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정상에 선 변증법적 가치투자자
저자 이준혁을 지근거리에서 10여 년 이상 봐왔던 나는 변화와 혁신의 힘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처음 직장 동료이자 후배로서 그를 만났을 때 첫 인상 내지 느낌은 2000년 초반을 강타했던 '엽기토끼 마시마로' 였다. 엽기토끼 중에서도 극강이었던 블랙 마시마로가 바로 이준혁 매니저였다. 뭐랄까, 여의도 운용업계 관행의 테두리를 넘어서는 자유분방함, 대중적 사고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독특함, 사물을 거꾸로 해석하고자 하는 역발상적 태도는 모두가 A를 기대할 때 뜬금없는 B나 C를 불쑥 던져 놓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당황해하는 우리들에게 뭔 일 있었냐는 듯한 표정을 지을 때면 '엽기적인 마시마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그가 도발적인 제목의 책을 들고 대중앞에 서려고 한다. '좋은 주식에 집중투자하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사부를 죽이거나 진리를 거부하라고 선동한다. 그는 도대체 왜 이런 말을 하는 것일까? 10년 전 그가 책을 썼다면 아마도 이런 제목이었을 것이다. '좋은 시장, 좋은 시기에 인덱스나 파생상품에 집중하라' 이러지 않았을까? 내가 틀리지 않았다면 10여년 전 그는 Bottom-up(상향식 기업분석)이 아닌 Top-down(하향식 경제분석)을 더 중시했었고 매크로나 주식시장의 흐름, 지수선물이나 지수옵션에 더 관심을 많이 두었기 때문이다. 시장주의자였던 그가 10년이 지난 후 강력한 기업가치분석 주창자로 거듭났다. - 시장주의자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
그는 2002년 하반기부터 10년간 여의도에서는 거의 보기 드물게 한 직장에서만 내수(음식료, 제약, 유통, 의류 등), 통신, 철강, 화학, IT, 인터넷 등 다양한 산업을 분석하였다. 매주 최소 5~6개 기업을 방문, 조사하는 꾸준함이 오늘 날 기업가치 지상주의자, 집중투자자로 이끌었다. 10년을 한 직장에서 묵묵히 3천여개 기업을 방문했던 성실함이 조금씩 그를 변화시켜 한국에서 전도유망한 중견 펀드매니저로 비약시킨 것이다. 이러한 변화와 혁신, 비약의 키워드가 그가 주장하는 투자이론의 핵심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의 양적 변화가 어느 날 질적 비약으로 탈바꿈된다는 것을 그는 10년에 걸쳐 몸소 실천하고 이를 주변 사람들에게 입증했다. 그의 변신을 경애하는 바이다.
서울에 소재한 북한산 등산코스는 몇 개나 될까? 대표적 코스는 50여개 정도이다. 그러나 정상으로 이어지는 길은 300 개 가까이 되고 북한산 들머리는 2천개나 된다고 한다. 정상인 백운대에 서기 위해서 등산객은 하나의 등산로를 꾸준히 올라야 한다. 하나의 등산로만으로 북한산을 오르는 산꾼에게 북한산은 단 하나의 모습으로 다가설 것이다. 그가 1000번을 올랐다고 해서 과연 북한산에 대해서 다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아마도 정상에 서서, 정상으로 이어지는 다채로운 풍광과 코스를 이해하고 북한산의 절경을 접할 수 있는 다양한 코스를 섭렵해야만 제대로 북한산을 이해할 수 있다 하겠다.
주식투자도 이러하다. 모두가 주식투자에서 성공하고 싶어할 만큼 주식은 투자성과에 있어 어렵고 꾸준한 장기성과를 발현하기 매우 어려운 영역이다. 그러나 모두가 주식만큼 스스로가 잘 안다고 여기는 분야도 드물다. 이런 아이러니가 초과수익의 원천이 아니겠는가. 해외 유수의 대가들이나 현대 재무학에서 주장하는 투자비법, 투자이론, 가치평가론 등은 어찌보면 우리가 정상으로 향하는 하나의 방법을 알려주는 것일지 모르겠다. 가치투자, 성장주 투자, GARP(growth at reasonable price)형 투자, PER 가치평가, PBR 가치평가. 이러한 구분이 의미가 있을까? 과연 그 하나의 방법이 변화무쌍한 현실세계에서 언제나 절대적 진리처럼 적용될 수 있을 런지 의심스럽다. 기업의 가치가 결국 앞으로 벌어드릴 미래의 현금흐름을 현가화한 것이라고 이해하면 우리가 맹목적으로 구분하고 대립시키는 다양한 투자이론들은 어쩌면 북한산의 어느 한 지점의 풍경만을 강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런 점에서 저자가 주장하는 투자 명제는 명쾌하고도 단순하다. 어찌 보면 투자과정을 거두절미하고 단순화시킨 논리적 압축이 오히려 신선하고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마치 산의 정상에서 다양한 코스의 장단점을 모두 이해한 후 최적의 코스를 집어주는 것처럼.
