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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가신지 어언 63년, 아 그리운 백범!
[백범 서거 63주기] 엄항섭 선생의 ‘추도사‘를 다시 바치며
(오늘은 우리민족의 지도자 백범 김구 선생이 서거하신지 63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일생을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오직 조국만을 위해 사신 백범은 해방된 조국에 돌아와 완전한 자주독립국가 건설의 꿈을 이루기도 전에 정적의 하수인이 쏜 흉탄에 생을 마쳤습니다. 생전에 선생이 이루고자 했던 국토가 통일된 국가, 주권이 독립된 국가, 평화가 넘치는 국가, 문화가 숭상되고 꽃피는 국가는 과연 이룬 것일까요? 그 시절보다 물질이 풍족한 것 하나 말고는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루지 못한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오늘 선생의 63주기를 맞아 엄항섭 선생이 백범 선생 장례식 때 읽은 추도사를 다시 바치며 삼가 향을 사르노니 선생이시여, 흠향(歆饗)하소서....편집자)
선생님 !
선생님 !
선생님은 가셨는데 무슨 말씀하오리까. 우리들은 다만 통곡할 뿐입니다. 울고 다시 울고, 눈물밖에 아무 할 말도 없습니다. 하늘이 선생님을 이 땅에 보내실 적에 이 민족을 구원하라 하심이니, 74년의 일생을 통하여 다만 고난과 핍박밖에 없습니다. 청춘도 명예도 영화‧안락도 다 버리고 만리 해외로 떠다니시며, 오직 일편단심 조국 광복만을 위하여 살으셨습니다.
선생님의 일생 행적을 헤아려 보면 오늘의 민족 해방이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오, 역대의 충의의 피를 흘린 모든 의인‧열사와 함께 거기 선생님의 지대한 공로가 들어 있음을 부인할 자 아무도 없습니다. 검은 머리로 고국을 떠나셨다가 머리에 백발을 이고 옛 땅을 찾아오시던 그 날, 기쁨이 얼굴에 가득 차고 춤을 추시는 듯 좋아하시던 그 모양을 우리는 잊어버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어찌 뜻하였으리요, 조국의 강토는 남북으로 양단 되고 사상의 조류는 좌우로 분열된 채 동족상잔이 나날이 치열하고, 전도의 광명이 각각으로 희박해 가되 그럴수록 선생님은 국토 통일과 완전 자주 이것만을 위하여 혀가 닳토록 절규하였고, 나물국 한 그릇에 쓴 김치 한 공기로 국민 최저생활을 몸소 맛보시며 지냈습니다.
선생님의 고난일생 지성일념이 이러했거늘, 마지막에 원수 아닌 동족의 손에 피를 뿜고 가시다니요, 그래 이것이 선생님에게 바친 최후의 보답입니까. 동포 형제여 ! 가슴을 치며 통곡하십시오. 선생님에게 드릴 선물이 이것밖에 없습데까.
선생님 !
선생님 !
민족을 걱정하시던 선생님의 말씀을 저녁마다 듣자 왔는데, 오늘 저녁부터는 뉘게 가서 이 말씀을 듣자 오리까.
선생님 !
선생님 !
민족을 걱정하시던 선생님의 얼굴을 아침마다 뵈웠는데, 내일 아침부터는 어데 가서 그 얼굴을 뵈오리까. 선생님은 가신대도 우리는 선생님을 붙들고 보내고 싶지 아니합니다. 남은 우리들은 목자 잃은 양떼와 같습니다. 이런 민족을 버리시고 차마 가실 수가 있습디까. 천지가 캄캄하고 강산이 적막합니다.
분하고 원통한 생각이 우리 가슴을 채우고도 넘쳐흘러 파도 같이 출렁거립니다. 여기 천언만어가 모두가 부질없습니다. 선생님은 가셨는데 무슨 말씀하오리까. 우리들은 다만 통곡할 뿐입니다. 울고, 울고, 다시 울고, 울음밖에 아무 말도 없습니다.
여기 잠깐 우리들은 ‘月印千江(월인천강)’이란 말을 생각합니다. 다시금 헤아려 보면 선생님은 결코 가시지 않았습니다. 삼천만 동포의 가슴마다에 계십니다. 몸은 무상하여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하늘의 낙원으로 가셨을 것이로되, 그 뜻과 정신은 이 민족과 역사 위에 길이길이 계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시대마다에 새싹이 돋고 새엄이 틀 것입니다. 민족을 위하여 고난과중(苦難過重)의 일생을 보내신 선생님이 결코 헛되이 그냥 가실 리 있습니까. 선생님의 거룩한 희생으로 민족의 대통일‧대화평‧자유‧민주에 의한 새 역사의 첫 페이지는 열릴 것입니다.
선생님 !
우리들은 선생님의 끼치신 뜻을 받들어 선생님의 발자욱을 따라 최후의 일각까지 민족을 위하여 삶으로써, 선생님의 신도 되었던 아름답고 고귀한 의무를 다하기를 선생님의 위대하신 영전에 삼가 맹서합니다.
1949년 7월 5일
한국독립당원 일동
대표 엄항섭
▲ 서거 당일 경교장으로 달려간 <라이프>지의 칼 마이던스 기자가 경교장 유리창을 통해 밖을 바라보며 찍은 사진으로 하단에 총알 구멍이 보인다. 경교장 마당에 시민들이 달려와 엎드려 울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 서울운동장에서 영결식을 가진 후 시내를 거쳐 효창원 장지로 향하는 백범 장의행렬.
▲ 지난 2009년 백범 60주기를 맞아 일단의 꼬맹이들이 유치원 선생님을 따라 백범 묘소를 찾아와 제각기 모양으로 꿇어 엎드려 절을 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