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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12-07-08 11:56:37
추천수 8
조회수   2,501

제목

청나라........

글쓴이

양준영 [가입일자 : ]
내용
애신각라(愛新覺羅)를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고국인) 신라를 사랑하고 신라를 잊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한다. 다르게 해석하는 사람도 있지만 청나라를 세운 만주인들의 '근원'을 살펴 보면 신라와 관련된 성이라는 해석은 상당히 신빙성을 가진다.(뒤에 서술)



애신각라를 몽골어로 읽으면 '아이신지료'인데, '아이신'은 '금(金)'을, '지료'는 '겨레(族)'를 뜻한다. '(신라 왕실의 성인) 김씨의 겨레' 혹은 '금, 밝음을 숭상하는 겨레'라는 말이다. 청나라라면 고려에서 조선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에서는 오랑캐의 나라로 불리며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 나라이다. 그런데 왜 청나라 왕조의 성에 '신라'와, 신라 왕족의 성 인 '금(金)'이 포함되어있는 것일까?



"청나라는 우리나라를 어버이의 나라로 섬겼습니다. 예를 들어 임진왜란 때 청태조 누르하치가 선조에게 '부모님의 나라'를 침략한 쥐 같은 왜구들을 해치우겠다는 요지의 편지를 썼다. 또 유명한 '삼전도 항복' 때는 친명배금을 외치는 조선에 와서 '원래 우리는 고려인의 후손으로 그대들과 같은 나라였다'는 취지로 '그대는 왜 동족을 따르지 않고 명나라를 돕는가?'라고 말다. 이렇게 청은 조선에 번번이 형제의 도리를 강조했다. 조선은 명분론에 매여 끝까지 청을 형제의 나라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역사연구단체 한배달의 오정윤 연구원은 먼저 청나라가 조선을 부모의 나라로 섬긴 예를 들었다. 그는 누르하치가 백두산 지역에서 태어난 것을 지적하며, 당시 백두산 지역에는 만주계 조선인이 많았고 그들 중 상당수가 고려 때부터 조선시대까지 고려인 또는 조선인으로 귀화했다고 설명했다. 한 때, 누르하치도 평안도 지방관현에 벼슬을 수차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는 이야기까지 하고 나서 그는 이렇게 결론지었다.





"왜 청나라가 끝까지 조선에 호의적이었을까요? 바로 청나라가 금나라로부터 나왔고 금나라는 신라에서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역사학자 이덕일 씨도 오 연구원과 의견을 같이 했다.

"중원을 복속하고 한족을 지배했던 곳이 청나라입니다.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인조 때 조선은 몹시 혼란스러웠기 때문에, 청은 충분히 조선을 복속하고도 남았습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청나라 사람들의 마음에 자신들의 조상에 대한 애정이 남아있었기 때문이죠."



청나라 황실의 역사서, "우리 시조는 신라인"



역사학자들의 말처럼 여진족 추장 누르하치는 금나라를 기리며 나라 이름을 '후금'이라 지었다. 그리고 누르하치가 금나라 태조와 정확히 어떤 혈연관계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누르하치가 계승한 금나라의 태조 아골타가 신라인이라는 문헌들은 많이 존재한다. 먼저 금나라의 역사서인 '금사(金史)'를 보면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金之始祖諱函普 (금나라 시조는 이름이 함보이다),



初從高麗來,年已六十餘矣(처음 고려에서 나올 때 60세가 넘었다) 兄阿古好佛,留高麗不肯從 (형 아고호볼은 따라가지 않고 고려에 남았다)



금나라의 시조인 함보가 60세가 넘은 나이에 고려에서 왔는데, 그의 형제는 고려에 남고 혼자만 금나라로 왔다는 이야기다.



