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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자의 피서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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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24 20:42: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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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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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자의 피서법~ |
글쓴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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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창연 [가입일자 : ] |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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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30 도를 훌쩍 넘어서는 요즘날씨가, 가뜩이나 열이 많은 체질인 내가 견뎌내려니, 아주 죽을 맛이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흘러내리는데,
찬물로 샤워를 해보지만 그때뿐, 2 시간만 지나면 다시 같은 상황이 된다.
전기요금이 무서워 에어컨 들여놀 처지도 안되는 빈자라, 선풍기 한 대로 버텨내고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차에 베낭과 텐트를 싣고 취사도구를 챙겨,
인적드문 계곡을 찾아가 한달쯤 내리제키다 오면 좋겠지만, 먹고살기 바쁜몸은 이마저도 허락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한숨만 푹푹 쉬며, 어머니 왜 날 낳으셨나요?
이러면서 궁상을떨고 앉아있기에는, 내 삶이 너무나 처량맞아 보인다.
머리가 썩 좋은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끔은 이 머리로 궁리를 하다 보면, 꽤 괞찮은 생각이 떠오를때도 있다.
생각이 떠오르면 바로 실행하는게, 여러모로 정신건강에 좋을것 같아 실시하기로 했다.
냉장고에 들어있는 막걸리 한 병을 꺼내 냉동실에 옮겨놓고, 시장엘 갔다.
방금 만들어져 나온, 따끈따끈한 두부 한 모를 1,500 원에 샀다.
집으로 돌아와 묵은 김치를 썰어 반찬통에 담고, 양념장을 덜어내어 종이컵에 담은후,
일회용 비닐팩에 넣어 출렁거려도 넘치지 않게 잘 묶었다.
휴대용스피커와 MP3기기를 챙기고, 책꽂이에서 이백 시집 한 권을 꺼내놓고,
그 다음 준비물로 창고에서 돚자리 두 개를 꺼냈다.
이 모든걸 오토바이에 실은뒤, 마지막으로 냉동실에서 막걸리를 꺼냈다.
반쯤 얼어 있다.
오! 굿~ 준비는 완벽하다.
오토바이 키를 돌려 시동을 걸었다.
골목길을 지나 큰도로에 접어드니,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뀐다.
브레이크를 밟아 신호대기를 하고 서있으려니,
이글이글 달아오른 아스팔트지열이 다리를 타고 올라와,
아무것도 안했는데 숨이 턱까지 차오르며, 얼굴마저 후끈후끈해 진다.
목적지는 10 여 분 거리에 있는 태조산 공원이다.
시에서 관리하는 곳인데, 나무그늘이 많아 시민들이 즐겨 애용을 한다.
주말이면 사람들이 바글바글해, 늦게 가면 좋은 자리를 차지할 수 없기에,
평일날 시간이나는 나같은사람 입장에서 보면,
이게 참 고마운 일이다.
산꼭대기로 올라갈수록 확실히 더 시원하다.
한줄기 선들바람이 상수리나무 잎새를 훑고 지나가는데, 집에 있을때와 온도차이가 무려 7~8 도는 되는 것 같다.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지붕이있는 평상에 돚자리를 깔고, 안주라 부르기엔 좀 많이 부족하지만,
두부와 김치, 간장, 막걸리를 주섬주섬 꺼내놓았다.
어차피 혼자 먹을거고 누가 쳐다보는 사람도 없는데, 두부면 어떻고 김치면 어떠리...
막걸리는 기분을 좋게하고 두부는 건강을 좋게하니, 이만하면 내게는 황송한 술과 안주다.
다행히 아직 막걸리는 대빡 시원하고, 두부는 따뜻하다.
MP3기기를 휴대용스피커알텍Orbit IMT237에 물리고, 음악을 재생했다.
양현경의 청아한 목소리가, 고즈녘한 평상 주위로 나긋이 퍼져 나간다.
-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
김광석이 부른 노래지만, 양현경이 부르니 더욱 애절하게 들린다.
가슴속을 후벼파는듯 하다.
안되겠다 막걸리부터 한잔 마셔야겠다~
한잔을 쭉 들이켰다.
탄산수처럼 톡 쏘는 알싸하고 시원한 맛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데, 체증까지 싹 씻어내리는듯 하다.
나무젓가락으로 큼직하게 자른 두부를, 묵은김치에 싸서 약간의 양념간장을 올린후 한입 가득 우겨넣었다.
두부의 담백한 맛과, 묵은지의 새콤짭짤한 맛이 입안에서 뒤섞이니,
한번씩 씹을때마다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식감이, 목안으로 넘어가며 몸부림을 친다.
흠 그래 바로 이 맛이야... 두부란 칼로 자르는것보다, 이렇게 나무젓가락으로 뜯어먹는게 제맛이지~
싱그러운 바람이 불고, 음악이 흐르고, 술이 있으니 어찌 마시지 않으리요...
아! 시가 빠졌네~
이백 시집을 펼쳤다.
중국의 시선이라 불리웠다하니, 당대 최고의 문장가임을 그의 시가 대신 말을 해준다.
책장을 넘길때마다 주옥같은 시가 그득하다.
이백의 짧은 시 한 편을 옮겨본다.
- 산중문답 -
푸른산에 왜 사느냐고 내게 묻기에
아무 대답 안하고 그저 한가로이 웃을 수 밖에
복사꽃 띄운 물은 아득히 흘러가나니
분명 여기는 인간세상이 아닌 별천지인 것을.
술에 취하고, 음악에 취하고, 시에 취하니 세상 부러울게 없는데,
내곁에 벗이 없으니, 그것이 옥의 티다.
잠에 취하면, 꿈속에서나 벗이 나타날까...
펼쳐놓지않은 돚자리를 베개삼아 스르르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지저귀는 산새소리에 잠이 깨었다.
산그늘이 길게 드리워진걸 보면, 꽤나 오래 잠이 들었던것 같다.
모처럼 숙면을 취했다.
이제 다시 저 불구덩이로 내려가야할텐데,
푸른산의 정기을 받았으니, 아마도 한 일주일정도는 잘버텨내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을 해보면서, 빈자는 오늘도 이 화끈하고 정열적인 여름밤과 맞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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