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출하기도 하고, 날씨도 눅눅한게...
틱틱틱 떨어지는 빗방울을 가볍게 보고 우산을 안 가지고 맥주사러 나갔다가
쫄딱 젖어서 들어왔습니다. 샤워는 초저녁에 해 버려서 또 샤워하기도 그렇고,
대충 세수나하고 쓱쓱 닦고 앉아서 마시고 있는데,
역시 비맞고 난뒤 뽀송한 옷 갈아입고 마시는 맥주가 최곱니다.
식구들 다 잠들어서 음악을 좀 들어볼까 하다가...
아무 소리도 안나는 것도 참 좋은 음악이라 생각됩니다.
조용히 자판 두드리는 소리도 잘 들리고, 오징어 씹느라 질겅 거리는 소리도
참 자연스럽게 들립니다. 놋북 펜 돌아가는 소리도 정겹네요.
소음에 찌들어 지내다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으니, 이것도 낙원 아닌가
할 정도로 정말 많은 소리들이 세상에 있었군요.
티비를 잘 안 보지만, 요즘 티비는 왜 그러게 효과음이나 불필요한 배경음들이
많은지... 뿅~ 퍽~ 턱~ 빠방~ 게다가 자막까지 알록달록 순간순간 깔아주는
과잉 친절까지... 눈도 바쁘고 귀도 쩌렁...한 한시간 보고나면 멍~ 합니다.
요즘 시청자는 자극하지 않으면 집중을 못하는가 봅니다.
지금 아무것도 자극받지 않는 느낌이 정말 좋습니다.
덜컹 거리는 마차를 종일 타다가 미동도 없는 땅바닥에 발을 디딘 느낌 이랄까.
최대한 단촐하게 살자고 많은 것을 정리하며 살지만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개나 되던 통기타도 재일 오래 곁에 있던 것 하나만 놔두고 처분했고,
3열3단 짜리 오디오 렉을 꽉 채우고도 남았던 것들 3피스로 정리했고,
아주 욕심없이 살려고 노력중입니다.
젊고 어릴 땐 왜 그렇게도 욕심이 많았는지 잔뜩 끌어 안고 있어야 맘이 편했던
적이 있었는데, 편했던게 아니라 배부름이 주는 포만감 같은...
자꾸 트림을 하면서도 가짓수를 늘려가던 그 때를 생각해 보면 참 어리석었구나
생각됩니다. 그저 매일 보여지는 익숙한 것들이 편안합니다.
과하지 않다는게 분명 심박수 느려지게하는 원동력이죠.
괜한 공회전은 낭비이고 사치란 생각이 듭니다.
가끔 아이쇼핑하다가도 '너 저거 사면 또 집착한다.' 스스로 혼내키고는 단념
합니다. 그러고 나선 '정말 잘 했다.' 칭찬도 해주구요.
여백이 주는 여유로움이 더 좋아졌기 때문입니다.
내일은 뭘 버릴까 생각하면서 쉼없이 비워내고 있습니다.
은은한 흑백사진 같이 자극없는 이 순간이 정말 편안합니다.
맥주한잔 조용히 마시고 있자니, 좋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