청나라 황실의 역사서 '만주원류고(滿洲原流考)'에도 금나라의 태조에 대해 "신라왕의 성을 따라 국호를 금이라 한다'는 기록이 있다. 송나라때의 역사서 '송막기문(松漠紀聞)'은 "금나라가 건국되기 이전 여진족이 부족의 형태일 때, 그 추장은 신라인이었다"고 전한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 이야기가 비단 중국의 사서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신라 마지막 왕자인 마의태자의 후손임을 주장하는 부안 김씨들은 그들의 '족보'를 내세워 '금사', '만주원류고', '송막기문' 등의 내용을 이렇게 뒷받침한다.



"함보는 법명이고 그의 본명은 김행 (혹은 김준)으로 마의태자 김일의 아들이자 경순왕 김부의 손자이다. 김행은 여진으로 갔지만 다른 두 형제는 고려에 남아 부안 김씨의 시조가 되었다."



금나라의 역사서 '금사'와 거의 대부분 일치하는 주장이다. 다만 금나라를 세운 아골타가 김준의 직계 아들인지 몇 대를 거친 손자인지는 의견이 다양하다. 어느 것이 옳다고 딱 잘라 말할 수 있는 이는 없을 것인데, 금나라의 시조가 신라의 유민이라는 점만은 어느 이야기도 부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예를 더 보자면, 조선 후기의 실학자인 안정복 역시 '동사강목(東史綱目)'에서 '김준은 삼형제인데 김준이 여진으로 망명할 때 두 형제를 두고 혼자서 갔다.'고 밝히고 있어 금나라의 시조가 신라인 김함보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기자는 '금나라의 시조가 신라의 왕족'이라는 주장을 여러 문헌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중국 방식으로 친다 2 : 민족개념 새로 짜기



'중화민족'은 사실 비교적 최근(중국공산당 집권 이후)에 나타난 새로운 개념이다. 현재 중국의 영토에 사는 모든 민족은 모두 '중화 민족'이란 것. 이 '중화 민족'은 역사학이라기 보다 대륙의 다양한 소수 민족을 포섭하려는 중국공산당의 정치적 이해를 위해 만들어진 개념인 것이다. 이런 '우악스러운' 중화민족 개념에 대항하려면 우리도 본래의 '단일 민족' 개념을 새로 짜야하는 것은 아닐까. 그것은 여진, 거란 등의 북방 민족을 한민족(韓民族)의 테두리와 융화시키는 것일 터이다. 더욱이 이런 방식은 '중화 민족' 개념 보다는 문화, 인종, 생활방식의 유사성 등에서 훨씬 타당성이 크다.



그럼 여진 등의 기마 민족과 '한민족(韓民族)'의 역사적 관계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역사학자 이덕일씨는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에서 공을 세운 부하의 4대 후손이 누르하치라고 밝히면서 여진족, 몽골족 등과 조선의 관계를 조심스럽게 정립한다.



"이제 단일 민족 국가라는 개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성공적으로 감행할 수 있었던 원천은 바로 여진, 몽골 등의 기마 민족 덕분이었습니다. 동이족이라 불리던 유라시아 반도 동북부는 그렇게 서로 뒤섞여 살았던 것입니다. 고구려 영양왕은 거란족, 말갈족을 거느리고 수나라에 대항해 싸웠고 발해에서는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들이 함께 살았습니다. 또한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할 수 있는 발판이 되어준 기마 부대원들도 거란, 여진족들이었지요. 심지어 여진족은 조선에 귀화하면 벼슬을 주고 조선인으로 인정해 주기도 했습니다. 혈통이 어찌 되었든 함께 어우러져 살았으니 '우리 민족'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배달회 오정윤씨는 민족개념에 대해 훨씬 급진적인 주장을 펼친다. '동이족(東夷族)'에 거란, 여진, 몽골 등을 포함시키는 것이다.





