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하는 한 학생이 있다. 작년 고3부터 다닌 학생인데 언제나 오면 생글생글 웃고 있었던 아이로 기억된다. 작년 다른 아이들은 대부분 신경을 썼는데 이 아이는 기억에 뚜렷이 남아 있지만 신경을 못썼다. 그래서 내내 맘에 걸려하던 차에 이번에 재수한다고 다시 왔다. ㅠㅠ
그런데 이아이는 말투가 너무 애기같다. 마치 이제 갓 중학생이 된 아이같이 귀엽게 말한다. 머리는 정말 똑똑한 녀석인데(외고 ㅠㅠ. 놀아도 1등급 ㅠㅠ) 논술의 어려운 제시문을 다 읽어내지만 그것을 말로 표현하진 못한다.
그리고 말을 하면 항상 애처럼 굴면서 "제가요? 그런가요? 아네요?"라고 하면서 항상 미끄러지는 느낌이었다. 언제 한번 대박 붙어야지라고 기다리고 있던차에 어제 저녁 기회가 있어 대화를 했다.
아...
그런데 그 대화이후 글을 쓰는 지금까지 잠을 제대로 못잤다. 너무 가슴이 아프고 너무 답답해서 잠이 잘 안온다.
나 : 난 네게 네 삶에 한발짝 떨어져 있는게 맘에 안들어
애 : 그게 뭔데요?
나 : 그냥 넌 네 삶에 대해서 방관하고 가만이 있기만해 그러다보면 아무런 결정없이 시간이 지날것이고 시간이 지나면 등떠밀려 살아가겠지. 대학도 등떠밀려. 졸업도 등떠밀려, 취업도. 시집도 등떠밀려 대충 선봐서 가겠지.
애 : 아네요.
나 : 아니가 아니라 싫은거겠지. 아닌것과 싫은것은 다른거잖니. 싫어거지만 넌 그렇게 살고 있자너.
애 : .....
나 : 넌 왜 항상 애처럼 구니. 말투도 애처럼 간혹 말귀도 못알아듣는척 딴소리하고. 왜 어른되는게 그렇게 싫어?
애 : ....
나 : 야!
애 : ....
더이상 대화 진척이 안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려면 애기처럼 모르는척 아닌척 혹은 남애기 하듯이 빠져나간다. 짜증이 슬슬 밀려온다.
이럴땐 그냥 지르는거다. 대책없이 지르면 뭔가 반응이 오고 그 반응에서부터 출발하면 되니깐.
나 : 넌 어른들이 부패했다고 생각하니?
한참을 망설이다 대답한다.
애 : 네....
나 : 그런데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부패할수 밖에 없다는것은 아니?
애 : 그래도 해도해도 너무하자너요..
그러면서 갑자기 펑펑 운다. 아무말도 없이 그냥 계속 운다. 조금 울게 놔둔후 한마디 건넨다.
나 : 이 학원 선생님들은 어떠니
애 : 좋아요
나 : 그런 우리가 대안이 될 수 있을듯하니..(이건 그냥 궁금해서였다. 얼마전에 다른 아이와 대화가 기억나서ㅋㅋㅋ)
애 : 넹...
그리곤 또 운다.
이게 아이들 눈에 비친 세상이다. 더러운 어른들. 세상살이 핑계를 대지만 해도해도 너무 더러운 어른들...
이 대화는 얼마전 한 아이랑 한 대화랑 너무 똑같다. 그래서 나도 깜짝 놀랬다. 정말 아이들눈엔 어른이 더러운가보다.
물론 그아이는
우리가 대안이 될것같니?라고 물으니 지켜봐야죠...라고 했다. ㅋㅋ
그래서 요즘 아이들은 더러운 어른이 되기 싫어 애처럼 산다. 성장하기 싫은 것이다. 자기가 어른이 되면 그런 더러운 어른이 되어 이 사회에 적응하며 살것같은 것이다. 그게 너무 싫고 자존심이 상한다. 그래서 영원한 피터팬으로 남고 싫어한다. 하지만 세상이 그리 만만한가...
등떠밀려 살아갈것을...
이 사회는 부패했다. 사회가 부패했다는 사실 모호한 말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 사회를 구성하고 이 사회를 움직이는 어른들이 부패한것이다. 그게 이 아이의 눈에 비친 세상이다. 이 아이는 분위기 혹은 피부로 세상을 인식하는 아이다. 딱히 고위공직자, 기업가 정치가가 비리를 저지른것을 보고 부패했다고 느끼는 것이 아니다. 그냥 현실감이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학원에서 그리고 거리에서...세상이 부패했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런 부패한 세상에 살 자신이 없는게 아니라 그렇게 살것같기에 그것이 자존심 상하기에 어른이 되기 싫은 것이다. 이런 아이들이 등떠밀려 어른이 되면 결정해야 한다. 더럽게 살거나 아님 더럽게 살면서 정신줄 놓고 살거나. 세상에 모든 감각을 차단하지 않고 정신차리고 살기엔 너무 더럽고 그것에 적응하는 자신이 무섭고 자존심 상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호러다. 외부의 공포가 아니라 내부의 어찌할 수 없는 공포..그게 호러다.
