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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후보가 정동영의 캠프 참여를 종용했지만, 정동영 전의원이 고사를 했다고 하는군요. 여러 추측이 가능하겠지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정동영 전의원이 노동과 민생현장에서 더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럴 이유도 없겠지만, 적어도 문재인 캠프측과 관계가 불편해서 그런것 같지는 않았어요. 이번 대선 이야기가 나오자, 그답게 열을 올리면서 승리를 낙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니까요.
이번 추석즈음 개봉할 예정인 "깔깔깔 희망버스 이야기" 시사회에 정동영 의원이 참석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 번 가 봤습니다. 영화 정말 좋더군요. 개인적으로는 "두 개의 문"보다 더 몰입도나 만족도가 좋았습니다. 여성감독 특유의 섬세함과 아기자기함이 돋보이고, 무척 감동적이었습니다. 논리에만 기댄 논쟁적인 영화도 아니고, 감정에만 기댄 목에 힘 들어간 프로파간다 영화는 더더욱 아니니까요.
상영회 이후 정동영 의원이 함께하는 좌담회가 열렸습니다. 전 솔직히 작년 여름까지만 해도, 이분을 "속빈 강정"취급했습니다. 방송기자, 앵커 출신임에도 말재주와 기민함이 부족해 토론에 무척 약하고, 행정적인 능력도 평균정도, 정치적 감각이나 시대정신을 꿰뚫는 세계관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정치인을 알면 얼마나 알겠습니까만, 기껏해야 목소리나 외모가 조금 나아서, 브리핑이나 대중연설에 능한 사람이란 것이 제가 느끼는 그의 인상이었죠. 아, 그 와중에 2007년 대선때, 혼자 쥐새끼의 손을 거부한채 후보합동 토론회에서 사진을 찍던 모습은, 그가 약간의 정의감 정도는 가진 사람이었을거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작년 이맘 때 즈음부터 정동영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죠. 한진과 쌍용자동차 문제에 그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총선에서 당선이 거의 확실한 전북 덕진 지역구를 포기하고 강남구에서 출마했었죠. 알고보니 즉흥적인 행동이 아니라 구룡마을 철거민들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네요.
그 이후로는 아시는 대로 죽 같은 모습으로 현재에 이르고 있죠. 가끔 접하는 친구 이야기로는 요즘도 시간 날때마다 평택에 들른다고 합니다.
오늘 그를 보고서 느낀 건, 아마 사람이 상당히 변한 모양이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위에서 저는 그가 말주변이 없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음성이나 앵커로서의 전력을 볼 때, 그가 말주변이 없다는 것이 의아하게 느껴지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가 이야기할 때의 말투를 들어보면, 금방금방 적절한 단어를 떠올리지 못해, 말을 길게 끄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용어의 선택도 거친 편이죠. 토론의 달인인 현 민주통합당 김기식의원(예전 참여연대 사무총장)이나 유시민 전장관 같은 경우를 보면, 말의 논리를 정교하게 구축하면서도 독특하고 정확한 단어의 선택으로 청자들의 가슴을 울리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정동영의원은 그런 수준에는 한참 못미치죠.
그런데 이런 모습이 가지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 서투름 때문에 그는 자신의 본심을 숨기지 못하고 종종 은연중에 그것을 드러내어 놓습니다. 잘 살펴보면, 그는 그런 서투름으로 자신의 진정성을 자기도 모르게 광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도 그는 기성 정치인이라면 거의 금기어로 삼을 만한 단어들을 여러번 썼습니다.
"주류 기득권", "지배계층". "엘리트" 등등. 보통 이런 사람들을 일컬을 때 정치인들은 사회지도층이나 오피니언리더라는 말로 그 단어에 담긴 비판적 함의를 중화시키죠. 그러나 정동영의원은 말에 거침이 없었습니다. 사실, 그 단어들은 근본적으로 이 사회에 대한 시선이 비판적이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나올 수 없는 단어들입니다. 민주통합당 의원들 중에서도 보수적인 성향의 인사들은 이런 단어를 결코 입에 올리지 않을테죠.
그의 입에서 이 단어들이 나올 때 마다, 그는 조금 흥분한 것 같고, 조금 더 화가 나는것 같았습니다. 만약 이런 분위기를 그가 의도적으로 연출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는 영화에서 등장하는 카이저 소제 이상으로 무서운 사람일겁니다. 아주 끔찍한 정치모리배일 가능성이 높겠죠. 그러나 저는 그런 의심을 하지 않습니다. 그가 아무리 감추려고 하고, 깔끔하고 프로패셔널한 정치인의 모습을 보이려고 해도, 그는 단수가 얕고 서툰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그는 바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거리에서 정동영을 여러번 접한 제 친구가 그러더군요. 이정희가 그냥 얼굴만 비출 뿐, 도대체 저사람의 역할은, 가진 컨텐츠는 뭔가하는 의문이 들 때(친구는 현장에서 가장 내용없는 연설을 많이한 사람이 이정희라고 전했습니다), 정동영은 실제로 몸으로 시위자들이나 파업노동자들 앞에서 길을 뚫고 끝까지 같이 있었다고, 크레인에서 내려온 김진숙이 누구보다 먼저 찾았던 정치인이 정동영이었다고, 그러더군요.
그를 볼 때마다, "가장 늦된자가 가장 먼저 된다"는 성경귀절이나, "나서부터 아는 사람이 있고, 배워야 아는 사람이 있고, 몸으로 겪어봐야 아는 사람이 있지만, 되고나면 다 똑같다"는 대학의 한 귀절이 떠올려집니다.
그가 또 정치 일선에서 어떤 활약을 하게 돌지, 아니면 이대로 게속 노동현장에 머물게될지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바보같은 모습을 보였으면 좋겠습니다. 수많은 헛똑똑이 중 하나에서, 드문 한 명의 바보가되는 사람을 볼 수 있다는 건, 참 기쁜 일이겠죠.
마지막으로 아래 링크를 한 번 열어보세요. 예전에 자자에 올렸던 사진이지만 볼때마다 좀 감동적이라 또 링크했습니다. 대한민국 국회의원중에 저런 모습을 보였던 사람이 또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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