"거란은 '알'을 의미하는데 부화하기 전 알의 색상은 황금색입니다. 즉, 밝음을 추구한다는 의미로 배달 민족의 '배달, 박달(밝은 들)'의 의미와 같습니다. 또한 여진은 고려의 '려'와 발해의 원래 이름인 '진'을 합해 여진이라고 한 것으로 몽골어로 밝은 온누리라는 의미에요. 또 몽골인들은 지배자를 '칸'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칸'은 '삼한'의 '한'과 같습니다. 무엇보다 동이족들은 똑같이 밝음을 숭배하고 하늘의 자손과 땅의 자손이 만나 천지를 새로 만들 아이들 잉태하는 거의 비슷한 신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동이족에 포함된다는 민족들의 인류·신화학적 공통점들에 대해 이야기하다 진지한 표정으로 고구려와 발해에 대해 말을 이었다.



"고구려는 전성기 때 몽골, 거란, 여진과 같은 여러 북방 민족을 통치했습니다. 고구려가 망한 이후에도 발해가 이들을 상당수 흡수해 서로 공동체가 되었고요. 교과서에는 발해의 지배층이 고구려인이고 피지배층이 말갈족, 즉 여진족이라고 나오지만 함께 오랜 세월을 지낸 사람들이 어떻게 다른 민족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실제로 한국인들은 발해를 민족사에 포함시키는 교육을 받고 있다. 물론 이렇게 된 것도 조선 후기 학자인 유득공이 '발해고'에서 발해를 우리 역사라고 주장한 이후부터였지만 말이다. 그 이전까지는 발해를 말갈의 나라로만 여긴 것이다. 그러나 발해가 민족사에 포함된다고 주장하려면, 발해를 구성했던 사람들, 특히 말갈인들도 한국인의 조상으로 보는 편이 훨씬 논리적일 것이다.



신채호와 박은식의 북방민족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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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수 2012-07-08 12:08:48
답글

흠... 휴일날 오전에 좋은 글 읽었습니다....... .. 그건 그렇고 양사장님은 내년에 장가 가신다면서 <br />
이 좋은날.. 데이트도 안 하십니꽈 ?? 어혀 밖으로 나가서.. 역사 창조의 기틀을 만드는 작업에 <br />
들어 가세욤 ... ^^

yans@naver.com 2012-07-08 12:10:47
답글

ㄴ여자가 많은 직종을 찾고 있습니다..........................

kipumege@empal.com 2012-07-08 12:11:40
답글

양준영님 전공을 오디오제작에서 역사연구로 바꾸셨나봅니다 <br />
이렇게 전문적인 글을 올리시다니... <br />
<br />
금나라와 청나라를 세운 시조가 신라출신이라는 설이 있습니다만 아직은 설에 불과한 것 같네요 <br />

임병직 2012-07-08 12:19:01
답글

설은 아니지요. 팩트입니다

김혜규 2012-07-08 12:24:12
답글

국수적으로 보일까 걱정은 되지만, 원과 청은 확실이 한족이 아니라 우리와 가깝습니다.

박재현 2012-07-08 12:28:45
답글

만주족의 유래가 신라인이라는 설은 너무 많이 까여서 이젠 수많은 역사 동호회에서는 완전 무시당하는 <br />
<br />
떡밥이구요...<br />
<br />
[청나라가 왜 조선에 끝까지 호의적인지....어버이나라로 섬겼다느니 하는것]은 태어나서 처음 듣는 <br />
<br />
금시 초문입니다.<br />
<br />
청나라는 한번도 조선에 호의적인적이 없었습니다...<br />
<br />
건국하자마자 군신 관계를

yans@naver.com 2012-07-08 12:29:43
답글

조선족 사람들한테 만주족을 물어도 모릅니다...............

kipumege@empal.com 2012-07-08 12:31:17
답글

ㄴㄴ 국수적 여부를 떠나서 원을 세운 몽골족이나 청은 세운 여진족은 혈통적으로 퉁구스계이니 <br />
우리와 더 가깝지요 <br />

박재현 2012-07-08 12:32:42
답글

금, 원, 청은 인종적으로는 우리와 가깝지만 문화적으로는 중원과 우리가 가까운 겁니다.

