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다크나이트 라이즈까지 봤는데요.
일단 제 기준에서는 팀버튼의 배트맨이 최고입니다.
1편 배트맨 비긴즈는 좀 재미없게 봤는데요.
초반부까지는 재밌다 싶었는데 중반부에 쭉쭉 늘어지는 느낌이 든 것은 서양놈들의 대책없는 오리엔탈리즘때문이었습니다. 역시 동양에는 뭔가 신비한게 있어. 배트맨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거듭나는 건 결국 동양의 신비 때문 아니겠음?식의 안일한 진행이 꽤 오래 시간을 잡아먹습니다. 솔직히 지루하더군요.
특히 마지막 액션대결은 실소가 터져나올 지경이었는데요. 질떨어지는 CG로 만들어진 도시를 향해 질떨어지는 CG로 만들어진 열차가 질주합니다. 그까짓 CG로 만든 도시 부숴지면 또 어떠냐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긴박감도 없고, 그렇다고 액션 자체로 봐도 좀 헐렁하고...
중반부터 급격하게 지루해지기 시작해서 마무리까지 맥빠졌던 다크나이트 비긴즈는 제 기준으로 좀 못 만든 블록버스터였습니다.
2편 다크나이트는 갑자기 수준이 비약적으로 급상승합니다.
일단 넘치는 액션속에서도 주제의식을 매우 잘 살렸다는데 큰 점수를 줄 수 있는데요.
2편을 관통하는 주제의식은 배트맨! 너라는 존재가 오히려 더 큰 악을 끌어들인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느냐는 조커의 끊임없는 질문에대한 배트맨의 혼란과 고뇌가 이어집니다. (끊임없는 질문은 끊임없는 악행이니 박진감 넘치는 전개가 가능해졌구요.)
사람이 한가하면 개똥철학으로 흐르지만, 바쁘면 존재론적 회의에 빠지게 되는 법이죠. 내가 지금 뭐하려고 이 지랄일까, 이 지랄한다고 과연 세상이 바뀔 수 있을까? 그리고 나 자신은 과연 그럴만한 영웅인가? 빠르게 진행되는 속에서도 배트맨의 존재론적 회의가 빛을 발하니 참으로 좋은 주제선택이었다고 봅니다. 그와 더불어 피로 피를 씻는 배트맨의 정의는 과연 정당한가라는 질문까지 곁들여지니 역시 2편은 참 잘 만들어진 영화였습니다.
3편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어이없게도 1편과 2편의 나쁜점만 모두 끌어왔습니다.
1편의 무책임한 오리엔탈리즘이 또 다시 펼쳐집니다. 죽기를 각오할때 살아나리라는 메시지 하나 만들어내려는데 들어간 시간이 한참입니다. 역시 지루하더군요.
2편의 문제점은 로케이션에 있습니다. 1편 마지막의 맥빠지는 CG 도시가 감독 자신도 맘에 안들었는지 샌프란시스코를 배경으로 했었는데요. 2편이 성공해서 그렇지, 만약 실패했다면 그렇게 밝고 깨끗한 고담을 만들다니 정신이 있는거냐 없는거냐는 힐난을 받을 수 있는 요소였다고 봅니다. 그런데 3편에서는 뻔뻔스럽게 뉴욕을 배경으로 삼더군요. 고담이 이리 저리 이동하는 모양입니다. ^^
무엇보다 고담이 있기에 배트맨이 존재한다는 걸 간과한 게 제일 큰 잘못이죠. 팀버튼의 고딕풍 고담이 놀란에게는 겉멋으로 보였던 모양입니다. 고담시의 음울한 모습은 단지 그럴싸한 배경만은 아닌 것이죠. 고담과 배트맨은 동시에 하나의 캐릭터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배트카등 배트맨의 무기 역시 불만입니다. 너무 현실적이죠. 이러한 설정들이 고담의 중간계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낸다는 걸 무시한 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어쨌든 제 기준으로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1, 2편의 단점이 모두 부각된 평범한 블록버스터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2편 다크나이트가 대성공을 거둬서 그렇지 배트맨 비긴즈는 성공적인 프리퀄이라는 평까지는 받았어도 잘만든 영화라는 평을 받은 적이 없었다는 것도 생각해봐야할 겁니다. 2편이 갑자기 미친 거였었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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