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4년 전 여기 동묘로 이사와서 동묘 노점 거리를 왔다갔다하며 만나게 된 만년필 노점하시는 어르신께서 처음에 제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했던 얘기 또 하는 사람과는 술 마시기 싫다, 여기 장사하는 사람들을 비롯한 많은 영감들이 그러한데, 그게 뭐냐, 발전도 없고,
이십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대로인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모르겠다,
이 말씀이 제 가슴에 콱 박혀서 큰 자극이 되었고, 사람과 사물, 현상을 판단하는 큰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 기준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제 자신을 보자면, 학교 졸업하고 청년기에 접어들면서 밥벌이에 전념하게 되고,
이러면서 그 사람의 시간이 딱 멈추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제게는 가족이나 마찬가지인 고향 대구의 어느 필방(서예용품점) 사장님이 계십니다. 제가 밥벌어 먹는 직업인 서예인으로서 제가 있게끔 어린 시절부터 신경써 주신 고마운 분입니다.
하지만, 제가 옆에서 뵈어 오면서 짐작컨대, 20대에 고향 송탄에서 내려와 자형의 필방에서 일하면서 자형의 가게를 물려받아 지금까지,
서예와 필방 장사만 하다 보니 그 바닥의 성격상 영감님들, 아줌마들, 다방면의 풍부한 소양을 가지기보다는 전통적인 사고에 인이 박힌 분들만 접하고 그런 책만 볼 수밖에 없었던데다,
안 그래도 실향민 가족인데 청년 시절에 대구에 내려와 늘상 그런 영감 손님들만 마주하면서 얘기하다 보니 50대 초반이신데도 완전 수구 꼴통으로 굳어져버린 것입니다.
한양대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셨는데, 솔직히 좋은 대학 나와봤자 그 시절에 무슨 교양 교육이니 풍부한 독서니 했겠습니까…
지금도 불교(불자이십니다) 책들 말고는 책은 거의 안 보시더군요.
이번에 내려가서 들렀을 때 법륜 스님 설법 책을 읽으시길래 깜짝 놀랐을 정도입니다. 법륜은 뺄개이 중인데 우예 법륜 책을 읽노라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ㅎㅎ…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시지만 포털 사이트의 기사들도 안 보십디다. 수십년째 조선일보, 매일신문만…
서예도 애초 젊은 시절에는 각 서체를 두루두루 섭렵하고 학구적으로 파고드시더니, 한 15년 전으로 딱 멈춰버리시더군요.
예술, 미술, 미학 따위는 머리 속에 개념이 있지도 않고, 심지어 젊으실 때 열심히 공부하던 서법 이론 책들도 안 보며(그나마 그 시절에 국내에 소개된 너댓 권 정도지요. 요즘은 중국 원서, 우리말 번역서들이 얼마나 많이 소개되고 있는데),
젊은 시절 가장 열심히 했던 해서(정자)체만 주구장창 쓰고 전, 예, 행초는 아예 손도 안 대시더군요.
이번에 내려가서 인사차 들렀을 때도 늘상 그러하시듯 영감 손님 한 분이 들어오자 이런저런 얘기하다,
그 영감님과 거의 동시에 입을 맞춰 김대주이 노무혀이가 부칸에 안 퍼줬어도라는 낡은 녹음기 같은 타령을 읊으며 언성을 높이시더군요.
그 자리에서 더 듣기 싫어서 인사도 안 하고 그냥 나와서 서울로 되돌아왔습니다.
제게는 참 고마운 분이지만, 솔직히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간이 멈춘 분이로구나, 이 분은 아직도 1995년이구나,
내게 서예를 열심히 가르쳐 주셨지만 이제는 내가 이 분에게 서예를 배울 것도 없구나,
(저보다 서예로나 인생을 살며 생각하는 점에서나 나은 점은 물론 있으시겠지만 그건 누구나 마찬가지인 일반론적인 차원이겠고),
참으로 감사하고 앞으로도 서로 인간적으로나 서예적으로나 상업적(제가 이 필방에 전각 도장을 납품하고 있습니다)으로 끈끈한 유대 관계는 지속해야겠지만,
(그게 인간의 도리이겠지요)
이 분은 여기까지(모든 부분에서 여기까지라고 재단하는 건 아닙니다만)라는 한계가 보이니 논쟁도 할 것 없고, 첨예한 부분의 깊은 얘기 할 것도 없고(서로 안 부딪힐 부분에서의 깊은 얘기는 해야겠지만),
좀 허탈했습니다.
사고가 수구 꼴통이라서가 아니라, 입체적, 심층적으로 생각할 줄 모르고, 의심할 줄 아는 비판 정신이 결여되어 있고, 지적 호기심도 없이,
마치 잠잠히 고인 연못처럼 그냥 그대로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동묘의 만년필 파시는 어르신의 그 말씀, 했던 얘기 또 하는 사람과는 술 마시기 싫다,
저도 그런 사람 될까 두렵더군요.
그래서, 아, 이래서는 안 되겠구나, 놓았던 책들도 다시 꺼내 읽고, 관심 갖지 않았던 분야들도 조금씩 보기 시작하고,
편견과 자신의 아집에서 한 발짝 물러나서 보고, 지금껏 접하지 않았던 여러 곳의 바깥 공기도 쐬려 노력하고,
그렇게 해야 되지 않겠나 스스로 다짐합니다.
그 어르신께서 일러주신 말씀의 잣대로 그 어르신을 보면, 그 어르신께서 당시로서는 대학 졸업하시고 책도 많이 보셨으며 생각도 유연하시지만,
제가 감히 볼 때 그 당시의 지식 수준에서 벗어나기 어렵고(삼중당문고 몇 권 정도, 이어령, 안병욱, 김형석 등), 더욱이 그나마도 연세들고 삶에 쫓기면서 독서와 공부도 안 하시게 되었으니,
더 젊은 세대인 제 수준에서는 한계가 명확한 거지요.
저보다 젊은, 지금 어린 친구들도 철들고 나서 저를 본다면 마찬가지로 볼 것 아니겠습니까?
공부란 죽을 때까지 해야 되는 거구나, 머리가 굳지 않고 마음이 완고해지지 않게 하려면 늘 머리를 쓰고 지적 호기심을 잃지 않아야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게 지성인, 지식인의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학벌이 좋아서 지식인이 아니라…
그리고, 이렇게 잠잠한 연못처럼 시간이 멈춰 굳어지면 수구 보수로 빠질 위험이 높으며, 환경조차 그렇다면 피할 여지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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