김종백 2012-07-08 12:35:16
답글

팩트지만 팩트가 되기위해선 나라의 힘이......ㅠ.ㅠ<br />
<br />
그옛날 중원대륙을 호령하던 그 민족은 어디갔는지.... 유교를 국시로 삼은 조선시대부터 국운이 쇠퇴했다<br />
봅니다.<br />
<br />
준영님의 좋은 글 잘 봤습니다.ㅎㅎ

kipumege@empal.com 2012-07-08 12:36:01
답글

얼마전에 ebs 다큐를 보니 러시아에 사는 어느 퉁구스계 민족은 겨우 300명만 남아서 명맥만 <br />
겨우 유지한다고 하네요 <br />

kipumege@empal.com 2012-07-08 12:39:29
답글

ㄴ 종백님 우리민족의 쇠퇴는 신라의 삼국통일에서 시작되는 지도 모릅니다 <br />
고구려의 영토는 물론이고 한반도도 제대로 차지하지 못한 신라의 반쪽짜리 통일<br />
외세의존적 통일로 국세는 한반도 남쪽으로 제한되고 중국에 빌붙어 사는 결과를 가져왔지요<br />
<br />

임병직 2012-07-08 12:42:53
답글

`금나라 시조 김함보` 이 얘기는 우리 학교역사에서 다루지 않을 뿐 만주사람들이 쓴 자신들의 역사서인<br />
금사 와 만주원류고에는 기록되어있습니다. 이걸 왜 떡밥이라고 하는지..<br />
<br />
자신의 지식이 미치지 않는다고 해서 다른이들의 의견을 폄하하는것은 옳바른 토론의 태도는 아니라고 봅니<br />
다 . 25사의 내용들을 중화주의 입장으로 해석하는 우리 학자들의 사대주의 적인 행태는 반드시 고쳐져야한다고 봅니다.<b

임병직 2012-07-08 12:48:39
답글

그리고 백보양보해서 후금에서 만약 조선을 형제국 혹은 부모국이라고 했다면 <br />
그건 아마도 김함보에서 비롯햇다고 보기 보다는<br />
이씨조선 즉 이성계의 핏줄이 고려인이기 보다는 여진인에 가까웠기 때문이지 않을까 <br />
조심스레 추측해봅니다.<br />
이부분은 논란의 여지가 워낙 크긴 하지만 말입니다..

kipumege@empal.com 2012-07-08 12:54:42
답글

어떤 주장이 사실로 인정 받으려면 학계에서 우선 관련 논문으로 논증되어 다수의 연구자들에 의해서 <br />
지지를 받거나 확고부동한 사료가 나와야하는데 관련 논문이라고는 1981년에 발표된 석사논문에 <br />
금나라 시조 함보에 관한 것 (金의 始祖傳說에 대한 一考察) 딱 한 편 밖에 안보이네요 <br />
이를 미루어 볼 때 학계에서는 이런 주장에 관심 밖이라는 거죠 <br />

박재현 2012-07-08 13:02:36
답글

우리 발음으로 애신각라는 신라를 잊지말고 사랑하자라는 의미가 이닙니다...<br />
<br />
애신은 만주어 아이신(쇠, 철), 각라는 만주어 기오로 ( 부족) 즉, 쇠(금)를 숭상하는 부족이라는 의미의 <br />
<br />
성씨입니다.. 만주 귀족들의 성씨는 애신각라 , 서림각라 , 서서각라 ,이이근각라 등등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br />
<br />
누르하치가 성을 애신각라로 한것은 중원을 정복한 옛 몽골의 절대자 칭

임병직 2012-07-08 13:07:01
답글

그건 아마도 많은 학자들이 논문작성에 있어 창작의 고통보다는<br />
신도리코의 편의성에 기대었기 때문은 아닐까 장난스레 추론해봅니다^^<br />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이런 차이를 만드는것이 아닐까 합니다.<br />
역사에 객과적인 사실은 거의 없습니다.<br />
역사는 주관입니다<br />
왜 역사를 배워야 하는지가 그 이유를 말해줍니다.

