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츠 단추 늘 세개씩 풀고, 주먹엔 붕대 감고 다니는 친구가 하나 있었습니다. 제 친구는 아니었고 편의상 친구라고 호칭할 뿐입니다. 이 글에서.
권투도장을 다니고 있노라 늘 말했습니다. 왜 그리 붕대 감고 다니냐고 하니, 주먹에 힘이 꽉 들어가있는 느낌이 좋다고 했습니다. 쉬는 시간마다 교실 뒤편에서 쉐도우를 했습니다. 근데 문외한인 제가 보기에도 썩 자연스러워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지를때마다 내쉬는 숨소리도 심형래의 칙칙이복서 같았습니다.
노는 애들이랑도 좀 어울리는 것 같더니, 어느날 시비가 붙었습니다. 셔츠를 벗고 준비운동으로 쉐도우를 했습니다. 역시나 못미더웠습니다. 교실이 싸우기 좁다며 밖으로 나가기를 청했습니다. 수업 한시간 제끼고 돌아왔는데, 눈두덩이 탱글탱글해져 있었습니다.
스텝이 좀 꼬였는데, 그래도 피하면서 맞아서 실명은 면했다고 했습니다. 듣던 제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했습니다. 나를 얼마나 병신으로 보면 저런 구라를 계속 쳐 댈까 싶어서.
그때부터 욕설이 나왔습니다. 풋워크가 뭔지도 모르는 수준낮은 놈이라고 대꾸를 했습니다. 더 이상 이야기 들을 가치가 없었습니다. 시끄러우니 꺼지라고 했습니다.
손목만 안 삐끗했어도 저를 한주먹에 날려버렸을거라고 했습니다. 손목 다 나으면 날리러 오고 이제 그만 닥치라고 했습니다.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이젠 붕대 풀고 안 그러고 살고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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