 다른 손님을 본 적이 별로 없다. 협소한데다가 조명도 침침하여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그 집이 문을 닫은 뒤 곧 김밥 집이 들어섰다. 주변에 김밥 집이 여럿 있어 잘 될까 잠시 우려도 했지만, 그저 지나가는 생각일 뿐이었다.
그 김밥 집에 들렀다. 조명이 밝아졌다. 주인 부부가 종업원 하나와 개업한 것 같다. 아마도 남편은 직장을 다니다가 그만둔 듯, 음식점 일이 영 서툴고 어색하다. 한쪽에 앉아 신문을 읽는 일이 많다. 아내는 열성적으로 손님을 맞고, 음식을 만들고, 배달까지 나간다.
저렴한 값에 비해 김밥 내용이 알차고 맛도 좋다. 처음 갔던 그 날이 일요일이었을 것이다.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보이는 딸이 열심히 어머니 일을 돕는다. 주방에서 돕다가 음식도 나른다. 보고만 있어도 갸륵해 내 마음까지 흐뭇해진다. 한참 나가서 놀고 싶은 나이일 텐데... 이 집에 자주 들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 보니 주인아저씨도 열심히 배달을 나간다. 아마 딸의 모습에 자극받지 않았을까?
그 때 간단한 외과 수술을 받고 퇴원한 일이 있었다. 거동하지 않는 게 좋아 배달을 시키는 일이 잦았다. 김밥 집에도 전화로 몇 차례 주문했다. 주문할 때면 김밥 두 줄 시키는 게 미안해, 우동이나 다른 음식을 함께 시키곤 했다. 그때마다 아저씨가 예의 어색한 표정으로 음식을 가져왔다.
식사를 하고 약을 먹어야 하기에 끼니를 거를 수는 없다. 어느 날 카레덮밥과 계란말이 김밥 한 줄을 시켰는데, 그 딸아이가 전화를 받았다. 한 시간이 지나도록 음식이 오지 않는다. 배도 고프고, 약을 복용할 시간도 지나 짜증이 나던 참에 벨이 울렸다.
그날은 아저씨가 아니라 아주머니가 올라왔다. 내게 내민 쟁반에는 카레덮밥이 없고 계란말이 김밥 두 줄만 있다. 아주머니는 아주 미안한 표정으로 카레 재료가 없는데 딸이 모르고 주문을 받았단다. 시장하실 텐데 드시라고 가져왔다며, 돈을 받지 않겠단다. 거의 억지로 음식 값을 내고 들어왔다. 짜증은 사라졌다. “그 어머니에 그 딸”이란 말을 되뇌며 늦었기에 더 맛있어진 김밥으로 저녁을 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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