kipumege@empal.com 2012-07-08 13:11:17
답글

ㄴ역사에 주관이 어느 정도 없을 수는 없겠지만 주관이 객관적인 사실을 압도해버리면<br />
역사가 아니라 창작소살이나 전설이나 신화에 불과하지요<br />
주관도 객관적인 사실에 바탕을 두어야 설득력이 있고 신빙성이 더 해지지요 <br />
예를 들어 10%의 객관에다 90%의 주관을 붙이면 설화 신화 민담 전설이 되겠지요<br />
<br />

박재현 2012-07-08 13:14:12
답글

ㄴㄴ 거...참...할말이.. 없군요....<br />
<br />
여기까지만 쓰겠습니다..<br />
<br />
편안한 휴일 보내십시오....

임병직 2012-07-08 13:15:00
답글

객과적인 사실은 양념일뿐 주관을 해칠수 없습니다.<br />
일본사람들에게 제아무리 독도가 역사적으로 우리땅이라고 한들<br />
그들에겐 가소로울 뿐 입니다<br />
이렇듯 역사는 객관화 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br />
주관을 정해놓고 객관적인 사실 몇가지로 기정사실화 하는것이 역사라고 생각됩니다.<br />
다른이들에겐 단군이 설화일지 모르지만<br />
우리 에게는 역사적 사실이듯이 말입니다.

김혜규 2012-07-08 13:44:41
답글

은나라가 동이족이라고 생각하는 저로서는 본문의 글에 크게 동의합니다. <br />
<br />
그리고 단군 건국 신화야 말로 그 어떤 건국 이야기 보다도 인류애가 넘치고 인간이 살아가야 할 길을 보여주는.. 하옇든 우리나라가 정말 내세울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함다. ^^

kipumege@empal.com 2012-07-08 13:51:09
답글

그런데 박재현님 <br />
무슨 토론을 벌이다가 좀 마음에 안든다고 <br />
거 참 할말이 없군요 하는 이런 식의 대응은 좀 삼가해 주셨으면 합니다<br />
그러면 열심히 댓글 다신 잉병직님은 또 얼마나 무안해지실까요 <br />
다른 사람의 주장이 마음에 안들거나 자신의 생각과 다르면 <br />
"아 그런가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도로 하시면 좋을텐데요<br />
<br />
<br />
<b

이승태 2012-07-08 14:04:01
답글

지금 영국 왕실의 뿌리는 독일(의 하노버 왕가)입니다. 스코틀랜드의 스튜어트 가문의 피도 섞여 있고요. 정작 중요한 잉글랜드 혈통(튜더 왕가)의 피는 아주 아주 쪼금이라는...그래도 독일 출신의 왕족을 섬기는 영국 사람들이나 혹은 자신의 조상을 영국 왕으로 보내준 독일 사람들이 서로에 대하여 동포애나 역사적 동질 의식을 느끼는 것은 전혀 아니죠. <br />
<br />
설령 청이나 금의 건국자가 한반도 출신인들 이제와서 그들과 어떤 역사를

임병직 2012-07-08 14:19:37
답글

이승태님의 전반부 글은 유럽사의 보편적인 사실에 해당하는 내용이라고봅니다<br />
유럽의 왕조 대부분이 이렇듯 서로 혼인관계로 얽혀있기에 후사를 찾을때 흔히 발생하는 일이지요<br />
대표적으로 백년전쟁의 단초도 이런 문제에서 기인했다고봅니다.<br />
<br />
동양사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일일겁니다<br />
굳이 찾아보자면 몽골과 고려, 백제와 일본 정도라고 볼 수 있을런지..<br />
<br />
후반부 글의 대한 저

yans@naver.com 2012-07-08 14:27:18
답글

문화가 다르면 인종이 같더라도 역사적으로 한뿌리라고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br />
그에 비해 일본은 한반도와 문화와 인종이 동질성이지만 영원한 숙적의 국가 아닙니까..................

