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어떤 신문사에 보냈지만, 실어주지 않아서 죽을 뻔한 원고입니다. 이곳에서 살려봅니다.
말투가 반말이라도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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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 군사 정변”을 불가피한 구국의 혁명이라거나, 박정희 독재가 역설적으로 민주화에 이바지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도대체 무슨 혁명을 생각하는지 알고 싶다. 빨갱이 타령하는 사람들이 볼셰비크 혁명이나 문화혁명을 좋게 볼 리 없으니, 프랑스 혁명과 산업혁명의 좋은 점을 적당히 찾아내서 박정희 업적의 긍정적인 면으로 내세우는 것은 아닐까?
먼저, 불가피했다는 말이 옳은가? 4.19혁명으로 독재정권을 타도하고 민주정부를 수립한지 1년도 안 되어서 박정희는 모험을 했고, 또 성공했다. 그러나 그 순간 한반도에는 미군이 주둔하며 북한의 도발을 억지했다. 오늘날에도 미군주둔이 국가안보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당시 우리나라가 망하기 직전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모순 아닌가?
물론 박정희 독재시대 경제가 눈부시게 성장했음을 부인하지 않겠다. 그러나 그가 추진한 경제개발5개년계획은 이미 민주정부가 채택한 경제정책이었다. 당시 우리 국민에게는 박정희가 나타나지 않아도 경제를 성장시킬 잠재력이 있었다. 로스토의 경제성장의 단계가 미국정책에 영향을 주고, 경제대국들이 제2차세계대전 이후 눈부신 경제활동을 하는 국제적 맥락에서, 독재정권을 스스로 타도할 만큼 교육수준이 높은 국민에게 민주주의 정부와 함께 경제를 키울 수 있는 힘이 없었다고 말할 근거란 없다.
박정희가 우리 역사의 일부이며, 그 시대에 경제 규모가 갑자기 커졌음을 부인하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모든 공을 그에게 돌리는 것은 지나치다. 저임금에도 근면하게 일하는 노동자들의 몫을 말하지 않고, 어찌 독재자의 지도력만 강조할 수 있는가? 전태일과 YH 노동자들은 자신이 기계의 부속품이 아니라 인간임을 인정하라고 외치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독재정권은 그들을 탄압하기만 했다. “시월유신”의 40년 뒤인 요즘에야 비로소 “경제 민주화”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박정희의 독재체제와 그것을 더욱 강화한 유신체제는 정경유착으로 경제성장의 혜택을 일부만 누리게 했다.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훨씬 전, 프랑스의 중상주의 정책을 생각하게 만드는 일이다. 값싼 임금으로 생산원가를 낮춰 경쟁력을 높이는 한편, 노동자에게 여가와 사치를 즐길 여유를 주지 않는 정책. 그런 식의 산업화를 근대화라고 주장하기 어렵다. 더욱이 산업화한 영국이나 독일의 제국주의, 그리고 뒤늦게 출발한 일본의 군국주의가 바람직한 근대화의 모습인가? 200년 동안의 민주화 과정을 보지 않고, 1960년대 초에 이룩한 결과만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으리라.
프랑스 혁명을 수행하는 사람들에게는 희망이 있었다. 그들은 구체제로 돌아가느니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고, “자유가 아니면 죽음”이라는 각오로 국내외의 적과 싸워 혁명을 지켜나갔다. 그들은 자신들이 뽑은 국민의회를 중심으로 반혁명 세력과 싸우면서 희망을 잃지 않았다. 그러나 대외전쟁으로 군인의 힘이 커졌고, 혁명은 나폴레옹의 정변으로 끝났다. 4.19혁명도 희망을 주었지만, 5.16 군사 정변으로 끝났다. 나폴레옹은 대외전쟁에서 공을 세웠지만, 박정희는 일본군과 국군에서 무슨 일을 하였던가?
현정권처럼 민주주의로 시작해서 독재정권 못지않게 부패하고 타락하는 경우는 많아도, 정변으로 시작해서 민주주의를 실시하는 고상한 정권을 역사상 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아직도 “군사 정변”과 독재체제를 강화한 “유신체제”를 좋은 뜻의 혁명으로 미화하려는 사람은 누구인가? 박근혜 후보가 “역사의 판단”을 강조하는 것을 보면서, 그가 꿈을 이룬다면 “헌법 전문”의 4.19 정신을 부정하고 5.16 정신을 넣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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