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스스로 만든 안주에 도취되어, 기분좋게 막걸리 몆 잔을 마셨더니, 조금 오버 했는지 아침에 일어나니, 컨디션이 영 껄쩍지근 하더군요.
마눌님께선 그래도 미우나 고우나 서방님이라고 속풀이 콩나물 해장국을 끓여 주시더군요.
얼큰하고 시원한 국물을 마시니 속이 한결 편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평소 저의 글을 보며 좋게 봐주시는분도 계셨지만, 사실 글이란게 본인 입장에서 표현하는 것 이다 보니, 자신의 치부는 드러내려 하지 않고, 미화시키는 경향이 적잖이 있습니다.
저역시 그런점에서 본다면, 아니라고 부정은 안하겠습니다.
사람답게 살려고 애를 쓰고 있긴하지만, 여느 사람 못지 않게 수많은 결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의 마눌님을 처음 만났을때, 원래 좀 통통한 몸매였지만, 아이들을 낳고 찌든 생활고(이는 99% 제 책임임을 통감하고있음)에 시달리다보니, 스트레스때문에 과식을 했는지
아니면 원체 식성이 좋은 탓 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누가 보더라도 다소 과도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하긴 마눌님과 같이 마주앉아 식사를 하다보면, 보는 사람마저도 식욕이 솟아오를정도로 참 음식을 맛있게 먹습니다 ㅎ ㅎ
오늘도 아침식사를 하는 마눌님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숟가락으로 밥을 뜨고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어 입안에 넣고, 턱근육이 움질거릴정도로 맛있게 음식을 씹어 먹는 모습을 보니, 새삼 생명의 숭고함마저 느껴집니다.
음식이란 생명을 유지하는데 없어서는 안될 필요불가결의 요소라고 하죠.
한 때는 이 생명을 유지시키는 음식마저도 배불리 먹여주지 못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입에 담지 못할 심한 폭언를 내뱉은적도 있고, 심지어는 이혼 하자 소리를 한적도 있습니다.
그때 마눌님께서 그러더군요.
"내가 당신하고 살려고 했을때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했던건 아니지만, 헤어질려고 마음을 먹었었으면 진작 헤어졌지...이만큼 고생하고, 이제와서 헤어지자고? 이혼할려면 혼자나 해! 나는 절대 이혼안해!!"
ㅋ-~
사실 저도 말다툼끝에 화가 나서 우발적으로 튀어 나온 말이긴 했지만, 진심은 아니라 해도 해서는 안될 말을 했었습니다.
게다가 못난 남자의 표상인 여자에게 큰소리까지 쳤으니, 오래 오래 마눌님 마음 한 켠에 상처로 남아 있었을 겁니다.
오래전 일이긴 하지만 그 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편치 않으면서 늘 미안한 감정에 사로 잡힙니다.
결혼이란 화성인과 금성인의 만남이라고 비유 하는 말도 있는데, 너무 잘 맞아 돌아간다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하게 보일수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대체적으로 처음엔 서로 좋은 감정이 있었기에, 결혼까지 결정하게 되었으리라 생각됩니다.
활화산처럼 격정적이고 뜨거운 사랑을 유지 하며 결혼하신 분 도 계시겠지요.
그러나 결혼한지 일 년이 지나신 대부분의 분 들은 이해 되실 겁니다.
활화산이 용광로로 바뀌고 용광로가 다시 은근한 온기로 남아지는 질그릇으로 바껴지고 있음을...
저같은 경우엔 30 여 년 가까이 같이 살다보니, 처음엔 사랑이었지만, 그것이 점점 정으로 변하고, 요즘엔 동정이라는 감정으로 바껴지는것 같습니다.
못난 저를 만나, 수 십 년 간 고생만 시키다 보니, 맛난 음식 한 번 제대로 먹여 준 적 없고, 좋은 옷 한 번 제대로 사준 적이 없습니다.
이러고 살아왔던 지난 일들이 항상 마음에 걸렸던지라, 몆 해 전 부터는 일부러 마눌님을 모시고 나가, 가끔씩이라도 먹고 싶어하는 음식을 같이 먹기도하고,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건넵니다.
