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명을 깨닫는다는 지천명의 나이 50 세를 훌쩍 넘었지만,
깨달은건 하나도 없고, 여전히 오리무중의 삶을 보내고 있다.
한때는 청운의 꿈도 키워보고 야망도 있었다.
핑계같지만, 능력부족과 운이 따라주지 못해, 득세를 할 수 없었던 거라며 자기변명을 했다.
비겁하긴하지만, 이렇게라도 내 팔자를 세상탓으로 돌리면, 조금이라도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세상에는 잘난 사람도 참 많다.
물론, 내가 그 잘난 사람을 떠받히는 둘러리 역활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어차피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은 어디에나 존재하기 마련이고,
그 못난 사람에 의해, 잘난 사람이 더욱 빛나 보이는게다.
나도 잘난 사람이고 싶었다.
하지만 운명은, 나를 못난 사람 자리에 세워 놓았다.
열등감에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었지만. 이 넓은 세상 어디하나 이 몸 하나 의지할 곳이 없었다.
그래 이것도 하늘의 명이라면 받아 들여야겠지...
능력있는 사람은 대체적으로 아내를 집안에 앉히고,
밖에 내보내 생활비를 조달케하는 어려움을 겪게 하지 않는다.
삼시세끼는 아니더라도, 남편이 원하면 언제든 따뜻한 밥과 맛난 반찬을 차려 같이 식사를 하곤 한다.
물론 요즘 세상에서,
남편이 능력이 있어도, 아내가 원해서 자신의 능력과 재능을 아낌없이 발휘하여,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캐리어우먼도 있기는 하다.
뭐 어쨋거나 나는 아내가 바깥일 하는걸 원치 않았다.
햇볕 잘드는 창가에 꽃무늬도 우아한 흰색 레이스커튼을 치고...
식탁 한켠에는, 아내의 붉디붉은 입술을 닮은 장미꽃 한다발을 장식하고...
진보라빛 물감을 풀어 놓은듯, 손을 대면 금방이라도 포돗물이 배어 나올 것 같은...
농염한 색상의 드레스를 입은 아내와 마주 앉아...
천장높은 거실엔 비발디의 - 사계 - 음악이 가득히 흐르고...
알싸한 와인 한모금은, 혀끝을 감돌아 입안을 희롱하고...
미듐으로 익힌 스테이크는, 부드럽고 감칠맛나는 소스와 버무러져 씹는 즐거움을 배가 시키고... 으흑~
이렇게 살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한 것.
처음 몆 년 간은 들쭉날쭉한 나의 수입으로 버텨봤지만,
두아이 양육비와 늘어나는 생활비를 감당하기에 역부족이었다.
아내가 생활전선에 뛰어 들었다.
못난 사람이다보니, 하지말라고 말려보지도 못했다.
이렇게 시작한 맞벌이부부 생활은, 20 년이 넘도록 지속되고 있다.
최근에는 업무가 불규칙한 나와 달리, 매일매일 출근을 해야하는 아내지만,
출근준비로 바쁜 와중에도 내 아침식사는 꼭 챙겨준다.
퇴근후 피곤한 몸으로 식사준비를 하다보니, 끼니때마다 찌개를 끓일수 없어,
한 번 찌개를 끓이면 이틀 정도 먹을수 있는 양을 끓이는데,
뎁히고 또 뎁히니, 국물이 쫄아서 짜지기도 하지만, 세 번 쯤 같은 음식을 먹으면,
그 양에 질리고 냄새에 물려 버린다.
가뜩이나 날씨도 더운데, 대낮에 혼자 쭈구리고 앉아서 밥을 먹으니, 밥맛이 좋을리도 없다.
매일 같은 음식에 식상해질 무렵, 어느날 아내에게 한마디 했다.
" 그때그때 먹을수 있는 양만 끓이면 안될까? "
" 얼씨구! 호강스런 소리 하고 있네~ 매번 찌개 끓이기는 쉬운줄 알아? 시장 한번 가봐... 조금씩은 팔지도 않네요~ "
" 그래도 매번 같은 음식은 먹기 싫어~ "
" 시끄러! 그럼 직접 해먹어~ "
" 네~ "
아내의 호통 한마디에 그냥 깨갱하고 꼬랑지를 내리고야 만다.
집은 또 어떤가?
햇볕 잘드는 창가는 고사하고, 오래된 집인데다 집에 사람이 없을땐 창문을 닫아 놓으니,
통풍이 잘 안되어, 요즘같은 장마철은 습기로 인해 쾨쾨한 냄새도 나고, 벽면 모서리엔 곰팡이도 슬어 있다.
가구를 들어내고 도배를 새로 하면 되겠지만, 이 모든 집기들을 들어낼 생각을 하니 엄두도 안난다.
에어컨을 설치하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전기요금이 무서워 이마저도 여의치가 않다.
그냥 저냥 내가 쉬는 날,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있을 뿐이다.
음악은 또 어떤가?
음악듣는 취향이 올라운드적인 나에 비해,
아내는 오로지 트로트만 즐겨 듣는데, 그 중에서도 조항조 노래를 좋아한다.
조항조 노래 중 유독 - 거짓말 - 이란 곡을 좋아한다.
아내가 유일하게 음악듣는 시간은, 매일 아침식사를 준비할때다.
아침이 되면, 나는 싫거나 좋거나 조항조 노래를 들려줘야 한다.
오늘 아침에도 들려줬다.
- 사랑했다는 그 말도 거짓말, 돌아온다던 그 말도 거짓말, 세상의 모든 거짓말 다 해놓고... -
세상에 그동안 나에게 얼마나 속고 살았으면,
좋아하는 노래조차도 거짓말이라는 노래를 들으며, 한을 풀으려 할까...ㅠㅠ
사정이 이쯤되니, 위에 언급한 주저리주저리 희망사항은,
이 모든게 꿈이런가 하노라~
흔히 하는 말에,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는 말이 있다.
이는 분수를 지키며 살아가라는 말일게다.
내 능력은 계란인데, 바위를 이겨보겠다고 계속 부딛치면 내 몸만 부서진다.
세상에는 불행한 사람도 참 많다.
몸이 아프거나 신체에 장애가 있으면 더욱 더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불행을 불행이라 여기지 않고,
불굴의 의지로 이를 극복하여, 인간승리를 보여주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일반인에게도 귀감이 된다.
가끔은 시선을 아래로 향해 보면, 나보다 불행하게 보이는 사람이 이렇게 많았구나...
이런 생각이 들며 부끄러워질 때가 있다.
그들을 통해서, 내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를 알게 되는데,
나보다 못한 그들을 보고, 나 스스로 위로를 받았다고 말하려는게 아니다.
그들은 나에게 무언의 메세지를 전한다.
- 나같은 사람도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당신의 문제는 무엇인가요? -
... ???
... !!!
아! 그렇구나~
나라는 사람은 마음에 장애가 있었구나...
늦은감은 있지만 그들을 통해 이것을 깨우친 내가, 정말 괜찮은 사람 같다.
운명이 나를 이렇게 못난 사람 자리에 세워 놓았던게 아니었다.
내가 제발로 그러한 못난 사람 자리를 찾아가 서 있었던 거다.
나는 가진 돈이, 만 원 밖에 없어 정말 슬프다.
나는 가진 돈이, 천 원 이나 되어 정말 기쁘다.
이제 이 두가지 예문 중, 하나를 선택하는게 조금은 더 명쾌해 질 듯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