그의 투자관점은 주식이 기업의 지배권을 표창한 증서라는 점에서 출발한다. 우리가 사고파는 주식은 매매의 대상이 아니라 기업 지배권을 소유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주식투자는 내가 비록 경영에 전면적으로 참여하지는 않지만 기업을 직접적으로 소유한다는 행위로 이해하여 본질이 좋은 기업의 경쟁우위 요소가 발현되는 상황에 집중하자는 것이다.
본질(가치)가 좋은 기업이란 당연히 지배구조, 경쟁우위요소, 재무적 우량성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경영 투입요소들이 미래의 본질(가치)를 키울 수 있는 인자들이기 때문이다. 좋은 씨앗을 키우기 위해 적당한 강우량과 햇볕이 필요하듯 기업을 둘러싼 산업이 커지고 경쟁상황이 좋아야 한다. 잠재력 있는 본질 좋은 기업의 좋은 상황에 둘러 싸여 있어야 좋은 주식의 초석이 된다는 의미이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좋은 주식은 가급적 좋은 가치에 저렴하게 살 수 있어야 한다. 주식을 사는 순간 이익의 폭이 결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저자가 주장하는 집중투자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포트폴리오를 분산함으로써 시장수준의 체계적 위험만을 남겨 놓으므로써 위험조정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전통적 분산투자이론에 비춰볼 때 개인투자자가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을 때 쪽박찰 수 있지 않을까 우려가 클 수 있겠다. 그러나 투자하는 기업을 어느 정도 상세히 이해하고 스스로가 확신할 수 있는 기업에 국한해서 장기적으로 경영을 하듯 투자를 한다면 굳이 수십개 기업에 분산할 필요가 있을까? 거액 자산가를 제외한 일반 개인투자자들은 대개 적으면 너댓개, 많아야 열개 수준으로 종목투자를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내가 확신할 수 없는 기업에 분산한다는 것은 골대를 비운 채 페널티 키커를 맞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상식적이고 직관적으로 좋은 기업을 싸게 사놓자. 그런 기업이나 주식이 없다면 기다리자. 이것이 저자가 강조하는 바이고 이러한 투자방법으로 한국에서는 드물게 안정적으로 장기 성과를 실제로 발현한 것이다.
사부를 죽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도발하고 싶은 한 가지가 있다. 과연 이 책을 읽으면 투자의 혜안이 불현듯 떠오를까? 좋은 본질가치를 가진 기업을 사면 미래의 본질을 잡기 쉽다고 하는데 현재의 본질이 미래의 본질을 100% 담보해줄까? 이 책에 미래의 본질을 단 하나의 오류가 없이 식별하게 해줄 무공비급이 있을까? 여러분이 이 책을 읽으면서 변화와 비약, 양적 변화를 소리없이 질적 비약으로 전개시키는 모순들의 정-반-합 투쟁. 기다림의 미학 . 이런 토대에 깔린 개념들을 편견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면 아마도 당신은 여의도에 있는 수백 명의 펀드매니저도 못 구한, 산길을 헤매다 천년 비전된 무공비급을 얻게 될지 모르겠다.
지난 10여 년 저자는 다양한 소재의 책을 섭렵하고 사색하고 고민하면서 진화하였다. 愚公移山 牛步萬里의 꾸준함으로 마침내 정상에 선 그를 보면서 같은 기간 잘해야 정체, 어쩌면 퇴보하였을 지도 모를 나를 자책하게 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얻은 성과는 지금이라도 변하자는 지혜를 깨달은 것이다. 이 감상문이 나태해진 내게 변화의 동기를 찾게 해 준 저자에게 바치는 자그마한 헌정사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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