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진실
송건호(宋健鎬)
‘진실’이란, 어떤 사건이나 문제에 대해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한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란 무엇인가? 존재하는 모든 사실은 그 존재가 다원적(多元的)이다. 진실을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일수록 그 존재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일면만 보고서는 진실을 이해할 수 없다.
따라서, 언론에 있어 ‘진실’이란, 첫째, 사물을 부분만 보지 말고 전체를 보아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진실’이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에게 유리한 부분만을 과장하여 선전하기도 하고, 불리한 면은 은폐하여 알리지 않으려고 한다.
논평에 있어서도 진실한 논평을 하려면 이런 측면 저런 측면을 다 같이 검토하고, 그 바탕 위에서 공정한 판단과 결론을 내려야 한다. 공정한 논평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점은 사고의 자유로운 활동이다. 곡필은 어느 선 이상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데 그 특징이 있다. 자유롭게 다각도로 사고를 하면 진실이 밝혀지기 때문이다.
둘째, 언론에 있어 ‘진실한 보도와 논평’을 하기 위해서는 사물을 역사적으로 관찰할 줄 아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사물의 가치는 역사의 발전에 따라 달라진다. 오늘에 인정받았던 가치가 내일에는 부정되기도 하고, 오늘에 부정된 가치가 내일에는 새롭게 평가받기도 한다. 따라서, 사물을 옳게 평가하려면 항상 새로운 가치, 발전하는 새 날을 위한 가치의 입장에서 평가해야 한다. 사물을 볼 때에는 소수의 이익이 아니라 다수의 이익, 퇴보의 가치가 아니라 발전하는 가치라는 원칙에 따라 판단하고 평가해야 한다.
셋째, 사물을 볼 때에는 어느 면이 더 중요하고 어느 면이 덜 중요한지를 똑똑히 식별할 줄 알아야 한다. 사건이 발생했을 때에 가장 중요한 면이 사건의 근거가 되고, 그렇지 않은 면이 사건의 조건이 된다. 따라서, 사물을 옳게 이해하려면 사물의 어떤 측면이 근거가 되고, 또 어떤 측면이 조건이 되는가를 예리하게 식별할 줄 알아야 한다. 근거와 조건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그 사건에 대한 이해가 크게 달라진다.
사실을 정확하게 보도하려면 기사를 객관적으로 써야 한다는 말이 있다. 조금도 주관을 섞지 않고 있는 그대로 기사를 써야만 정확한 보도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객관적’이라는 표현은 주의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왜냐 하면, 정확하고 올바른 보도일수록 객관적이기보다 오히려 훌륭한 의미에서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사태를 정확하게 알리는 보도일수록 주관적이 되어야 한다는 이론은, 좀더 깊이 생각해 보면 조금도 모순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윤봉길 의사가 1931년,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일본 시라카와 대장 등을 폭사(暴死)시킨 사건은 역사적으로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로 삼고 있으며, 식민지 제도라는 것이 인류 역사상 배격, 규탄돼야 할 역사적 유제(遺制)라는 판단이 앞서야 한다. 정확한 보도를 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사회 과학적 소양과 문학적, 철학적 소양이 필요하다.
신문이 진실을 보도해야 한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설명이 필요 없는 당연한 이야기이다. 정확한 보도를 하기 위해서는 문제를 전체적으로 보아야 하고, 역사적으로 새로운 가치의 편에서 봐야 하며, 무엇이 근거이고, 무엇이 조건인가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러한 준칙을 강조하는 것은 기자들의 기사 작성 기술이 미숙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해 관계에 따라 특정 보도의 내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기사가 보도되게 하려는 외부 세력이 있으므로 진실 보도는 일반적으로 수난의 길을 걷게 마련이다. 양심적이고자 하는 언론인이 때로 형극의 길과 고독의 길을 걸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신문은 스스로 자신들의 임무가 ‘사실 보도’라고 말한다. 그 임무를 다하기 위해 신문은 자신들의 이해 관계에 따라 진실을 왜곡하려는 권력과 이익 집단, 그 구속과 억압의 논리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