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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삼위일체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12-09-23 09:59:03
추천수 2
조회수   629

제목

[칼럼] 삼위일체

글쓴이

박준석 [가입일자 : 2012-04-17]
내용
자신의 재능과 기호를 찾는 건 어렵다. 더군다나 재능과 기호, 부의 창출이라는 실존의 삼위일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세상의 제요소가 난마와 같은 실타래처럼 뒤엉켜있고, 어쩔 수 없는 운명의 당위성에 자신을 내맡길 도리밖에 없다. 사회는 제도권적 일률화를 요구하고, 기성적이고 반동적인 문화의 형태는 어쩔 수 없이 어떤 분야에선 천재적 재능의 숨결이 있는 인간도, 그 사람 인생을 회한과 무의미한 고통에 잠식시킨다. 정말이지 자신이 어떤 일을 잘 하는지 아는 것은 힘들다. 그게 무수할 수도 있고, 자신의 가지성에 따라 본질을 살아야 한다는 건 일종의 부조리요, 한 개체의 기투를 접어두는 일련의 패배이다. 프로페셔널리즘, 이것은 21세기 초현대사회의 화두가 되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개인은 철학자가 되어야 한다. 무슨 말인가 하면, 모든 분야의 각종 지식들과 체계를 조금씩은 알아서, 이를 총체화·종합화하여 모르고 당하지 말아야 한다는 소리다. 왜냐하면 프로는 프로이되 양심까지 프로인 사람은 많지 않다.



나는 청년시절부터 재능과 기호, 부의 창출의 삼위일체에 다다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런데 내가 정말 노력했는가? 오히려 나는 젊음과 무지에서 나오는 집착과, 한국이라는, 서민이라는 좁은 틀에 갇혀 내가 보지 못한 것을 못 본 것은 아니었던가? 시카고에서의 3개월 동안 나는 수백 권의 책에서도 발견하지 못할 패러다임, 엄청난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내가 깨달은 사실들, 대학교수들은 낡았고 ‘객관적인 실재’와는 동떨어진 이론을 위한 이론을 제시하고 있으며, 아직까지 진행 중인 촘스키 박사나 지젝 같은 철학자들의 공산주의 건설을 위한 변증법적 유물론은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정확한 체계이지만, 그 생명력이 끊어졌다는 것이다(촘스키는 미국학자다보니 자신의 이론을 우회하고 모호하게 말하는 편이 있다). 오히려 개별화·특수화된 프로페셔널리즘과 개개의 무수한 상호조응에서 자본을 질료 혹은 표상으로 삼고, 이러한 다양한 자본주의가 심급으로서 기능함으로써, 계층 간의 빈부격차는 있어도,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서민조차도 공산주의의 일원들보다 부유하고 개선된 삶의 질을 살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 프롤레타리아는 부모의 강압으로 인해 회사에서 착취당하다가 미래퇴직자가 되지 않고, 라이프니츠적 낙관주의를 살아볼 수 있는가? 반동적 퍼스펙티브에서 우리 개개인은 모나드고, 어찌 보면 기능이요, 기능의 극한으로 달려감이 충실이자 실존의 원형이다. 중용이라는 개념은 고대 중국이나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오천년 전 사람이나 논하는 낡은 개념이다. 오히려 극한까지 몰고 가지 않음으로써 그 사람은 천천히 죽어가고 눈이 멀어간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학생들은 왜 자신들이 실재와는 동떨어진 수학이나 영어를 주입식 암기로 해야 하는지 모른다. 제도권교육은 교육이 아니다. 수학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개념을 파악하고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이지 똑같은 문제들을 반복해서 푸는 게 아니다. 수학은 인식론의 기초고 인식론은 철학의 기초이기 때문이다. 또한 영어만 해도 그렇다. 미국으로 이주한 사람들의 견해를 들어보면 그들은 암기로 단어나 숙어를 외우지 않는다. 문법도 배우지 않는다. 그 사람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냥 배운다. 차라리 이태원에서 미국인 친구를 사귀어 의사소통을 나누는 편이 낫다. 필자의 경우 카페에서 만난 흑인친구가 있었는데, 책상에서 몇 년을 앉아있는 것보다 몇 개월 동안 체득한 게 더 많았다. 이런 예시들과 명제들을 제시하는 이유는 공부는 학문으로서 흥미와 기호를 갖고 하는 것이지, 미래의 불안감과 사회적 강박관념에 말미암아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학문을 한다는 것은 자연, 스스로 그러함을 의미한다. 제도권 교육조차도 자신이 좋아해서 하는 게 아니라면 자기기만과 위선에 불과할 따름이다. 많은 사람들이 겉도는 인생을 살고 있다. 왜 제도권 교육에 재능이 없는데 그것을 신경증적으로 하는가? 인생 짧고 겉돌기에는 시간이 없다. 따라서 앞서 말한 삼위일체를 손에 넣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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