kipumege@empal.com 2012-07-08 14:28:15
답글

단군 이야기가 신화라고 해서 그 자체가 지닌 의미와 가치가 훼손되거나 낮게 평가 되지는 않습니다<br />
신화는 민족이 수천년 지녀온 문화의 원형를 담고 있는 것이니까요<br />
<br />
<br />
<br />

이승태 2012-07-08 14:30:54
답글

과거에는 유목민이나 유목 문화가 역사의 주역인 경우가 있었지만 서양의 기술문명이 득세하면서 더 이상은 역사의 주역으로서의 동력을 상실한 상태죠. 앞으로도 역사의 전면에 나설 가능성은 전무하다고 봐도 될 것 같고요.<br />
<br />
물론 민족의 역사적 뿌리를 찾거나 가까운 혈통을 가진 민족들과의 교류도 필요하겠지만 우리의 주된 관심사가 되기에는 별 이득이 없다는 것입니다. 즉, 미래지향적이라는 관점에서는 진정 도움이 안될 뿐더러 한정된

이병철 2012-07-08 14:32:17
답글

중국 전문가로써 위 주장은 황당하기조차 합니다. 물론 제가 어느글에서 통일 신라의 잔족 귀족세력이 발해로 망명하여 여진과 어찌 어찌 연결되었다는 주장은 본 적이 있습니다.<br />
하지만 애신각라의 뜻을 풀이하여 신라를 사랑하자 운운은 무지의 소치입니다. 전통적으로 중국글자는 <br />
타 민족의 고유명사를 나타내기 위해 음차를 사용합니다. 즉 음만 비슷한 한자를 따서 발음을 표기할 뿐이지 <br />
의미와는 하등 상관이 없어요.

kipumege@empal.com 2012-07-08 14:38:09
답글

승태님의 의견도 일리 있습니다 <br />
저도 사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br />
아무리 우리민족이 과거에 중원을 호령하고 몽골초원을 말달리고 누볐지만 <br />
그게 지금에서 무슨 소용이 있나 하는 일종의 "역사적 허무주의"랄까요 <br />
그런데 한편으로는 우리가 어릴 때 뛰놀던 고향을 그리워하 듯 우리 민족의 시원에 대한 <br />
동경과 그리움이 우리 핏줄 어딘가에 흐르고 있지 않아 하는 생각도 듭니다 <br

이병철 2012-07-08 14:38:36
답글

물론 여기서 북방 제민족의 문화적 동질성에서 출발하여 청나라가 한족보다는 우리민족을 가깝게 여길 수는 있습니다만 청나라를 신라인 후손이 세웠다고 한들 그들의 건국당시 정체성은 발해나 고려처럼 고구려의 계승이 아니라 통일된 여진족 국가의 건설이었습니다. 고로 청나라 신라 드립은 사실 환빠들 잘 하는 마스터베이션입니다.<br />
설사 그것을 신라 계승하고 연결시키는 좀 우습지요.

이승태 2012-07-08 14:42:27
답글

최흥섭님 /<br />
<br />
가끔 만주를 호령했던 광개토대왕의 고구려를 떠올려보지만, 단지 과거의 역사일 뿐이라는 식의 역사적 허무주의를 느껴본 적은 결코 없어요...^^

kipumege@empal.com 2012-07-08 14:47:42
답글

ㄴ ㅎㅎ 그러시군요 <br />
<br />

이원일 2012-07-08 14:57:24
답글

준영님 예전에 제가 쓴 글인데.. <br />
<br />
http://board.wassada.com/iboard.asp?code=freetalk4&mode=view&num=455867&page=0&view=n&qtype=user_name&qtext=%C0%CC%BF%F8%C0%CF&part=board <br />
<br />
http://board.wassada.com/iboard.asp?code=freetalk4&view=n&pag