그래서 정신줄을 놓으면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사는지 모르는 것이다. 몰론 지금 이 세상을 살고 있는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자신이 무슨짓을 하고 사는지 모른다. 하지만 어른들은 생각보다 비겁하다. 자신이 무슨짓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이 세상에 관심도 없다. 그저 문제가 있고 그것을 외부로 돌린다. 그게 정치다. 즉 모든 문제는 명박이로부터 온다. 정치만 바꾸면 될것으로 생각한다. 그게 정치에 열광하는 이유다. 젊은이들은 그래서 정치에 열광하지 않는다. 호러기때문이다.
가장 부패한 것은 '가정'이다.
자본주의는 태생이 불완전한 시스템에서 출발했다. 그 불완전성을 채워준것이 근대 신성가족이다. 중세시대는 완결성있는 사회였다. 삶의 단위가 하나의 공동체였고 그 공동체는 생산과 재생산 시스템이 자연스럽게 결합되어 있는 사회였다. 그러다보니 그 자체적으로 모든 것을 해결가능했다.
하지만 중세가 무너지고 종교 개혁운동이 일어나면서 '개인(근대적 개인)'이 탄생했다. 공동체 사회가 무너지고 개인이 탄생하면서 모든 것은 개인을 중심으로 재편되기 시작했다. 가족도 공동체중심에서 개인의 혈연 중심으로 재편되기 시작했다. 중세의 종교개혁운동과 상업의 발달 그리고 개인이 탄생되면서 남녀의 성적 역할 구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먹고 사는 문제가 토지와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던 중세와 달리 상업이 발달되면서 사적공간과 공적 공간이 분리되고 가정을 사적공간으로 가정외부를 공적인 공간으로 분할되기 시작한 것이다.(이건 부루주아 상인 가정이다) 가내수공업과 공업의 발달이 이뤄지면서 자본주의 시스템이 정착되어 갔고 공장은 생산의 기능을 담당하게 되었다. 자본주의가 공장을 생산중심의 공적 공간으로서 자리매김하면서 가장 큰 문제는 재생산 시스템이었다. 노동력의 재생산이 이뤄지지는 못한것이다. 모든 것을 이윤과 효율성의 가치로 사고하면서 자본주의가 재생산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러다보니 반쪽 시스템이 정착된것이다.
부루주아 입장에서 재생산의 요구와 프롤레타리아트 남성들의 일자리 경쟁에서 여성과 아이들 배제 필요성이 맞물리면서 가정은 근대 부루주아의 가정 모델이 전 사회로 확대되기 시작한다. 자본주의 초기 시기 남성은 물론이고 여성 아이들까지 장시간 노동에 혹사당했다. 4-5살꼬맹이들도 16시간에서 심지어 18시간까지 노동을 했다는 근로감독관의 보고가 있다. 결국 일자리와 임금에 대한 경쟁은 남성을 비롯한 여성 아이들까지 죽이게 될 판이었다.
공장을 일하는 공적 공간, 가정은 재생산을 담당하는 사적공간, 남성은 공적인 일을 하는 역할, 여성은 가정에서 출산과 육아 등 재생산을 담당하는 역할로 생상과 재생산 시스템이 분리된것이다.
자본주의는 개인과 그 개인의 가정을 중심으로하는 재생산 시스템이 장착되면서 비로소 생명력을 얻기 시작했다. 자본주의가 유기체로서 가정이 에너지 공급원이 된것이다. 이럴경우 외부의 공적 공간이 힘들면 힘들수록 가정은 더 많은 에너지를 공적공간으로 보내야 한다. 만약 공적 공간이 건강하게 살아가지 못하고 계속 힘들게 살아간다면 가정은 그 에너지 공급을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해야할것이다. 그러면 공적 공간과 사적공간중 누가 먼저 쓰러질까? 당연이 에너지를 공급하는 쪽이 먼저 쓰러진다. 그게 가정이다.
부패한 사회를 감당하느라 가정이 가장 부패한것이다. 안락함과 휴식의 공간이 재충전의 공간인 가정이 이제 가족이란 이데올로기적 관계만 남은 껍데기 상태에서 재생산을 담당하고 있다. 그게 버티겠는가.
가장 부패한 가정 그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
어제 잠을 한숨도 자지 못했다. 너무 피곤한데. 너무 가슴이 답답해서...
일본은 이 일을 우리보다 1-20년 더 먼저 겪었던 나라다. 그 나라는 그 돌파구로 호러라는 문학장르가 나왔다고 한다. 그게 과연 돌파구가 될 수 있을까?
일본의 호러 소설을 한번 읽어봐야겠다.
공포스런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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