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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안재숙님이 올려주신 글을 읽다 보니 제가 30여년 전에 겪었던 황당한 배신(?)의 이유를 알겠더군요. 그래서 전에 한 번 자자실에 사진하고 같이 올렸던 글이지만 다시 한 번 퍼왔습니다.
제목 : 오래 전 얘기랍니다
지금부터 근 30년 전 이야기가 되겠군요.
그때 저는 서울 근교 외삼촌댁에서 재수를 하고 있었더랬습니다. 그리고 그 집에는 아주 귀여운 일곱 살짜리 늦둥이 계집아이가 있었지요.
한여름에도 마음속에선 찬바람 불던 재수생 시절, 제게는 그 아이가 천사나 다름없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공부하러 갔다가 오후에 돌아와서 잠시 눈을 붙이면 어느 새엔가 제 품으로 기어들어와 잠들어 있는 그 아이가 제게는 무엇보다도 더 소중한 위안이었지요.
재수생이라는 굴레 쓴 눈치꾸러기 오빠를 그렇게도 따르는 동생이 너무도 귀엽고 고마워서 저는 이따금씩 자잘한 선물을 주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몇 년 동안 정이 쌓이고 쌓여 그 아이는 열두 살이 되었을 때까지도 졸리기만 하면 제게 안아서 재워달라고 떼를 쓰곤 했지요.
(그 아이의 황당한 배신이 바로 요 부분입니다.^^)
그러다 6학년이 되면서 젖가슴 나오고 궁뎅이 커질 무렵이 되자 이 아이가 제게 매달리지도 않고, 안아준대도 싫다, 재워준대도 싫다 하더군요. 그때 얼마나 섭섭하던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저는 외삼촌과 대판 싸우고---전두환이 권력을 찬탈한 무렵이었는데, 저는 죽일 놈이라 욕하고 데모하고, 외삼촌은 그러는 저를 나무라고 하는 일이 잦다보니 그렇게 되더군요---홀로서기를 시도했습니다. 외삼촌과는 깊어진 감정의 골을 메우지 못한 채......
외삼촌과 다시 화해를 한 것은 그 후 7년쯤이 지나서였습니다. 사촌동생들이 이제 그만하면 됐다고 저를 억지로 끌고 간 것이 계기가 되었지요. 나중에 알고 보니 외삼촌은 제가 붙잡혀 갈까봐 걱정이 되어서 저를 그렇게 야단치셨더군요. 그런데 저는 그것을 똑같은 “군발이”니까 편을 든다고 오해를 했었으니.......
그 무렵, 제 막내 사촌동생은 어느 새 대학생이 되어 있었지요. 그런데 이 아이가 오빠에게 보여줄 게 있다며 저를 제 방으로 끌고 가더니 조그만 상자를 하나 꺼내더군요. 그 안에는 제가 그 아이에게 주었던 보잘 것 없는 물건들이 차곡차곡 들어 있었고요. 하다못해 당첨 안 된 주택복권 쪼가리까지도 버리지 않고 보존해 두었더군요.
저는 그런 것들을 아무 생각 없이 주었지만, 그리고 주었다는 사실마저도 까맣게 잊고 있었지만, 그 아이에게는 제 “선물”이 그토록 소중했던 모양입니다. 온 마음으로 저를 아껴준 오빠가 준 것이기에.
재수생 시절 저를 위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새벽에 일어나 더운 밥 지어주신, 그리고 이제는 홀로 되신 외숙모께 전화라도 한 통 드려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