이승태 2012-07-08 15:01:38
답글

LL 네. 굳이 용어를 하나 만들어보자면 "역사적 실용주의"라고 해야할지...물론 내용이나 알맹이는 하나도 없어요...ㅎㅎ

kipumege@empal.com 2012-07-08 15:40:05
답글

청나라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br />
청나라는 아직도 수수께끼입니다 <br />
그렇게 강대하던 나라가 불과 몇십년만에 유럽 열강에 그렇게 허무하게 당했으니 <br />
1800년대 초까지만해도 청의 국부가 유럽 5대강국의 국부를 합친 것보다 많았다고 하던데<br />
불과 몇 십년 후에 영국에게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지고 치욕스러운 난징조약을 맺었으니...<br />
역시 서구유럽의 발달된 과학문물의 힘이었나요<br />
<b

이병철 2012-07-08 15:46:52
답글

내부붕괴죠. 엄청난 부패에다 비효율적인 관료시스템에다. 농민들 반란에다<br />
외우내환

이승태 2012-07-08 15:51:48
답글

영국이 청나라와 아편전쟁을 벌일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하기 위해 의회에서 투표했는데, 9표 차이로 전쟁을 결정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만큼 중국이라는 이름에 큰 부담을 느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직접 붙어보니 처음에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완전 종이호랑이였음이 밝혀졌고 이후로 서양 열강들이 줄줄이 중국의 이권에 들러붙었죠. 나중에 태평천국의 난이 일어났을 때도 청나라 정부는 쩔쩔매다가 서양의 교관에게 군사훈련을 받고 서양식 무기로 무장한

kipumege@empal.com 2012-07-08 15:5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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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요 <br />
어쨋든 청나라는 여러가지로 신비스럽고 미스테리가 많은 나라같습니다<br />
건국과정도 그렇게 짧은 기간에 중원을 장악하는 과정도 그렇고..<br />
붕괴과정도 그렇고 ...많은 호기심을 유발하는 나라인 것 같아요 <br />

yans@naver.com 2012-07-08 16: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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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일 님 잘 보았습니다.....................

박훈재 2012-07-08 16: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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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신각라 라는 건.. 신라를 사랑하고 이런 뜻이 아니고..<br />
<br />
아이신주르? 발음이야 어떻든, 원래 만주어가 잇고..<br />
<br />
그걸 한자어로 표기한 거죠..<br />
<br />
청나라가 일어난 것은 순전히 왜국 때문이지요..<br />
<br />
당시 일본의 조선침략으로 조선, 명은 국력이 많이 약해져<br />
<br />
청이 성장할 수 있는 배경이 되엇습니다..^^<br />
<br

이승태 2012-07-08 16:2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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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가 멸망한 것은 청나라의 직접적인 공격을 받은 것은 아니었고 내부의 반란에 의한 것입니다. 당시 청의 전신인 후금을 상대하느라 명의 주력군이 북방에 배치되어 있었던 관계로 멸망 당시의 명나라는 반란에 제대로 대응을 못했답니다. 명이 멸망하자 명의 북방 주력군은 청에 투항하고, 청은 이들을 이용하여 베이징을 쉽게 점령하지요.<br />
<br />
이 때는 청의 힘이 약해서 양자강 이남의 강남은 한족의 군벌들에게 할양합니다. 즉 중원을

박재현 2012-07-08 16:3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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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이 간과하는게 명나라는 청나라에게 멸망한게 아니라 농민 반란군들에게 멸망한겁니다.<br />
<br />
명나라는 이미 멸망의 수순에 접어 든게 사실이지만 그 당시 청의 국력은 감히 명에게 비교할만한 <br />
<br />
수준이 아닙니다. 오삼계 휘하의 병력들때문에 황태극의 만주 팔기는 만리 장성으로 넘어 올 수 없었죠.<br />
<br />
명나라가 멸망하지 않을 기회는 엄청 많았지만 숭정제가 그 기회를 스스로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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