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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와 박팽년의 수사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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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21 20:35: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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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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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와 박팽년의 수사법 |
글쓴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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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정훈 [가입일자 : 2002-04-27] |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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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의 말의 내용 뿐 아니라, 수사법을 곰곰히 곱씹어보는 것도 대선정국과 안철수의 본심을 예측해볼 수 있는 한 방법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안철수는 현충원 참배 후 페이스 북에서,
“박정희 시대에 산업의 근간이 마련됐지만 노동자, 농민 등 너무 많은 이들의 희생이 요구됐다”며 “법과 절차를 넘어선 권력의 사유화는 어떤 이유로든 정당화될 수 없다"고 했죠.
수동태는 정치권에서 거의 전가의 보도로 애용되는 테크닉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촘스키의 말처럼, 수동태의 발명을 보통은 어떤 사건의 행위주체를 흐림으로써, 책임소재를 불분명하게 만드는 기법입니다. 그런데 안철수는 이런 수동태를 통해, 산업의 근간을 마련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주체가 누구인지 밝히기를 거부합니다. 이 글을 그냥 관성적으로 읽으면 아마도 박정희를 위시한 개발독재세력의 공을 인정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안철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에 대해서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고난과 헌신, IMF 환란위기에서 IT 강국의 기회를 만들어내고 복지국가의 기초를 다졌던 노력을 기억한다. 그러나 애써 내디딘 남북관계의 첫발은 국론분열과 정치적 대립 속에 정체돼 있다. 경제위기는 넘어섰지만 양극화는 심화됐다”고 말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는 민주주의와 인권의 확대, 그리고 그 밖의 경제적 치적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능동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안철수가 이 날 페이스 북에 적은 문장들 중에서 아마도 유일한 능동태 문장일 것입니다.
이렇게 수동태를 즐겨 쓰는 습관에서 익히 알려진 안철수의 신중함과 세심함이 드러납니다.
혹 어떤 분들에게는 이러한 수사법적 습관이 치사한 꼼수처럼 보일 수도 있겠죠. 그러나 정치인의 수사법은 언제나 자신의 신념을 지키면서도 감출 필요가 있을 때, 그 목적에 맞도록 구사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조때, 단종복위에 가담했던 박팽년은 그를 신임했던 세조가 자신을 속였다고 질책하자, 담담히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간 받은 녹봉은 쌀한 톨 쓰지 않고 전부 곳간에 그대로 보관해왔고, 세조를 주군으로 인정한 적도, 신하를 자처한 적도 없다고, 자신은 한 번도 자신을 그에게 신하라 칭한 적이 없다고.
그는 세조에게 올리는 모든 문서에 臣이라는 글자대신 슬쩍 巨를 넣었죠. 박팽년은 세조를 결코 인정하지 않았고 따라서 틀린 소리를 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의 신임을 사고 의심받지 않을 필요가 있었기에, 그렇게 슬쩍 사람들이 세세하게 신경을 쓰지 않을 부분을 골라 트릭을 쓴 것이죠.
안철수의 언행은 조금만 세심하게 살펴보면 그 진의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그는 야당이 승리했으면 정치권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만약 안철수가 기자회견에서 한 말처럼, 표면적으로는 단일화에 관심이 없고 양보할 의사가 없는 것처럼 이야기를 해도, 이처럼 꼼꼼한 안철수가 그런 모순을 개의치 않고 말했을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 그는 현충원에서 이승만과 박정희를 참배하기 전, 5.18기념묘원을 먼저 방문했습니다. 안철수는 사실 우리가 이해하려고하기만 한다면 이미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신뢰의 사인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것이 이쪽을 기만하기위한 사인이 아니라는 보장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할말은 없지만, 안철수가 그간 살아온 궤적을 봤을 때, 이런 가능성은 무시해도 무방한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말씀하신것처럼, 우리가 구태여 안철수에게 더 확실한 신호를 보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안철수가 맡은 중요한 임무, 약 7%의 그가 박근혜로부터 뺏어올 수 있는 포인트를 얻어내는 일을 방해하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젊은 층을 주로 접하는 분들의 목소리는 한결 같습니다. 안철수는 그 젊은 층을 투표장으로 끌어낼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는 것. 때문에 안철수를 중심으로 한 단일화가 훨씬 효과적이라는 주장도 충분히 일리있고, 안될 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역시 그간 안철수가 보여준 언행으로 봤을 때, 안철수의 목적은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곳에 있는것 같습니다. 안철수가 그 목적과 선거에서의 승리를 위해 어떤 역할을 펼칠지, 앞으로 참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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