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현재 박스오피스 1위인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감독 추창민·각본 황조윤)가 1993년 국내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데이브’와 흡사하다는 누리꾼과 영화인들의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누리꾼들은 ‘광해…’가 13일 개봉한 직후부터 영화 관련 사이트와 블로그 등에서 두 작품의 유사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영화계 일각에서는 표절 논란까지 나오고 있다. 본보가 두 작품을 비교했다.
‘광해…’는 이야기 뼈대부터 ‘데이브’와 유사하다. ‘광해…’는 조선시대 광해군(이병헌)이 상궁과 잠을 잔 뒤 양귀비에 중독돼 깨어나지 못하자 도승지 허균(류승룡)이 혼란을 막기 위해 임금과 똑같이 생긴 대역을 찾는다는 이야기다. ‘데이브’는 미국 대통령이 혼외정사 중 뇌중풍(뇌졸중)을 일으켜 혼수상태에 빠지자 비서실장이 대통령과 닮은 직장인 데이브를 대역으로 내세운다는 설정이다. 케빈 클라인이 대통령과 대역으로 출연했다.
두 영화의 전개 방식도 비슷하다. ‘광해…’의 도승지는 대역의 정체를 중전(한효주)에게 비밀에 부치고, ‘데이브’의 비서실장은 퍼스트레이디에게 대역의 존재를 숨긴다. ‘광해…’에서 임금 노릇을 하는 대역은 ‘대동법’을 두고 반대하는 신하들과 대립하고, ‘데이브’의 대통령이 된 대역은 무주택자를 위한 ‘심슨법안’을 관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관철시킨다.
캐릭터도 빼닮았다. △‘광해…’에서 임금 대신 국정을 운영하는 도승지와 ‘데이브’의 비서실장 △임금에게 웃는 얼굴조차 보이지 않을 만큼 사이가 멀어진 ‘광해…’의 중전과 ‘데이브’에서 대통령의 외도에 신물이 난 퍼스트레이디 △대역의 선정(善政)에 감동해 그를 위해 목숨을 거는 호위 무사(김인권)와 대역에게 호감을 느끼고 “대신 총을 맞겠다”고 말하는 ‘데이브’의 경호원 등이다.
누리꾼들은 세부적인 장면 묘사조차 우연으로 보기는 힘들 정도로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광해…’에서 대역이 용상에 올라 흐뭇한 미소를 짓는 장면과 ‘데이브’에서 대역이 대통령 집무실 의자에 앉아 신기하다는 듯한 웃음을 짓는 장면이 겹친다. △‘광해…’에서 대역이 신하들을 따돌린 뒤 중전의 손을 잡고 데이트를 하는 장면을 보면 ‘데이브’에서 서로 호감을 느낀 영부인과 대역이 백악관 밖에서 몰래 데이트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미국 소설가 마크 트웨인의 ‘왕자와 거지’로 잘 알려진 ‘대역 모티브’는 폴 마주르스키 감독의 ‘독재자 파라돌’(1988년),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카게무샤’(1980년) 등 영화 속에서 이따금 등장했다. 그러나 이 작품들은 모티브를 사용했을 뿐 ‘광해…’처럼 세부 내용까지 유사하지는 않다.
두 영화를 본 한 시나리오 작가 겸 감독은 “(두 영화가) 우연히 이 정도로 유사하게 만들어졌을 확률은 ‘벼락에 맞을 확률’보다 낮다”고 말했다. 한 영화평론가는 “시작부터 중반까지 똑같다. 충분히 표절이라고 할 만하다”라고 평가했다.
누리꾼들은 두 영화의 유사점을 지적하면서 ‘광해…’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영화 ‘광해…’ 관계자 분들께. 이 영화 할리우드에서 판권 사오셔서 각색한 거 맞죠?” “영화 ‘올드 보이’와 원작 만화 ‘올드 보이’의 관계보다 ‘광해…’와 ‘데이브’의 관계가 더 가깝다고요” “백악관을 경복궁으로 각색한 리메이크라는 생각밖에 안 든다” 등의 글이 인터넷에 줄을 잇고 있다.
보통 영화 스토리를 차용하는 경우 리메이크 판권을 구매한다. 올봄 400만 명 이상을 모은 ‘내 아내의 모든 것’은 아르헨티나 단편 영화의 판권을 사 한국 관객 취향에 맞게 각색했다. 할리우드도 우리영화 ‘텔미썸딩’ ‘시월애’ ‘공동경비구역 JSA’ 등의 리메이크 판권을 수십만 달러 이상을 주고 구입했다.
‘광해…’는 26일 기준으로 354만 관객을 모아 257억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이 영화를 기획 투자 배급한 CJ E&M 측은 27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데이브’의 판권을 구입하지는 않았다. 시나리오 개발 단계부터 (‘데이브’를) 전혀 참고하지 않았고, 전체적으로 보면 설정이 비슷하지만 다른 이야기라고 본다”고 말했다. 최경수 한국저작권위원회 정책연구실장은 “이 작품의 표절이 사실이라면 표절 콘텐츠로 벌어들인 돈은 불법 수익에 해당한다”며 “영상 콘텐츠도 명확한 표절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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