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하는 부부는 집안일도 똑같이 나눠서 하는게 잘하는 일이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얼마전 아들을 낳은 제 큰아이에게도, 며느리 힘안들게 집안일 많이 도와주라고 얘기하곤 했습니다.
저 또한 집안일을 많이 도와주기는하는데,
제가 잘하는건 심부름입니다.
시장보는 것, 쓰레기 버리고 오는 것, 널어논 빨래 마당에 내놓는 것, 수도배관이 터져 밸브를 교체하는 것 등 등
주로 마눌님이 하기 어려운 굵직한 것 위주로 도와주는 편인데,
쌀을 씻어 밥을 하거나 빨래를 널거나 하는 일은 안합니다.
빠래를 널 때,
양말 한 짝 하나 하나 펴고, 손바닥만한 마눌님 빤츠나 브래지어를 펴서 빨랫대에 걸쳐 집개로 물릴라치면,
웬지 마음속에서 스트레스가 치밀어오르는 듯 하여, 이런 조막만한 일은 내게 안맞는다싶어,
마눌님께 당당히 공포 했더랬습니다.
- 남자에게 쪼잔한건 시키지마 -
그 뒤로 몆 번을 더 시키는듯하더니, 제가 꿈적도 안하자 다음부터는 일절 시키지 않더군요.
그러면서도 제가 아쉬울때는 마눌님을 잘도 부려 먹습니다.
거실에 비스듬이 누워 TV를 보고 있는 마눌님을 향해,
" 여보 나 커피 한 잔 만 타줄래? "
" 손이 없어 발이 없어... 타먹어~ "
" 알잖아 당신없으면 난 손가락하나 까딱 못하는거... 알라뷰~ "
" 으이구 저 화상! "
이러면서 마지못해 몸을 일으켜 물을 끓이고 커피를 타서 제 방으로 가져다줍니다.
그때마다 저는 이런 멘트를 날립니다.
" 땡큐! 복받을거야~ 천 년 만 년 살거야~ "
마눌님이 피식 웃으며 커피잔을 건넵니다.
마눌님을 위하는 마음이 없어서라기 보다는 수십년을 같이 살다보니,
자연스레 굳어진 저희만의 생활방식이 된 듯 합니다.
어제 TV를 보다 보니, 집안일을 똑같이 나눠하는 부부의 이혼율이 더 증가한다는 예상밖의 얘기가 나오길래,
이게 뭔소린가 했더니,
가사분담을 하면 그만큼 서로가 의견충돌로 사사건건 부딛치는 일이 많아서랍니다.
배우자를 도와주는건 의무고 배려인데, 아마도 서로의 마음엔 희생 당하고 있다라는 마음으로 가득했나 봅니다.
이렇다치면 가사분담 일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서로 무엇을 더 해주나가 아니라 서로가, 이사람은 나를 위해 왜 이렇게 안해줄까?
무언가 계속 받기만 하려는 이기심이 앞섰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부부문제는 당사자들만이 알 수 있는 미묘한 문제로, 누가 더 하고 덜 해야 한다 라고 일방적으로 말 할 순 없습니다.
아내가 몸이 약하면 남편이 모든일을 도맡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아내가 옆에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기쁨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이 사랑 아닌가요...
그나저나 위의 통계대로라면 우리 부부는 집안일을 아내가 더 많이 하는데,
그렇다면 우리 부부의 이혼율은 그만큼 하락한다는 얘긴가...?
그나마 늙으막에 이혼당하고 혼자 내팽개쳐지면 갈 곳도 없는데... 이걸 기뻐해야 하는지...ㅠㅜ
아무튼 아내분들에겐 몸과 마음에 부담이 많은 명절이 왔습니다.
한가위 보름달처럼 애정이 풍만하고, 서로 보듬어 주는 그런 따뜻한 추석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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