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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정말 가슴이 먹먹하고 눈물이 나려 합니다
짧은 기간동안의 국제 역학관계의 변수로 인해 국운이 흥할 수도 기울 수도 있다는게
어찌보면 참 가벼워 보이기도 합니다
클린턴은 훗날 이때 상황을 자서전 <마이 라이프(My life)>에서 이렇게 기술했다.
"나는 북한과의 협상을 진척시키고 있었지만, 중동 평화 협상의 성사가 임박한 상황에서 지구 정반대편에 가 있고 싶지 않았다. 더욱이 아라파트가 협상 성사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면서 북한 방문을 단념할 것을 간청한 상태였기 때문에 나는 북한 방문을 강행할 수 없었다."
훗날 퇴임 후 김대중을 만난 자리에서 클린턴도 이렇게 술회했다.
"제가 1년만이라도 더 대통령으로 있었더라면 북한 위기가 해결됐을 겁니다."
"김 대통령께서 이룩한 남북 관계 진전을 높이 평가합니다. 미국 정부는 대북 포용 정책을 적극 지지합니다."
회담은 이렇게 무리 없이 마쳤다. 김대중은 안도했다. 문제는 회담 후 기자 회견 때 불거졌다. 부시는 거친 표현을 동원 느닷없이 북한을 비난했다.
"나는 북한 지도자에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북한이 모든 합의를 준수하고 있는지 확신이 없다."
"대북 정책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겠다."
부시는 김대중의 답변도 가로챘다. 또 디스 맨(This man)이라 호칭했다. 김대중은 매우 불쾌하면서도 불길했다.
"김정일 위원장은 자기 백성을 굶주리게 하고 인권을 유린하는 악랄한 독재자입니다. 북한에 자유의 바람을 불어넣어 북한 체제를 붕괴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김 위원장은 서울 방문 약속을 왜 지키지 않는 것입니까."
부시의 공세적 질문은 김대중에게는 호기였다.
"레이건 대통령이 러시아를 '악의 제국'이라 지칭했지만 데탕트를 추진했습니다. 닉슨 대통령은 중국을 '전범'으로 규탄하면서도 중국을 방문하여 개혁 개방을 유도했습니다. 친구와의 대화는 쉽고 싫은 사람과의 대화는 어렵지만 국가를 위해, 필요에 의해 대화할 때는 해야 합니다. 미국은 한국 전쟁 때 공산당과도 대화를 했습니다. 북한의 안전을 보장하고 살길을 열어주면 북한은 핵과 대량 살상 무기를 포기할 것입니다. 북한에 기회를 주십시오."
부시는 "좋은 유추"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김대중은 햇볕 정책 이후 남북이 상호 비방 및 도발 중지, 이산가족 상봉, 인적 왕래 증가 등 가시적인 성과가 있음을 설명하고 국민의 80퍼센트가 이를 지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햇볕 정책은 유화 정책이 아닙니다. 강자만이 추진할 수 있는 공세적 정책입니다."
김대중은 휴전 이후 처음으로 북한의 군사 도발을 응징한 연평해전을 예로 들면서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데탕트를 추진하고 있음을 주지시켰다. 또 한반도에서의 전쟁이 얼마나 위험하고 무모한 것인지도 지적했다.
청와대 비서 김선흥은 당시의 부시 모습을 이렇게 술회했다.
"교무실에 불려가 주의를 단단히 듣고 나오는 학생의 표정 같았다."
정상 회담을 마치고 공동 기자 회견장에 나온 부시는 '김대중의 학생'이 되어 있었다.
김대중이 물었다.
"어느 교파 소속이신지요."
"감리교입니다."
그러자 김대중은 산업 혁명 이후 감리교가 영국 사회에 끼친 영향에 대해 설명했다.
"산업 혁명 이후 토지를 잃은 농민들이 도시로 몰려나와 빈민이 되었습니다. 노동자들은 열악한 근로 조건에 반발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폭동이 일어나기 직전의 위기에서 영국을 구출하여 19세기 찬란한 빅토리아 왕조 시대를 열게 만든 세 부류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언론이고, 둘째는 법원이요, 세 번째는 감리교였습니다.
당시 성공회는 왕족이나 귀족들만의 종교로 대중의 고통을 외면했습니다. 존 웨슬리가 감리교를 창시해서 성공회가 외면한 사람들을 품어줬습니다. 불만과 분노에 찬 이들을 위로하고 희망 속으로 이끌었습니다. 감리교가 영국을 구원한 것입니다. 대통령께서 믿는 감리교가 그래서 위대합니다."
부시 내외는 진지하게 경청했다. 김대중의 박식함이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면전에서는 햇볕 정책을 지지한다 해놓고 돌아서면 딴 짓이었다. 말과 행동이 달랐다. 그 때마다 덜 익은 정책으로 한반도 전체가 요동을 쳤다. 김대중은 이런 부시를 경멸했다. 임기를 끝낼 때 쯤 김대중은 부시를 이렇게 평했다. 그 속에는 증오가 잔뜩 묻어있었다.
"우리는 철학이 없고 자질 부족한 극우 보수주의자인 부시 대통령 때문에 미국까지 포함한 세계가 얼마나 피해를 입었는가? 나는 2000년부터 2003년 퇴임 때까지 남북 관계 개선 발전을 위한 천금 같은 시기를 갈등과 정체 속에 보낸 것이 지금 생각해고 원망스럽고 애석의 심정을 금할 수 없다."
"한반도 문제는 2000년 6·15 정상 회담 이래 순풍에 돛 단 듯이 순항한 것을 2001년 부시가 들어서면서 지난 8년 동안 엉망을 만들었다. 부시는 철학도 일관된 정책도 없이 일을 어렵게 했다. 나라가 잘되려면 국민이 훌륭해야지만 지도자도 제대로 된 사람이 들어서야 한다."