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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의 뒤를 이어 문익환이, 문익환의 뒤를 이어 백낙청이 한국의 통일운동에서 상징적인 위치를 이어받았는데, 백낙청은 이때 미국에 유학중인 홍안의 수재 청년이었다. 경기고등학교 재학 시절 유엔총회장에서 열린 세계고교생토론대회에 한국 대표로 나가 이름을 떨친 백낙청은 명문 브라운대학에서 졸업연설을 하여 <동아일보> 사회면 톱에 올랐다. 그런 백낙청이 미국 유학 중 병역의무를 마치겠다고 자원입대했다. 당시 신문은 “백군이 나이어린 13세 때 아버지와 큰아버지가 6·25동란으로 붉은 침략자들에게 강제로 납치당한 비통한 현실이 그에게 그러한 결심을 하게 한 것일지도 모를 일”이라고 썼다. 공동체 내에서 사회적 책임을 지지 않는 사람은 지도자의 자격이 없다. 한국의 진보는 원래 진짜보수에서 출발한 진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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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조선에서 백낙청님에게 뭐라고 씨부렸는데 니들이나 잘해라
이 ***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