이러한 제 마음을 받아주며 기분 좋아하는 마눌님의 모습을 보게 되면, 저 또한 즐거운 마음이 들어야 할 텐 데, 웬지모르게 그냥 애틋한 마음만 앞서네요.
한 때 쥐꼬리보다 못한 자존심을 내세워, 이 사람을 만나 내 인생이 이렇게 꼬여 간다며, 마눌님을 원망하고, 미워하고, 맨날 술에 쩔어 살며,
제 운명을 받아들이고싶지 않은 적 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역으로 만일 이 사람이 나를 만나지 않았다면 얼마나 행복했었을까? 하는 생각은 왜 못 했었는지...
도대체 무엇때문에 성공 하려하고 무엇때문에 화를 내었었는지...
애초에 이 사람을 만나 결혼을 결심했던 이유는, 이뻐하고 사랑하며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가려 했던것이 그시작이었을텐데... 왜 초심을 잃었을까...?
역시 저의 미욱함으로 돌려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날 세월이 이만큼 흐른후 다시 생각해 봅니다.
만일 그때 이혼하자는 제의를 마눌님이 순순히 받아 들였다면, 현재 저의 모습은 어떻게 변해 있었을까요?
자세히 짐작하기는 어렵지만, 아마도 십중팔구는 저 서울역 대합실 광장에 널부러져, 술에 쩔어 지내는 알콜중독자에다, 노숙자 신세로 전락해있을 확률도? 없지 않아 있어 보입니다.
그리 생각하니 저에게 있어서 마눌님의 존재는, 제 인생의 훼방꾼이 아니라 저의 구원자이자 제 인생의 등불 이더군요.
부모님이 저를 낳아 주시고 먹이고 키워 주시기도 하셨지만, 오늘날 제가 이만큼이나 살아 숨쉬고 행세 꽤나 하고 다니는데는,
마눌님의 적지않은 노고와 애달픈 눈물이 숨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 도 굳이 감추지는 않겠습니다.
믿거나 말거나한 이야기 하나 하겠습니다.
20 년을 부부로 살면서 자애로운 미소를 보이며, 이웃사람들의 눈엔 늘 잉꼬부부로 보이는 한 50 대 부부가 있었답니다.
살면서 단 한번도 싸우는걸 본적이 없다는 주변사람들의 말에도 불구하고, 어느날 갑자기 그 아내가 자살을 했답니다.
왜였을까요?
사연은 이렇습니다.
이 부부는 서로가 너무나 상대를 배려 하다 보니,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더라도 상처가 될까봐, 꾹꾹 눌러 참으며 한번도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았답니다.
20 여 년을 그리 살다 보니, 서로의 가슴에 수 많은 스트레스가 쌓여 있었을 겁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날 부부가 같이 저녁상을 마주하게 되었는데, 숟가락으로 된장찌게 국물을 떠 맛을 보던 남편이, 무심코 한마디를 했답니다.
"짜다!"
그 말을 들은 아내의 표정이 굳어지며 말이 없더랍니다.
그 다음날 아침 남편이 거실로 나오다 목을 매 숨져있는 아내의 시신을 발견하게 되었답니다.
- 평생 좋은말만 하면서 살아도 인생은 그 시간이 너무 짧다 - 라는 말도 있지만, 성인군자가 아니고서야 부부로 살면서 항상 좋은 얘기만 할수는 없겠지요.
비온뒤 땅이 굳어진다는 말도 있듯이, 부부간에도 적당한 말다툼은, 서로간에 애정을 견고이 하는데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다만 서로에게 깊은 상처가 되는 막가자식 대화는 배제 되야 하겠지요.
그런면으로 본다면, 저도 앞으로 저의 마눌님과의 남은 세월이 얼마나 더 지속될지는 모르겠지만, 열심히 토닥거리며 이쁜 사랑으로 다져나가야 할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다정한 부부생활 영위해 나가시길 바라며, 오늘의 글 이만 마무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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