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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경제학에 문외한인데, 요새 교양 수준으로 보고 있습니다.
신고전파가 신자유주의(보수파), 그에 맞서 반박하는 크루그먼 교수 같은 입장이 케인즈주의라고 대략 알고 있는데,
(이 두 흐름이 주류 경제학이고)
맑스주의 입장에서는 아예 둘 다 싸잡아서 아래와 같이 볼 수도 있는 거로군요…
검색하다가 다음 아고라에서 어느 논객의 덧글을 본 건데, 이렇게도 볼 수 있고 말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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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주아 경제학은 시장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 패거리와 인정하는 패거리로 나뉘고,
인정하지 않는 패거리를 신고전파라고 하고
인정하는 패거리를 케인즈주의라고 합니다.
신자유주의는 이 둘의 결합체입니다.
케인즈주의와 통화주의의 결합이 현실 경제의 결정판이죠.
이들은 계급투쟁의 역사를 부정하고,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 또는 부익부빈익빈 현상을
생산관계의 모순으로 보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것이 맑스주의와 결정적인 차이죠.
가치를 노동시간에 맞추면 돈을 마음대로 찍어낼 수가 없죠.
그런데 가치를 한계효용(각자의 마음)에 두어버리면 가치는 무한대입니다.
한계효용학파가 신고전파입니다.
이들의 후계자들이 프리드먼, 시카고학파 등입니다. 가치가 사라졌죠. 없애버렸죠.
그렇다면 가격만 남게 됩니다. 가격은 윤전기로 찍어내면 됩니다.
"가치의 문제"가 근본 모순입니다.
가치가 사라져서 자본이 무한팽창하고 있는 것입니다.
달러가 영원히 팽창하면 모든 국가들의 화폐도 영원히 팽창할 수 있죠.
그런데 현실경제는 어떠합니까?
과잉생산과 과잉자본의 모순이 발생해버렸죠.
"생산관계"의 문제가 대두되는 것입니다. 부의 집중입니다.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에 근거한 시장에서의 무한경쟁"은
부를 소수자의 수중에 집중시키게 되어 있죠.
수축과 팽창 또는 성장과 공황을 거듭하면서 부가 소수자에게 집중되어 왔죠.
자본의 무한팽창을 바라는 그들과 노동을 토대로 하는 경제학의 대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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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경제 위기를 공적 지출 확대로 해결해야 된다는 크루그먼의 주장 역시
(http://blog.naver.com/hong8706/40165379565
http://blog.naver.com/hong8706/40165682932
- 홍춘욱 박사가 크루그먼의 신작 『End of Depression Now』를 요약해 올리고 있는데,
이 신작에서도 계속 주장하는 바입니다)
이 덧글 논객의 시각으로 볼 때엔 케인즈주의를 반박하고 나온 통화주의나 도찐개찐이고,
결국 미국 패권주의, 자본 패권주의, 신자유주의로서 보수파 경제학이나 한통속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 주장도 어폐는 있습니다… 가치에 대한 금전적 평가를 객관화, 표준화할 수 없으니 시장에 맡기자는 건데… 이 역시 답 안 나오는 주장일 것 같긴 합니다…
"가치를 노동시간에 맞추"ㄴ다는 건 그야말로 유도리 없는 무대포 공산주의라고 보는데요. 자본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비현실적 주장인 듯해서 말문이 막히긴 한데,
가치, 한계효용 등의 문제를 맑스주의 경제학에서는 어떻게 다루는지도 궁금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